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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제종철 49재에 부쳐
윤원석 / 민중의소리 대표
인생의 길에 상봉과 이별 그얼마나 많으랴 헤어진대도 헤어진대도 심장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못잊어 오랜 세월을 같이 있어도 기억속에 없는 이 있고 잠깐 만나도 잠깐 만나도 심장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귀중해
1월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유달리 포근한 날씨. 내키지 않은 발걸음으로 마석 모란 공원을 찾아간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는 결코 오기싫은 길을, 기어이 마석 모란공원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달리는 차창밖으로 전태일, 문익환 목사님, 이한열, 박종철, 박태순, 남현진 그리고 현식이형 무수한 죽음이 눈앞에서 스치듯 차창을 흔들며 지나갔다.
그 중 아직도 80년대 대표적인 의문사 중 하나로 대통령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의문을 제기한 박태순이 떠올랐다. 감옥생활에서 만나 언제나 의기양양했던 낙천적인 박태순이 어느날 의문의 변사체로 철로위에서 발견되었던 기억이 제종철의 죽음과 교차되어 왔다.
그의 고향은 경남 진주의 문산 어디라고 했었다. 진하게 배어있는 사투리 그리고 해맑은 웃음. 그러니까 89년 임수경의 방북으로 전국의 대학교는 공안의 칼바람이 뒤덮고 연이어 대대적인 검거선풍이 일었다. 날마다 대학의 교정에서는 여기저기 최루탄이 터지고 경찰과 학생들의 치열한 공방이 연일 계속되었다. 그 때는 군대문제로 고민하던 후배들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며, 후배들의 군입대를 적극 만류했었다. 이런 만류에도 기어이 군대에 입대하고 입대 얼마 후 의문의 죽음으로 돌아온 후배 남현진의 죽음.
그는 상식적으로 설명이 않되는 후배의 죽음에 대해 그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 동분서주했었다. 그후 몇 년이 지난 후 학교에 돌아왔을 때 종철은 당시 유명한 영화 '로보캅'의 이름을 따 제종철의 '제'자와 로보캅의 '보캅'을 합쳐 강철같은 사람이라는 의미의 제보캅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2002년 여름 효순이 그는 다시 내게 다가왔다. 의정부에서 청년회를 꾸리고, 청년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특유의 사람좋아보이는 웃음과 성실함으로 지역 활동가들에게 신망을 받고 있었다. 의정부 동부역 광장 앞에서 진행된 항의농성장에서 만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형 이럴 수 있는 겁니까 ? 이 문제 꼭 해결해야 합니다. 이놈들이 현진이도 죽이더니... 이제는 미국놈들이 우리 어여쁜 미선이 효순이 장갑차로 깔아 죽였습니다.' '이렇게 당하고만 살수 없습니다. 이번에는 진상을 밝혀야 합니다.' 몇일째 집에 못들어가 퀭한 눈에 힘을 주며 말하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어느덧 도착한 모란공원에는 이미 많은 지인들이 모이고 있었다. 300여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지인들 그리고 가족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했던 동지들 모두 49일이나 되는 그가 없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 모습들이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젊은 노동자로 보이는 남자가 말없이 담배를 꺼내 물고 연기를 하늘로 내뿜으며 중얼거리듯이 옆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형 난 아직도 형이 죽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믿지 못하겠어 어디선가 형이 부를 것 같아...' '....'
그들은 이내 고개를 떨구더니 애써 서로의 시선을 피해 하늘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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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공원에 모인 지인들 ⓒ박윤영 | '님을 위한 행진곡'이 모란공원에 나지막히 울려 퍼졌다. 이어 김배곤(민주노동당 부대변인)씨의 사회로 49재 행사가 진행되었다. 그는 제종철과 함께 촛불시위를 이끌었던 동지였다.
김준기 교수(여중생범대위 공동대표)는 '우리의 벗 제종철 동지가 의문의 죽음이 있은지 49일이 지났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선배로서 동지로서 아픔을 전하고 지하에서 편히 쉬길 바란다'며 '더 이상 이 묘역에 더많은 동지들이 오기전에 자주,민주,통일,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자'고 힘주어 말하였다.
이어 노수희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공동의장의 추도사 그리고 의정부 청년회 '동지들의 당신이야 말로 온몸으로 촛불입니다.'는 편지낭독과 '심장에 남는 사람'이라는 노래가 모란공원에 울려 퍼졌다.
지금부터 49일전 나는 11월 20일 새벽 불길한 예감의 전화 연락을 받고, 의정부 의료원으로 달려갔었다. 이미 병원에는 간밤에 소식을 듣고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리고 다들 이 어이없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얼굴들이었다. 나 역시 인정하고 싶지않았다.
서둘러 마지막 종철이와 헤어졌다는 사람을 수소문하고, 그로부터 마지막 헤어졌던 장소와 헤어진 시간을 알아 낼 수 있었다.
'11시경 헤어 졌어요 의정부 동부역광장 농성장에 간다고..서부역앞 사거리에서 헤어졌어요 그때가 늦어도 11시 10경일 거예요'
그리고 그가 헤어졌다는 장소에서 의정부 서부역 광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간을 보니 아무리 늦은 걸음이라도 5분 정도의 거리 였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통화 기록인 11시 16분 아내와의 통화를 했다. 그가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내) 여보세요 (종철) 전화했었어 ? (아내) 어 전화했지 시골에 잘왔어 (종철) 뭐 하고 있어 ? (아내) 어 잘려구 누웠어 (종철) 알았어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
아내는 그가 약간 바쁜 목소리로 느껴졌고 주변은 조용했다고 했다. 최소한 그때 그 시각까지 그는 살아 있었다. 그리고 사고지점으로 향했다. 사고현장까지 가는데 나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경찰은 아무런 현장보존도 하지 않았다. 사고사로 보이지 않는 미량의 피 흔적과 몇 개의 동전 그리고 사고 당시 입고있던 옷에서 터져나온 듯한 오리털이 날리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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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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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 ⓒ박윤영 | 겨울하늘로 연기가 빨려 올라갔다. 고인의 유품을 가족들이 태우고 있었다. 마지막 잘가라고 이제 편히 잠들라고 그리고 참가자들에게 나누어준 소지에 소중한 마음을 담아 적었다.
'평생을 두고 닮고 싶은사람' '종철이 오빠 고맙습니다. 평생을 두고 그마음은 잊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억울한 죽음 꼭 밝히겠습니다.' '우리의 동지를 투쟁으로 부활시키자 !'
참가자들이 고인과의 약속을 담은 글들을 담아 태우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소지를 태운 재가 겨울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 옆에서 날아가는 재를 바라보며 넋을 놓고 있던 동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사고 직후 진상규명 활동을 했던 동지였다.
'종철이의 죽음에 풀리지 않는 의혹이 많아요. 혹시 11월 21일 저녁 생각나요, 그러니까 사고현장에서 목격자를 찾으러 가서 만난 사람 말입니다. 그 양반 연락처가 있지 않나요? 그때 그 사람이 현장에서 당시 서부역 광장에서 11시 5분경 부터 11시 30분까지 소란이 있었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누군가를 잡아죽이겠다고 고래고래 고함치며, 서부역 광장앞과 역사안을 휘젓고 다니던 사람이 있었다고요.'
나도 그의 말에 새삼 기억이 떠올랐다. 그에 의하면 많은 사람이 그 사람의 기세에 놀라 만류하거나 접근하지도 못했으며, 군복누비바지에 회색체크 무늬 잠바차림의 남자로 11시 30분 경의선쪽으로 방향으로 사라졌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에 대한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 말고도 풀리지 않는 의혹이 너무 많아요, 하나 하나 다 밝혀내고야 말겁니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말이죠.'
마지막으로 향해가는 행사에서는 고 제종철 동지 49재에 붙이는 시가 우위영(민주노동당 문예위원장)씨와 김배곤씨의 목소리로 낭송 되었다.
'제보캅을 그리며' -49재에 부쳐
싸늘하게 얼어붙은 겨울 장막 걷어내고 연분홍 진달래 꽃길따라 환하게 살아오는 그리운 동지여
네가 없는 나날에 우리는 웃음도 잊고 끼니도 잊고 현관문에 너를 위해 화분 하나 키울 일 없었고 거울 보며 너를 위해 매무새 단장할 일 없었다
네가 없는 새벽 그 허전한 가슴 불시에 심장을 찌르는 송곳같은 아픔을 누가 알 것인가
그러나 동지여 네가 사랑했던 모든 사람 너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 일심단결 불같은 사랑으로
더 이상 이제는 너를 위해 울지 않겠다 꽉 다문 이빨로 슬픔을 억누르고 가슴의 피멍을 안으로 삭히며 더 이상 눈물로는 너를 보내지 않겠다
한 겨울 분단의 땅에 굳세게 발딛고서 강철같은 복수의 결의로 산맥같은 승리의 낙관으로 훈훈한 대지의 품에 너를 맡기련다
신념과 의리의 일군 혁명가 제보캅의 짧고 빛나는 생애는 동지들에게 가슴뜨거운 믿음을 원수놈들에게 살떨리는 공포를 안겨주었다 동지들에게 한없이 부드러운 봄바람 적들에게는 심장을 겨눈 시퍼런 칼날이었다 회의와 동요를 붙잡아주는 흔들림없는 닻이었고 타락과 변절을 질타하는 매운 채찍이었다
무너지는 군부독재에 최후 일격을 가하고 제국의 오만한 낯색을 하얗게 질리게 만든 네 삶의 굵은 궤적 조국과 민중 위해 모든 것 불태운 네 삶의 선연한 흔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동지와 혁명 위해 모든 것 바친 네 삶의 고결한 자취는 남은 우리가 뚜렷이 이어갈 것이다
그리움으로 살아오는 잊지못할 동지여 이제 눈물을 걷고 어머니 흙가슴같은 대지에 육신을 남기고 저승 경계선에 흐르는 차가운 맑은 물로 목을 축이며 큰 걸음으로 휘적휘적 길떠나서 가자
원수놈들 짓부시고 자주민주통일 새세상 안아오는 그날 웃음으로 환하게 열리는 해방세상 그날에 다시 만나자 그날까지 끝까지 함께 싸워나가자
해는 이미 서쪽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가면 다시 오지 못할 사람들처럼 묘지 주변에 자리를 잡고 앉아 멈출수 없는 싸움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어떤일이 있어도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모든 의혹을 밝히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었다. 다시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새삼 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만들었다.
2004년01월09일 ⓒ민중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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