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교육가족 여러분께 드리는 글>
존경하고 사랑하는 경기도 교육가족 여러분께
연이은 태풍으로 수색이 중단된 팽목항에서,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학생과 선생님, 실종자 분들, 그리고 이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아픔을 생각합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가혹한 여름을 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의 절규를 떠올리는 시간입니다.
경기 교육가족 여러분께 직접 찾아 뵙고 취임 인사를 드려야 하지만, 여건상 이렇게 글로 먼저 인사를 대신함을 널리 양해하여 주십시오.
안녕하십니까? 교육감 이재정입니다.
여러분과 경기도민의 부르심으로 우리나라 공교육 희망의 발원지인 경기도 교육의 책임을 맡아 일한 지 어느 덧 한 달이 지났습니다.
경기혁신교육에 대한 교육가족 여러분의 헌신과 사랑을 잘 알고 있고, 경기교육을 제 인생에서 가장 뜻 깊은 소명으로 여기는 지금, 제 마음을 나누고 싶은 경기교육가족 여러분께 첫 번 째 편지를 씁니다.
당선 이후 첫 날 안산 단원고 방문을 시작으로, 지난 한 달 동안 여러 학교를 다녔고, 많은 분들의 말씀에 귀 기울이면서 교육현장의 빛과 그늘을 보았습니다. 교육의 힘을 믿고 묵묵히 최선을 다하시는 선생님들의 열정과 학부모님의 기대를 만났고,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늠름하게 성장하는 학생들의 이야기에 가슴 뭉클했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2014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무거운 숙제는, 세월호 사건에서 드러난 한국 사회의 온갖 모순과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로 집약될 것입니다. 아이들의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앗아간 기업의 탐욕, 정부와 국가의 무능, ‘가만히 있게 했던’ 한국 교육과 사회, 언론 등 모든 제도와 현상의 본질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사건 이후 단원고를 비롯한 전국의 학생들이 곳곳에 붙여 놓은 수많은 메모에는 기성세대를 향한 극도의 불신이 선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이 격렬한 슬픔과 분노를 달래 줄 어떤 모습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건 이후 머릿속을 내내 맴도는 말이 있었습니다.
“내 아이만 지켜서는 내 아이를 지킬 수 없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세상에서 ‘모두의 아이를 모두가 지키는’ 사회적 각오만이 내 아이를 지키는 유일한 방식이라는 생각입니다.
저에게 교육감의 소명을 맡겨 주신 유권자의 선택도 그러한 ‘같은 생각’의 한 결과로 해석합니다. 무한경쟁과 시장 논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비인간적 교육이 아니라, 협력과 공존의 가치가 더 중요한 교육의 덕목이어야 한다는 ‘시대 정신’이 도저한 강물로 흐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들이 일궈 오셨던 혁신교육이 그 모습을 앞서 보여 주셨고, 그 길이 ‘모두의 아이를 함께 키울 수 있는’ 우리 교육의 새로운 방향이라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뜻을 모아주신 것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경기 교육가족 여러분!
어느 시대나 교육은 미래를 여는 희망의 등불입니다.
지금 우리는 교육에 대한 새로운 생각과 실천 없이 나라의 미래와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눈부신 경제 발전과 정치사회적 민주화 속에서도, 교육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길입니다.
저는 이 어둠을 헤치는 교육의 신새벽을 경기교육이 열어갈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필생의 힘을 다하여 선생님과 학생들을 돕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넘어야 할 가장 큰 벽은 교육의 이름을 가장하여 교육현장을 지배해 왔던 너무도 많은 관행들입니다. 저는 혁신교육의 출발이 습관적이고 관행적인 기존 교육문화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여깁니다. 학교와 교육의 본질적 역할을 되묻는 과정에서 필연적이었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익숙하기 때문에 의심 없이 존속하는 수많은 교육적 폭력들, ‘이론’만이 아니라 ‘습관’으로 존재하는 우리들의 내적 수구성을 직시하면서 그 해법을 찾는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취임한 지난 짧은 한 달 동안에도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9시 등교와 벌점제 폐지 정책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지켜보면서, 안산동산고 자율형 사립고 지정 취소를 둘러 싼 거센 논란을 보면서, 안전지원국 설치를 비롯한 인사 및 조직 개편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를 마주하면서, 무엇보다 공교육 개혁을 둘러 싼 다양한 입장과 온도차를 대하면서 저 또한 깊은 시름과 고민으로 밤잠을 이루기 힘들었습니다.
정책의 필요성에 대한 충분한 공감과 소통이 미흡한 상태에서 다소 성급하게 진행된 추진 과정을 돌이켜 반성하는 한편으로, 교육적 가치를 되묻기보다는 익숙한 관행과 사고를 당연시하는 견고한 장벽 또한 무거웠습니다. 모든 장면을 정치적 입장의 대결과 대립으로 해석하는 오래된 파벌과 불신의 문화 또한 안타까웠습니다.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우리의 과제이고 저에게 주어진 책임입니다. 교육청과 교육 정책의 존재의 근거는 학생의 올바른 성장을 돕는데 있습니다.‘교실’과‘학생’에게서 교육적 가치가 확인되지 않는 정책은 의미 없습니다. 교육의 보편성과 공공성은 공교육이 지향해야 할 핵심원리입니다. 억압과 차별의 요소가 있는 정책은 과감히 폐기되어야 합니다.
갈등과 혼란으로 여겨질 수 있는 사안을 우리 교육의 생산적인 담론의 과정으로 치환시키고, 학교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학교문화를 만드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이러한 문화를 제도화하는 것이 교육혁신의 핵심입니다.
9시 등교와 벌점제 폐지 정책을 잘 이해하여 주십시오. 이는 학교장의 권한이나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하고자 하는 정책이 아닙니다. 학생들의 자율과 인권 존중, 건강한 성장, 과중한 학습부담 경감은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고 이 또한 그 일환입니다. 시행과정에서 예상되는 부작용과 오류에 대해서는 현장과 소통하며 철저히 대비하겠습니다.
또한 자사고와 자공고, 특목고를 비롯한 여러 특성화된 학교 체제의 존속이나 폐지 또한 설립목적과 취지에 부합하는지 여부, 우리 교육과 교육 자치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원만하고 지혜로운 해법을 모색해 나갈 것입니다.
모든 문제에 대해 제가 먼저 현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겠습니다. 교장․교감 선생님을 비롯한 학교 선생님, 학생, 학부모님이 부르는 곳이라면 때와 장소, 형식에 관계없이 최대한 먼저 달려가서 의견을 경청하고 정책에 담겠습니다.
존경하는 경기교육가족 여러분!
지난 선거 직후, 관련 법률에 따라 구성된 교육감직 인수위원회 활동이 지난 30일로 종료되었습니다. 도민과 교육가족 여러분의 의견과 제안을 향후 교육정책에 담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였습니다. 이 모든 활동 결과는 8월 15일 이전에 백서로 발간됩니다. 보고회를 거쳐 모든 분들과 공유하겠습니다.
인사행정과 조직개편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8월 1일에는 일반직 인사이동이 있었고, 오는 9월 1일에는 교원과 전문직 인사이동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신상필벌이 분명한, 다수가 공감하는 공정한 인사행정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내년 초, 조직 쇄신을 위한 개편을 목표로 조직 개편 T/F를 구성하였습니다. 정의로운 인사행정 구현과 능률적이고 합리적인 조직 개편을 위해서도 역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적극적인 의견을 주실 것을 청하겠습니다. 교육가족 여러분의 지혜를 모아 주십시오.
존경하는 교육가족 여러분!
저도 평생을 교육자로, 성직자로 살아왔습니다. 가르치는 순간 순간마다 교육이 얼마나 어려운지, 진실한 삶이 얼마나 복잡한 개인적, 사회적 문화의 산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오직 우리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모든 이들의 한 걸음이 앞으로 나올 수 있도록 어깨를 걸어주십시오. 아이들과 선생님, 학부모 모두가 즐거워하고 가고 싶어 하는 행복한 학교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진정 소망합니다.
경기교육가족 모두에게 교육을 위해 일하는 기쁨과 보람이 충만한 시대가 열리기를 바랍니다.
학생과 선생님 여러분의 건강하고 즐거운 여름방학을 기원합니다.
교육가족 모두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14년 8월 4일
경기도교육감 이 재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