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 볼 것인가 말 것인가(2)
“항상 조석으로 번제단 위에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되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하여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게 하였고(대상 16:40).“
위 말씀을 보면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를 드리되 아무렇게나 '느낌대로' 드린 것이 아니라,
말씀에 기록한대로 드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기록’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시고 강조하셨다.
그 이유는 ‘기록’은 곧 ‘기준’이요 ‘증거’요 ‘근거’가 되기 때문이었다.
이 땅에서도 저작권이 있어서 원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그 원작을 함부로 도용하는 것을 방지하듯이,
하나님께서도 그 경륜의 말씀에 대한 강력한 저작권이 있어서, 인간들이 함부로 그분의 뜻이나 말씀을
왜곡할 수 없도록 하셨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8~19)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 22:19~20).“
하나님은 마지막 심판도 철저히 ‘기록’에 의거하여 하실 것이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악보 보는 문제를 다루면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까지 연결시키는 것은 좀 비약이 심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근본은 같다고 생각한다.
작곡을 하는 사람으로서 하나님께서 떠올려 주신 곡들을 악보화하는 것은
순간적으로는 ‘음악적 선지자(?)’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아마도 아래 말씀에 다니엘과 같은 느낌이리라...
“바벨론 왕 벨사살 원년에 다니엘이 그 침상에서 꿈을 꾸며
뇌 속으로 이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단 7:1).“
이 땅에도 없고 내 안에도 없던 어떤 소리와 내용이 어느 순간 떠오른다.
그것이 내 안에는 존재하지만 아직 보여지지도 들려지지도 않는다.
나는 그것을 최대한 정확하게 기록하려고 애를 쓴다. 그 기록을 가능한 정확하고 빨리 하기 위해서는
기보 능력, 음악 이론, 악기 연주에 능해야 하기에 나는 평생에 걸쳐 음악을 배우고 또 배우고 있다.
내가 처음 들은 그 음악의 원본에 가장 가까운 것을 이 땅에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작곡자로서 찬양 악보들을 볼 때면, 수많은 작곡가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음악을 최대한 잘 기록하기 위해
애를 쓴 수고들이 느껴져 마음이 뭉클할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곡을 받아 적는 작곡가들은
음 하나, 리듬 하나, 코드 하나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런데, 그 악보를 무시한 채 마음대로 부른다면,
그 작곡가들은 마음이 아플 것이다.
누군가는 악보를 보고 연주하거나 부르면 형식에 매이고 ‘느낌’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한다.
그것은 악보를 대충 보았을 때 이야기다. 이는 마치 성경에 익숙하지 못한 자가 성경을 처음 읽으며
‘지루하고 어렵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악보를 제대로 본다면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우리는 우리 느낌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원곡의 악보를 무시하고 희생시키려 한다.
“이 코드 때문에 어려우니까 빼자. 이 리듬 때문에 영감이 깨지니까 쉽게 부르자...”
잠시라도 왜 작곡자가 그 코드와 리듬을 넣었을지 생각해 보았는가?
성경에 많은 말씀들이 있다. 그 중에는 익숙하고 쉬운 말씀도 있지만, 낯설고 어려운 말씀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걸림이 되는 말씀은 읽지도 않고 늘 건너뛸 것인가?
에디오피아 내시는 그가 읽고 있던 이사야 말씀의 어려운 부분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알려고
간절히 묵상하다가 빌립을 통해 구원을 받았다!(행 8:26~39)
사실, 악보를 보느냐 마느냐는 단지 악보를 외웠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악보를 존중하느냐 무시하느냐의 문제이다. 악보를 존중하는 사람은 악보를 보든 안 보든
그는 악보에 담겨진 영감을 정확하고 온전히 표현하는 것이고, 악보를 무시하는 사람은
악보를 보더라도 올바로 그 뜻을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기에 악보를 안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