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덥던 여름도 처서가 지나자 아침에 찬바람 안기는 가을로 접어드는 느낌이 확연합니다.
돌고 도는 계절이지만, 나이가 들어가니 새 계절을 맞이하는 즐거움보다 다 된 계절을 보내는 아쉬움이 더한 것 같습니다.
지난여름 뙤약볕 아래서 땀 흘리며 열심히 가꾼 농사는 늦가을이면 풍성한 수확으로 돌아오겠지요.
지금은 땀 대신 책상에 앉아 손가락 운동만으로 계절을 보내며, 한창 일에 열중했던 지난 시절을 회상해 봅니다.
**
천장 天障 천공 穿孔
삼일 이재영
“드르륵, 드르륵.”
전동 드릴의 예리한 비트(bit)가 딱딱한 콘크리트 천장을 파고든다.
시멘트 가루가 회색 눈송이가 되어 머리 위로 마구 쏟아져 내리고, 보안경 위에 쌓이는 가루가 시야를 흐리게 만든다.
천장에 수직으로 8파이 곱 60L, 지름 8mm 깊이 60mm의 구멍을 뚫는 천공작업을 하는 중이다.
묵직한 드릴을 양손으로 기관단총처럼 잡고, 수직으로 세워 서서히 위로 밀어 올리면, 양쪽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며 긴장하게 된다.
만약 콘크리트 속에 차돌멩이라도 박혀있다면, 아무리 강한 강철 비트라도 쨍 소리 내며 부러져 튕겨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천공작업이 끝나면 뚫어 만든 구멍 속에 손가락 크기의 앵커볼트(anchor bolt)를 집어넣고 망치로 세게 때려 박는다.
그러면 구멍 속 볼트 끝의 원뿔형 웨지(wedge)에 힘이 가해져 볼트를 둘러싼 슬리브(sleeve)가 밀어 올려지면서 시멘트 속으로 파고들어 꽉 밀착되므로 밖으로 빠져나오지 않게 된다.
등산할 때 바위에 박는 앵커볼트 작업도 이와 비슷하다.
구멍 밖으로 삐져나온 앵커볼트 나사에 주물로 만든 집게 모양의 클램프(clamp)를 끼우고 너트(nut)로 체결한다.
이 클램프 안쪽 옴폭한 홈에 동축케이블을 집어넣고 팽팽히 잡아당겨 작은 볼트와 너트로 꽉 조여서 고착시킨다.
외경이 12mm인 통신용 동축케이블을 건물 내장재 마감 전에 천장에 붙들어 매어 포설하는 것이 이 천공작업의 목적이다.
신축 중인 건물의 내부라서 냉방시설이 있을 수 없고, 건물의 내부로 들어가면 그늘은 져도 바람이 드나들지 않아, 한여름엔 무척 덥다.
안전화를 신고 소매가 긴 작업복을 입은 채 머리에 헬멧 같은 안전모를 뒤집어썼으니, 간간이 설치된 선풍기 없이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를 지경이다.
3명이 동원되어 바퀴 달린 소형 사다리차인 테이블 리프트(Lift)를 운전해 건축도면의 ‘케이블 포설도’를 따라 움직이며, 케이블이 50m나 감긴 큰 롤(roll)도 함께 굴리고 간다.
거의 3m 간격으로 지정된 클램프 위치에 이르면, 테이블 리프트를 안전하게 고정하고 높이 3~5m의 천장에 오르내리면서 천공작업에 이어 케이블 포설(鋪設) 작업을 하게 된다.
작업 시작 전과 후에 원청업체의 현장사무소에 작업일지를 제출하고, 점심시간 1시간 외에 오전과 오후 중간쯤에 빵과 우유 같은 간식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하루 일당과 중식비, 리프트의 임대료와 기타 경비 등을 고려하면, 3명이 하루에 케이블 포설 50m 이상은 수행해야 한다.
만약 그러지 못하게 되면 사장인 나라도 나서서 도와야 적자를 메울 수 있다.
수십 명의 직원을 두고 무전기 중계 장비를 제조하는 영세업체를 운영하면서, 신축건물에 장비를 납품 설치할 때, 케이블 포설도 직접 하고 있다.
포설만 전문으로 하는 팀에게 외주를 줄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 주는 이윤만큼 우리 회사의 이익이 줄어들어 어쩔 수 없다.
회사 운영은 힘들지만, 젊은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면서 억지로라도 유지해 나가는 보람은 있다.
케이블 포설이 끝나면 건물 준공 직전에 무전기로 통화하며 중계 장비의 작동 확인시험을 받게 되는데, 문제없이 통과되어 합격 사인을 받고 기성청구서를 올릴 때, 그동안의 모든 피로와 고달픔이 빗물에 씻기듯 한순간에 사라지고 새로운 의욕이 샘솟아 오른다.
포설 팀 1개 조 3명 중 조장은 대학을 나온 정규직원이고, 나머지 두 명은 군대를 다녀와 복학한 대학생들인데 여름방학 중에 알바를 하고 있다.
“힘들지? 일은 할 만해?”
“예, 딱 좋은데요. 살 빼러 헬스장 안 가도 되고요. 하하.”
목에 두른 타월이 땀에 흠뻑 젖었으면서도 웃는 얼굴로 대답하는 이들이 무척 대견스럽게 여겨진다.
공부 잘하고 똑똑한 학생들이라 그럴 리는 없겠지만, 졸업 후에 취직이 안 되어 제발 나한테 연락이라도 좀 왔으면 싶다.
[ 예전 영세업체 사장 시절의 이야기임. 노사관계가 부정적이지만은 않음 ]
첫댓글 내가 마치 높이 3~5m의 천장에 오르내리면서 천장 천공작업을 하는 듯이
잔뜩 긴장되어 글을 읽었습니다. 덕분에 새로운 분야의 영역을 눈 여기 보는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삼일 선생님!
네, 뱃사공님 말씀 감사합니다.
일은 힘들어도, 다 마치고 났을 때의 그 뿌듯함으로 지속하게 되더군요.
정말 리얼리티입니다.
네, 난정 작가님. 사실 묘사가 제대로 됐습니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