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77)
연잎 위에서
연잎 위에
넙죽
엎드려서
금개구리가 아침해에 절을 합니다
해님
묵은 햇빛 안 주셔서 고맙습니다
날마다 싱싱한 햇빛만 주세요
- 최승호(1954- ), 어른들을 위한 동시 『부처님의 작은 선물』, 담앤북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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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년乙巳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을사년은 천간天干이 ‘을乙’이고, 지지地支가 ‘사巳’인 해로 육십갑자六十甲子로 헤아리면 마흔두 번째 해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뱀해라고 하지요. 쓰기는 해도 잘 알지는 못해서 저도 검색했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무척 맑네요. 해맞이 나간 이들은 환호했겠습니다. 해맞이 나간 지인들이 보내오는 사진과 영상을 보니 떠오르는 해에 막힘이 없습니다. 어디 바다나 산으로 해맞이를 나가지는 않았지만 저도 다른 날보다는 일찍 일어나 거실에서 불도 안 켜고 아파트 꼭대기로 붉게 타올라오는 여명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가, 아침을 맞는 느낌이 좀 달랐습니다. 그러다가 새해 첫날 아침을 기념하는 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뭘 할까 하다가 빨래를 생각했습니다. 묵었다고 하면 묵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하루하루 날씨를 예측할 수가 없어 옷장에서 꺼내 한 번 입고 걸어두고 다시 안 입는 옷들이 꽤 됩니다. 때맞춰 입고 혹시나 한 번 더 입을 일 있을까 하고 걸어두었지만 어쩌면 이 겨울 다 가도록 안 입을 옷들과 여러 번 입어 때가 탄 옷들을 몽땅 걷어 손으로 애벌빨래 한 뒤에 세탁기에 넣어 돌려놓고 이 글을 씁니다. 애벌빨래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버팀과 놓음이 떠올랐습니다. 다 때가 있지요. 버틸 때가 있으면 놓아야 할 때도 있고, 버텨서 얻는 힘이 있으면 놓아서 얻는 안정도 있습니다. 버티고 놓아야 할 때를 제대로 아는 것도 지혜입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지요.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오늘의 해가 어제의 해와 다름없다고 생각하면 다름이 없고, 오늘의 해가 어제와 다른 해라고 생각하면 또 다릅니다. 같다고 보는 마음과 다르다고 보는 마음은 한마음이겠지만 다른 마음이기도 합니다. 부정과 긍정이 다르듯 비관과 낙관이 다르듯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태도가 달라집니다. 능동적인 태도가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길을 잘못 들었을 때는 주변을 잘 살피고 제대로 된 길 안내를 받아들여야 하듯 피동적이거나 수동적인 태도도 때에 따라서는 필요합니다. “해님/묵은 햇빛 안 주셔서 고맙습니다/날마다 싱싱한 햇빛만 주세요”하며 해를 향해“절을 하”는 “금개구리”는 이미 “날마다 싱싱한 햇빛”을 받고 있는 이입니다. 다시 한번 되풀이하자면 말 그대로 일체유심조이니까요. 수요 시 산책을 함께하는 모든 님들의 을사년 한 해 건승을 소망합니다. (20250101)
첫댓글 내 마음에 태양의 부처님인 대일여래(비로자나불ㆍ법계법신불)을 모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