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시리즈
17) 평강하다 평강하다 - 죄에 대한 지적 없이 거짓 위로만 전하는 자들
예레미야 6:13-15
6:13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6:14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6:15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들어가는 말 — 괜찮다는 그 말
어르신들, "괜찮아요, 다 잘 될 겁니다" — 이 말, 참 많이 듣고 많이 하며 살아오셨을 겁니다.
자녀 걱정할 때, 몸이 예전 같지 않을 때,
살아온 세월 되돌아보다 마음 무거워질 때, 누군가 곁에서 "괜찮아요" 해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래 목회하면서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어떤 "괜찮다"는 사람을 살리고, 어떤 "괜찮다"는 사람을 죽입니다.
여러분, 정기검진 받으러 병원 가시죠.
그런데 의사가 사진을 보고도, 뭔가 있는 걸 알면서도 그냥 "네, 괜찮으세요" 하고 돌려보낸다면 어떻겠습니까.
시간이 지나 손쓸 수 없는 지경이 되었을 때, 그제야 그 "괜찮다"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이었는지 알게 됩니다.
위로가 아니라 방치였던 겁니다.
오늘 본문의 유다가 딱 이 상태였습니다.
나라 전체가 병들어 무너지기 직전인데, 진단서에는 "정상"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선지자도, 제사장도, 백성도 다 함께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진단서 위에 한 줄을 더 쓰십니다 — "평강이 없도다."
첫째, 거짓 평안은 상처를 가볍게 여깁니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고쳐 주며" (렘 6:14上)
שֶׁבֶר (쉐베르)
: "부수다, 깨뜨리다"라는 어근 שבר에서 나온 명사. 골절, 파괴, 치명적인 붕괴를 뜻합니다.
예레미야서에서 반복적으로 쓰이는 단어입니다(8:11, 8:21, 10:19, 14:17).
여기서 말하는 "상처"는 긁힌 상처가 아니라 뼈가 부러진 상태, 즉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 관계가 붕괴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רָפָא (라파) + עַל־נְקַלָּה (알 네칼라)
: 본동사는 רָפָא, "고치다, 치료하다"입니다. 그 뒤에 붙은 עַל־נְקַלָּה가 "가볍게, 대충"이라는 뜻인데,
이는 קלל(칼랄, "가볍다, 경히 여기다") 어근에서 온 부사구입니다.
치료 행위 자체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치료가 상처의 깊이에 맞지 않게 대충, 가볍게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진단이 없는 처방이었습니다.
부러진 뼈에 반창고를 붙여준 겁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괜찮아요" 한마디만 해준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죄를 죄라고 부르는 순간, 관계가 불편해지기 때문입니다.
회개를 요구하는 순간, 사람들이 떠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것을 사랑이라 부르지 않으십니다.
방치라 부르십니다.
죄를 덮는 것과 죄를 용서하는 것은 다릅니다.
덮는 것은 상처를 그대로 둔 채 이불만 덮어주는 것이고, 용서는 상처를 정확히 드러내어 씻어내는 것입니다.
다윗도, 베드로도, 탕자도 — 모두 먼저 자기 상처의 깊이를 정직하게 마주했습니다.
그 다음에 은혜를 만났습니다.
저도 이 부분에서 자주 넘어집니다. 강단에 설 때, 성도님들이 은혜받았다고 웃으며 나가시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그런데 그 마음이 앞서면, 저도 모르게 상처를 가볍게 다루게 됩니다.
죄를 죄라 부르지 않고 슬쩍 넘어가고 싶어집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 아니십니까.
말씀 앞에 정직하게 서기보다, 기분 좋아지는 이야기를 듣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진짜로 살리는 말씀은, 먼저 상처의 깊이를 정확히 보여줍니다.
회개 없는 평안 선언은 위로가 아니라 방치입니다.
둘째, 거짓 평안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기쁘게 합니다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렘 6:13)
שֶׁקֶר (쉐케르)
: "거짓, 속임, 헛됨"을 뜻하는 명사.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뜻하는 אֱמֶת(에메트, 진리)와 정반대 자리에 놓이는 단어입니다.
여기서 "거짓"은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대신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전하는 구조적 배교를 가리킵니다.
특정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선지자부터 제사장까지,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 즉 온 시스템이 함께 무너진 것입니다.
왜 본문은 "평강하다 평강하다"를 두 번 반복합니까?
한 번 실수한 것이 아니라, 계속 그렇게 말해왔다는 뜻입니다.
백성이 원하는 말을 반복해서 해준 겁니다.
그러니 인기가 있었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은 거기 없었습니다.
에스겔서에도 똑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하여"(겔 13:10) — 담을 쌓고 회칠만 해놓은 것입니다.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무너지기 직전인 담입니다.
바울도 데살로니가전서에서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멸망이 홀연히 이르리라"(살전 5:3) 하고 똑같은 경고를 반복합니다.
이것은 예레미야 시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 전체가 일관되게 경고하는 패턴입니다.
참된 선지자였던 예레미야는 어땠습니까. 백성에게 미움받고, 감옥에 갇히고, 돌에 맞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거짓 선지자는 왕에게 인정받고 백성에게 인기 있었지만, 하나님께는 버림받았습니다.
이게 쉽지 않습니다. 진실보다 칭찬이 듣기 좋고, 책망보다 위로가 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기분 좋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말씀이 사람의 기호를 따라가면 교회는 커져도 하나님은 멀어지십니다.
셋째, 참된 평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완성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5)
מוּסַר שְׁלוֹמֵנוּ עָלָיו (무사르 쉘로메누 알라브)
: 직역하면 "우리의 샬롬을 위한 징계가 그의 위에 있었다"입니다.
예레미야 6장의 שֶׁבֶר(부서짐)와 שָׁלוֹם(평강)이 이사야 53장에서 한 인물, 즉 고난받는 종에게로 그대로 이어집니다.
: 예레미야가 정확히 진단했던 그 "부서짐"을, 그리스도께서 직접 짊어지셨습니다.
우리의 상처는 우리 대신 예수님이 부서지심으로 치료되었습니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구약이 예언하고 신약이 성취한 실제 사건입니다.
예수님도 평안을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요 14:27).
그러나 그 평안은 십자가를 통과한 평안입니다.
회개 없는 평안이 없듯이, 십자가 없는 평안도 없습니다.
여기서 하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회개가 먼저이고 평강이 나중이라고 해서, 회개가 평강을 얻어내는 대가는 아닙니다.
우리의 회개가 완벽해서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할 힘조차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행 5:31, 딤후 2:25).
십자가는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그 앞에 정직하게 서는 것 — 그것이 회개이고, 그 회개조차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참된 위로는 죄를 숨겨주는 것이 아니라 죄를 씻어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대신 부서지심으로, 완전히 해결하셨습니다.
선지자도 제사장도 백성도 다 무너졌던 그 자리에, 하나님은 끝내 한 분을 세우셨습니다.
스스로 상처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고 온전히 짊어지신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가볍게 하지 않으시고, 대신 짊어지심으로 참된 평강을 이루셨습니다.
오늘의 적용
1. 이번 주, 넘어갔던 그 한 구절 다시 꺼내기
최근 말씀을 읽다가 마음에 찔렸는데 그냥 넘어간 부분이 있으실 겁니다.
오늘 밤, 그 구절을 다시 펴서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앉아보십시오.
거창한 결단이 아니어도 됩니다. 그저 그 상처를 하나님 앞에 다시 꺼내놓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2. "괜찮아" 대신 함께 기도하기
이번 주 누군가 힘들다고 이야기해올 때, 습관처럼 "괜찮아요, 다 잘 될 거예요" 하고 넘어가지 마십시오.
대신 잠깐이라도 손을 잡고 짧게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위로는 말이 아니라 함께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3. 나 자신에게 정직한 진단서 써보기
이번 주 조용한 시간에, 최근 내가 스스로에게 "괜찮아, 별거 아니야" 하며 넘겨버린 것이 있는지 적어보십시오.
그리고 그 옆에 이렇게 써보십시오 — "주님, 이것을 가볍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결론
다시 병원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정말 좋은 의사는 아프게 진단합니다. 그러나 그 아픈 진단이 결국 사람을 살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정확하게 진단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진단대로, 우리 대신 아들을 부서뜨리심으로 완전히 고치셨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거짓 평안을 붙들고 있는가, 아니면 참된 평강을 구하고 있는가?"
이게 쉽지 않다는 것, 저도 압니다. 정직하게 상처를 마주하는 것보다 그냥 덮어두는 것이 훨씬 편합니다.
그러나 그래도 오늘, 거짓 위로를 내려놓고 참된 회개의 자리로 한 걸음만 나아가 봅시다.
그때 세상이 줄 수도 빼앗을 수도 없는 참된 샬롬,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그 평강이 우리 위에 임할 것입니다.
"평화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살전 5:23)
회개 없는 평안 선언은 심판을 늦추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확정 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