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백파 비 앞에서
오 세 홍
산이 있으면 계곡이 있고 계곡이 있으면 물이 있고 물길 따라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것이 우리조상들의 생활방식이다.
흔히 배산임수라고 하는 살기에 무난한 땅이 그런 곳인데 반드시 절 하나쯤은 거느리고 있어서 먹고 사는 문제와 함께 참답게 사는 문제를 고민하던 곳이기도 하다. 절은 우리조상들의 철학이 들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순천 조계산하면 송광사, 선암사요, 합천 가야산 하면 해인사요. 오대산에는 월정사, 상원사가 있고 내가 사는 곳에는 계룡산아래 갑사, 동학사가 있고. 내가 근무하는 홍성에는 가야산이 있고 수덕사가 있다.
전라도 정읍에는 선운산이라는 자그마한 산이 있는데 거기에 선운사라는 절이 있다. 이곳은 사시사철 언제 가도 느낌이 좋은데 계절마다 풍기는 맛이 틀리는 것 같다.
봄에 가면 절 뒤의 붉은 동백꽃이 아름답고, 여름은 풍천 장어구이가 맛있고, 가을이 되면 피를 토한 듯 한 진홍빛 꽃 무릇이 그 아련한 전설과 함께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겨울에는 절위에 있는 도솔암까지 올라가는 정취가 일품이다.
주변의 풍광을 살피면서 사랑하는 이와 같이 오솔길을 걷다보면 어렵지 않게 도착할 수 있다. 여성들도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는 아주 평탄한 길이다. 함박눈이라도 오는 날엔 서방정토가 여기 인듯하다.
도솔암에는 마애불이 있는데 투박하게 생긴 마애불이지만 동학농민운동과 관련이 있는 가슴 아픈 사연을 담고 있는 의미 있는 불상이다.
이런 풍경도 좋지만 그러나 조금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추사체의 아취가 서러있는 선운사 입구에 있는 백파 비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되리라 본다.
내가 선운사를 가본 것은 여러 번인데 봄, 여름, 가을, 겨울철 골고루 갔다 왔던 것 같다. 마지막 가본 것이 광주에서 열리는 문학행사에 갔다가 올라오는 길에 문예아카데미 문우들과 잠깐 들렸던 지난 12월경이었다.
몇 년 전 처음 그곳에 갔을 때 추사체의 정수라는 백파 비를 동료 교사가 소개해주었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서예에 무식해서 그런지 그때는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백파 비는 백파와 초의선사가 깨달음에 대한 논쟁을 벌인 것을 추사 김정희가 그 과정을 추사체로 적어놓은 비문이다.
흔히 불교에서 진리의 깨달음은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교종의 길과 선종의 길로 거칠게 얘기하면 교종은 불교경전공부를 통하여 단계적으로 서서히 깨달아 가는 길이고 선종은 참선을 통하여 어느 날 갑자기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이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스님들이 깨달음의 방법에 대하여 많은 논쟁을 이어왔던 모양이다. 백파와 초의선사도 이 깨달음을 방법을 가지고 논쟁을 벌인다. 백파는 선종의 방법을 주장한 것 같은데 초의선사는 선종이나 교종이나 하나더라고 주장하고 이 논쟁에 추사가 끼어들어 초의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면서 연장자인 백파를 공격하게 된다.
몇 번의 논쟁이 오갔는데 백파는 마지막에는 추사를 가리켜 "반딧불로 수미산을 태우려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논쟁을 끝낸다. 치열하게 전개된 이 논쟁은 근래에 학자들이 무승부라고 결론을 낼만큼 둘 다 만만찮은 논지의 주장을 했는데 문제는 추사가 백파를 논파하기 위하여 동원한 문장이 너무 방약무인하여 그 주장이 옳고 그름을 떠나 과연 인격을 갖춘 사람인가 할 정도로 상대방을 짓밟았다는데 있는 것 같다.
추사가 한참 득의했을 때는 눈에 뵈는 것이 없을 정도로 그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고 한다. 실의하여 제주도로 귀향을 가면서도 전주에서는 호남 제일의 서예가 창암 이삼만을 비아냥거리고 해남 대둔사에서는 동국진체의 으뜸인 원교의 글씨를 떼어내게 한 것도 그런 그의 기질을 말해준다.
백파 비의 내용은 추사가 죽기 1년 전에 쓴 것으로 백파의 제자들이 추사에게 부탁하여 써준 것이다. 그 내용은 대략 백파가 우리나라 최고의 학승이라는 찬사인데 그렇게 안하무인으로 얕잡아 보던 백파를 칭찬하고 있는 내용이다.
추사는 변한 것이다. 제주도 9년의 유배생활은 기름진 추사의 글씨를 골기가 있고 기름기가 빠진 행태로 바뀐다. 서체만 바뀐 것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바뀌는 것 같다. 백파 비는 그래서 추사체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기도 하지만 오만방자하던 추사가 인격적으로 원숙해진 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시련은 당하는 사람에게는 고통스럽지만 종종 그것은 하늘이 그 사람을 단련시키기 위한 훌륭한 교육이기도 한 것 같다. 추사의 유배가 바로 이런 경우이리라.
그래서 그런지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최고의 걸작으로 꼽는 봉은사 판전글씨는 순진무구한 어린이가 쓴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여려 개의 벼루를 밑창내고 수천 개의 붓을 닳게 하고 수백 개의 글씨를 갖춘 그의 팔뚝 밑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쓰고 싶었던 글씨는 어린아이같이 꾸밈이 없는 그런 글씨였다. 아마 자연에 따라 꾸밈없음이 가장 높은 예술의 세계임을 말하려했던 것일까?
내가 근무하는 인근에 추사고택이 있어서 여러 번 가보았는데 옛날의 품격 있는 모습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관련자들이 노력하여 그의 냄새는 맡을 수 있도록 정리를 하고 있다.
해남 대둔사(대흥사)가면 초의선사를 만날 수 있다. 그는 우리나라 차를 중흥시킨 분으로 추사와는 동갑으로 우연히 알게 되어 친하게 지내는데 추사는 나중에 차에 중독될 정도로 차를 좋아한다.. 대둔사에 가면 초의선사의 동상에 세워져 있으며. 대각국사 의천이 활약한 것이 순천 선암사이고, 보조국사 지눌이 활약한 곳이 그 옆 송광사이다.
얼마 안 떨어진 곳 해남 대둔사에 초의가 있었다. 강진 다산 초당 위 백련사에 혜장스님이 있었는데 다산보다 10살 아래지만 주역의 대가로 주역에 대하여 질문을 하면 말하기가 무섭게 수십 문장, 수백 문장이 하나도 틀리지 않고 파편이 튀듯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고 다산 정약용은 말하고 있다.
그 직계제자가 바로 초의인데 초의는 다산과도 친하게 지나고 다산의 둘째아들과 초의와 추사는 동갑내기로 학문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아주 친하게 지낸다. 추사와 초의, 혜장, 다산과 그의 자녀들이 남도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만나 산마다 계곡마다 향기로운 냄새를 남기고 태어난 곳으로 갔다. 그들은 갔어도 그들이 치열하게 살았기에 그들의 삶이, 그 냄새가 수백 년을 이어져 왔고 이어져 갈 것임을 믿는다.
선운사 못 미쳐 오른쪽으로 부도 밭이 있고 울창한 나무 사이로 까만 여러 개의 비석들이 있는데 눈여겨 찾아보면 쉽게 백파 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을에 가면 푸른 하늘과 만경평야를 뒤덮고 있을 황금빛 벼 물결, 따스한 가을햇살과 함께 이맘 때 가장 붉다는 꽃 무릇 만날 수 있다. 언제든지 관심만 같고 간다면 백파 비를 다시 찾아 추사체도 감상하고 치열하게 자신의 시대를 살다간 분들의 향기도 맡아볼 수 있다.
이 지역은 고창읍성과 맹종 죽, 고인돌, 미당 서정주 시비, 판소리의 신재효, 미당 시 문학관 등으로 유명한 곳이다. 두루두루 모두 가볼 만한 곳이다. 선운사의 동백꽃은 예나 지금이나 붉게 타오르고 대웅전 부처님은 말없이 웃고 계시지만 백파와 추사의 뜨거움을 비석은 말하여주는데 미당의 목소리도 거기 있건만 쓸쓸하기가 가을날의 떨어지는 낙엽 같기도 하다.
이제는 세월 따라 찾는 사람들이 바뀌고 있으니 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숨 쉬고 살아간다는 것이 그냥 살아지는 것이던가? 산다는 것이 밥 잘 먹고 잠 잘다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선운사에 가면 최영미가 노래한 동백꽃도 있고 추사가 쓴 백파비도 있고, 미당의 시비도 있다. 그 근처에 미당 문학관도 있고 판소리의 정리자인 신재효도 있고 그 옆에 바로 고창읍성도 있다. 근래 유명한 복분자와 풍천장어도 있다. 언제 마음이 울퉁불퉁할 때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정읍에서 빠져나와 보시라. 그러면 나그네의 취향대로 아니면 길이 이끄는 대로 이정표를 따라가면 그리운 풍경들을, 그리운 이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보고, 즐기고, 느끼는 것은 반 이상은 나그네의 심성과 품격에 달려있으니 혹 추사체만 보고와도 되고, 추사의 정신까지 보고 오면 더욱 좋고, 신재효 생가에 가서 춘향이가 매 맞는 장면을 들어도 되고 고창 고인돌을 보고 조상들의 삶의 모습을 그려도 되며, 국화 옆에서만 읽고 와도 되고, 그 정신을 마음에 한으로 새겨도 되리라. 이도 저도 싫으면 풍천장어에 복분자로 마음을 풀어헤쳐서 지나가는 여성들을 그윽한 눈으로 처다 보기라도 할 일이다. 그리하면 떠날 때의 울퉁불퉁한 마음들이 어느 새 개울가 조약돌처럼 반질반질하고, 우리의 낮은 산처럼 둥글둥글 해저 있을 것이다.
그러면 된 것이다. 우리는 다음날 가벼운 마음으로 더욱 힘차게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것이다. 나 주변의 사람들을 위해서. 더 넓은 주변의 사람을 위해서. 더 반질반질한 마음으로, 더 둥글둥글한 마음으로...
첫댓글 오세홍 시인님
몇 번 반복해 읽어 봅니다
한 지역의 역사를 소상하게 쓰셨을 뿐만 아니라 자연을 잘 설명해 주셔서 운치있고
문화적 가치를 음미하며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네. 헤스티아님 감사합니다. 그냥 생각하는 대로 써봤는데 지루하셨을 줄 압니다.
백파비 앞에서 문우들과 함께(화엄종주 백파대율사 대기대용지비)
추사체의 정수라는 선운사 백파비 뒷면입니다.
글이 잘못되어 고칩니다. 수정이 안되어 여기에 올립니다. 위에서 9째줄 "전라도 정읍에는 선운산이" 에서 "전라도 고창에는 선운산이"으로 고칩니다.
제 고향 고창 선운사를 이렇게 잘 표현해주신 오회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회장님.
고향이 이름난 고창이시군요. 선운사가 명찰이니 최선생님도 기운을 많이
받으셨겠지요 기대하고 있습니다
회장님
시만 잘 쓰시는줄 알았더니 수필도 잘 쓰시네요
역사 역사 선생님!!
잘 읽었습니다
아 그렇지를 못합니다. 좋은 글 많이 쓰실분은 용봉산 정기받으신 이선생님이십니다
@달빛/오세홍 회장님
해박한 역사선생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문장마다
고고한 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느낌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