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11.07.09
산행경로: 이화령-조봉-황학산-백화산-이만봉-시루봉- 분지리
소요거리:18Km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려 후다닥 배낭을 꾸려 집을 나선다.
지금것 늘 그랬듯 집을 나설땐 아이들 생각에 마음이 많이 무겁다.
오늘은 출발부터 비가 내린다.
아직 어린 한얼이가 마음에 걸려 매번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일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보게된다.
그럴때면 "난 지금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내일이나 앞으로가 아닌 지금 말이지..."
많은 사람들은 하고싶은 일을 하기 위해 또는 여유로운 생활을 하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모은다고하지만 그때가 구체적으로 언제가될지 계획이 명확한 사람보다 막연한 바램에 그치는 사람이 더 많다.
심지어는 큰집을 장만하기 위해 등이 휘도록 일하고 아껴아껴 바라던 큰 집을 장만하지만 막상 큰집을 장만하고 난 후엔 대출이자니 또는 그집을 유지관리 하기 위해서 다시 또 집에 노예가 되어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허덕이는 사람들도 있다.
사는데는 답이 없다는 말처럼 뭐가 옳고 그른지 알지 못하나 인생은 한 번 뿐이고 주워진 시간 안에 세상을 꼼꼼히 구경하고 경험하는 일이 좀 더 의미있는 일일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 나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난 젊은 시절 넘치는 열정과 에너지와는 상반되게 생각이 영글지 못해 많은 시간을 의미없이 고민하고 망설이며 보냈기에 지금에 와서야 후회하고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주변에 아이들 때문에 또는 좀더 돈을 모은 후에 하지뭐...
이렇게 미룬다면 늙어 관절염으로 고통받는 나이가 되서야 그때 하지 않은 일에 대해 가슴을 치며 후회하게 될것을 알기에 모진 엄마라고 해도 지금 난 집을 나설 수 밖에 없다.
수원에서 문근명선배님이 이번 구간 우정산행 지원 오시기로 약속이 된 터라 비가 온다고 해서 산행을 취소할 수도 없는 일이다.
14년차 내 애마는 미덥지 않은지 이번에도 이상갑선생님 차량을 이용한다.
이화령까지 오는동안 봉화를 출발해 영주, 예천을 지나 문경까지 한 발 한 발 걸어서 멀리도 왔다.
80km속도로 2시간을 차량 이동할만큼 걸어서 왔다 생각하니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앞으로 더 멀리 지리산까지 가게 된다면 이런 느낌은 더 크게 느껴질텐데 상상만해도 뿌듯한 일이다.
이화령에 도착하니 이슬비와 함께 안개가 자욱해 한치앞도 볼 수 없다.
꼬불꼬불 고갯길을 돌아 이화령에 다닿아서 좌측 공터엔 텐트 한동이 처져있고 가스등불이 켜져 있어 세상에 이런날씨에 야영하는 미친사람이 우리 말고 또 있다는 사실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화령 휴게소 주차장에 도착하니 차량은 한 대 없고 비바람만 거칠게 불어제쳤다.
넓은 주차장에 텐트를 치고 선배님이 기다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주변을 둘러 봐도 보이질 않는다.
(그럼 아까 그 미친 사람이 선배님?)
차를 돌려 다시 그곳에 갔더니 역시나 선배님이셨다.
미리 야영준비를 다 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왜 넓은 이화령휴게소 앞을 두고 이곳에 자리를 잡으셨어요?"
"바람 거칠고 팩도 박을 수 없는 아스팔트에 어떻게 텐트칠 생각을 하냐?"
그렇다. 오랫동안 야영을 하지 않았기에 미처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역시나.... 선배님이시다.
이상갑선생님도 여장을 풀고 텐트 한동을 치셨다.
나란히 처진 텐트 두동 사이에 모기장 텐트 한동을 치고 셋이 모여 조촐한 술자리를 마련했다.
선배님은 쇠고기를 재워 오셨고 각자 배낭에선 소주병들이 해처모여 일열종대로 나와섰다.
벌써 20년이다.
풋풋한 스무살 시절에 선배님은 우리들에 우상같은 존재였다.
암벽과 산악구조, 응급처치, 등산법 일찍부터 등산학교를 접하게 해주셨다.
산악부 홈페이지에서 선배님들의 일기 가운데 하나를 발췌해본다.
1998년 3월 어떤날
매년 3월 10일의 산악부 시산제.
산악부의 시산제와 신입대원 입단식은 악명을 떨쳤다.
산악부의 신입대원 선발.
아무나 원하면 들어올수있는 곳이 아니었다.
산악부는 이전의 으쟁이뜨쟁이 수준이 아닌 전문 산악인으로 키워.
산악구조 및 흰산을 향해 도약하는 산악인 양성을 목적으로 그 지침을 세웠다.
그러기 위해 산악부 특유의 문화가 필요했다.
* 전문 산악인으로의 뜻이 있는 친구들로 구성
* 상명하복의 엄격한 규율 <---- 지독했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을만큼
* 영속성을 위한 기수별 선발.
* 고도의 산악훈련.
입단 전, 3~4개월 간의 테스트를 통해서 자격이 있는 자만 엄선해서 선발했다.
그렇게 선발된 대원은 정예였다.
산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고, 그 열정만큼이나 성장 속도도 빨랐다.
그런데!!!
입단식은 참으로 대단했다.
관악산 불성사에서 시산제와 함께 입단 선서식을 하고,
그 다음부터 악명높은 극기훈련이 시작된다.
하산... 계곡을 내려오며 선배들이 가하는 혹독한 훈련은 가히 극한이었다.
군대의 유격훈련도 이만은 못했다.
구보.. 계곡얼음 깨고 물속에 들어가기.. 오리걸음... 선착순...밤나무 아래 쥐잡기...
2~3시간동안 하산 내내 이어졌다.
하산때 쯤이면 대원들은 악에 받쳐 눈빛이 빛나곤했다.
사실 입단을 해서 '안하겠다'고 하면 그만인데.... 그들은 묵묵히 했다.
자랑스런 산악부원에 되기 위하여....
결국 그런 전통이 오늘에 까지 서로 끈끈한 우정을 잊게끔 해준 원동력이 된 셈이다.
매년 3월이면 악우들이 그립다.
각자 요소요소에서 제몫을 잘하고 살 것이라 믿어 의심치않는다.
사는게 바쁘다고 애들 키운다는 핑계로 오랜시간 산에 발길을 끊고 살았다.
선배님의 일기를 통해 시간과 공간과 생각을 공유하며 산을 향해 꿈을 키웠던 그시절이 내게 있어 가장 황금기가 아니였나싶다.
고된 훈련과 산행들이 서로를 끈끈하게 묶어주었고 사람은 누구나 존엄하며 항상 겸손할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셨다.
무한한 가능성을 꿈꿀수 있었던 스무살적 이야기다.
그때 3기 선배였던 최오순선배님은 한국 최초 여성 에베레스트 첫 등정이라는 타이틀을 끊었고 나와 동기 세명은 4인 1조가 되어서 대통령기등반대회 최우승이라는 타이틀을 끊었다.
산악활동을 그때 계속 했더라면 동경하던 흰산들을 다니며 여성산악인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 백두대간 조령산 정상에서 본 산을 사랑하다 산에 묻힌 지현옥씨는 유감스럽게도 안나푸르나에서 운명을 달리 했지만 오순선배나 김순주씨같은 경우 전문산악인으로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니 부러움에 대상이다.
올 여름도 오순선배는 딸내미 지원이를 내게 부탁하고는 죤뮤어트레일 25일간 대학생 10명을 인솔해 원정을 떠난다.
얼마나 좋은가...... 스폰받아 해외원정을 다니니....
선배님과 둘이 오순도순 이야기가 깊어지자 졸음에 겨운 눈으로 듣고만 있던 이상갑선생님은 내심 지겨운 눈치다.
불고기 안주에 소주병 여러병 비웠을때 나 먼저 자리를 떠 차안에 잠자리를 깔았다.
낯선 두 남정네는 남은 소주병도 비우고서야 각자 텐트로 들어간 모양이다.
새벽부터 밖이 분주하다.
눈을 떠보니 벌써 텐트는 걷히고 밥을 해서 도시락까지 챙겨놓고 누룽지에 볶음밥까지 아침메뉴치고 너무 다양하다.
간밤에 과음을 해서인지 눈이 떠지지 않아 밥머리에 앉아 눈을 비비고 있는 꼴이 추접에 극치를 달리고있다.
92년 여름 설악산 용아장성 릿지등반 가서 봉정암에서 비박하던 날로 기억된다.
동틀무렵 산새가 분주하게 울어대는 통에 잠이 깼을 때 땡칠이선배(남편)가 아침밥을 해 놓고 대원들 깰 때를 기다려 담배를 태우고 있는 모습에 반해'저 남자랑 결혼하면 날마다 아침밥을 해놓고 나를 깨워주겠지?'하는 엄청난 상상과 함께 남몰래 호감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호감은 애정으로 발전하고 몇해가 지나 결혼까지 하게 됐지만 상상과 달리 아침밥상을 서비스로 받은 날은 신혼 초 몇번에 그쳤고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여튼 오늘 아침은 왕후에 밥 왕후에 찬..... 그리고 왕후에 아침대접이다.
아침을 먹을 때까지 소강상태였던 일기가 여장을 챙겨 산행 들머리에 들어 서려니 돌변하기 시작했다.
샤워기에서 쏟아 붔는 물줄기 보다 더 강하게 내리친다.
희양산 구간은 난코스라 이 빗길에 산행이 가능할까 걱정도 되지만 일단 출발 했으니 가는데 까지는 가 보자
이번 산행은 비가 와서 그렇지 등산로는 원더플이다.
산길에 비가 쏟아지니 산길이 물길이 되버렸다.
재미있는 일이다.
길은 길위에 어떤 것이 놓이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니지 말이다.
산자분수령이라는 말처럼 물을 건너지 않는 백두대간에 특징이 오늘은 무색하다.
오늘은 물길따라 대간길을 걷는다.
황학산 가는 길 작은 봉우리에는 만리산 늘못처럼 정상부에 늪이 있다.
이번 장마에 생긴 일시적인 늪인지 아니면 항상 있는 늪인지 알 수 없으나 둥그런 늪 가운데 섬처럼 솟은 봉우리에 멋들어지게 우뚝선 신갈나무가 인상적이였다.
물기 흠뻑 젖은 숲은 싱그러움 그 자체다.
뉴질랜드 출신 미스터 로저가 백두대간을 종주한 후 평가보고회를 가졌을때 "백두대간 구간중 어디가 가장 인상깊었냐"는 내 질문에 "어디든 아름답지않은 곳이 없었다"는 대답이 생각난다.
지금에 와서야 그 때 미스터 로저가 내게 한 말에 뜻을 통감하게 된다.
정말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백두대간을 통해 난 우리나라가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고 그런 것에 감사하며 이땅에 강한 애착을 느낀다.
이런 것이 곧 애국심 아닐까?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아름다운 이땅을 꼭 제대로 느껴 보라고....
황학산 못미처 조망좋은 곳에서 바라본 풍경
하늘말나리가 이쁘게도 폈다.
비가 와서 퉁퉁 불은 꼴이지만 그 옆에 선 꺼벙이도 그런대로 이쁘다.
평천지 지나 조망포인트에서 연풍면 방향으로 내려다 본 풍경
계곡 끝으로 보이는 저수지가 분지리 저수지 같다.
멀리 운해위로 떠있는 산 봉우리가 인간세상과는 다른 곳 같이 느껴진다.
산딸나무는 가로수로만 봐 온 터라 외래종일 것이라 생각 했었는데 이곳 이만봉 가는 능선길에서 보니 외래종이 아닌 토종인 것이 확실하다.이 먼곳까지 누군가 와서 일부러 식재하지는 않았을테고 흉고 둘레가 50~70정도 되는 것으로 봐서 수령도 꽤 오래 된 것 같다.
지금 꽃이 한창이고 능선부에서 내려다 보면 희끗희끗한 나무는 전부 꽃이 한창인 산딸나무다.
나무가 분포하고 있는 것과 수령을 봐도 산딸나무는 외래종이 아닌 우리 토종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꽃이 참 이쁜 나무다.
산행이 끝나면 산딸나무에 관해 필히 검색해봐야겠다.
비를 맞으며 휴식을 취한다.
이만봉에 도착해 조금 늦은 민생고를 해결했다.
된장을 풀어 능이버섯과 대파를 넣은 라면과 아침에 준비한 도시락, 훈제닭다리, 능이버섯을 넣고 삶은 수육.....
산에서 이렇게 먹어도 되나?
물에 빠진 생쥐처럼 흠뻑 젖어 앉기도 불편한데 점심 메뉴는 부르조아급이다.
비 쏟아지는 와중에 자리를 깔고 점심을 먹는동안 서울 늘푸른산악회 대간팀들이 지나간다.
빗길에 선두와 후미 간격이 많이 지는 것으로 봐 계획된 은티까지 좀 무리겠다 싶다.
남 걱정할 일이 아니다.
사정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점심을 먹고나니 오후 2시 30분이다.
희양산을 넘기엔 일기가 도움을 주지 않으니 중도 탈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선배님 제안에 이상갑선생님도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대간종주만 세차례 하신 선배님께서 "이런 일기에 희양산을 넘는것은 안전사고 날 우려가 있으니 시루봉삼거리에서 분지리로 하산 하자"고 하신다. 예전 같았으면 무조건 고!고!였을 선배님인데 세월이 흐르니 많이 여유로워지셨다.
오늘 산행 내내 서두르지 않고 50분 단위로 10분 쉬었다 출발했다.
아주 규칙적인 패턴으로 산행을 진행하셨다.
시계를 50분마다 알람이 울리게 세팅해두셨으니 평소 거칠것 없이 내걷던 이상갑선생님도 오늘은 걸음을 늦추는 것 같다.
"서두르지마라."
"산행은 절대 서둘러 간다고 더 많이 가는 것도 아니야 "
"항상 자기 페이스에 맞게 걷는 습관을 들이고 안전한 산행을 위해 욕심을 버려야된다"
"인생도 마찬가지야"
아직 구간이 많이 남았기에 당부말씀을 하신다.
특히 종주를 계획하고 진행하는 리더는 대원 전체를 안전하게 산행을 마칠수 있도록 명석한 판단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며 대간종주를 쉽게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어린나이에 산을 처음 접할때 부터 내내 강조하시던 말씀이다.
산 앞에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은 산을 오를 자격이 없다는 말씀이다.
눈덥힌 고산만이 위험한 산은 아니다. 사실 이런 일기에는 곳곳에 위험이 잠재하고 있는 것이다.
빗길이라 미끄러워 긴장한 탓인지 종아리가 뻐근하게 아파온다.
시루봉 삼거리에서 분지리로 내려 오는 길은 생각보다 꽤 멀다.
다음 구간 접속하기가 걱정스럽지만 오늘 같은 일기에 여기까지 온 것만도 충분한 성과며 또 즐거운 산행이였기에 흡족하다.
지원해주신 선배님과 이상갑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