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다니던 교회는 별관이 기역 자 형태로 본당에 붙어 있었습니다. 보통 때는 나무 칸막이로 막아 두었습니다. 대예배 시간이 되면 열어서 양쪽 모두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주로 늦게 오신 분들이 그쪽으로 가서 앉곤 했습니다. 성가대석에 앉으면 별관에 계신 분들이 정면으로 보였습니다. 늦게 오는 분, 조는 분, 메모하는 분, 잡담하는 분.. 전부 보였습니다. 박아무개 남자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설교 시간만 되면 끄덕끄덕 졸았습니다. 교회 의자가 없던 때라 방석에 앉아 졸면서 몸 전체가 많이 흔들렸습니다. 어느 주일날 아침에도 변함없이 졸다가 드디어 뒤로 꽈당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머리 뒷꼭지가 마룻바닥을 큰소리로 쳤습니다. 본인은 얼마나 놀라고 창피했겠습니까. 성도들도 놀라서 꽝! 소리가 난 별관 쪽을 바라보면서 궁금해 했습니다. 성가대석에서는 모든 상황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뒤쪽 베이스 자리에 앉았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보지 못했지만 그분의 따님은 소프라노였기 때문에 자기 아버지가 뒤로 넘어지는 모습을 정면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성가대원들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배가 당길 정도였습니다. 그 일은 두고두고 회자되었습니다.
신학대학 2학년 때 아주 조그만 시골 교회를 두어달 섬긴 적이 있습니다. 교인은 열 명 미만, 중고등학생이 서너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세 분의 집사님이 있었는데,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성경학교에 다니던 24살 된 따님이었습니다. 그 따님이 실제적인 교회의 책임자였습니다. 저는 예배시간에 조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고 가만 두고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 집사님이 설교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조는 겁니다. 저는 그때마다 종을 땡땡 쳐서 그분을 깨웠습니다. 종소리 듣고 깨어나면 설교를 다시 계속하곤 했습니다. 제 생각은 이랬습니다. 아니, 겨우 세 분 앉았는데 -때로 저녁 예배 시간에는 그 세 분밖에 없었습니다!- 제일 어른이 주무시면 나는 누굴 보고 설교하나?
군목 제대를 하고 처음으로 부목사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심방을 다녔습니다. 밤 아홉시쯤 집에 들어가면 입에서 단내가 나고, 말 한마디도 하기 싫을 정도였습니다. 중고등부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어른 심방을 하면서도 아이들 심방에 대한 중압감이 컸습니다. 하루는 어느 장로님 댁에 심방을 하게 되었습니다. 심방 예배를 마치면서 주기도문을 외우다가 갑자기 나도 모르게 “심방!”이라고 외쳐버렸습니다. 얼마나 창피한지 온몸에 땀이 쫙 흘렀습니다. 그 장로님 아들이 중등부 임원이었는데 그 아이를 심방해야겠다는 생각에 몰두하다가, 그리고 너무 피곤해서 깜빡 졸다가 그렇게 되었던 겁니다. 대낮에, 주기도문 외우다가, 깜빡 졸다가, 엉뚱한 소리를 지르다니! 예배 시간에 조는 사람들을 보면 “그럴 수가 있나”라고 하다가 “그럴 수도 있지”로 변했습니다.
저는 요즘, 주일이면 새벽기도, 1,2,3부 예배, 수완 오후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면 너무 피곤해서 저녁 예배 시간에 졸음과 싸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주일 아침 예배 때 조는 분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됩니다. 중직자가 졸고 있으면 제 마음이 고통스럽습니다. 특히, 예배 때마다 늘 조는 분들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 심히 염려하고 있습니다. 말은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소리를 지릅니다.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제발 기도하고 예배에 참석하십시오. 기도해도 졸리시면 토요일 일찍 주무셔서 주일 아침만이라도 졸지 마십시오. 마귀가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의 눈을 덮고 있는 건 아닌지 체크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 예배를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자는 자여 어찜이뇨? 요나를 향한 이방인 선장의 말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j.w.h.
광주수완은광교회
http://www.eungwang.or.kr/
홈페이지 들어어시면 목사님들 말씀을......
오전예배 :10:00
오후예배: 14:00
광주 수완지구와 인근 지역 형제 자매님들께
교회를 정하지 않았다면 한번 예배드리기를
권합니다.
첫댓글 시간이 없으시면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오셔서 여러 복사님들 말씀이 있으니 먼저 들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