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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문방(漢文房) 원문보기 글쓴이: 푸른하늘맑은달
王右軍 : 왕우군
이백(李白) [태백(太白)]
右軍本淸眞하니 瀟洒在風塵이라
山陰遇羽客하니 要此好鵝賓이라
掃素寫道經하니 筆精妙入神이라
書罷籠鵝去하니 何曾別主人고
우군(右軍)은 본래 맑고 진솔(眞率)하니 깨끗한 흉금으로 풍진 세상에 있네.
산음(山陰)에서 도사(道士)를 만나니 거위를 좋아하는 손님 사랑하였네.
흰 비단 쓸고 도경(道經)을 쓰니 필법(筆法)이 정하여 신묘한 경지에 들어갔네.
글을 다 쓰자 거위를 채롱에 넣어 가니 어찌 일찍이 주인과 작별할까.
對酒憶賀監二首 : 술잔을 대하여 하감(賀監)을 생각하다 두수
이백(李白) [태백(太白)]
唐賀知章은 字季眞이니 開元中에 遷禮侍兼集賢大學士러니 天寶中에 乞爲道士하여 以宅爲千秋觀한대 與之居하니라
당(唐)나라 하지장(賀知章)은 자가 계진(季眞)이니 개원연간(開元年間)에 예부시랑 겸 집현태학사로 승진하였으며, 천보연간(天寶年間)에 도사(道士)가 되어 집을 천추관(千秋觀)으로 삼을 것을 청하자 그에게 주어 살게 하였다.
四明有狂客하니 風流賀季眞이라
長安一相見하고 呼我謫仙人이라
昔好盃中物터니 今爲松下塵이라
金龜換酒處에 却憶淚沾巾이라
사명산(四明山)에 광객(狂客)이 있으니 풍류객인 하계진(賀季眞)이라오.
장안(長安)에서 한 번 서로 만나보고는 나를 적선인(謫仙人)이라 불렀다네.
옛날엔 잔 속의 물건 좋아하더니 지금은 소나무 아래 진토(塵土)가 되었어라.
금거북을 풀어 술을 사주던 곳에 옛날 생각하니 눈물이 수건을 적시누나.
又 : 또
狂客歸四明하니 山陰道士迎이라
敇賜鏡湖水하니 爲君臺沼榮 이라
人亡餘故宅하여 空有荷花生이라
念此杳如夢하니 凄然傷我情이라
광객(狂客)이 사명산(四明山)으로 돌아가니 산음(山陰)의 도사(道士)가 그를 맞이하였다오.
칙명(勅命)으로 경호(鏡湖)의 물을 하사하니 그대 때문에 누대와 못 영화로웠네.
사람은 죽어 없어지고 옛집만 남아 부질없이 연꽃만 피었구나.
이것을 생각하면 아득하기 꿈만 같으니 처량하게 나의 마음 상심하게 하네.
送張舍人之江東 : 강동으로 가는 장사인을 전송하다
이백(李白) [태백(太白)]
舍人은 官名이요 江東은 今建康太平寧國徽池等處라
사인은 관명이요 강동은 지금의 건강(建康)·태평(太平)·영국(寧國)·휘지(徽池) 등지이다.
張翰江東去하니 正値秋風時라
天淸一雁遠하고 海闊孤帆遲라
白日行欲暮하고 滄波杳難期라
吳洲如見月커든 千里幸相思하라
장한(張翰)이 강동(江東)으로 떠나가니 바로 가을바람이 일 때였다오.
하늘은 맑은데 기러기 한 마리 멀리 날아가고 바다는 넓은데 외로운 배 느리게 떠가네.
밝은 해는 장차 저물려 하고 푸른 물결은 아득하여 기약하기 어려워라.
오주(吳洲)에서 만일 달을 보거든 천리(千里)에 부디 이 몸 생각하오.
戱贈鄭溧陽 : 장난삼아 정율양에게 주다
이백(李白) [태백(太白)]
陽은 金陵縣名이라 ○ 鄭姓爲陽令한대 太白이 高尙其志하여 自得酒中之趣하고 笑傲流俗하여 自以淵明比方也라
율양은 금릉의 현 이름이다. ○ 정성(鄭姓)이 율양현령(陽縣令)이 되자, 이태백(李太白)이 그 뜻을 고상하게 하여 스스로 술 가운데의 취미를 얻고 유속(流俗)을 비웃고 하찮게 여겨 자신을 도연명(陶淵明)에 비교한 것이다.
陶令日日醉하여 不知五柳春이라
素琴本無絃하고 漉酒用葛巾이라
淸風北窓下에 自謂羲皇人이라
何時到栗里하여 一見平生親고
도령(陶令)은 날마다 취하여 다섯 버드나무에 봄이 온 줄 몰랐네.
소금(素琴)은 본래 줄이 없고 술을 거를 때에는 갈건(葛巾)을 사용하였다오.
시원한 바람 불어오는 북쪽 창문 아래에 스스로 희황(羲皇)의 사람이라 말하였네.
언제나 율리(栗里)에 이르러 평소의 친한 벗 한 번 만나볼는지.
嘲王歷陽不肯飮酒 : 술마시기를 좋아하지 않는 왕역양을 조롱하다
이백(李白) [태백(太白)]
地白風色寒하니 雪花大如手라
笑殺陶淵明이 不飮盃中酒라
浪撫一張琴하고 虛栽五株柳라
空負頭上巾하니 吾於爾何有오
땅은 희고 바람 기운 차가운데 눈꽃 크기가 손바닥만하네.
도연명(陶淵明)이 잔의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우습구려.
부질없이 한 거문고를 어루만지고 헛되이 다섯 그루 버드나무를 심어 놓았네.
부질없이 머리 위의 두건(頭巾)을 저버리니 내 그대에게 어쩌겠나.
紫騮馬 : 자류마(옛 악부의 가곡명으로 자줏빛을 띤 검은 갈기의 명마(名馬)의 이름)
이백(李白) [태백(太白)]
紫騮行且嘶하고 雙翻碧玉蹄라
臨流不肯渡하니 似惜錦障泥라
白雪關山遠하고 黃雲海戍迷라
揮鞭萬里去하니 安得念香閨오
자류마(紫騮馬) 가면서 울부짖으니 벽옥(碧玉) 같은 두 발굽 번득이네.
물가에 임하여 건너려 하지 않으니 아마도 비단 안장을 아끼려는 듯.
흰 눈 덮인 관산(關山)은 아득히 멀고 누른 구름 낀 바다 진영(鎭營)은 아득하네.
채찍 휘둘러 만리 길을 달려가니 어찌 향기로운 규방(閨房)을 생각하겠는가.
待酒不至 : 술을 기다려도 오지 않다
이백(李白) [태백(太白)]
太白이 沽酒以待賓이러니 久而酒不至故로 賦此詩하여 以寄興耳라
이태백(李太白)이 술을 사서 손님을 대접하려 하였는데, 오래되어도 술이 이르지 않으므로 이 시를 지어서 흥을 붙인 것이다.
玉壺繫靑絲러니 沽酒來何遲오
山花向我笑하니 正好銜盃時라
晩酌東山下하니 流鶯復在玆라
春風與醉客이 今日乃相宜라
옥병에 파란 끈을 매달았는데 술 사러 가서 어이 늦게 오는가.
산꽃이 나를 향해 웃으니 바로 술 마시기 좋은 때라오.
저녁에 동산(東山) 아래에서 술 마시니 날아다니는 꾀꼬리 다시 여기에 있구려.
봄바람과 취한 손님이 오늘 참으로 서로 어울리네.
遊龍門奉先寺 : 용문의 봉선사에 놀다
두보(杜甫) [자미(子美)]
龍門은 在西京河南縣하니 名闕塞山이요 一名伊闕이라
용문은 서경(西京)의 하남현(河南縣)에 있으니, 일명 궐색산(闕塞山)이요 일명 이궐(伊闕)이다.
已從招提遊러니 更宿招提境이라
陰壑生靈籟하고 月林散淸影이라
天闕象緯逼하고 雲臥衣裳冷이라
欲覺聞晨鐘하니 令人發深省이라
이미 초제(招提)를 따라 놀았는데 다시 초제(招提)의 경내(境內)에서 유숙하누나.
음침한 골짜기에서는 신령스러운 바람소리 나오고 달 비추는 숲에는 맑은 그림자 흩어지네.
하늘 높이 대궐에는 상위(象緯)가 가깝고 구름 속에 누웠으니 의상이 차가워라.
잠을 깨어 새벽 종소리 들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깊은 반성 발하게 하네.
戱簡鄭廣文兼呈蘇司業 : 희롱하여 정광문(鄭廣文)에게 편지를 올리고 아울러 소사업(蘇司業)에게 올리다
두보(杜甫) [자미(子美)]
廣文은 名虔이니 玄宗이 愛其才하여 置廣文館하여 以爲博士하니라 司業은 國子學官으로 名源明이니 能詩하여 肅宗朝에 知制誥하니라
광문(廣文)은 이름이 건(虔)이니 현종(玄宗)이 그 재주를 아껴서 광문관(廣文館)을 설치하여 박사로 삼았다. 사업(司業)은 국자감(國子監)의 학관으로 이름은 원명(源明)이니, 시(詩)를 잘하여 숙종(肅宗) 때에 지제고가 되었다.
廣文到官舍하여 繫馬堂階下라
醉卽騎馬歸하니 頗遭官長罵라
才名三十年에 坐客寒無氈이라
近有蘇司業하여 時時與酒錢이라
광문(廣文)이 관사(官舍)에 이르러 대청 섬돌 아래에 말을 매어놓네.
취하면 즉시 말을 타고 돌아가니 관장(官長)의 질타 크게 당했다오.
재명(才名)을 날린 지 삼십 년에 좌객(坐客)들 추워도 방석이 없네.
근자에는 소사업(蘇司業)이 때때로 술과 돈을 준다오.
寄全椒山中道士 : 전초(全椒) 산중(山中)의 도사에게 부치다
위응물(韋應物)
全椒는 除州縣이니 韋時爲州刺史하니라
전초는 제주현이니 위응물(韋應物)이 이때 제주자사가 되었다.
今朝郡齋冷하니 忽念山中客이라
澗底束荊薪하고 歸來煮白石이라
遙持一盃酒하여 遠慰風雨夕이라
落葉滿空山하니 何處尋行迹고
오늘 아침 군청(郡廳)이 차가우니 갑자기 산중의 손님 생각나네.
시내 밑에서 가시나무 섶을 묶고 돌아와 백석(白石)을 삶으리라.
멀리 한 잔 술을 가져다가 아득히 비바람 부는 저녁을 위로하려 하나
낙엽이 빈 산에 가득하니 어느 곳에서 행적을 찾을건가.
和韋蘇州詩寄鄧道士 : 위소주(韋蘇州)의 시에 화운하여 등도사(鄧道士)에게 부치다
소식(蘇軾) [동파(東坡)]
坡自序云 羅浮山에 有野人하니 相傳葛稚川之隸也라 鄧道士守安이 嘗於庵前에 見其足跡長二尺許하니 以酒一壺로 依蘇州韻하여 作寄之라
동파(東坡)의 자서(自序)에 이르기를 “나부산(羅浮山)에 야인이 있으니 서로 전해오기를 갈치천(葛稚川)의 하인이라 한다. 도사(道士) 등수안(鄧守安)이 일찍이 암자 앞에서 두 자가 넘는 그의 발자국을 보았다 한다. 술 한 병으로 소주(蘇州)의 운(韻)을 따라 시를 지어 부쳤다.” 하였다.
一盃羅浮春을 遠餉採薇客이라
遙知獨酌罷하고 醉臥松下石이라
幽人不可見이요 淸嘯聞月夕이라
聊戱庵中人하니 空飛本無迹이라
한 잔의 나부춘(羅浮春)을 멀리 고사리 캐는 나그네에게 보내노라.
멀리서 생각하니 홀로 술잔을 들고는 취하여 소나무 아래 돌에 누워 있겠지.
그윽한 사람은 볼 수 없고 맑은 휘파람 소리만 달밤에 들리리라.
애오라지 암자 속의 사람에게 희롱하노니 공중을 날아다녀 본래 자취가 없다오.
足柳公權聯句 : 유공권(柳公權)의 연구(聯句)을 채우다
소식(蘇軾) [동파(東坡)]
公權은 字誠懸이니 唐文宗時翰林이라 書詔學士하여 與上聯句하고 命題于殿壁하니 字徑五寸이라 上嘆曰 鍾王無以加也라하니라 東坡以文宗前二句와 公權後二句의 君臣四句之中에 皆有美而無箴戒라 故足爲八句하니 其忠君愛民之意深矣로다
유공권(柳公權)은 자가 성현(誠懸)이니, 당(唐)나라 문종(文宗) 때 한림을 지냈다. 학사들에게 명하여 상(上)과 연구(聯句)를 짓고는 대궐의 벽에 쓰도록 명령하니, 글자의 지름이 다섯 치였다. 문종은 감탄하기를 “종요(鍾繇)와 왕희지(王羲之)도 이를 능가할 수 없다.” 하였다. 문종이 지은 앞의 두 구와 유공권이 지은 뒤의 두 구의 군신(君臣)의 네 구 중에는 찬미하는 내용만 있고 경계하는 내용이 없으므로 동파(東坡)가 채워서 여덟 구를 만들었으니, 군주에게 충성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뜻이 깊다.
人皆苦炎熱호되 我愛夏日長이라
薰風自南來하니 殿閣生微凉이라
一爲居所移하여 苦樂永相忘이라
願言均此施하여 淸陰分四方이라
사람은 모두 무더위 괴로워하지만 나는 여름 해가 긴 것을 좋아하네.
훈풍(薰風)이 남쪽으로부터 불어오니 전각(殿閣)엔 시원한 기운이 일어나네.
한 번 이런 곳으로 거처를 옮기면 괴로움과 즐거움 길이 서로 잊고 마네.
원컨대 이런 베풂을 고르게 하여 시원한 그늘 사방에 나누어주었으면.
子瞻謫海南 : 자첨(子瞻 ; 東坡)이 해남(海南)으로 귀양가다
황정견(黃庭堅) [산곡(山谷)]
謫은 貶官遠居也요 海南은 瓊崖萬四州也니 崖今爲吉陽軍이요 今南寧軍이요 萬今萬安軍이라 紹聖甲戌에 東坡謫授寧遠軍節度副使하여 惠州安置하니 坡居羅浮에 有詩云 報道先生春睡美하니 道人休打五更鍾이라한대 執政怒之하여 再貶州也하니라 時宰는 章惇子厚也라
적(謫)은 좌천하여 멀리 있는 것이요 해남은 경주(瓊州)·애주(崖州)·담주(州)·만주(萬州)의 네 고을이니, 애주는 지금의 길양군(軍)이요 담주는 지금의 남녕군(南寧軍)이요 만주는 지금의 만안군(萬安軍)이다. 소성(紹聖) 갑술년에 동파(東坡)가 영원군 절도부사로 좌천되어 혜주(惠州)에 안치되니, 동파는 나부산(羅浮山)에 있으면서 시(詩)를 짓기를 “선생에게 알리기를 봄 잠이 아름답다 하니 도인은 오경에 종을 치지 말라. 〔報道先生春睡美 道人休打五更鍾〕” 하였다. 이에 집정대신(執政大臣)이 노하여 다시 담주로 좌천되었으니, 당시의 재상은 장돈(章惇) 자후(子厚)였다.
子瞻謫海南하니 時宰欲殺之라
飽喫惠州飯하고 細和淵明詩라
彭澤千載人이요 東坡百世士라
出處雖不同이나 氣味乃相似라
자첨(子瞻)이 해남(海南)으로 귀양가니 당시의 재상이 그를 죽이려 하였네.
혜주(惠州)의 밥을 배불리 먹고 도연명(陶淵明)의 시(詩)를 가늘게 화답했네.
팽택(彭澤)은 천년에 한 번 날 인물이요 동파(東坡)는 백세에 길이 전할 선비라오.
출처(出處)는 비록 똑같지 않으나 기미(氣味)는 마침내 서로 같구려.
少年子 : 소년자
이백(李白) [태백(太白)]
譏當時少年豪俠子弟 挾彈馳馬하여 醉臥於瓊樓하니 曾有夷齊守節之志否아
당시에 호협한 소년자제들이 탄환을 끼우고 말을 달려 술에 취해 아름다운 누대에 누워 있으니, 일찍이 백이(伯夷)·숙제(叔齊)가 절개를 지킨 뜻이 있느냐고 비판한 것이다.
靑春少年子가 挾彈章臺左라
鞍馬四邊開하니 突如流星過라
金丸落飛鳥하고 夜入瓊樓臥라
夷齊是何人으로 獨守西山餓오
청춘의 소년들이 탄환을 끼고 장화대(章華臺) 왼쪽에서 노네.
말 타고 나오자 사방(四方)에서 피하니 빨리 달림이 유성(流星)이 지나는 듯하네.
금 탄환으로 나는 새 떨어뜨리고 밤이면 옥 누대에 들어가 잠을 자누나.
백이(伯夷) 숙제(叔齊)는 이 어떤 사람으로 홀로 서산(西山)에서 절개를 지키며 굶주렸는가.
金陵新亭 : 금릉(金陵)의 새 정자에서
이백(李白) [태백(太白)]
金陵은 漢改秣陵하고 吳改建業하고 東晉改建康하고 隋改昇州하고 宋復改建康하고 元文宗改集慶하고 今爲應天府하니 吳東晉宋齊梁陳南唐建都之地라 元建江南諸道行御史臺於此라 故俗猶稱南臺云이라
금릉(金陵)은 한(漢)나라는 말릉(秣陵)이라 개칭하고 오(吳)나라는 건업(建業)이라 개칭하고 동진(東晉)은 건강(建康)이라 개칭하고 수(隋)나라는 승주(昇州)라 개칭하고 송나라는 다시 건강이라 고쳐 부르고 원(元)나라 문종은 집경(集慶)이라 개칭하고 지금은 응천부(應天府)가 되었으니, 오나라와 동진(東晉)·송(宋)·제(齊)·양(梁)·진(陳)·남당(南唐)이 도읍했던 곳이다. 원(元)나라는 강남(江南) 제도(諸道)의 행어사대(行御史臺)를 이곳에 세웠다. 그러므로 세속에서 남대(南臺)라고 칭한다.
金陵風景好하니 豪士集新亭이라
擧目山河異하니 偏傷周顗情이라
四坐楚囚悲하고 不憂社稷傾이라
王公何慷慨오 千載仰雄名이라
금릉(金陵)은 풍경이 좋으니 호걸스러운 선비들 새 정자에 모였네.
눈을 들어 바라보니 산하(山河)가 옛날과 달라 유독 주의(周顗)의 마음을 서글프게 하였네.
사방(四方)의 좌객(坐客)들 초(楚)나라 죄수처럼 슬퍼하고 사직(社稷)이 기욺은 걱정하지 않았다오.
왕공(王公)은 어이 그리 강개한가. 천년 뒤에 그의 훌륭한 이름 우러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