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산 선암사
선암사는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802번지로, 조계산(해발 884m)아래 장군봉 아래에 위치한다.
사찰 창건에 대해서는 백제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는 설, 신라말 도선국사의 창건설 등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물로 볼때 통일신라시대로 보기도 한다.
고려시대에는 대각국사 의천이 대각암에 머물면서 선암사를 중창하여
그 규모가 법당 13동, 전각 12동, 방26개, 산내 암자가 19개에 이르렀다 한다.
정유재란 때 왜군의 침략으로 전각이 불에 타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정유재란 이후 1660년에 경잠(敬岑), 경준(敬俊), 문정(文正)대사가
8년동안에 걸쳐 중창불사를 하여 사찰의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숙종7년(1681년) 호암약휴가 제4차 중창불사를 주도하여
원통전, 관음상, 53불전, 대법당 오십전, 승선교 등 잇따른 불사가 이루어졌다.
순조 23년(1823년) 화재가 발생하여 대웅전, 명부전 등이 소실되어 다음해에
해붕과 눌암, 익종 세 대사가 제6차 중창불사를 하고 일시 고쳐졌던 산 이름을
청량산에서 조계산으로, 사찰 이름을 해천사에서 선암사로 다시 회복하여
명실상부한 옛 면모를 되찾게 되었다.
해방이후 1948년의 여순사건과 한국전쟁(6.25)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비구`대처승간의 대립으로 일부 건물이 유실되기도 하였으나
최근 대부분의 전각이 수리되었다.
승선교를 비롯한 지정문화재 24점(국가지정 12점, 도지정 12점) 이외
선암사성보박물관에는 2,000여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지장보살님1>
<지장보살님2>
<지장전>
<지장전 좌측시왕님>
<지장전 우측시왕님>
<일주문>
일주문앞에는 굵은 배흘림기둥에 계단 소맷돌에는 석수상 한쌍이 자리잡고 있다.
<선암사 승선교/보물제400호>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다리로 알려져 있는 선암사 승선교.
무지개모양의 아름다운 곡선은 완전한 반원을 이루고 있고
물에 비추어진 모습과 어우러져 완전한 하나의 원을 이루고 있다. 마치 십우도의 여덟 번째 그림처럼...
선암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흐른다.
조선 숙종 24년(1698) 호암대사가 관음보살의 모습을 보기 바라며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그 기도가 헛되자 낙심하여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 하는데,
이 때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졌다.
대사는 자기를 구해주고 사라진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시는 한편,
절 입구에 아름다운 무지개 다리를 세웠다고 한다.
<승선교 아래 이무기돌>
이무기돌은 우리나라 무지개 돌다리에 많이 보이며, 돌다리 하부 가장 높은 곳에 매달려 있다.
이무기는 1000년을 묵어야 용이 되는데, 용이 되지 못하고 오랫동안 이무기로만 남아있으니
그 원한 또한 폭발 일보 직전일 게다
홍수 때 수마가 제 잘난체로 기세등등하게 몸집을 키우며, 거칠 것 없이
개울을 쫓아 내려올 때, 수마는 다리 밑에 매달려 물 쪽으로 머리를 내리고 있는
어두운 좁은 골목 불량배 같은 이무기를 만날 것이다.
수마는 이런 다리 및 이무기를 보고는 주눅이 들어, 몸을 낮추어
얌전히 다리를 지나갈 것이고, 다리는 수마로부터 안전할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선암사 강선루>
<대웅전>
<대웅전내 석가모니불/보물제 1311호>
사찰의 주불전으로 일주문과 범종루를 잇는 중심축에 위치한다.
대웅전은 선암사의 흥망과 함께하여 정유재란으로 인하여 소실된 후
현종 원년(1660) 경잠(敬岑), 경준(敬俊), 문정(文正)의 3대사가 주축이 되어
대웅전을 중수하였으나 1759년의 화재로 다시 소실되고 1760년에 상월(霜月),서악(西岳)등에 의하여
다시 중건되었다. 그 후 1823년의 화재로 대웅전이 다시 타자 1824년 현재의 대웅전 건물을 중건하였다.
정유재란 이전에는 대웅전 자리에 2층의 미륵전이 존재했다고 한다.
정면 3칸, 측면 3칸인 다포식의 팔작지붕집으로 장엄하고 화려하다.
높직한 다듬돌 기단위에 주좌가 뚜렷한 원형주석(圓形住石)을 놓고 민흘림 원형기둥을 세웠다.
<범종각>
<범종루>
불이문 역할을 겸하고 있다.
<원통전내 관세음보살님>
<팔상전>
<팔상전내 부처님>
<응진당>
<응진당내 삼존불>
<응진당내 나반존자>
<불조전>
불조전은 과거 7불과 미래억겁천불의 불조인 오십삼불을 봉안하였다. 즉 육십불을 모신 전각이다.
<불조전내>
<장경각>
각종 경전을 보관하는 곳
<조사당>
<조사당내>
<산신각>
<산신각내 산신탱>
<부도전>
부도 11기와 비석 8기가 줄지어 서 있다.
부도의 대부분은 팔각원당형이다. 그 중 이형 석탑형 부도가 눈에 들어온다.
사자 4마리가 탑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 전남 구례 화엄사의 4사자삼층 석탑을 닮았다.
<선암사 삼성각>
<삼인당/시도 기념물 제46호>
삼인당은 긴 알모양의 연못 안에 섬이 있는 독특한 양식으로 선암사 기록에 의하면
신라 경문왕 2년(862)에 도선국사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삼인이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의
삼법인을 뜻하는 것으로 불교의 중심사상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독특한 이름과 모양을 가진 연못은 선암사에서만 볼 수 있다.
건물 곳곳에 水 海를 새겨 놓은 곳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화마를 방지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한다.
<선암사 쌍탑>
절 안의 승선교를 지나 마당에 들어서면 대웅전 앞에 좌우로 3층석탑 2기가 서 있다.
2층으로 이루어진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이다. 규모와 수법이 서로 같아서 같은 사람의 솜씨로 동시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하나씩의 기둥모양을 새기고,
각 기단의 윗면에는 3층의 굴곡들을 이룬 괴임돌을 두어 윗돌을 받치고 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몸돌 모서리의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처마 밑이 수평이고 밑받침은 각 층이 4단이다.
지붕돌 정상에는 2층의 굴곡을 이룬 괴임이 있는데 지붕돌에 이와 같은 수법을 한 것은 희귀한 일이다.
탑의 머리장식으로는 노반(露盤: 머리장식받침)이 남아 있고 그 위에 작은 석재들이 놓여 있다.
이 두 탑은 완전히 동일한 수법으로 만들어졌으며, 각 부에 다소의 손상을 입기는 했으나 규율성이 느껴진다.
<해우소>
<선암사 전경1>
<선암사 전경2>
<선암사 전경3>
<선암사 전경4>
<선암사 전경5>
<선암사 풍경1>
<선암사 풍경2>
<선암사 풍경3>
<선암사 풍경4>
<선암사내 구시>
구시는 구유의 경상, 전라, 충청, 함경지방의 방언이다.
구유는 일명 구시통이라고도 하며 통나무 속을 파내어 공간을 만들고 말이나 소의 먹이를 담는 목기가 된다.
절에서는 많은 대중의 밥을 퍼 두는 함지통으로 사용되어진다고 알려져 있으며,
가장 유명한 것은 송광사 비사리 구시며, 다음은 보경사 구시 그리고 선암사 구시의 순서로 이름이 나 있다.
첫댓글 팔상전 부처님 뒤의 탱화는 화엄탱화로 보이는군요
지장보살님의 미소가 ~~~같이 미소 짓게 하네요^^
작년에 송광사 다녀오며 잠시 들렸었는데 다시보니 새롭네요. 요즘 선암사가 유홍준교수의 효과로 인기죠 잘 보고 갑니다
음..저는 언듯 다수의 불보살이 등장하는걸 보고 감로탱인줄 알았는데...화엄탱이군요...^^..감로탱에는 지옥의 모습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하네요..화엄탱은 화엄변상도를 옮긴거고..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장보살님 탱화가 독특한 게 지장보살님을 외호하는 호법신장이 모두 여덟분이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