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의 칠불
<청주·용화사>
조선조 광무 5년(1901). 내당에서 잠자던 엄비는 참으로 이상한 꿈을 꾸었다.
갑자기 천지가 진동을 하며 문풍지가 흔들리는 바람에 엄비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하늘을 쳐다보았다.
순간 엄비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색영롱한 안개 속에 칠색의 선명한 무지개가 자신의 처소인 내당을 향해 뻗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엄비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옷매무시를 가다듬고는 방으로 들어와 정좌한 후 밖을 보았다. 이번엔 아름다운 풍악이 울리는 가운데 일곱 미륵부처님이 일곱 선년의 부축을 받으며 내당을 향해 오고 있었다.
엄비는 얼른 일어섰다. 주위에는 온갖 나비와 새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며 춤을 추고 있었고 하늘에선 꽃비가 내렸다.
부처님 일행이 내당에 도착하자 엄비는 합장 삼배를 올렸다.
『그대가 바로 불심 지극한 엄비요?』
『예, 그러하옵니다.』
엄비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답했다. 방금 엄비임을 확인한 키가 제일 큰 부처님이 다시 말을 이었다.
『부탁이 있어 이렇게 왔소. 우리는 매우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다오. 하루 속히 우리를 구하고 절을 세워 안치해 주길 간곡히 당부하오.』
부처님 눈가엔 어느새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있었따.
『어느 곳에 계시오며 무슨 사연인지 알았으면 합니다.』
『그 내용은 청주 지주(요즘의 군수)가 잘 알고 있소.』
이렇듯 간곡히 당부의 말을 남긴 미륵부처님들은 영롱한 안개를 일으키며 서쪽 하늘로 사라졌다.
합장한 채 부처님이 사라진 쪽을 한동안 바라보던 엄비는 부처님을 하루 속히 구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힘드시고 다급했으면 저토록 눈물까지 흘리시며 당부하셨을까.」
『마마,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여느 날과 달리 오늘따라 기침 시간이 늦어지자 엄비 처소의 시종 삼월이는 아무래도 이상하여 엄비의 늦잠을 깨웠다.
부처님을 친견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엄비는 나인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거참 이상한 꿈이로구나.』
엄비는 마치 꿈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문밖으로 나와 일곱 부처님이 사라진 서쪽과 무지개가 피어오르던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떤 흔적도 남아 있을 리가 없는 하늘이었다.
아무래도 가만히 있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엄비는 간밤 꿈 이야기를 왕에게 고하고는 청주에 사람을 보내달라고 청했다.
『광인의 생각도 그러하오. 내 곧 청주 지주에게 사람을 보낼 것이니 하회를 기다리도록 하오.』
엄비는 그날부터 새벽이면 목욕재계하고 염불정진을 시작했다.
한편 엄비의 꿈 이야기와 함께 아는 대로 상세히 조사하여 고하라는 어명을 받은 청주 지주 이희복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사흘 전 내가 꾼 꿈과 흡사한 꿈을 엄비마마께서도 꾸시다니….』
엄비가 일곱 부처님을 꿈에서 친견하던 날 밤, 청주 지주 이희복은 깊은 잠 속에 스르르 방문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장삼이 온통 흙탕물에 젖은 스님 한 분이 바로 옆에 와서 앉는 것이었다. 놀란 이희복은 스님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이마에선 피가 흘렀고 목에는 이끼가 끼어 있었다.
『너무 놀라지 마시오. 내 지금 서쪽 깊은 늪에 빠져 헤어날 길이 없어 도움을 청하려 이렇게 왔으니 귀찮게 여기지 말고 힘껏 도와주시오.』
말을 마친 스님은 홀연히 서쪽으로 사라졌다. 이희복은 서쪽을 향해 합장하며 머리를 조아리다 그만 잠에서 깨어났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게 생각하던 중 어명을 받은 이희복은 그날로 사람을 풀어 서쪽 큰 늪을 조사하도록 했다.
그날 오후 조사하러 나갔던 나졸들은 큰 발견이나 한 듯 지주 이희복에게 고했다.
『서쪽으로 가 보니 「무심천」이라 부르는 황량한 개울이 있는데 그 주변에 머리 부분만 밖으로 나와 있는 돌부처 한 분이 흙과 잡초에 묻혀 있습니다.』
이희복은 급히 무심천으로 달려갔다. 가 보니 낚시꾼들이 석불을 의자삼아 걸터앉아 낚시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희복은 호령했다.
『아무리 흙에 묻혀 있을지언정 부처님이시거늘 그토록 무례할 수가 있는가.』
『살펴보지 않아 미처 몰랐습니다. 금후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오니 한 번만….』
얼굴이 붉어진 낚시꾼은 무안하여 도구를 챙겨든 채 자리를 옮겨갔다.
이희복은 부처님을 조심스럽게 파내었다. 석불은 이마 부분이 손상되어 있었다. 그날부터 이희복은 사람을 동원하여 무심천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7일을 퍼내니 무심천에선 모두 일곱 분의 미륵부처님이 출현했다. 이희복은 너무 기뻐 급히 왕실에 상고문을 올렸다.
왕실에서는 신기한 사실에 엄비의 불심을 높이 칭송하는 한편 청주 지주 이희복에게 많은 재물을 내려 절을 세우고 칠불을 모시도록 했다.
그 절이 바로 오늘의 청주시 사직동 무심천 변에 있는 용화사다. 신라 선덕여왕대에 창건됐다가 대홍수로 인해 부처님이 개울에 묻힌 지 천 여 년만에 다시 복원된 것이다.
용화사 복원 이후 청주 지역엔 자주 있던 홍수 피해가 없어졌다고 한다. 현재 미륵칠불은 지방문화재 제14호로 지정돼 있다. 「무심천」은 부처님의 흔적을 찾지 못한 채 무심히 세월만 흘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