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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아리랑
배 영숙
2011.4.10.
남편이 파나마 출장길에 멕시코와 쿠바를 경유한다고 한다. ‘쿠바’라는 말에 귀가 번쩍, 난 무작정 따라 나서기로 마음을 먹는다. 공식 일정으로 직원들과 함께 가는 남편의 해외 출장. 무척 조심스럽지만 ‘쿠바’가 던져 주는 강렬한 끌림에 난 은밀한 계획을 세워본다. 나는 일행들보다 먼저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서 그곳에서 기다리다가 남편과 합류하여 쿠바엘 가고, 돌아올 땐 남편 팀은 파리를 경유해 그냥 한국으로 들어오지만, 나 혼자 파리에 내려서 며칠 체류할 계획을 세워 본다. 일단 모든 비행기 티켓을 내 카드로 예약을 하고 남편 일정과 상관없이 내가 가 보고 싶은 곳을 체크 해 본다. 쿠바! 체 게바라, 아바나.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그리고 아직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파리를 나 혼자만 다녀볼 생각을 하니 두려움 반, 설레임 반이다.
씩씩하게 샌프란시스코로 이틀 전에 먼저 날아갔다. 2년 전, 스탠포드 대학 연구원으로 가게 된 남편을 따라가 1년 동안 머물렀던 팔로알토. 어제인 듯 생생하고 낯설지 않다. 가끔은 캘리포니아의 햇살이 그립기도 했었다. 지인 집에 머물다가 남편 일행과 합류했다. 멕시코를 경유해 파나마로 들어가기로 되어있다. 멕시코에서 남편은 공식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쁘고 난 그것과 상관없이 혼자 움직였다.
멕시코 하면 난 진즉부터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었다.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으로 모든 벽면을 차지한 대통령궁의 거대한 벽화 앞에 섰다. 압도적인 그림이다. 호탕한 한 남자와 작은 한 여자가 거기에 있다. 벽화 뒤에 숨어있는 조그만 멕시코 여자, 한 남자를 집착적으로 사랑한 여자, 프리다 칼로 때문에 가슴이 터질 듯 아프다. 곧 바로 프리다 칼로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살았던 코요아칸의 ‘푸른 집’으로 향했다. 카리브 바람 속에 소리없이 절규하는 한 여자의 집. 그 여자의 집은 으깨어진 골반위에 세워진 듯하다. 피 흐르는 자궁을 코르셋에 묶어 놓고, 침대에 누워 그림만 그리다가 그림이 된 여자. 그녀의 그림 속엔 그녀의 뜨거운 피가 아직도 흘러 다니는 듯했다. 약한 몸으로 또 사고로 병상에 누워서도 불구의 몸이 되어서도 단 한 번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은 용기와 뜨거운 열정의 소유자. 무엇보다 냉정하리만치 정직한, 그 무서운 정직성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소름이 돋았다.
파나마에서 남편의 공식 일정을 마치고 드디어 쿠바행 비행기 안이다. 서울을 떠난 지 며칠 째인지, 날짜도 잘 모르겠다. 같은 비행기를 타긴 탔는데 남편과의 거리는 멀다. 남편은 비즈니스석, 나는 이코노미석, 남편은 공무 중, 나는 여행 중. 비즈니스석을 끊을 만큼 배짱이 없는 나는 좀 치사하지만 이렇게라도 쿠바를 갈 수 있는 것에 감지덕지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타인 같은 남편이다.
쿠바는 입국수속부터 군복 입은 사람들로 겁을 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아바나공항에서 흘러나오는 쿠바의 뮤직으로 이미 들뜨기 시작한다. 숙소는 카리브 해변의 호텔 9층. 호텔 방에서나 남편과의 거리가 좁혀지는 것인가. 웬걸, 공식일정을 모두 마친 피로 탓인지, 이 남자 옷을 벗지도 않은 채 침대에 눕더니 곧바로 코를 곤다. 다시 나는 혼자다. 그래도 괜찮다. 난 여행자, 저 남자는 공직자. 나는 베란다로 나간다. 카리브의 밤바다가 출렁거리며 다가온다. 하지만 모기떼의 극성 때문에 낭만이고 뭐고 오래 서 있을 수가 없다. 다시 들어가 잠을 청해보지만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코고는 남편 옆에 누었다가 스탠드까지 챙겨 들고 거실로 나가 모기향을 피워놓고 편한 자세로 앉아서 한국서 갖고 간 쿠바 관광 책을 펼쳐본다.
일제강점기에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던 300여 명의 한국인들이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이주하면서 쿠바와 우리나라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이들은 어려운 환경에서 힘들게 일하면서도 대한민국 1921년 임시 정부를 원조하는 등 독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으며 쿠바와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했고, 6·25전쟁 때는 쿠바로부터 경제 원조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59년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가 되며 우리와의 국교를 단절하고,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과만 특별히 교류를 해왔다. 1990년에 들어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연이어 무너지자 쿠바는 경제를 위해 조금씩 개방을 시작하였고, 최근에는 우리나라 관광객들과 수출 기업들도 조금씩 쿠바를 오가며 소통하고 있다.
두런두런 1시간 넘도록 쿠바의 안내 책자를 읽으며 혹시 남편이 일어나 나오려나 기대했지만 기척이 없다. 또 다시 책에 집중 해본다. 한인 후손들의 이런 저런 모습들, 아리랑을 잘 부른다는 동그란 얼굴의 할머니! 우리 할머니 같은 넉넉한 모습이지만 묘한 매력을 지닌 예쁜 할머니! 카리브해의 밤바람을 맞으며 “아리랑 아리랑...”을 책속의 할머니와 같이 흥얼거려본다. 모기도 물고, 이젠 들어 가 자야 할까보다. 쿠바에서 첫날, 남편과 함께 카리브의 밤풍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나의 바람은 덧없이 지나가고 있다. 우리의 타이밍은 늘 이렇게 어긋나기 십상이었지.
아바나. 도로는 잘 되어 있고, 푸른 하늘에 몇 점의 구름, 갈매기는 날고. 국유지 땅에서 사회주의 체계로 느긋하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바나 혁명광장과 호세동상, 체 게바라 얼굴 그림이 새겨진 내무부 건물 앞에 서다. “영원한 승리를 위하여(Hasta La Victoria Siempre)”, “조국이냐, 죽음이냐, 승리하리라(PATRIA O MUERTE VENCERE MOS)”란 문구가 보인다. 쿠바 혁명의 상징인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흔적을 보는 듯하다. 피델 카스트로는 아직 생존 해 있지만, 39세로 죽은 체 게바라(1928~1967)! 살아 있었을 때도 쿠바와 남미에서는 유명한 인물이었지만, 사후 그가 생존 했던 기간보다 더 오랜 기간, 살아 있을 때보다 더 많이 유명해진 인물. ‘혁명도 사회주의도 사라진 지금 오로지 체 게바라만 살아남았다’고 할 정도로 이념과 국가를 떠나 전설의 혁명가로 남아 있는 체 게바라! 그의 얼굴 사진이 프린팅 되어 있는 붉은 티셔츠 2장과, 그의 이름이 들어 간 ‘체 게바라’맥주 한잔으로 내 젊은 대학 시절 막연한 동경의 대상 이었던 체 게바라를 주머니속에 꼭 숨겨 넣으며 난 헤밍웨이를 찾아 떠난다.
에너스트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별장을 갖기 전 머문 Hotel Ambos Mundos. 두 개의 세계를 뜻하는 이 호텔에서 그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 했다고 한다. 헤밍웨이가 묵었던 호텔 5층 11호엔 그가 사용하던 타자기, 벽면을 따라 편지와 사진들이 전시돼있다. 첫 번째 부인을 만났을 때 헤밍웨이는 “해는 또 다시 떠 오른다”를 발표하고, 두 번째 부인과 결혼 생활 중에 “무기여 잘 있거라”를 발표한다. 셋 째 부인 마사 겔흔을 만난 후 발표한 작품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이다. 고등학교 때 인상 깊게 보았던 이 영화 속의 주인공 잉그리드 버그만의 짧은 머리와 높은 코 때문에 방해 받는 어색한 키스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마리아가 종군 기자였던 헤밍웨이의 셋째 부인 마사 겔흔을 묘사한 것은 아니었을까?
노인과 바다의 모티브가 된 작은 어촌 마을 코히마르. 그곳엔 헤밍웨이가 미국에서 넘어와 20년을 산 별장이 있는 곳이다. 4번 째 부인이 장만해준 집이라고 한다. 수영장에 샴페인을 가득 채우고 카리브의 바닷바람을 느끼며 “바다와 노인”을 쓴 집이다. 그런대로 보존이 잘 되어 있는 서재와 침실, 집필실. 그리고 그가 직접 사냥한 박제된 동물들을 보면서 그의 호방함과 자유분방함을 느낀다. 근처 헤밍웨이가 자주 와서 머물던 식당에 앉아 본다. 카리브해의 물결이 보이는 아주 소박한 시골 냄새가 나는 작은 식당이다. 나는 잠시 헤밍웨이가 되어 창가에 앉아 데낄라 한잔을 주문한다. 카스트로와 만나 정치를 이야기하고, 시가를 물고 술을 즐기고, 여자를 즐기며 카리브해를 보며 자유를 즐겼을 헤밍웨이. 쿠바 혁명 이후 추방된 그는 이곳을 그리워하며 엽총 자살을 한 것은 아닐까?
대중 속에서의 공허함. 여행이란 우르르 모여 다니는 것이 아니라 혼자만의 시간에서 무엇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특히나 직장의 상사를 모시고 나온 해외 출장. 직원들은 여행이 아니라 긴장의 시간인 것 같다. 나는 그들이 불편하지 않게 아주 조심스럽게 나에게 지금 주어진 이 정경, 이 정취를 조금이라도 더 느껴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혼자서 럼즈, 데낄라. 쿠바음악, 그리고 카리브해의 바닷바람을 마음껏 만끽한다.
쿠바에서의 마지막 날 우린 이민 3세대의 어르신들 몇 분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된다. 진정 순수 한국 혈통을 지키고 있는 모습은 한국인이건만,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 아리랑과 애국가는 이민자의 감성으로 정확히 부를 줄 아는 사람들. 다 함께 애국가를 부르자고 하여 우리보다 더 열심히 애국가를 합창하고, 아리랑과 만남을 정성껏 불러 주시는 할머니. 바로 어제 쿠바 가이드북에 보신 할머니가 아닌가?
“내 이름은 박쌍규. 밀양 박씨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서울에서 태어나 1905년 멕시코로 왔어요.
아버지 어머니는 멕시코에서 태어나고 전 쿠바의 마탄자스에서 태어 났어요.
그리고 8살에 아바나로 왔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는 한국말을 했지만 아버지는 서반어를 했어요.
난 한국말을 집에서 할아버지에게 배웠어요.”
아, 어떡하면 좋나. 어린아이가 장기 자랑을 하듯 아리랑을 부르는 할머니. 80평생 가보지 못한 고국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아리랑. 가슴이 먹먹하다. 난 한국서 구입해간 할머니 사진이 실린 쿠바 가이드북을 선물로 주고 아쉬운 이별을 하다. 아듀! 쿠바. 체 게바라, 카스트로, 헤밍웨이 그리고 박쌍규 할머니.
2011.4.20
쿠바에서 파리행 비행기 안이다. 이제 남편의 출장 일정은 끝나고, 남편일행은 파리를 경유 한국으로 들어가고 난 혼자서 파리에 남을 시간이 다가 온다. 같은 비행기 안 아주 먼 거리에 떨어져 앉은 나는 화이트 와인 한잔에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린다. 와인으로 잠을 청해보건만 눈물만 나고, 애써 잠을 청하려다 그냥 10시간 버텨보기로 작정을 한다. 시시때때로 비즈니스석에 앉은 남편이 와 봐 주기를 기다리건만 남편은 와 주질 앉는다. 정신없이 자고 있겠지. 오기로 책을 읽으며 남편이 올 때까지 버텨 보기로 작정을 해본다. 번번이 내가 지는 게임이지만 오늘도 “올 것이다. 올 것이다” 하며 게임을 시도 해본다. 과연 내가 이길 수 있을지? 더 초라해지기 전에 마음을 비우고 텔레비전이나 봐야겠다.
4월 21일인가? 비행기가 대서양을 가로 질러 유럽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몇 시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안졸리나 졸리가 나오는 영화 두 편을 보고 나니 비행기 밖은 아침인 것 같다. 구름위인가 바다위인가? 희끄스름한 풍광. 약간 붉은 기운이 도는 수평선. 비행기 안에서 보는 밖의 풍경이 구름, 설원 같기도 하고, 언덕 같기도 하고, 황토색, 유채 꽃의 노란색, 밀밭의 초록색... 세 색깔이 계속 교차되고 있다. 갑자기 나는 “자유인이 되고 싶다”고 소리친다. 그 모든 갈망, 갈증을 태평양 하늘 위에 두고 나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 갈 짐을 꾸려야한다. 누구의 아내로 아무렇지 않게.
이제 파리에서 남편 일행과 빠이빠이를 할 시간이다. 남편은 아주 관대하게 “편안히 마음 놓고 잘 지내다 와”하곤 한국으로 들어간다. 난 애써 씩씩하게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다고 웃음까지 머금으며 대답을 한다. 파리공항에 혼자 남겨진 난 박쌍규 할머니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를 응얼거려 본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첫댓글 어려웠지만 무척 뜻깊은 여행이었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
건강하소서!
아~~ 마티즈님!
부군 건강은??
6월 말경 안동갈듯!
미국이나 일본등 멀리가있으면 가까운 주변 사람들 주변이 더 떠오른것같아요 사모님 총장님 건강챙기시고 이번달 말 사슴촌에서 뵈었으면 합니다.
꾸벅!!!
사모님 건강하신지요..그 때 그 일정 기억납니댜. 그렇게 소탈하고 따뜻한 총장님을 모신 기억이 너무 소중합니다.
으, 파나마 출장의 산 증인!
방가!방가!
@배영숙 사모님.. 시간 되시면 총장님 모시고 북경에 한번 다녀 가십시오..머리도 식히시구요..^^ 혹여 중국 전화 남겨둡니다. (86-10) 8531-0682 / 휴대전화(86-10) 152-1036-9612)입니다. 앞의 86-10은 중국, 북경 국가 및 지역번호 입니다. 전화하실 때 휴대전화로 하실 거면 북경 지역번호인 10은 안 눌러셔도 됩니다. 아직 북경 근무가 1년 남았습니다. 한번 다녀 가십시오.
@happyrain 아, 북경 근무 해요?
몰랐네요.
언제부터?????
@배영숙 2014년부터 북경 한국 대사관에 입법관으로 나와 있습니다. ^^ 작년에 총장님과 통화도 한번 했었습니다.
쿠바의 아리랑 잘 읽었습니다.
본문의 잘림현상 때문에 이동막대를 옮기기가 귀찮아서
본문전체를 복사하여 한글에 붙여넣고 읽었습니다.
언젠가 한번 읽어봤던 기억이 나지만, 다시 읽으며 쿠바 지도도 검색해가며
체 게바라의 인물 생각도 해보고...
함께하기 위해 떠난 해외여행이
공무중인 형님과 여행중인 형수님을 쉽게 한자리에 앉혀주지 않았다는게 아쉬울 뿐이고,
그래도 샌프란시스코에서 쿠바와 프랑스까지 지구 반대쪽을 돌아 두루두루
박쌍규 할머니의 아리랑까지 여행 잘 하셨습니다.
그 추억의 행복도 오래오래 간직하세요.
잘림현상이??? 수정이 안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