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집
지난 5월 31일 토요일 오후였다. 시골집 안마루 천장을 올려다보니 빗물에 젖어서 얼룩졌다. 함석지붕 어디에선가 비가 샌다는 뜻. 지붕에 사다리를 걸치고 조심스럽게 올라갔더니만 용마루에 박은 못대가리가 뾰족이 솟아나왔거나 아예 다 빠져버렸다. 못이 빠진 함석지붕은 바람에 펄럭이며 그 틈새로 빗물이 스며들었다는 결론.
지붕 한가운데 용마루에 엉거주춤 올라탄 뒤에 못 몇 개를 힘겹게 박았다. 못을 더 박으려고 처마 밑쪽으로 조심스럽게 내려오는데 운동화 밑바닥이 미끄러웠다.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함석 모서리를 맨손으로 움켜쥔 뒤에 몸 중심을 잡았다. 시멘트 바닥으로 추락하면 크게 부상하거나 죽겠다는 두려움으로 못 박기를 포기했다. 겁에 질린 채 지붕 꼭대기 한가운데로 엉덩이를 걸쳐 밀면서, 또 두 발로 중심을 조정하면서 땅으로 겨우 내려왔다. 식은땀. 모골이 송연한 높은 지붕이었다.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6월 장마가 곧 시작되면 홀로 사는 노모가 얼마나 고심할까 싶어서 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붕에 사다리를 걸쳐 고정한 뒤 빨랫줄로 꽁꽁 묵었다. 사다리 안에도 대나무 장대 두 개를 묶었다. 사다리를 밟고 지붕에 오른 뒤 왼손으로는 장대 하나를 잡아서 미끄러지려는 현상을 방지하고 몸의 중심을 골랐다. 오른손에 든 망치로 못을 조심스럽게 박았다. 미끄러운 지붕에서 곡예 부리듯 위태롭게 두어 군데 못을 쳤다.
지붕은 참으로 낡았다. 조부 다섯 살 때 증조부의 장인이 지었다는 초가였으니 구한말에 지은 집이다.
1957년. 내가 열 살 때 대전에서 사업하던 아버지가 시골로 대목(큰목수)을 데리고 와 함석집으로 크게 수리했다. 이발소와 미장원에서 가져온 머리카락 몇 가마를 큰 통에 넣고 오랫동안 끓여서 만든 백회를 벽으로 발랐다.
그때에는 근동에서 알아주는 함석집이었다. 지금은 50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누추하고 초라해졌다. 어머니가 몇 차례나 인부를 사서 페인트를 칠했으나 지금은 시뻘겋게 녹이 슬고 많이도 삵았다. 시골집은 어머니와 함께 자꾸만 쇄락해 간다.
허름한 지붕을 올려다보자니 만감(萬感)이 가슴을 후비었다. 초가를 대폭 개량했던 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신 지도 벌써 이십칠 년 전.
집주인이 된 내가 고쳐해야 하는데도 나는 고개를 가로저어야 했다. 돈이 늘 아쉽기만 한 가난한 공무원. 혼기에 찬 아이들과 아직도 대학을 마치지 못한 막내에게 들어갈 돈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박봉으로 서울에서 생활하며 아이들 넷을 가르친다는 게 나를 궁색하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경사가 진 지붕에 위험스럽게 올라가 이따금 못질하면서 임시방편으로만 조금씩 수리하는 체하는 내가 정말로 못났다, 밉다. 중장비로 한꺼번에 무너뜨리고 새 집을 지어 드리고 싶다. 여든아홉 살 어머니, 치매기가 조금씩 늘어나는 어머니가 걱정 없이 사실 수 있으면 오죽이나 좋으랴.
헌 집을 고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올해도 함석지붕이 비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임시로 못질했다. 낡은 시골집을 생각하면 일 년 내내 비바람 불지 않고 햇볕만 쨍쨍 났으면 싶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모래집이라도 짓고 싶다.
정말로 바꾸고 싶다.
2008. 6. 3. 화요일. 최윤환
글 다음으려고 여기에 퍼 왔습니다.
글맛은 하나도 없고요...
나를 위해서 쓴 잡글입니다.
왜 아래와 갘은 글자가 뜨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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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퍼 왔기에? 회원의 글에서도 가끔 이런 이상한 문구가 뜨기에 의아했는데, 저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군요.
그래서 늘 다듬고, 고쳐 쓰고,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첫댓글 글은 글쓴이의 진심이 들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입니다
남들에게 잘 보이려는 쓰는 글은
예쁘지만 감동이 없지요
좋은 하루 되세요
댓글 고맙습니다.
시골사람인지라 아침에 서울 송파구 잠실 3동 선거사무실을 찾으려고 빙빙 돌다가는 결국 동사무소에서 들러서 사전 투표했습니다.
귀가한 뒤 거실에서 앉아 있자니 아내가 '늙은 호박 한 개가 썩었네요' 하면서 호박을 치우고, 거실바닥을 걸래로 훔칩니다. 내가 어렵사리 농사 지어서 서울 가져왔는데도 늙은 호박으로 요리하는 것이 별로이고...
'농작물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썩게 마련이여' 말했지요.
아깝네요. 시장에서 사려면 1만 원도 넘을 터인데...
촌사람인 남편이 농사 지은 것이 하찮해 보였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글감 하나는 건졌지만..
님의 댓글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저도 반성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