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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역사6
스베덴보리의 환상 Swedenborg`s Vision
18세기의 마지막 금자탑을 쌓은 인물 중 하나는 스톡홀름의 에마뉴엘 스베덴보리였다. 그
러나 그의 영향력은 그가 속한 시대보다 19세기에 더 커졌다. 주교의 아들이던 스베덴보리
는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지속적으로 과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에게는
과학에 대해 상당한 재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천문학에서부터 대수학, 금속학, 당시에
눈에 띄게 진보하고 있던 물리학, 해부학에 이르는 광범한 분야에 관심이 있었다. 에머슨은
그를 "위대한 영혼colossal soul"이라 칭송했고, 그보다 덜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문학의 거
장들 중 한 사람"이라고 칭송했다.
스베덴보리가 과학과 철학 분야에서 쌓은 업적은, 그가 50세에 이르러 환상적인 영적 계
시를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하면서 얻은 명성에 가려 버렸다. 그의 가장 유명한 책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1758)'에서 이 계시를 설명한 부분들은 중세의 환상문학vision
literature처럼 매혹적이면서도 다른 면이 있다. 스베덴보리의 접근법은 지리학자의 견문 기
록처럼 냉정하고 정확하며 비감성적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중세의 환상문학과 다르지
만, 형태는 길이가 훨씬 길다는 점만 빼면 상당히 비슷하다. 중세 환상문학과는 달리, 그는
지옥보다는 천국과 천사들에 훨씬 더 관심을 기울였다. (중세의 환상문학과 마찬가지로 그
의 우주관에서도 천국과 지옥은 복수 형태를 취하는데, 그것들은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전체
속에서 각각 일부분을 이루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청동 엘리베이터 같은 것을 타고 내
려간 저 아래쪽 세계를 충실히 묘사하고 있다.
영적 세계spiritual world에도 자연계와 똑같이 평원과 산과 강 따위의 경치가 있다고 그
는 설명한다. 천국들heavens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영들의 세계world of spirits가 그
밑에, 그리고 그 두 세계 아래에 지옥들hells이 있다. 영들은 '내면의 눈'을 열지 않으면 천
국을 볼 수 없고, 지옥에 떨어진 영혼들도 그들 위에 있는 세계를 전혀 볼 수 없다. 그렇지
만 천국과 지옥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지옥에서는 끊임없이 악을 퍼뜨리려 하고, 천국에서
는 끊임없이 선을 장려하기 때문이다." 스베덴보리에게서 보이는 오리게네스의 여운은 논쟁
을 야기하며, 죄인들을 삼켰다 뱉었다. 하는 '툰달'의 루시퍼같은 모습도 보인다. 스테덴보리
는 일단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 뒤에는 어떤 개심의 여지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았는데, 이
는 열성적인 만인 구원론자였던 에머슨의 반감을 샀다. 또 다른 환상체험visionary인 블레이
크William Blake도 처음에는 스베덴보리에게 매력을 느꼈지만, 얼마 후 예정설을 일절 거부
하고 돌아섰다.
스베덴보리가 주장한, 영들이 머무는 중간세계는 19세기의 강령술사들과 20세기의 임사체
험기록자들을 가장 당혹하게 했다. 그것에 상승하는 것이 카톨릭의 형벌 없는 연옥이며, 또
는 일부 프로테스탄트들이 애써 정의하고 싶어했던 천국과 지옥 사이의 어떤 지대였다. 신
비주의 자나 영매들은 이곳과 현세가 교류한다고 믿었다. 스베덴보리가 본 바에 따르면, 이
음침한 림보와 같은 곳에서 영혼들은 제 본성에 때라 천국이나 지옥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
다.
모든 천국 구역은 그에 상응하는 지옥 구역을 갖는다. 가장 나쁜 지옥들은 서쪽, 특히 북
서쪽에 있는 것들인데, 거기에는 로마 카톨릭 교도들이 갇혀 있다. 그들은 "스스로 신처럼
숭배 받고 싶어한 자들이고, 또 자신들이 인간의 영혼과 천국까지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했
으며, 그러한 생각에 반기를 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증오와 복수심을 불태웠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는 무신론자, 세속적 욕망에 얽매인 자, 원한에 사무친 자, 적개심이 강한 자, 도
둑, 강도, 수전노, 탐욕스럽고, 무자비한 자들이 산다. 북서쪽 지옥들 뒤에는 "사악한 영혼들
이 맹수처럼 어슬렁거리는 어두운 숲들"이 있다. 남서쪽 지옥 뒤는 사막인데, 그곳에는 "속
임수와 기만의 죄를 범한 가장 교활한" 자들이 살고 있다. 스베덴보리는 지옥들을 무한 히
다양한 악에 따라 엄격하게 분류하고 있다.
산 언덕, 바위 밑이든, 평야나 골짜기 밑이든 어디에나 있다. 지옥으로 가는 좁거나 또는
넓은 입구는... 대부분 바위에 울툴불퉁하게 난 구멍이나 틈새처럼 생겼고, 모두 거칠기 짝이
없다. 이 구멍 속을 들여다보면 모두 어둡고 침침하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극악무도한 영혼
들은 불붙은 석탄이 발하는 것과 같은 발갛고 희미한 빛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들은 지
옥의 어둠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생전에 신의 진리를 보지 못하고 어둠 속에 살았기 때
문이다. 모든 지옥 입구들은 영들의 세계에서 사악한 영혼들이 던져질 때를 제외하고는 닫
혀 있다. 그것들이 열릴 때는 안에서 연기 같기도 하고 불같기도 한 그을음 또는 짙은 안개
같은 것들이 흩어져 나온다. 나는 이 지옥의 영혼들이 이런 불이나 연기 또는 안개와 같은
것들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고 들었다. 그것들 속에 빠져 있으면, 그들은 마치 자신들의
땅 안에 있는 것처럼 숨쉬고, 그렇게 해서 삶의 즐거움을 찾기 때문이다.
스베덴보리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지옥의 상층부는 암흑에 휩싸여 하층부는 화염에 휩싸
여 있다. 상층부에는 악의 허위에 물든 자들이 살고, 후자에는 '악' 그 자체에 빠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사정이 좀 나은 지옥에는 허름한 오두막 같은 것이 보이고, 때로 도시처럼 거리와 골목들
이 반듯이 정돈되어 있는 곳도 있다. 집 안에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언쟁을 벌이고 적개심
을 드러내고 치고 받고 싸우면서 서로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길거리에서
는 절도와 약탈이 판을 친다. 어떤 지옥에는 온갖 오물과 배설물이 가득한, 보기에도 역겨운
매음굴이 있다.
이런 지옥들은 그 전원적인 풍경에도 불구하고, 도심의 불결함과 부패를 떠올리게 한다.
에머슨은 환상적 사색visionary thinking을 인정했지만 천국과 지옥은 믿지 않았다. 그가 볼
때 천국과 지옥이라는 개념은 둘 다 시덥잖은 것이었다. 그는 스베덴보리에게 시심이 부족
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견해는 우선 스베덴보리를 당황하게 했을 법하다. 스베덴보리는 자
신을 여전히 참된 사실만을 기록하는 과학자라고 믿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에머슨은 스베덴보리의 글이 머지않아 인기를 잃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스베덴보리는 19세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과학이 계속 진보함에
따라 '이성의 시대Age of Reason'가 표방했던 것들에 대한 급격한 반동으로 낭만주의, 심령
주의 spritualism, 지관, 모호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옥과 다른 세계들에 대한 견해를 인
습적이라고 비웃는) 새로운 형태의 환상으로 사람들은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다.
19세기의 지옥 The Nineteenth Century
1815년 6월 18일 나폴레옹 군대가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4반세기 동안의 정치적
격동이 가라앉았다. 10월에 그는 세인트 헬레나로 유배되었고, 거기서 삶을 마감했다. 타락
한 영웅, 부유하는 사탄의 상징으로 그의 일생은 필연적으로 신화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어디선가 천사(또는 적 그리스도)처럼 나타나 타락과 파산의 상태로 피에 물든 프랑스를 인
수하여 세계 정복을 향한 공포의 십자군 원정으로 내몰았다.
프랑스 대혁명은 멀리 미국의 독립이 불러일으킨 것보다 훨씬 큰 충격을 유럽에 주었다
프랑스 국민들을 봉기하게 만든 전제 정치와 부패와 불의는 주변국가에서도 자유주의자와
개혁주의 자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계몽주의 선도를 받았던 국민들은, '인권선언Declaration
of the Rights of Man'(1789)에 공감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세기의 전환기에 씌어진 시
들은 가장 진정한 의미의 천년왕국이 오리라는 희망과 흥분으로 가득했다. 프랑스는 지상에
실현될 하느님 나라를 향해 앞장서 가는 듯 했다. 그러나 환멸의 시기가 닥치자 깊은 상처
만이 남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축복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19세기의 '시대 정신'에 대해 많은 많은 토론을 벌였다. 존 스튜어스 밀도 1830
년대에 출판하기 시작한 일련의 사색적 글들이 바로 이 '시대 정신'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어떤 점에서 19세기는 더할 나위 없이 빠른 속도로 직진했다. 산업이 발달하고, 과학, 탐험,
정복, 무역, 철도사업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미국의 역사가들이 노골적으로 조롱하며, '악덕
자본가robber barons'라고 불렀던 사람들이 부를 축적했다.
그러나 표면적인 성장의 저변에서 '시대 정신'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전 18
세기의 필로조프(자유사상가)들은 기지, 이성, 학식을 동원해서,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하던
미신이라는 상부구조와 전체 정치의 유물을 공격했다. 하지만 새 시대에 들어서자 이런 전
통이 희미해지고 불확실성이 대두하면서, 이성은 실패했다는 의식이 생겨났다. 19세기의 시
대 정신은 형이상학적인 것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놀라울 정도로 반지성적인 것이 되었다.
역사가인 피터 게이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18세기가 끝나갈 무렵 필로조프들은 게르만
적 이데올로기의 압박을 받았다. 그것은 로마 카톨릭과 고대 그리스 그리고 게르만 민중의
여러 관념이 기묘하게 뒤섞인 복합체- 일정의 튜턴적 이교 사상이었다." 19세기말에 이르기
까지 이 묘한 복합체에서, 고딕 문학, 낭만주의 문학과 음악이 생겨났고, 환상과 민간전승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으면, '악마주의diabolism'를 포함하여 수많은 초자연적이고 신비적인 유
파들이 싹텄다. 그리고 자기 심리를 성찰하는 세속적인 접근법이 생겨나 훗날의 정신분석으
로 연결된다. 또한 19세기 말에는 죽음과 임종에 대한 기호가 병적일 정도로 강렬하게 나타
났다. 이런 경향은 15세기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숭고함sublime'이란 말이 많이 회자되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알프스 산맥의 장관이나 낭
만주의 세대의 열렬한 감성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그것은 단순한 미적 질서와 조화의 차
원을 넘어서 무한의 혼돈에 이른다. 에드먼드 버크스는 1756년에 쓴 에세이에서 "무한성은
우리의 마음에 기분 좋은 경외감을 채워 주곤 한다. 그 경외감은 숭고함의 순수한 결과이자
진실한 척도다."라고 말했다. 이런 정의를 보면, 지옥에 대한 19세기류의 새로운 환상을 가
지고 말장난한다는 느낌이 든다.
18세기에는 돈 후안과 파우스트를 유용한 소재로 하는 산문 소설들이 다수 발표되었다.
돈 후안은 사무엘 리차드슨의 '클라리사'(1748)에서는 '러브레이스'라는 인물로 라클로의 서
간체 소설 '위험한 관계Les Liasions Dangereuses'(1782)에서는 '발몽'이라는 인물로 분한다.
이 두 소설도 미덕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는 한다. (여주인공들은 죽은 뒤 천국에 가기 때문
이다.) 그러나 전체 구성을 이끌고 독자로 하여금 책장을 계속 넘기게 하는 것은 분명히 악
덕이다. 악역을 맡은 귀족 출신의 남자 주인공들이 음모를 꾸며 죄짓는 일에 여념이 없는데
도, 이 책들은 그들이 지옥으로 가는 정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지 않는다. 뭔가 새로운 기류
가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가장 악명 높던 악마적인 귀족 사드 후작Marquis de Dade(1740-1814)에게는 악덕
그 자체가 시적 영감이었다. 그는 많은 날들을 감옥과 정신병원에서 보냈는데, 그것은 오히
려 그에게 공상할 수 있는 풍부한 시간을 주었다. 그는 '순수한' 성적 쾌락이라는 이름으로
변태적 강간, 고문, 살인을 다룬 자신의 포르노그래피 '쥐스틴'(1791)과 '쥘리엣 이야기
Histioire de Juliette'(1796)에 대해서, 그 두 작품은 계몽주의 사상의 합법적 연장선에 있다
고 주장했다. 만일 하느님이 없다면, 신에 대한 책임감도 사회계약도 필요 없고, 타인에 대
한 성적 가학 행위까지 포함하여 못 할 일이 없으며, 만일 인간이 객체라면( 자주 오용되는
용어 '오프제 드 베르튀Object de vertu'의 말 그대로의 의미에 따르면 성적 대상sex
object), 도덕성이 주관적 판단에 지나지 않는 이 세상에서 인간의 의지는 아무 쓸모 없는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사드 후작이 끼친 영향은 대단했다. 그는 이전의 모든 작위적인 제한을 넘어서는 선정적
이고 외설적인 내용에까지 손을 뻗쳤고, 지옥의 묵시적인 환상이나 경악스러운 순교 이야기,
또는 통상적인 복수극을 뛰어넘는 다른 또 다른 폭력성을 구현하였다. 사드의 작품에는 어
떤 도덕성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쥐스틴'에서 하늘은 여주인공이 수도 없이 타
락을 거듭하면서도 집요하게 미덕을 집착하는 것에 노하여 그녀를 죽여 버린다. 사드 자신
도 후에 작가들의 상상 안에서 지하 영웅이 된다. 낭만주의의 파멸 귀족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광기와 악덕의 바이런 경'의 원형이 된 것이다.
고딕 소설은- 그 '중세풍'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사실주의 소설과 거의 같은 시기에 시
작되고 같은 보조로 발전했는데, 사실 '클라리사'는 고전적인 고딕 소설에 아주 가깝다. 호레
이스 월폴의 '오트란토의 성The Castle of Otranto'은 고딕 소설로서 돈 후안 주제를 중세적
고딕 양식으로 배경에 삽입하였다. 음산한 분위기 성, 철컥거리는 사슬, 폭풍우, 상념에 잠긴
주인공, 학대받는 여주인공,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는 심문 도구들은 고딕 소설의 특징인 동
시에 수많은 낭만주의 시가와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음침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고딕 소설이 묘사한 지옥은 생각보다 덜 끔찍했다. 사드 이후
에 거의 필연적으로 나타난 현상 같기는 하지만, 고딕 소설 작가들은 지옥을 지상에다 재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독자들을 흥분시키기 위해 공포와 전율(공포horror는 자연적이고 전
율terror은 초자연적이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을 끌어들인 이유는 독자들을 계도하기 위
한 것이 아니라 흥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혼쭐이 나는 쪽은 언제나 무고한 사람들이고, 벌
을 주는 것은 오히려 죄를 범한 사람들이었다.
매튜 그레고리 루이스는 '수도사The Monk'(1789)에서 새디즘적인 고딕 소설을 적나라하
게 그려 보이고 있다. 이 소설은 그가 21살이 되기도 전에 썼는데, 이 책 때문에 그는 '수도
사' 루이스라는 유명한 별명으로 더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되었다. 사드는 이 작품
을 걸작이라고 보았고, 바이런도 거기에 동조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젊은이
들에게 독이 되고, 방탕을 조장한다."고 생각하였다. 루이스는 부패한 대수도원장을 통해서
로마 카톨릭을 강간, 향락, 머리가 쭈뼛할 정도의 폭력과 연결한다. 루시퍼가 종국에 가서는
죄 많은 수도승을 찢어서 죽이지만, 실제로 지옥 장면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밀실
공포증, 감금, 고문, 지하의 음침한 분위기 등은 굳이 지옥이라는 이름을 말하지 않고서도
지옥의 분위기를 충분히 제공한다. 그리고 루이스가 묘사한 인물 중에서 희생당하지 않는
사람들은 전적으로 사악하게 행동하는 자들이다. - 요녀 마틸다는 바로 악마 그 자체다.
지상의 지옥을 다루는 이러한 경향은 찰스 로터트 매튜린 의 '유랑자 멜모트Melmoth the
Wanderer' (1820)에서 훨씬 명확하게 나타난다. 타락과 절망, 퇴폐가 점점 더 심해지는 암울
한 세계를 무대로, 악마와의 계약을 주제로 하는 파우스트적 에피소드가 묘사되고 있지만,
여기에서도 역시 지옥 장면은 없다. 또한 포우의 어떤 작품에서도 지옥 장면은 찾아볼 수
없다.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곱추Notre Dame De Paris'(1831)에서는 이상하게 생긴 기
형의 거지들이 군집해 있는 어두운 지하 왕국이 일종의 현세적 지옥을 상징하고 있지만, 꼽
추 카지모도는 일종의 천사로 묘사된다. 심리적 기괴함이 점차 수용되는 시대에 예전의 초
자연적인 요소는 쓸모 없는 것이 되었다. 이러한 것들을 단호하게 그리고 경멸적으로 거부
한 바이런은 '맨프레드'에서 이 장르를 총괄하는 당당한 태도를 보여 주었다.
지은이: 앨리스 K. 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