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4대 명문장
1) 난정기 蘭亭記 왕희지 王羲之
만고萬古의 명필이요 명문장이라고 칭해지는 왕희지의 난정기이다.
난정기는 중국 진나라 목제穆帝 영화永和 9년(353) 3월 3일에 왕희지·손탁孫綽·사안謝安 등이 산음山陰 난정에서 계연禊宴을 베풀며 시를 지어 읊고 왕희지가 써서 난정집서라고 하였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인생을 즐기면서 영원한 것을 동경하는 인간의 애절한 소망, 유한한 인생의 덧없음을 슬퍼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앞 부분만 남아 있다. 첫 부분에 당모사본唐模賜本이라 적어 당대唐代에 임모臨摹한 것을 새겼음을 알 수 있다.
2) 등왕각서 滕王閣序 왕발 王勃
왕발(650~676)은 초당 4걸 중 한명으로 당나라 초기의 대표적 시인입니다. 아깝게 젊은 나이인 26살에 사고로 죽었지만 <등왕각서>를 읽어 보면 그가 얼마나 박학다식하고 뛰어난 문장가였는지 알 수 있다. <등왕각서>는 문장도 뛰어나지만 읽으면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듯이 왕발이 글을 짓는 그날의 장면과 그의 불행했던 삶이 눈앞에 그려진다. 서기 675년, 25살 왕발은 교지(현 베트남 북부)로 좌천된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에 홍주를 지나다가 우연히 등왕각 중수 축하연에 참석하게 된다. 당시 홍주목사인 염백서는 참가자들에게 등왕각서를 짓게 한다. 내심 문제가 있던 사위 오자장의 글을 띄워주려 했던 염백서는 왕발이 지은 글을 보고 처음에는 못마땅했으나, 중간 부분 ‘落霞與孤鶩齊飛(락하여고목제비) 秋水共長天一色(추수공장천일색)’에 이르러는 감탄했다는 일화도 전한다. 왕발은 산시성 용문(龍門, 山西省 출생으로 수나라 말의 유학자 왕통王通의 손자입니다. 어릴 때부터 천재로 인정받았고 17세 때인 666년 과거에 급제하였다.
3) 출사표 出師表 제갈량 諸葛亮
촉한의 재상 제갈량이 위나라를 정벌하고자 황제 유선에게 올린 표문이다.
출사표라는 말 자체는 '출병할 때의 그 뜻을 적어서 임금에게 올린 글'로서 제갈량의 「출사표」가 너무 유명하다. 출사표는 전출사표, 후출사표의 두 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편은 227년, 후편은 228년에 작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지三國志』의 「제갈량전諸葛亮傳」『문선文選』 등에 수록되어 있다. 훗날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도 원문이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4) 전적벽부 前赤壁賦 동파東坡 소식蘇軾
북송北宋의 정치가이자 문인으로 자는 자첨子瞻, 호는 동파東坡,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중서 사인中書舍人, 예부 상서禮部尙書 등을 역임하였다.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러 차례 좌천되어 밀주密州, 서주徐州, 호주湖州 등지의 지방관으로 전전하였고, 황주黃州, 해남도海南島 등으로 유배되었다. 해남도에서 7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다가 사면되어 돌아오던 중 상주常州에서 병사하였다. 시문詩文뿐 아니라 서화書畵에도 뛰어났다. 전적벽부는 소식蘇軾이 호북성湖北省 황주에 유배되어 있던 47살 때에 지은 글로, 황주에 있는 적벽赤壁에서 손님들과 뱃놀이를 하면서 느낀 감회를 서술하였다. 작자가 유배 중에 실의해 있으면서, 세속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장자적莊子的 초월超越을 추구하고자 하는 표일飄逸한 심경을 드러낸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