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05.20~06:50 |
거제출발, 명선도 도착명선도 일출, 강양항 멸치잡이,조식 |
08:30~12:00 |
단양 도담삼봉, 중식 |
13:00~14:10 |
단양 오발제 답사, |
14:15 |
구입사 답사 |
14:20~14:50 |
영월군 한반도 마을, 지형 촬영 |
14:50~17:00 |
함백산 답사, 망향제에서 커피, 정암사, 함백산 들꽃학교, 사북 동원탄자 |
17:00~18:30 |
추암도착, 해변에서 숙박, 추암 야경 촬영 |
06:30~09:30 |
일출 촬영, 기암절경, 파도, |
10:21~12:50 |
호미곶 촬영, 중식으로 우동 |
13:25~15:22 |
읍천항(구룡포, 감포) |
15:22~16:30 |
읍천항 촬영, |
16:30~19:00 |
읍청항~거제 (가덕휴게소에서 석식) |
용산 미군부대 군무하는 김용복씨의 안내로 의암호 물안개와 소양강 상고대 촬영을 위해나섰다. 처음에는 8명이 신청을 했으나 개인 사정으로 2명은 참석하지 못하고 6명만 참석하였다. 차량 대절비는 1박 2일 빌리는데 320,000정도였다. 거가대교 개통으로 울산 진하해수욕장까지는 1시간30분만에 도착했다. 일출이 7시35분경이니 시간은 꼭 맞았다. 도착하여 동해 바다를 쳐다보니 해안 지편성에는 검은 먹구름이 끼어 촬영은 실패다. 이웃 강양항 멸치잡이 촬영은 멸치가 잡히지 않는 관계로 촬영을 하지 못했다.
해수욕장 주변에 식당이 있어 들어가니 김해 남지 출신의 아주머니가 경상도 음식인 된장찌개와 누룽지를 맛있게 내어 놓았다. 모두들 즐겁게 조식을 하고 출발을 하였다. 속초까지는 저녁늦게 도착하여도 되니 천천히 단양쪽으로 행했다.
~ 단양에서 목을 추기고, 한반도로 함백산으로~
다음은 단양8경 중의 하나인 도담삼봉으로 페달을 밟았다. 강양항에서 08:30분에 출발하여 12:00경에 도착했다. 냇물은 얼음으로 덮혀 있고 그 위에 도담삼봉이 눈과 못진 조화를 이룬다.
남한강의 맑고 푸른 물이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 한가운데 세개의 봉우리가 솟아있다. 가운데 봉우리는 늠름한 장군처럼 위엄 있는 자태를 하고 있는데 이를 남편봉이라 부르고 그보다 좀 작은 북쪽 봉우리는 처봉, 남쪽 봉우리는 첩봉이라 부른다. 이 삼봉 가운데 처봉은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둔 남편을 미워하여 돌아앉은 모습을 하고 있고 첩봉은 아기를 밴 모습으로 남편봉을 바라보고 있다.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 선생이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할 만큼 젊은시절 이곳에서 청유하였다고 전해지는 도담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 내려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단양에서는 정선군에 매년 세금을 내고 있었는데 어린 소년 정도전이「우리가 삼봉을 정선에서 떠내려 오라 한 것도 아니요,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으니 도로 가져가라」고 한 뒤부터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상당히 추운 날씨인데도 겨울속의 도담삼봉을 구경하기 위해 제법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왔다. 식당 앞에는 산천어 수족관이 있고, 싱싱한 회거리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거제도 섬놈이라 민물고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된장찌개로 대충 떼우고 영원군에 있는 한반도 지형 촬영을 위해 달렸다.
가는 도중 단양 오발제를 조사하기 위해 코스를 약간 이동했다. 꼬불꼬불 산길 촬영지는 함양지안제 궤적, 함양 자굴산 섹스폰 궤적 그리고 단양 오발제 궤적이다. 다음 출사를 위해 사전 조사를 하고 내달으니 구인사가 나온다. 소백산 구인사는 천태종총본산으로 일시에 5만6천명을 수용한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시간이 허락하면 한번 둘러보고 싶었으나 그냥 입구에서 보기만 하고 다시 달렸다.
영월군 한반도면에 위치하는 ‘한반도지형’은 13시30분에 도착하여 산정을 오르니 살을 파고드는 혹한이 우리를 엄습한다. 오산재에서 소나무 오솔길을 조금가노라니 전망대가 보이고 ‘한반도 지형’이 펼쳐진다. 겨울이라 항랑하기 작이 없지만 여름이면 무궁화가 만발하고, 뎃목을 즐길수 있으며 ‘주천섶다리’가 볼거리와 촬영포인트가 많을 것 같다. 초여름 무궁화가 만발하고 뗏목이 유유자적 할 때 한번 다시 오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한반도지형은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선암마을이고, 청렴포에는 단종의 유적지가 있어 뗏목을 타고 관광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여름 같으면 여러 가지 경험을 해야 하나 이 매서운 추운 겨울에는 뭐 별달리 볼 것이 없다. 다음 코스는 함백산 설화(雪花) 촬영이다. 3시경에 함백산 정상부근에 도달했다. 도로변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다. 거제도 촌놈이 눈을 만나니 걱정이 된다. 그리고 차량을 빌리면서 보험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 된다. 뒷바퀴에 체인을 채우고 거북이 걸음으로 산정을 행한다. 우리 총무는 전국을 안다닌 곳이 없는 모양인가. 산 정상까지는 차가 오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8부 능선에서 차량 금지 구역이다. 여기서 1.2km인데 오를 수 없다니~~~.
그러나 그냥 갈수 없기에 함백산 ‘국가선수촌’까지 답사하였다. 산정산이라 영하 21도이다. 산고개 자리 잡은 ‘망향제’에서 커피 한잔을 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총무 하는 말이 옛날 이곳에서 털개불알꽃을 본 후 야생화에 미쳐 돌아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는 함백산 들꽃학교도 있다. 오후 5시 함백산을 출발하여 추암에 도착하니 오후 7시이다. 원래 코스는 소양강의 상고대촬영으로 계획되어 있었으나 날씨 관계로 내일 아침에는 상고대가 없을 것이라니 전갈이 왔기에 추암으로 발길을 돌렸다.
~금년들어 최고 추운 날씨에 추암을 돌고 돌아~
우리나라에서 일출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여 TV에서 애국가가 울러 퍼지면 처음 나오는 장면이 추암 촛대바위 일출 장면이다. 추암(湫巖)이란 기이하게 생긴 바위가 많아 지은 이름인데, 세조-성종 때 재상 한명회는 강원도 체찰사로 지냈다. 그는 1462년 추암을 방문하여 촛대바위와 용묘, 그리고 해금강(소금강)을 둘러 본 뒤, 능파대기( 凌波臺記)라는 기행문을 통해 이곳은 금강산 총석정과 버금가는데, 기이함에서는 그곳보다 낮다‘고했다. 한명회는 ‘추암’이라는 이름이 너무 ‘속되다’면서 ‘능파대’라는 이름으로 고친다고 하였다.
저녁 늦게 도착한 추암 해수욕장의 야간 절경은 가히 환상적이다. 추암해수욕강의 사빈(沙濱)과 형제바위와의 조화는 천하일경이다. 카메라를 B샤터에 고정하고 몇장 눌러대고 이어서 ND필터(8,40,1000)를 끼우고 장노출을 하여 보았다. Good shot !
전망이 좋은 촛대바위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저녁식사를 하고 오징어 물회에다 소주 한잔 들이 키고 잠을 청했다. 아침 6시에 기상하여 6시30분에 추암촬영에 나셨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많은 관광객은 나오질 않았다. 오늘은 여명(黎明)이 좋지 못하여 실패하고 일출촬영에 들어갔다. 추암 앞에 있는 바위를 깔고 일출장면을 촬영했으나 해가 적게 나오므로 기대할만한 작품은 나오질 않았다. 그러나 바다에 부딪쳐 산란하는 아침햇살은 그런대로 멋이 있었다. 촛대바위를 근접 촬영하기 위해 금지구역으로 내려갔다.
근접해서 촛대바위를 보니 전연 다른 느낌이 왔다. 그 형상이 부부처럼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처가 서있는 모습 같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남자의 성기 같기도 하고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형상을 나타낸다. 이러한 형상을 카르스트 지형이라고 한다. 카르스트지형은 석회암이나 백운암이 빗물이나 지하수의 침식을 받아서 형성된 독특한 지형으로 나타낸다. 일출과 빛 산란 그리고 집채만 한 파도를 배경삼아 3시간 촬영을 했다. 모두 촬영을 했다고 했으나 나중에 보니 아름다운 풍경과 해암정 반대편 기암괴석은 촬영을 하지 못했다.
촬영을 끝내고 민박집으로 돌아오는데, 해수욕장과 추암의 풍경이 나를 사로잡는다. 다시 한컷! 추암의 주인공 촛대바위, 여기에는 전설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는 촛대처럼 생긴 바위가 세 개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옛날 이 마을에 한 어부가 살고 있었다. 마눌님과 함께 오순도순 살던 어부가 어느 날 한 여인에게 눈이 뒤집혀 그 여인을 소실로 얻었다. 그런데 마눌님과 소실님이 모두 한 성격 하시는 분들인지라, 두 사람의 싸움은 끝이 없었고, 그 싸우는 소리가 너무 크고 요란해서 바다 속 용왕님, 하늘의 한울님의 심사까지 자극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여인은 촛대 바위 근처에서 또 다시 목청을 높이며 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고막 찢어질 듯한 두 여인의 작열 데시벨에 열 받은 한울님이 그만 욱하는 성질을 억제하지 못하고 벼락 두 발을 빠지직! 날려 두 여인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처첩간의 싸움질을 은근히 즐기며 구경하던 남편은 간접 전류에 감전, 역시 세상을 뜨고 말았다고 한다. 그때 내려친 벼락으로 두 개의 촛대바위는 사라지고, 남편을 상징하는 한 개의 바위만 남아 촛대바위라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기록에 의하면 이런 전설은 모두 뻥이다. 솟은 바위는 원래 두 개였고, 숙종 7년(1681년) 5월11일 강원도에 지진이 났을 때 바위 하나는 부려져 흔적만 남았고, 나머지 하나는 지진의 흔들림을 잘 버텨 오늘날까지 일출 조망의 포인트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돌아 나오면 ‘해암정’이란 이름의 조그만 정자가 세워져 있다. 고려 공민왕 때 한림원사라는 높은 벼슬까지 지내다가 낙향한 삼척 심씨의 시조 심동로(沈東老 - ‘동쪽으로 간 노인’이라는 뜻으로 그의 낙향을 안타까워 한 공민왕이 직접 내린 이름이라고 한다)가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안쪽에 여러 개의 판각이 걸려 있는데 그 중 ‘초합운심경전사(草合雲深逕轉斜)’라는 글씨는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름이 2.500번 이상 언급되었다는 서인의 거두 우암 송시열이 ‘2차 예송논쟁’에서 패한 이후 귀양살이를 가던 도중 들렀다가 남긴 글씨라 한다.
~호미곶을 눈요기 하고 읍천항으로~
동해시 추암을 뒤로하고 읍천항으로 달렸다. 그런데 포항의 호미곶을 보지 못한 분이 잇어 호미곶으로 향했다. 호랑이 호(虎)자, 꼬리미(尾)자 호랑이 꼬리라는 뜻을 가진 호미곶은 육당 최남선은 한반도가 만주 벌판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 형상이며,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에 해당된다고 했다.
지리적으로는 김정호가 대동여지도 제작 시 우리나라 최동단이 어디인지 확인하기 위해 호미곶을 7번이나 방문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며, 일출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의 빼어난 풍광 10개 지역을 꼽으면서 일출이 가장 아름다운 곳은 현재의 호미곶이며 일몰이 가장 아름다운 곳은 변산반도라고 조선상식편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산더미 같은 파도를 배경 삼아 몇 컷하고 바닷가 포장마차에서 국수로 점심을 떼우고 이제는 읍천항으로 내달았다. 오후 3시가 넘어 읍천항에 도착하니 벌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재빠르게 바닷가로 향했다. 그런데 언덕 위에 군 초소에서 촬영을 하는 것이 아닌가. 조금 기다렸다가 올라가보니, 주상절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꼭 부채모양이다. 작년에 왔을 때는 보지 못했는데, 올해는 볼 수 있으니 다행이다.
우리나라 주상절리는 제주도 중문동 주상절리가 유명하다. 그러나 이외에도 한탄강, 울릉도, 포항 등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특히 읍천항의 주상절리는 등대와 묘한 조화를 이루며, 부채꼴모양의 주상절리는 천하일품이다.
다른 곳에 있는 대부분의 주상절리가 수직 기둥으로 형성되는 반면, 읍천리 주상절리는 가로로 누워있을 뿐만 아니라 수직과 수평방향의 절리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U자형을 보이는 것도 있어 주상절리로는 보기 드문 사례로 평가되며 이같은 모양은 국내외적으로도 거의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연구와 자연유산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북대 지질학과 장윤득 교수의 말에 의하면 이 주상절리는 신생대 3~4기에 생성된 것으로 암질은 현무암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읍천리 주상절리군의 발견으로 경주는 또 하나의 큰 자연유산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주상절리의 규모와 형상 등이 수려하고, 보전상태가 뛰어나기 때문에 관광자원으로 개발할 가치가 충분하다.
오후 4시30분경 촬영을 마치고 거제로 오다 어느 분이 아직 가덕휴게소를 보지 못했다고 b하여, 가덕휴게소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도착하니 오후7시다. 읍천에서 거제까지 2시간 정도이니 거가대교의 위력이 대단하다.
첫댓글 선배님의 출사기 덕분에 직접 다녀온듯 생생한 느낌입니다.
추운날씨에 수고많으셨습니다.
명작이십니다,
춥고 덥고를 막논하고 끼는 역마살이 있어야 하는데..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