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당신의 남편과 부인도 흔들릴 때가 있다[김태일]
6.부부의 행복이 가정의 행복
이혼한들 뾰족한 수 없다
현대인들은 이혼이란 말을 너무 쉽게 쓰고 또 너무 쉽게 실천한다. 얼마 전에 모 신문에 우리나라의 이혼 통계가 실려 있었다. 기사에 따르면 하루 동안 이혼하는 부부가 100쌍 정도가 된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이었다. 그것도 갓 결혼한 신혼부부 아니면 중년이 대부분이라고 하니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고 가정할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게 될 것이다.
처녀와 총각이 만나 부부가 되었든 또는 과부와 홀애비가 만나 재혼을 했든지 결혼식 주례사에는 공통점이 있다. 부부란 함께 고통을 참아내고 검은 머리가 파뿌리처럼 하얗게 변한다 해도 영원히 동고동락하라고 말한다. 이러한 축언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너무 쉽게 헤어지고들 있다. 그들 나름대로 애로 사항과 항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혼하게 되면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비극이 되고 실패자가 되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입 속에 이와 같이 있는 혀도 물릴 때가 있는데 감정을 가진 인간이야 오죽하겠는가. 사람인 이상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니 생활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을 생각의 기본으로 삼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가 조금만 참으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비극적인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막상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는다고 해서 늘 희희낙낙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가? 서로 기분이 상한 상태에서는 하기 쉬운 말로 혼자 사는 것이 편안하고 같이 살아가는 것이 지긋지긋해서 꿈에라도 만날까 두렵다고들 한다. 그 당시 기분은 훌훌 날아갈 것 같을지 모르지만 조금만 있으면 지난 일들이 후회스러워지면서 서글퍼질 것이다.
사회 생활이나 가정 생활은 물 흐르듯이 순탄하게 살아가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행복해 보이고 나보다 잘나 보이지만 속내 사정을 알고 보면 비슷비슷한 것이 인간의 삶이다. 결코 다른 사람과 내 현실을 비교해서는 안된다. 비교하다 보면 불만이 생기고 불만은 미움과 증오를 낳을 수 있다. 더구나 참지 못하고 즉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지혜롭지 못하게 상황을 이끌어가는 것을 많이 본다. 그렇게 간절히 원해서 이혼들을 한 다음에는 이혼녀라는 말 자체조차 듣기 싫어한다. 누군가가 이혼한 남자에게 홀아비냐고 묻는다면 그것조차 듣기 싫어하며, 이혼녀에게 과부냐고 묻는 것도 싫어한다. 누군가에게 속해 있다는 것, 이 자연스러운 묶음이 구속이 아니라 또 다른 안정이었음을 이혼한 뒤에서야 깨닫게 된다.
이혼은 다방면으로 많은 생각을 해본 후에 결정해야 한다. 자식들과 둘러싸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성, 그리고 이혼한 후의 처리에 대해서도 완벽히 책임질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이혼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이혼에는 많은 문제점과 아픔들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 해도 이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것이 서구 문화를 여과없이 받아들인 데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가슴이 아프다. 물질 만능주의는 이기적인 인간형을 만들어 놓게 되었다. 결국 자기 하나만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성품은 조금만 자신의 감정을 상해도 참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개개인의 개성이 더욱 강해지다보니 전해져 내려온 우리의 미풍 양속이 잠식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혼을 하게 되는 동기는 부부가 많은 만큼 사연도 많다. 가장 많은 것이 배우자의 외도이다. 혼인 서약을 어기고 불륜을 저지른 배우자에 대해 용서할 수 없음으로 헤어짐을 선택하는 것이다. 또한 부부 사이의 성격 차이와 금전적인 문제도 있다. 그 다음으로 가족, 친척간의 문제도 이혼의 원인이 된다. 이혼의 원인을 보면서 인간은 밥만먹고 살아갈수는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자신의 남편이나 부인에게는 불만이 많다. 열번 잘하다가 한번 잘못하면 그것만 생각하는것이 인간이다. 부부지간의 이러한 현상은 상대방을 너무 믿고, 의지하며, 스스럼이 없어서일 것이다. 아무리 모자란 가장일지라도 자기 자식과 아내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처음부터 불만인 상태로 결혼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결혼당시에 배우자가 미워보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말이다. 결국 부부지간의 불화의 모든 책임은 상대방에게만 덮어 씌우고 매도할 것이 아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말이 있지만,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분명히 나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상대방에게도 문제가 있다. 어떤 부부의 이혼이든 남편과 아내 단 둘만이 갈라서는 경우는 그래도 문제 해결이 수월한 편이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자식이라도 있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애비 없는 호로자식 에미없는 불효자식, 그런 오명을 책임질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이혼한 부모의 가슴에 박힌 못이야 자신들이 선택한 길이니 스스로 책임진다 해도 자식들의 가슴에 못이 박혀 평생동안 아픔을 걸머쥐고 살아가는건 누가 책임져줄 것인가. 너무들 쉽게 헤어지는 현대부부의 성향이 누구 잘못이냐고 따지기 전에 이러한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혼한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이혼을 하고 난 뒤에 더 행복해질수 있는 상황이 되는지를. 더 좋은 배우자를 만나게 되었는지를. 사람을 바꾼다고 행복이 저절로 내게로 굴러오는 것은 아니다. 여우 피하고 나니 호랑이 나타났다는 말처럼 때로는 더 가혹한 현실이 다가올 수도 있다. 모든 행복은 내게 달려 있는 법, 나 자신의 마음가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오고간다고 하지 않던가. 세월이 흘러간 뒤에 때로는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는 한탄섞인 말이 나올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지 못하고 나만을 중요시하면서 범했던 실수들을 후회할 수도 있다. 물론 도저히 용서할수 없는 상황들은 분명히 있다. 개선되지 못할 나쁜 습관을 가진 배우자들도 때로는 있다. 이때 무조건 참고 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상황들을 타개하기 위해 최대한으로 노력해 본 다음에 이혼을 결정해야만 훗날 후회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모든 부부들이 상대방이 완벽하게 마음에 들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으며 어떻게 나 아닌 다른 사람과 모든것이 일치할수가 있겠는가? 모두들 때로는 아웅다웅 하고 때로는 웃고 때로는 크게 싸우고, 또 때로는 손뼉을 마주치며 즐거워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은 매우 유능하며 특별한 존재라는 의식을 버려야 한다. 나도 다른 사람과 똑같은 하나의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부부 사이의 문제는 그 순간만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해결될 수 있다. 좀 더 심각한 문제들은 얼마간의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분명 살다보면 잊혀지게 되어 있다.
물론 잊혀지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 옛말에 폭풍우는 피해가라고 했는데 그 순간을 참지 못한다면 번개를 맞을 것은 자명해진다. 참자. 또 참자.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내가 상대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배려를 할줄 알아야 한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하는데 싸움이 번져 결국 이혼하게 되는 경우가 늘어가기만 한다니 정녕 안타까운 일이다.
이혼할 당시에는 이혼만 하면 금방이라도 말 탄 왕자나 공주가 나타날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막상 이혼을 해보면 전 배우자보다 더 형편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때로는 조강지처를 버리고 잘되는것 못보았다는 말이나, 남편버리고 행복하게 사는것 못보았다는 말을 되새기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한 번 맺어진 인연에 대한 책임을 내것으로 받아들이면 되는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본인의 자존심과 이기심, 성격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잘못 선택하여 영원히 후회하며 살아가는 것을 주위에서 볼 수 있다. 이혼이란 당사자만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혼자만이 감당치 못해서 동시다발적으로 가족이나 친척들까지 힘들게 만들어 버리게 돼 있다.
또한 이혼한 사람에게 잘했다고 칭찬하기 보다는 잘못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더 많은것을 보면 이혼이란 것이 속시원히 잘했다고 칭찬만 할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이혼한 사람들이 다 그런건 아니지만 처음에는 그럭저럭 잘 지내다가도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다 보면 외로움을 견디지를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이혼할때 서로의 구분을 분명히 했는데도 두고온 자녀들이 보고 싶다는 등의 구실을 붙여 전 배우자에게 접근하는 사례들도 있다. 심지어 가정이 있는 유부녀, 유부남과 즐기는 사람들도 생기게 된다. 이런 개인의 문제들이 사회적으로 볼 때면 더욱 심각해진다.
이혼을 반대하다 보면 그들 나름대로의 항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회 전체를 살펴보면 이혼한 가정보다 안한 가정이 더 많다는 점에 주시하기 바란다. 이것은 모두들 불평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이혼해야 된다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이다. 이혼한 사람들이 만나는 상대방으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점이다. 아무리 개방시대라고는 하지만 개탄할 일이다. 일부 중년의 남성이나 여성들의 성관념이 희박해져가고 있다. 일부에서는 결혼한 유부남.유부녀들과 이혼녀. 이혼남들이 마음놓고 교제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배우자가 의심하지 않도록 상황을 만들어놓고 마음 놓고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러한 관계가 발각되어 두 사람 중 어느 한쪽의 부부 사이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하면 상대방은 한발짝 뒤로 물러선다. 그렇게 불타오르던 사랑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차츰차츰 멀어져가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 파트너는 부담감 때문에 사랑의 열정이 식어가서 급기야는 만나는 것도 애걸복걸 해야만 만나주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본인만 외톨이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반성하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면 될 터인데, 그러지 못한 것이 심각한 문제이다.
세상사람들 중 자신의 배우자에 대해 100%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어떤 배우자의 비리와 난폭함, 비인격적인 대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어떤이는 그럴바엔 차라리 이혼하는게 낫다고 강조할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될것은 이혼을 해보았자 내가 원하는 행복이 저절로 와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이기에 모든것이 계획한대로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것이고, 실수하는것이다. 삶이란 때로 내 마음과는 전혀 상관없이 돌아가기도 한다.
배우자가 용서되지 않을 때는 때때로 실수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먼저 생각해보자, 그리하여 그순간, 그사건을 해결할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자. 절대 한순간의 울분을 참지못해 영원히 후회할 일은 하지 말라! 사람이 살면서 눈으로 보이는 모든것을 다 하고 싶고, 먹고 싶고, 입고 싶고,하고 싶은대로 하고 나면 그 다음에 올 것은 무엇이겠는가? 중요한것은 그러한 것들이 아니다. 때로는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포기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또 때로는 '참는자에게 복이온다'는 말에 힘을 얻기도 하자.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자제 하는것이다. 독선적인 판단과 동물적인 정욕을 근절해서 불행의 늪에 가까이 가지 않도록 하자. 늘 웃음을 잃지 않는 너와 내가 되기위해 이혼이라는 단어 자체도 멀리 보내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