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인 기질과 물기운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
물은 단단한 것을 녹이는 힘이 있다. 어떤 물질이라도 물에 닿으면 슬슬 풀어지거나 최 소한 물컹해지기라도 한다. 이런 물의 속성은 인간에게 깊은 정서와 섬세한 감수성을 제공 한다. 소음인은 이런 물기운 쪽으로 치우쳐서 생겨난 체질이다.
이제마 선생은 <소음인의 입은 지방을 잘 살핀다>(少陰之口 察於地方)고 하였다. 소음인의 성품은 가정적이고 사랑 과 감정이
풍부해서 거친 사회에서보다는 집안이나 친구 모임과 같은 개별적이고 사적인 공간에서 장점을 잘 발휘한다. 이런 기질을 가리켜 <지방(地方)>이라 표현한 것이다.
소음인의 풍부한 감수성은 문학으로 표출되면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시와 소설이 된다. 이들은 상대방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고 분위기를 잘 맞추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려깊은 내면의 소유자다. 그러나 소음인의 이런 모습은 남성적이고 거친 소양인들의 눈에는 눈치 나 보는 기회주의자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소음인 여성을 유혹하는 비결도 분위기이다. 가물거리는 촛불과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카페에서 <애너벨 리>의 한 구절이라 도 읊으면 깜빡 넘어간다. 소음인들에게는 옳다 그르다는 판단보다 좋다 싫다는 감성이 앞 서게 마련이다.
소음인의 풍부한 감수성은 소양기운에서 오는 냉철한 분별력이 모자랄 경우 나약한 감상 으로 떨어지기가 쉽다. 소음인이 이야기할 때는 <도둑놈 개 꾸짖듯> 간지럽게 속삭이며 말하곤 해서 귀를 쫑긋 세우지 않으면 알아듣기가 어렵다. 때로는 뭔가 말을 해야 할 경우 에도 말없이 빙긋 웃기만 해서 <꿈에 사위 본 듯> 몽롱하기만 하다. 소음인은 무엇보다 나르시스트적인 자기애를 조심해야 한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
<장자>에 <명경지수(明鏡止水)>란 말이 나온다. 고요하고 맑은 마음의 경지를 비유한 말인데, 이것은 물기운을 타고난 소음인에게 딱 맞는 말이다. 소음인은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다가도 위기를 만나면 빛을 발한다.
나서기를 좋아하다가도 정작 위기가 닥치면 우왕좌 왕하는 소양인과 대조적이다. 소음인은 속이 깊고 포근하여 어려운 지경에 처한 사람에게 좋은 상담자가 되곤 한다. 또한 이들은 안전한 길만을 좇으며 모험을 싫어한다.
주식 투자형보다는 은행 저축형이라고 할까?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이중 삼중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 들어 놓고 일을 시작한다. 무리수를 띄우기 보다는 순리를 좇는다.
사려깊은 소음인의 성품은 소양기운에서 나오는 민첩한 순발력이 부족할 경우 우유부단 함으로 빠져 버리고 만다. 사려깊음이 지나쳐 호기(好機)를 놓치기 쉽고 전진이 더디다. 앞 뒤 재고 계산만 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한다. 사업을 해도 큰 사업은 못하고 조그만 구멍 가게나 차릴 타입이다. 약삭빠른 소양인에게 늘 선수를 빼앗기고 자주 손해를 보기 때문에 소음인에게는 소양인을 경계하는 마음이 있다.
천성이 착하고 완벽한 왕자
물은 형체가 없다는 특징이 있다. 고정된 자기 모습을 주장하거나 내세우는 법이 없다. <산에 가면 산새, 들에 가면 들새>라는 식으로 운명과 처한 환경에 자신을 맞춘다. 소음인 에 대해서는 <소음인 기질의 장점은 단중에 있고 재주는 당여에 있다>(少陰人 性質 長於 端重而 材幹 能於黨與)는 설명이 나온다.
소음인은 무엇보다 단정하고 침착한 성격의 소유 자인데, 이를 일러 <단중(端重)>이라 하는 것이다.또한 소음인은 세상을 향한 두려움과 불안한 마음이 있는데, 이것을 이기고자 무리를 지어 그 속에서 위로를 얻는다.
그러나 <당여(黨與)>라는 말은 태양인의 <교우>와는 달리 혈연, 지연, 학연을 위주로 한 소아적 인 만남을 벗어나지 못하는 소음인의 특성을 가리킨 것이다.
소음인들이 이렇듯 모임을 잘 이루는 까닭은 자기 주장만을 앞세우는 소양인과 달리, 있 는 듯 없는 듯 자기를 주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툼보다는 양보의 미덕을 발휘할 줄 알고 평화를 창조하는 능력이 있다. 보수적이고 수동적이지만 겸손하고 착하다. 교통법규도 잘 지키고,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순박한 사람이 소음인인 것이다. 남자라면 아내를 끔찍이 위 하고 아이들과 공차기도 하며 잘 놀아주는 가정적인 아버지가 소음인이다.
소음인의 착한 성품은 피끓는 열정을 주는 소양기운과 조화를 잃을 경우 생기가 부족한 무기력한 사람이 되기 쉽다. 소음인은 소양인의 불기운이 부족해 몸이 냉하고 설사도 잘한 다. 한여름에도 찬물 샤워는 꿈도 못 꾸고 발이 차서 실내에서조차 양말을 신고 다닌다. 비 위가 약해 음식투정도 심하다. 고추장 단지 열두 개라도 소음인 서방의 비위를 맞추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화끈한 박력이 부족해 쌈박질도 못하고 좁쌀영감처럼 뒤에서만 궁시렁 궁시렁 종알거린다. 소심하고 내성적이라 어쩌다 실패라도 하면 금방 의욕을 잃고 자포자 기해 버린다. 이런 기질이 심해지면 말년에 신경쇠약, 강박신경증, 결벽증, 당뇨병 등으로 고생하기도 한다.
탁월한 직관력의 소유자
물은 바람을 만나면 흩어지고 불을 만나면 수증기로 사라지며 흙을 만나면 흐름이 막힌 다. 세상은 온통 물의 존재를 위협하는 요소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물기운이 많은 소음인 은 불안하고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소음인 남성에게 요즘 여자들은 모두 되바라진 여우들이요, 소음인 여성에게 남자란 자기 아버지를 빼고는 모두가 늑대이다.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소음인에게는 눈치와 육감이 발달하지 않을 수 없다.
독심술을 배우지 않아도 소음인은 사람들의 속마음을 잘 헤아리고 분위기 파악을 잘한다. 앞뒤를 잘 더듬어 보고 정밀한 판단력으로 상황을 잘 파악한다.
눈치가 빨라 상황을 잘 파악할지는 몰라도 소양기운에서 오는 낙천성이 부족할 경우 이 들은 비관주의에 빠기기가 쉽다. 상황과 현실을 철저히 계산하면 할수록 결론은 부정적이 고 비관적으로 내려진다. 원래 밝은 성향인데다가 단순하게 생각하는 소양인의 낙천성에 비하여, 소음인은 별의별 계산과 생각을 다하고 온갖 경우를 다 염두에 두기 때문에 철저 한 비관론자가 되는 것이다.
타고난 눈치와 육감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소음인의 처세는 자칫 기회주의자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남을 비행기 태우지만 실상 이것은 아부의 극치인 경우가 많다. 앞에서는 칭찬을 하지만 돌아서면 흉을 보기도 한다. 그래서 근거 없는 소문의 진원지는 소음인일 때가 많다. <불알 긁어준다고 알랑거리 다가 통째로 떼어갈> 기회주의적 위선자도 많다.
알뜰살뜰 살지만 지독한 자린고비
물기운을 타고난 소음인은 불안정한 마음을 무의식 가운데 품고 있다. 모든 것이 걱정거 리이고 걱정할 것이 없으면 만들어서捉?한다. 그래서 늘 무언가에 몰두한다. 한푼 두푼 돈을 모으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다고 큰돈을 한꺼번에 버는 사업가 체질도 못 되고 <개미 메 나르듯> 조금씩 번 돈을 절약해서 개미탑을 쌓는다. 사글세방에서 전세방으로 옮겨 다니다가 4,50대쯤 조그만 아파트 하나 장만하고는 가슴 뿌듯해한다.
소음인 여자는 알뜰살뜰하게 가계부 정리도 잘하고 씀씀이도 헤프지 않은 살림꾼이다. 콩나물 값을 깎으려고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음식 솜씨도 좋은 현모양처 타입이다.
소음인의 알뜰살뜰한 성품은 자칫 자린고비형 수전노의 성품으로 빠져버리기 쉽다. 자기 본위에다 속이 좁고 계산적이어서 <너 한 번 계산하면 나 한 번 계산하는> 식이다. 화가 나면 쉽게 화를 풀지도 못하고 끙끙거리며 오래도록 속을 앓는다. 소음인 남자는 <꼴에 수 캐라고 다리 들고 오줌 눈다>는 말처럼 하는 짓이 자잘하고 꽁생원이나 기생오라비 같은 사람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