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살이에 걸친 ‘샵’, 그 풋풋하고 유쾌한 상상
2013년 6월 8일(토), 9(일) 6시 양일간 포이동 M극장에서 이희재(중앙대 강사) 안무의 『샵, # 』이 공연되었다.
그녀는 이미 M극장 기획공연 신진안무가전-넥스트에서 『워낭, 설(雪)』(11), 떠오르는 안무가전의 『독백』(12)으로 의욕있는 젊은 안무가 중의 하나로 지목되었고, 『독백』은 당해 연도 M극장 베스트 레퍼토리상 수상작이 되었다.
김승일 무용단의 핵심 단원으로 그녀의 주요출연작은 『화․예․아』(09),『이야기가 있는 우리춤』(10),『소현(11)』,『공감』(13)등에서 주목할 만한 예술가의 자질을 선보인 바 있다. 침잠의 샘에서 퍼 올린 과실의 맛에 비유되는 경쾌한 이희재의 철학적 사유, 인간 본성에 기반한 현실도피, 소외, 환상, 사랑, 정보의 숲에서 그녀는 ‘이매진,imagine’을 꿈꾼다.
그녀의 철학 실습, 리플렛을 받아든 관객들은 우선 낯선 제목에 당황한다. 제목이 없다. ‘#’(샵)이 제목이란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샵, # 』은 안무가의 의도에 따라 네 명의 춤꾼이 각각 자신이 발견한 ‘샵, #’ 의 이미지, 숨은 의도를 표현한다. 4부(4 Parts)로 구성된 이 작품의 주역은 1부 권교혁, 2부 이지혜, 3부 김예진, 4부 박시우가 맡았다.
이희재의 도발적 상상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낳고, 예상을 깨는 파격을 즐기며 관객과 유리되는 철학적 실험을 한다. 가벼운 상상은 춤 철학, 춤 사상사의 변두리에서 채집한 것이다. 이 작품이 우리 춤에서 연유되었음을 알리는 프롤로그, 반주곡에 맞춘 유지숙(제45회 전국신인무용경연대회 특상, 제40회 동아무용콩쿨 금상)의 이매방류 ‘살풀이 춤’이 선보인다.
1부; 권교혁의 ‘#’, 그 춤의 중반, 교혁은 빈 상자를 들고 등장하고 방안의 스크린(TV)으로 환치된다. 유지숙은 스크린(TV)속 춤추는 여인으로 표현된다. 전통에 낯설은 그는 박스안 리모컨으로 그녀의 춤을 멈추게 하고 암전된다. 장난감 놀이가 진행되며, 키요시 요시다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OST와 기차 소리가 효과음으로 끼어든다.
‘샵’과 장난감과의 연관성, 사전 예비지식이 없이는 난해할 수 밖에 없는 교혁의 ‘샵’은 장난감 기차의 선로, 성냥탑, 헬리곱터의 프로펠러, 전화기의 재다이얼 버튼 등 유년의 장난감, ‘샵의 형태’와 관련된다. 관용과 사랑의 유년시절, 성인이 된 현실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에러, 의도된 퇴행, 현실도피를 보여주는 설정이다.
2부; 이지혜의 ‘#’, ‘샵’의 이미지가 창틀, 감옥, 빈방, 액자 등을 떠올리며, 그 사물에서 받는 느낌을 표현한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는 세상과 단절된 나와는 다른 세상을 암시한다.
’샵‘ 의 정중앙, 그 빈공간은 외부의 시선에서 자신이 숨어있는 곳, 마음속에서 들추어내고, 전달하고 싶어 하는 무언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교혁의 과거 회상 시, 검은 옷의 귀신(지혜)이 등장, 그를 두려움과 공포에 빠뜨린다. 지혜는 교혁이 두려워하는 '현실'이다.
지혜는 교혁에게 ‘현실 부정과 회피 대신 당당히 맞설 것’을 알리는 메시지를 던지며, 교혁을 회상에서 꺼낸다. 이 표현은 교혁이 탐닉한 장난감들의 구조를 파괴하며 드러난다. 지혜의 ‘샵의 발견’은 자신의 현재 심적 상태를 반영한다. 은둔의 괴로움은 빈 종이에 사각틀을 무수히 그려놓고, 이것들을 던지고 구기고 찢는 행위로 표현된다.
그녀는 아픔을 끌어안는 모습으로 그 종이들을 다시 주어모아 가슴에 품으며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간다. 이때, 교혁은 상자를 들고 나와 지혜에게 그 안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녀가 웃는다. 그 안에서 본 것은 '사랑'이었다. 교혁은 지혜에게 현실 극복의 유일한 힘이 바로 '사랑'임을 알린다.
3부; 김예진의 ‘#’, 공간을 조망하며, 유혹의 핑크 빛으로 다가오는 그녀 역시 ‘샵’ 안의 빈 공간을 들여다본다. 낭만적 허밍과 관능적 춤은 누군가의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공간처럼 들어다 보고 싶은 충동을 표현한다.
교혁과 지혜가 깨달은 '사랑'의 변방, 예진의 충동은 성적 '관음증' 증과 연결된다. 체취에 대한 상상, 그녀는 자신의 성적 욕구를 환상으로 대체 충족시킨다. 상대는 교혁이 된다. 예진은 교혁을 자신의 덫에 가두고 그를 유혹하여 자신의 환상 속으로 데려간다. 성적 만족 위로 떨어지는 꽃, 만춘이다.
상상속의 그녀는 행복하다. 교혁은 예진의 상상 속에서 움직이지만, 그 역시 행복해한다. 타악 주조의 사운드, 색감이 살아나는 황홀, 소외와 소통의 삼인무로 연결된다. 사랑의 감염자, 예진과 교혁의 사랑을 보며 지혜 자신도 행복한 순간에 빠진다.
예진의 상상이 현실과 맞물리자 혼돈에 빠진다. 이때 시우가 등장하고, 이 혼돈은 시우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영화 ‘인셉션’의 OST, ‘Nonos, Je Ne Regrette Rien’(아니, 내 행동에 후회는 없어), 영화 ‘여유야 뭐하니’의 OST, 고기자의 ‘상상’이 김예진의 감정선을 잘 따라가고 있었다.
4부; 박시우의 ‘#’, 그녀는 ‘샵’에서 네 개의 선이 무언가를 가득 에워싸고 풀어지지 않자 터질듯한 갑갑증을 느낀다. '과부하' 상태를 떠올린 그녀는 무대에 널부러진 소품들과 이제까지 보여 진 장면들을 머리 속 생각의 조각들로 전환, 머리 속 '과부하'가 일어난 사람을 표현한다. 그녀의 ‘샵 ’, 스키마를 이용, 그녀 머리 속 생각들로 전환시킨다.
이전 무용수들이 던진 메시지- '현실도피', '갇혀진 아픔', '사랑'들이 그녀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머릿속을 비운다. 교혁이 풀던 수학문제집의 오답을 말하면서도 웃을 수 있는 극기, 초월, 비움의 미학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만족감 때문이다.
시우의 이야기가 끝날 무렵, 춤꾼들이 위치한 자리 위로 네 개의 선(조명)이 들어와 그들 개개인에 하나씩 맞춰지며 하나의 큰 ‘샵’을 만들어낸다. 이제까지의 모든 이야기가 ‘샵’처럼 하나됨을 의미한다. 다시 살풀이춤 반주곡이 무대에 흐르기 시작한다. 춤은 보이지 않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춤꾼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그들이 편안한 얼굴로 살풀이춤 곡을 들었던 이유는 지금까지 돌이켜본 개인 삶의 '희로애락' 때문이다. 고통스럽고 괴로웠거나 행복하고 즐거웠던 모든 삶의 이야기가 이젠 자신에게 아름다운 삶의 모습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영화 ‘액트 오브 밸러’의 OST, ‘Snow Patrol - The Lightning Strike’(눈의 순환-기습타격)이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이 작품이 담고 있던 원래 메시지, '희로애락'의 ‘인간의 굴레’에 걸친 ‘살풀이춤’을 불편하게 보았던 이들이 나중에 행복한 얼굴로 바라보게 되는 것으로의 치환은 깨달음으로 확장된다. 춤의 결론부, 춤 작가 이희재가 박시우의 복장과 똑같이 하고 나타나 무대 위에 그들을 쫒고 소품들을 주워모은 뒤 교혁이 했던 대사를 똑같이 하며 무대를 끝낸다.
작가의 마지막 의도, ‘샵’의 의미를 배제하고, 교혁으로부터 시우까지의 이야기가 의도된 '희재 이야기'임을 밝힌다. '다중인격체', 타인이 대리한 그녀의 이야기는 표현력과 전달력을 높이고, 이 작품의 또 하나의 의도, ‘샵’의 의미를 명확하게 드러내게 하였다.
안무가 이희재는 자만(自滿)의 난해함을 즐긴다. 보다 춤 적 간결함, 그 비움의 자각으로 앞으로 춤 에세이를 써내려감으로써 적벽돌 담장을 쌓는 방법론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공연모습 더보기~
<장석용 댄스칼럼니스트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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