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gium/브뤼셀(Brussels/Bruxelles)
벨기에(Belgium)
정식명칭은 벨기에왕국(Kingdom of Belgium)이며, 북부와 동부는 네덜란드·독일, 남쪽은 룩셈부르크, 서쪽은 프랑스와 접하고 북서부는 북해(北海)에 면한다. 북쪽의 네덜란드와는 지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관계가 깊어 이 두 나라를 저지국(The Low Countries)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럽에서 가장 작은 나라의 하나로, 네덜란드와 함께 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조밀한 지대를 형성한다. 1948년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와 함께 베넬룩
(Benelux)를 결성한 것을 비롯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유럽연합(EU)에도 가입하였다. 행정구역은 10개주(province), 3개구(region)로 이루어져 있다.
벨기에의 수도로 유럽 굴지의 아름다운 역사도시인 브뤼셀의 시가는 서쪽의 상업구와 동쪽의 주택구로 갈라져 있는데, 주택구의 중앙부에는 루아얄로(路)가 뚫려 있고, 이를 따라 국회·왕궁·박물관·재판소 등의 건물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상점이 즐비한 상업구의 중앙부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그랑플라스가 있다.
▲ 왕의 집(Maison du Roi)
근처에는 유명한 《오줌 누는 소년》(마네캉피스)의 청동상이 서 있다. 상업구의 일부분에는 중세도시의 모습을 담은 낡은 동네도 있으나 도시 전체로서는 근대화의 방향을 따르고 있으며, 고층건축물도 들어서고 있다. 세가지 다른 언어를 쓰는 민족이 섞여 사는 나라의 수도인 브뤼셀에서는 공식 언어로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가 인정되지만 실질적으로는 85-90%의 시민이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있다
▲ 브뤼셀 시청사(Brussels Town Hall)
▲▼ 오줌싸개 동상(Manneken Pis)
브뤼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오줌싸개 동상은 1619년 제롬 뒤케노스에 의해 만들어 졌다. 꼬마 쥘리앙이라는 애칭으로 불릴만큼 브뤼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왕의 집(King's House), 그랑 팔라스, 시청에서 보관하고 있는 쥘리앙의 의상은 미키마우스 복장과 엘비스 프레슬리의 복장 등을 포함해 600벌이 넘으며 오줌싸개 동상은 수시로 옷을 갈아입는다. 1698년 네덜란드 총독을 시작으로 브뤼셀을 방문한 많은 국빈들이 꼬마 쥘리앙을 위해서 옷을 만들어와 입히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있다. 오줌싸개 동상에 얽힌 여러 전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어린 소년이 마녀가 살고 있는 집 앞에 오줌을 싸 그녀가 너무 화가 나서 소년을 동상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 동상을 기점으로 많은 토산품 가게들이 즐비하게 자리잡고 있다
▼▲ 알베르 1세(1875-1934) 동상
알베르 레오폴드 클레멘트 마리 메인라드(Albert Leopold Clement Marie Meinrad)는 레오폴드 1세의 손자로서, 아버지는 플랜더스 후작 필립의 차남이다. 레오폴드 2세의 유일한 아들인 레오폴드-페르디난트가 폐결핵으로 죽자, 그가 추정 상속인이 되었으며 1891년에 정식으로 왕태자에 책봉되었고 1909년 레오폴드 2세가 죽자 즉위하였다. 악평이 높던 선왕에 비하여 진지한 태도, 가정적인 이미지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즉위 한지 얼마되지 않아 1차 대전이 일어났는데, 독일군이 벨기에를 점령하자 독일군에 맞서 군대를 이끌고 몸소 참전하여 국민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전 국토가 독일군에게 점령당하는 그 때까지도 최후의 선봉으로 독일군을 저지하려고 애썼다. 그의 이와같은 태도는 아들인 레오폴드 3세가 2차 대전 중에 독일군에게 힘없이 항복한 것과 비교되어 오늘날까지 벨기에 국민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 그는 직접 마른 전투와 베르됭 전투 등에 참전하였고, 전쟁이 끝난 후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 속에 다시 벨기에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전후 경제부흥에 노력했으며, 1934년 등반을 하다 추락하여 급사하였다.
▲ 오줌누는 소녀
▲ 아토미움( Atomium)
라켄 공원 안에 1958년 브뤼셀 세계박람회의 상징으로 만들어진 원자 핵분열의 순간을 표현한 100m 높이의 아토미움이다. 9개 알루미늄의 대 원구와 철골로 이루어 졌으며 한 개 구의 크기는 철분자의 2,000억배 크기라 한다.
▲▼ 캉트네르 개선문(Cinquantenaire Arch)
개선문 건립은 1880년 세계엑스포와 벨기에의 독립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왕이었던 레오폴드 2세의 후원 아래 추진되고 있었지만 자금 조달의 어려움으로 엑스포 개장일까지 완공되기는커녕 기둥의 밑 공사만 끝낸 상태였다. 엑스포 이후에도 개선문을 완공하기 원하는 레오폴드 2세와 기념사업에 많은 금전적 투자를 하기 꺼려하는 벨기에 정부의 신경전이 계속되었고, 결국은 개인 투자와 후원을 통해 훨씬 훗날인 1905년, 벨기에 독립 75주년 기념행사에 맞추어 완공되었다.
원래 설계자인 보르디우(Bordiau)는 레오폴드 2세의 조언을 받들어 브뤼셀 시내로 들어가는 길목인 이곳에 엄청난 규모의 웅장하면서도 단순한 디자인을 겸비한 구조물을 짓기로 결정했으나, 1900년에 보르디우의 제자인 샤를 지로(Charles Girault)의 수정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웅장한 네 기둥이 받치고 있는 지붕 위에는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과 비슷한 동으로 만든 마차 구조물이 있어 웅장함을 더해준다.
Tosti Aprile '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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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작은 나라이지만 역사와 경제와 문화의 저력이 이 아름다움과 강함을 보여주고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