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人間革命 28卷
第3章 革心 (18~23)
<혁심 18>
쑨중산고택에서 숙소인 진장호텔로 돌아온 야마모토 신이치 일행은 상하이시 관계자가 주최한 환영연에 참석했다.
인사한 신이치는 베이징에서 일부러 찾아와 준 중일우호협회 쑨펑화비서장의 후의에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하고 ‘중일평화우호조약’ 체결이라는 역사적인 이때에 중국을 방문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한 뒤 가슴속 결의를 피력했다.
“이번 방중을, 새로운 단계로 들어선 중일우호의 ‘금의 다리’를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것으로 하기 위한 본격적인 첫걸음으로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지지난해 6월에 ‘중국상하이경극단’이 방문한 소카(創價)대학교에는 중국의 미래를 짊어질 유학생도 공부하고 있고 또 저우총리를 그리는 ‘저우 벚나무’도 기념식수 되어 있다고 말하고 이렇게 말을 이었다.
“만일 저우 총리가 건재하셨다면 얼마나 ‘중일평화우호조약’을 기뻐하셨을까요. 이 조약을 드디어 조인했습니다. 그러나 중일의 평화와 우호를 구축한다는 우리의 목적은 아직 달성된 것이 아닙니다.
‘그림의 떡’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림으로 그린 떡은 먹을 수 없듯이 생각이나 계획이 실패로 끝나는 것을 말합니다.
조약을 조인해도 지금까지 노고하신 선생님들을 기리고 그 조약의 문언에 숨을 불어넣어 살아 숨 쉬는 것으로 하지 않는다면 조약은 한낱 종이조각과 같습니다.
결코 그렇게 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중일 우호가 아시아의 평화와 세계평화를 이루는 큰 열쇠임을 잘 압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출발을 위해 성심성의를 다해 대대손손으로 이어지는 중일우호의 영원한 흐름을 여는데 힘쓰겠습니다.”
신이치는 문화와 교육교류로 사람들의 상호이해와 신뢰를 쌓아 마음과 마음을 이으려고 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만대의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혁심 19>
중국방문 이틀째인 9월 12일 방중단 일행은 숙소인 진장호텔에서 중일우호협회 쑨핑화비서장 일행과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
신이치와 아내 미네코는 쑨핑화와 같은 원탁에 둘러앉았다. 쑨핑화 앞에는 간정어리구이와 연두부, 된장국 등이 놓여 있었다.
원탁에 앉은 쑨핑화는 놀라며 말했다.
“요, 이것은 간정어리군요! 그리고 연두부! 된장국이 아닙니까!”
미네코가 상냥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지난번 중국을 방문했을 때 쑨 선생님이 일본에서 유학하신 이야기를 하시며 간정어리와 연두부의 맛을 잊지 못한다고 하셨기에…”
신이치가 미네코의 말을 받아 이렇게 말했다.
“첫 중국방문 때부터 지금까지 쑨 선생님에게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전하면 좋을지 아내와 상의했습니다.
그리고 쑨핑화 선생님이 유학시절에 일본에서 드신 음식을 그리워하시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간정어리와 두부 등을 가져와 밥을 지어 대접하기로 했습니다. 요리는 아내가 했습니다.”
“입맛에 맞으실지….”
신이치와 미네코는 식자재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지, 두부가 깨지지 않도록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등 진지하게 상의했다.
“식기 전에 어서 드세요.”
쑨핑화는 미네코의 권우에 젓가락을 들었다.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같은 얼굴로 안경 너머 눈을 가늘게 뜨고 즐거운 듯 간정어리를 먹었다.
“그리운 맛입니다. 맛있습니다! 야마모토 선생님과 사모님의 진심이 느껴집니다.”
“쑨 선생님이 이토록 기뻐하시니 정말 다행입니다.”
신이치가 이렇게 말하며 긴장한 표정을 풀고 웃었다.
신이치와 미네코의 작은 정성이었지만 거기에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이 진심 어린 마음과 마음의 교류가 바로 우호의 혼이라 할 수 있다.
<혁심 20>
쑨핑화는 1917년에 중국동북지방 펑뎬(奉天)성(훗날 라오닝성)에서 태어났다. 그 15년뒤, 일본은 중국동북지방에 괴뢰국인 ‘만주국’을 건국한다.
일본의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고급중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쑨핑화는 진학하지 않고 ‘만주국’ 경제부 세무국 관세과에서 일한다. 빨리 돈을 벌어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그러나 직장에서는 일본인이 실권을 쥐고 있었다. 더욱이 대학을 나오지 않은 쑨핑화의 직책은 낮아 장래에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암담한 심정일 때 친구가 일본유학을 권유한다. 안 될 거라 생각한 유학생 시험에 합격해 1939년 스물한 살의 나이로 일본으로 건너간다.
그리고 도쿄공업대학교 부속 예비부에서 공부한 뒤 이 대학의 응용화학과에 진학한다.
시대는 태평양전쟁에 돌입했다. 1943년 여름, 쑨핑화는 4년 반 만에 유학생활을 접고 귀국해 그대로 대학을 그만 두고 만다.
중국 공산당에 입당해 ‘만주국’의 하얼빈에서 은행원으로 일하며 지하활동을 지속했다. 이윽고 전쟁이 끝나자 중국에서는 공산당과 국민당의 분쟁이 심해졌다. 많은 인민이 공산당을 지지해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다.
일본에 유학한 경험이 있는 쑨핑화는 ‘대일접대’ 일을 맡는다. 이것이 쑨핑화가 중일우호에 종사하는 계기가 된다.
쑨핑화는 훗날 중일우호협회 회장이 되는데 자신이 느낀 점을 이렇게 말했다.
“중일우호든 일중우호든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고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우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신중국 탄생 이래 중국과 일본의 우호를 위해 일생을 바쳐온 사람의 신념이 담긴 말이다. 마음이 없는 우호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혁심 21>
12일, 아침 식사를 마친 신이치 일행은 상하이 중심부에서 15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저우시인민공사를 직접 견학했다.
일행이 도착하자 공사 사람들이 징을 치고 어린이들이 풍선과 꽃을 들고 환영했다.
“야마모토 선생님이 중일우호에 힘쓰신 일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쓴핑화가 신이치에게 말했다.
저우시인민공사는 대략 5000호로 1만 8000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흰 솜털이 달린 목화밭과 푸른 벼가 자라는 논 그리고 채소밭이 펼쳐져 있었다. 일행은 안내를 받아 수리시설과 봉제공장, 농기계공장, 병원 등의 시설을 둘러보았다.
모두 현대화를 목표로 활기차게 일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트랙터 등 농기계 부품을 만드는 공장에서도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일에 몰두하고 있다. 공사 관계자에 따르면 중국은 여러 분야에 여성들이 진출해 상하이 거리를 달리는 트롤리버스 운전사는 물론 공군조종사도 여성이 있다고 한다.
신이치는 미래를 내다볼 때 여성의 사회진출은 막을 수 없는 시대의 추세라고 생각했다.
일본도 여성이 사회 각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제도를 비롯해 여성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당연히 필요하다.
그리고 그 근본적인 첫걸음이 남성의 의식개혁이다.
여성은 집에서 가사를 돌보고, 육아는 여성이 하는 일이라는 지금까지의 발상을 전환할 시대를 맞았다고 해도 좋다.
시대와 더불어 생활양식 등 여러 상황은 크게 바뀐다. 사람은 끊임없는 변화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더 잘 살려면 자신의 생각이나 지금까지의 경험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 어구해설
인민공사 : 1958년 이후에 중국에서 설립한 생산부문과 행정부문을 포함하는 독자적인 농촌기구다. 1982년, 신헌법으로 해체했다.
<혁심 22>
인민공사 곳곳에 흰 바탕에 붉은 글씨나 혹은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표어가 크게 씌어 있었다.
상하이 공항에도 ‘세계인민대단결만세’라고 씌어 있었는데 인민공사에도 같은 표어가 걸려 있었다. ‘화궈평 주석과 함께 새로운 장정을 시작하자’는 의미의 슬로건이 신이치의 시선을 끌었다.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에 마침표를 찍고 화궈평 주석과 함께 시작하는 4대 현대화를 새로운 장정이라고 했다.
신이치는 인민공사에서 일하는 청년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새로운 장정’은 무엇입니까?”
주저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인민공사에서 열심히 일해 현대화에 이바지하는 것 입니다. 인민을 위해 일하고 노력하고 연구해 인민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 세대는 장정에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인민을 위해 힘쓰자며 무기 대신 공구를 들고 싸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장정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눈동자가 맑은 청년이었다.
“훌륭한 결의입니다. 숭고한 마음입니다. 감탄했습니다. 미래는 청년 여러분의 양어깨에 달렸습니다. 건투를 기대하겠습니다.”
신이치는 이렇게 말하고 방중단 멤버에게 말했다.
“앞으로 중국은 크게 발전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청년이 진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대화를 향한 모두의 각오가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그 나라의 미래를 알고 싶으면 청년과 대화해 보면 알 수 있다. 청년에게 타인을 위해 사회를 위해 힘쓰자는 결의가 있느냐, 향상하려는 정열이 있느냐, 노력할 의지가 있느냐가 미래의 모든 것을 웅변해 준다.
일행은 12일 오후에는 상하이의 양푸구소년궁을 방문했다. 소년궁은 소년, 소녀를 위한 과외활동 시설로 상하이에는 각 구마다 있다고 한다.
<혁심 23>
“러리에환잉!”(열렬히 환영합니다!)
양푸구소년궁에서는 반바지와 치마차림의 소년, 소녀들이 네커치프와 꽃을 힘차게 흔들며 방중단 일행을 맞았다.
“셰셰!”(감사합니다!)
신이치와 미네코를 비롯한 일행도 손을 힘차게 흔들어 환영에 화답했다. 신이치는 “오늘은 어린 친구들을 만나 반갑습니다” 하고 말하며 한 사람 한사람과 악수를 나눴다.
열한 살짜리 소년, 소녀가 앞으로 나와 신이치와 미네코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은 저희가 안내하겠습니다.”
떨지 않고 침착한 태도로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신이치는 소녀에게 말을 건넸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안부 말씀 전해 주십시오.”
“예! 선생님은 자녀가 몇 명입니까?”
신이치는 농담을 섞어 이렇게 대답했다.
“세 명입니다. 모두 남자 아이랍니다. 남자아이들뿐이라 여자 아이가 있었으면 하는데 학생을 제 딸이라 여겨도 좋을까요?”
“예, 괜찮습니다.”
“그럼 아버지, 어머니에게 인사드리러 가야겠군요. 집이 어디인가요?”
“여기서 가깝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오늘은 찾아 뵐 시간이 없군요. 아쉽습니다.”
그러자 소녀는 웃음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또 상하이에 오시지요? 그때는 꼭 저희 집에 와주세요.”
“예, 학생도 장래에 반드시 일본에 와 주세요. 크게 환영하겠습니다.”
“크면 일본에 꼭 가겠습니다.”
“참, 기쁘군요. 기다리겠습니다!”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자연스러운 대화가 우호를 키운다. 신이치는 작은 가슴에도 우호의 씨앗을 심으려 애썼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윽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때가 반드시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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