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왜요? 어째서요?
사람들이 관계의 목적과 교감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예전에 한 번이라도 교감했다고 치면),
너희가 서로를 성스러운 영행길에서 만난 성스러운 영혼들로 보지 않을 때,
너희는 모든 관계 뒤에 놓인 목적, 즉 의미를 볼 수 없다.
영혼은 진화라는 목적을 위해 몸에 깃들고 몸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너희는 진화하고 있다. 너희는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너희는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될지 결정하기 위해서 모든 관계를 활용하고 있다.
이것이 너희가 이 세상에 와서 할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을 창조하는 즐거움이고, 자신을 인식하는 즐거움이며,
자신이 되고자 하는 바를 의식하면서 일궈가는 즐거움이다.
이것이 자의식을 갖는다고 할 때의 참뜻이다.
너희는 '자신이 참으로 누구인지' 알고 체험할 수 있는 도구들을 갖고자 자신을 상대계로 끌어들였다.
'자신'이란 너희가 자신 외의 모든 것과 관계하기 위해 스스로 창조해낸 존재다.
이 과ㅓㅇ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너희의 개인적 관계들이다.
그러므로 너희의 개인적 관계들은 성스러운 터전이다.
그럼에도 그 관계들은 사실 상재방들, 즉 타인들과는 무관하다.
왜냐하면 관계 자체 속에 이미 타인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타인들과 관련도니 모든 것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성한 이분법이다. 이것은 닫힌 순환계(closed circle)이다.
그러므로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은 신을 알게 되리라"고 말하더라도 결코 과격한 가르침이 아니다.
너희 자신의 가장 고귀한 부분을 알고, 그 속에 중심을 잡고 머무는 것이 아마 그리 나쁜 인생 목표는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의 첫 번째 관계는 너희 자신과 맺어져야 한다.
너희는 먼저 자신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라.
다른 사람을 가치 있기 여기려면, 먼저 자신을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
다른 사람을 축복받은 존재로 여기려면, 먼저 자신을 축복받은 존재로 여겨야 한다.
다른 사람의 성스러움을 인정하려면, 먼저 자신이 성스러운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종교들이 요구하듯이 말 앞쪽에다 수레를 매달고, 자신보다 먼저 타인을 인정한다면,
너희는 그렇게 한 것을 분하게 여기게 되리라.
너희 중 그 누구도 참을 수 없는 일이 한가지 있다면
그것은 자신보다 더 성스러운 어떤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너희 종교들은 다른 사람을 너희보다 더 성스러운 존재로 여기라고 강요한다.
그리하여 너희는 그렇게 한다.
잠시동안은, 그러나 나서 너희는 그 사람을 십자가에 매단다.
너희는 내가 보낸 모든 선각자를 (이런저런 방식으로) 십자가에 매달았다.
단 한 명의 선각자(예수)에게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그리고 너희가 그렇게 한 이유는 그들이 너희보다 더 성스러워서가 아니라, 너희가 그들을 더 성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낸 선생들은 한결같이 같은 메시지를 갖고서 세상에 왔다.
"나(神)는 너희보다 더 성스럽다"가 아니라. "너희도 나만큼 성스럽다"는 메시지를 갖고서,
이것이 너희가 듣고 있을 수 없었던 메시지이며, 너희가 받아들일 수 없었던 진실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너희가 결코 진실로 순수하게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결코 진실로 순수하게 타인들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지금 당장, 그리고 앞으로 영원히 너희 자신에게 중심을 두어라.
자신이 남들과 어떻게 지내는가가 아니라, 주어진 시기에 자신이 어떤 상태이고, 뭘하고 있고, 뭘 갖고 있는지를 주시하라.
너희가 구원받을 길은 남들의 행동(action)이 아니라, 자신의 방응(re-action)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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