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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과 죽음 너머의 세계를 찾아서
인생은 누구나 예외없이 3단계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첫 번째는 모태속의 10개월입니다. 기억이 나십니까? 기억을 못하셔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 세상은 어둠의 세상이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100년가량의 이 세상입니다. 반은 밝고 반은 어둡습니다. 3번째 단계는 영원한 세상입니다. 이 세상의 선택에 따라 영원한 어둠(멸망)으로 갈수도 있고, 영원한 빛-행복으로 갈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죽음너머의 신비로운 세계에 대해서 여행해 보겠습니다.
죽고 나면 어떻게 되요?
성경은 분명한 진리를 우리에게 나타내 줍니다.
성경은 우리모두에게 영원한 빛의 세계, 참 구원과 행복의 세계로 오라는 하늘의 특별한 초청장과 같습니다. 이 세상의 사랑을 흔히 필로, 에로스, 아가페의 사랑으로 나눕니다. 이 3가지 가운데 가장 강하고 변함이 없는 것이 아가페 사랑, 절대적 사랑입니다. 마치 그것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과도 비슷한데, 부모의 사랑 마저도 변덕스러워 아가페의 참 사랑을 나타내기에는 모자람이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랑, 그것만이 참 아가페 사랑, 자기희생적인, 무아적, 절대적, 영원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한번은 유명한 법정스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믿지 않는다 하여 자신의 자식이라 하는 인간들을 지옥불에 던져 버리는 당신네들의 신들을 난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차라리 난 지옥에 가서 당신네 신에게 버림받은 그 억울한 영혼들을 구제하겠다” 이 말을 들어보면 기독교의 하나님은 자기자식을 지옥불에 던져넣는 무자비한 분이고, 자기는 지옥불에서 영혼을 구제하는 자비한 사람처럼 나타냅니다. 자! 이 문제에 대해서 기독교 신자들을 뭐라고 답변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영혼불멸, 꺼지지 않는 불타는 지옥, 등은 원래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교 이교에서 왔다는 것을 아십니까?
경남 창녕에 있던 부곡하와이를 가 본적이 있으세요?
그 온천의 뒤편으로 산책로가 있는데 그 이름이 “지옥의 길”입니다. 지옥의 형상들을 조각해서 만들어 놓았는데, 무섭고 끔찍합니다. 죄를 지은 죄인들이 영원하 고통받는 무시 무시한 지옥들이 많이 있습니다.
평생에 지은 죄의 값대로 지옥에 들어가서 잉과응보의 원리에 따라 형벌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지옥은 팔열팔한지옥(八熱八寒地獄)이 있고 또 관련부지옥이 있어서 모두 134개의 지옥이 있다고 한다. 가장 극렬한 지옥은 무간지옥이라고 말한다. https://youtu.be/_D_buaKVGOs
이 끔찍한 지옥의 그림들은 중국불교사이트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www.amtf.cn 이곳 중국사이트에서 불교에 대한 아주 무시 무시한 그림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기독교의 잘못된 지옥에 대한 견해는 불교의 지옥보다 더 무자비합니다. 왜냐하면 불교에는 어느정도의 형을 지옥에서 다 치르면 다시 윤회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지옥에 대한 견해는 꺼지지 않는 불속에서 영원히 불탄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잔인한 일입니까? 성경에서 자기 아들까지 주신 사랑의 하나님이 정말 그렇게 무자비하신 일들을 하실까요?
좀 더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에 대한 내용들을 살펴봅시다.
성경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까지 주신 분입니다. 그런데 왜 다시 영원한 멸망에 당신의 자녀들을 빠트리실까요? 천부당만부당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그 거짓말의 시작은 바로 마귀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는 거짓의 아비입니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창2:17)하셨는데, 마귀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3:4)고 하와를 속였습니다. 죄를 지어도 결코 죽지 않겠다는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범죄로 인하여 인류가 죽게되자 사단은 두 번째 거짓말은 합니다. “몸은 죽었으나 영혼은 죽지 않았다.” 사람의 육체속에서 빠져나와 영원한 존재가 되었다.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요8:44) 사단입니다.
인간은 불멸의 존재가 아닙니다. 불멸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입니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딤전 6:16)
사단은 그의 가르침들을 유지시켜나가기 위하여 수많은 어둠의 대리자들을 사용합니다. 바로 그들이 무당이요, 초혼자들, 영매, 강신술사들입니다. 죽은 자와 산 자사이에서 중간다리를 놓아주는 자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땅에서 그런 자들을 용납하지 말라(신18:10)고 하십니다. 왜 일까요?
실제로 죽은 자의 영혼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타락한 악한 천사들이 악한 자의 모습과 말로 나타나서 사람들을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계 12:9) 성경을 그를 향하여 온 천하를 꾀는 자라 했습니다. 바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우리도 다 미혹되고 맙니다.
영혼불멸설, 곧 사람은 죽어도 영혼은 불멸한다는 가르침은 사단에게서 나와서 이집트와 바벨론의 이교사상의 근간이 되어져 왔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그것은 무덤입니다. 그 무덤안에는 미이라가 있는데, 왜 미이라를 만들었을까요? 언젠가는 영혼이 몸으로 돌아와 살아난다는 영혼불멸사상에 기초한 것입니다.
“이집트의 영혼불멸 사상은 헬라로 전수되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 의해 이원론 즉 육체와 영혼의 분리 사상으로 정립되었다.” 플라톤의 영혼 불멸 사상에 젖었던 어거스틴 등 교부들의 영향으로 중세 교회의 교리가 되고, 어거스틴 의 신학에 심취한 칼빈이 카톨릭에서 개신교 신앙으로 공식적인 개종을 한지 겨우 2년만인 25세 되던 해에 섣불리 썼던 최초의 논문인 「혼수론」에 나타난 영혼 불멸의 가르침이 오늘날 모든 개신교의 영혼불멸의 기조(基調)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불멸의 사상은 오늘날 수많은 영화와 소설등의 흥미로운 주제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영화와 드라마, 미디어들은 이런 영혼불멸의 사상을 가진 것들이 태반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우연일까요? 그 모든 문화의 배우에는 사단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딤전 4:1)
마지막 때에는 마귀가 강신술을 통하여 자신을 온 세상에 나타나 영광을 받고자 미리 다양한 형태의 영혼불멸적인 작품들을 통하여 사람들을 세뇌시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알고 있는 영혼불멸의 영화의 제목들을 말해보세요? “사랑과 영혼”, “신과 함께”,“내 안의 그놈”,“코코”,“헤리포터 시리즈” 등...이루 다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기독교 신학사전에서도 애굽사상 영혼불멸과 희브리 사상 부활은 반대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집단이 희랍문화와 접촉하게 되면서부터 이 (영혼)불사의 사상이 그리스도교의 신앙의 영역까지 침투해 왔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영생의 소망을 희랍적인 범주로 표현해 보려는 특수한 시도였으며...이 불사의 사상은 그것과 반대되는 부활을 강조하는 정통적인 히브리 사상과 대조적이다.”(기독교 신학사전, 124. 대한기독교 서회 발행)
종교개혁자 말틴루터도 사람이 죽어서 당장 천국 가고,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재림하실 때 부활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가 오셔서 작은 무덤을 두드리시며 마틴 박사여 일어나라 하고 말씀하실 때 까지 잠 잘 것이다. 그때 나는 순간적으로 일어나 주와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살 것이다.”(그리스도의 소망, 37)
유명한 신학자 오스카 불만도 그의 논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영혼불멸은 희랍의 사상으로,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의 신앙과 공존할 수 없는 가르침이다.”(오스카 쿨만, 논문 "영혼의 불멸인가, 죽은 자의 부활인가?")
영과 몸의 온전한 부활은 기독교의 참 진리입니다. 어느 교파의 교리 정도가 아닙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엡 4:21) 영혼불멸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검사, 변호사도 지내시고, 대한신학교 졸업, 동 신학교 강사
대한예수교장로회 영신교회 부목사, 협동목사 이재운 목사님이 성경을 백독하고 드디어 성경의 참 진리를 깨닫고 “인간의 사후세계”라고 하는 책을 펴 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책 가운데서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시간에 얽매여 성경을 몇 차례 통독하지 못하고 그러한 상황에서 1997년에 출간된 <기독교의 전반적인 이해>를 정리하였다. 그러나 1994년 이후 모든 세상일을 폐하고 요양을 위해 지방으로 내려와 수년 동안 성경을 100회 통독하고 비로소 기존의 나의 견해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그 내용을 바로잡는 뜻에서 <인간의 사후 세계 1, 2>권을 쓰기에 이른 것이다.
성서 어디에도 육신을 떠난 영혼이 다른 세계에서 생존한다는 말은 없다. 반대로 죽음은 생존의 끝이고 육신이 죽을 때 그 영혼(생명)도 끝난다는 내용의 성경 구절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 기록된대로 믿는 것이 곧 진리를 따르는 것이 될 것이다.
현대의 명강사, 연세대학과 철학과 명예교수인 근 100세 가까이 이른 김형석교수님이 그의 강연 “백년을 살아보니”에서 그런 천국에 지옥에 대한 얘기를 다른 사람의 경험을 빌어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합니다. “내가 다니는 감리 교회의 조창환 목사가 미국에 있다가 한국에 와서 목사 시험 볼 때 떨어질 뻔 했다고 해요. 교리 시험에서 “천당과 지옥을 믿느냐?”는 문제가 있었는 데 “성격과 형태는 모르지만 천국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 지옥은 만들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가 떨어졌대요. 나중에야 조 목사의 겸손함을 보고 다시 붙여줬다고 하더군요.” 조창환 목사님은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을 바로 이해하신 게지요.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 지옥은 만들지 않았을 것 같다”
성경은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뭐라고 말합니까? 창세기 2장7절에 흙+생기=생령, 산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죽음은 산 사람에게서 호흡이 없어지면, 숨이 멎으면 죽는 것입니다.
마치 전구와도 같습니다. 전기코드를 빼면 전구가 죽고, 코드를 꽂으면 살아나는 것입니다. 전기라는 영혼이 어디 돌아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전기를 사용하여 TV는 노래를 하고, 냉장고는 냉장의 기능을 하고, 선풍기는 바람을 일으킵니다. 전기가 없어지면 다 죽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어디를 돌아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실제로 나오는 “영원한 불”은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는 여기서 “영원”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올람”이며, 헬라어 “아이오니오스”라는 단어입니다. “그는 종신토록(올람) 그 상전을 섬기리라”(출21:6)에 사용되었는데,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주인을 섬길 것이라는 뜻입니다. 종신의 의미는 죄인에게는 불에타 없어질 때까지이고, 의인에게는 실제로 영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 행복의 동산, 에덴동산을 주었습니다. 죄가 그 행복을 파괴했습니다. 죄와 그 죄의 뿌리인 마귀를 마귀의 도구들인 가지들(악인)을 불사르고, 다시는 이 세상에 죽음과 고통과 눈물이 있지 아니할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말 4:1)입니다.
누가복음16장에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그것은 예수께서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에게(눅16:14) 들려준 그 당시의 이야기를 비유로 들려준 것니다. 이것이 실제라면 큰일이 납니다. ①천국과 지옥은 서로 보이는 곳인가? -그렇다면 천국이 더 잔인한 지옥이 됩니다. ②아브라함 품은 얼마나 넓은가? ③부자는 이름이 없는데 왜 거지는 이름이 나사로인가?
부자는 죽은 자가 산자들에게 가서 전하면(눅16:30) 회개하고 예수믿을 것을 말했습니다. 정작 부활한 나사로는 천국지옥 간증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을 향하여 “나사로야 내려오너라”하시지 않으시고, 무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영혼이 내려오는 것이 아니고 베로 동인채로 나사로가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죽음을 잠으로 비유합니다. 잠은 무의식의 세계이고, 반드시 깨어날 날이 있습니다.
모든 진리가 예수안에(엡4:21) 있습니다. 예수가 진리입니다. 가르침이 진리요, 삶 자체가 진리이십니다. 예수님은 영으로 부활하지 않으시고, 살과 뼈를 가진 온전한 사람으로 부활하십니다. 말로만, 영혼이 죽어 극락갔다는 불교와는 엄연히 다른 결론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역사적 실제사건위에 기독교가 서 있는 것입니다.
언제 주안에서 죽은 자가 부활할까요?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고전 15:51-52) 우리 주님이 오시는 그 날, 그 재림의 날이 영광의 날이요 행복과 감격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날에 죽음으로 헤어졌던 가족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망이 사망하고, 이 온 우주에는 사랑과 행복만이 영원할 것입니다. 그 영원한 행복의 나라를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행복합니다. 생각만해도 행복해지는데, 믿으면 현실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환히 웃으며 온 우주의 행복의 주인 공이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화면을 꺼꾸로 돌린다) 죄와 함께 멸망하여 사라지는 슬픔의 주인공이 되고 싶습니까? 그 차이는 오늘 바른 성경의 진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의 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걸음을 가느냐 가지 않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 영원한 참 행복과 기쁨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 당신을 맡기면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은혜를 경험하고, 감사와 기쁨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잘못 오해한 하나님의 품성은 우리를 두렵게 하고, 불안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참 사랑의 하나님 안에서, 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참 생명을 누리십시오. 다음 시간에는 강신술을 통하여 마귀가 마지막 시대에 이루려는 계획들을 살펴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