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人生) 역마차(驛馬車)
2. 전국최초의 학교⁃학급 홈페이지
나는 1967년 인천교대에 입학했는데 선택과목은 초등교육학이고 선택은 음악반이었다.
69년 인천교대를 졸업하고 초임지는 경기도 가평(加平)이었는데 75년에 인천으로 전근하여 들어와서 인천교대 야간대학에서 2년간 공부를 계속했고 선택과목은 음악이었다.
84년에는 다시 청주 교원대학에서 음악 전문과정(6개월)을 이수했으니 어떻게 보면 부전공(副專攻)은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내 전공(專攻)과목과는 전혀 관계없는 컴퓨터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소개하면,
컴퓨터가 보편화(普遍化)되기 훨씬 전인 1990년, 새로 개교하는 인천 건지(乾地)초등학교 연구부장으로 초빙을 받아 가게 되었다. 그곳은 인천시 서구 가좌동인데 학교가 세워진 곳은 예전 ‘가재울’이라 불리던 곳으로 지금은 아파트와 주택들로 가득 들어차 있지만, 옛날에는 자그마한 골짜기로 졸졸 흐르는 작은 개울이 있었고 가재(Crayfish)가 무척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가재골’이라 하다가 가재울... 그런데 개울물이 거의 말라 마른 연못, 하늘 연못이라는 의미의 건지(乾池)로 불렸는데 현재의 학교 이름은 의미가 멀다고 해야될까?
가재(Crayfish) / 하이텔(HiTEL) 단말기 / 인천 부평남초등학교
학교 이름이 건지(乾地-마른 땅)로 바뀌었으니 신기한 학교 명칭의 내력이다.
나의 교직 생활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나는 주로 연구부장(硏究部長)을 많이 맡았는데 인천 건지초(乾池初)에 근무할 때 인천시 교육청의 컴퓨터연구학교로 지정을 받아 연구부장을 하며 대한민국 최초의 학교 홈페이지인 ‘건지골 소식’을 만들어 운영하였던 일이다.
1990년대 초라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컴퓨터가 들어오기 시작하던 시절인데 1992년 어느 날, 교장 선생님이 느닷없이 나를 교장실로 부르더니 인천교육청 지시라고 하며 우리 학교를 인천시 컴퓨터시범(示範)학교로 지정을 한다고 하니 나더러 연구학교 운영계획을 세우라고 한다.
당시는 컴퓨터(Computer)가 처음 나오기 시작하던 시기라 컴퓨터에는 전혀 문외한이던 나는,
‘저는 컴퓨터를 전혀 모릅니다. 저는 연구부장을 못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으로 바꾸십시오.’
교장 선생님(김영환)은 나를 보고 애원하는 표정으로 교육청 지시를 거절할 수 없는 형편이니 제발 좀 맡아달라고 통사정조(通事情調)로 부탁을 한다. 마음이 약한 나는 곧바로 인천교육연구원을 찾아가서 당시 대학 동기로 인하대 야간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대학 동기 연구사(하상철)를 찾아가 내 사정을 토로해 보았다.
그랬더니 하(河) 연구사는 자기가 적극 도와주겠으니 맡아보라고 한다.
당시 인터넷(Internet-국제통신망)이 활성화되기 전이라 ‘PC 국내 통신망’이라 불리던 통신망이 개설되었는데 국내통신만 가능한 통신사로 하이텔(HiTEL), 천리안(Chollian), 나우누리(Naunuri), 유니텔(Unitel)이었다.
◈PC-(Personal Computer)
하(河) 연구사는 국내 통신망 하이텔(HiTEL) 속에 인천지역 통신망인 인디텔(Inditel)이 별도로 개설되어 있으니 그곳 사무실에 찾아가서 학교통신망(현 학교 홈페이지)을 개설하게 해 달라고 부탁해 보라고 한다.
나는 연구원에서 나오자마자 곧바로 인디텔(인천지역 통신망) 인천본부로 찾아가서 허락을 받고 곧바로 컴퓨터가게에 가서 컴퓨터를 한 대 사서 집으로 왔다. 그리고 내가 밤새워 책을 들여다보며 컴퓨터를 익히고 인디텔과 협력하여 개설한 것이 우리나라 초⁃중⁃고(初中高) ‘전국최초의 학교 홈페이지’인 학교통신망 ‘건지골 소식’(1993년 개설)이다.
당시 가정에는 컴퓨터가 거의 없던 시절로, 하이텔에서 단말기(端末機)라고 조그만, 오로지 통신만 되는 하이텔 단말기(端末機)를 무상(無償)으로 빌려주었는데 내가 직접 트럭을 빌려 전화국에 가서 한 차 실어와 운동장에서 학부형들을 불러 나누어주고 가입하는 방법, 운영하는 방법 등을 유인물로 만들어 나누어 주고....
하이텔 단말기는 크기도 작을뿐더러, 마우스(Mouse)도 없고 조그만 자판만 있어 오직 통신만 가능했다.
나는 전국최초로 1994년, 컴퓨터시범학교 보고회를 했는데 교육부, 한국교육개발원(KEDI), 서울, 부산, 대구, 심지어 포항 포철초(浦鐵初)에서까지 몰려와서 질문을 해대고, 보고서는 물론이려니와 개설방법, 운영방법까지 유인물을 만들어 들려 보내느라 고역(苦役)을 치르던 기억이 생생하다.
1995년에 부평에 있는 부평남초(富平南初)로 전근해서 5학년 7반 담임을 맡고 학급통신망인 ‘별똥마을’을 개설했는데 이것 또한 전국에서 최초로 개설한 학급통신망(학급 홈페이지)이었다.
당시 부평남초(富平南初)는 교생실습학교였는데 나는 가던 해 체육부장, 다음 해부터 계속 실습부장(교무부장)을 맡았다. 당시 교대에서 온 실습생들도 놀라던 기억이 난다.
내가 만들어 준 우리 반 아이들의 아이디(ID)는 출석번호에 따라....(별똥마을이니 별 이름으로)
남자들은 북극성 1, 북극성 2, 북극성 3..., 여자들은 아기별 1, 아기별 2, 아기별 3....
당시 컴퓨터를, 정보통신을 전혀 모르던 시절이라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모아 열심히 교육했다.
학급통신망의 메뉴는 1. 별똥게시판, 2. 학습안내, 3. 우리 반 이야기, 4. 글짓기 교실, 5. 질문이요!, 6. 가정통신, 7. 별똥우체국, 8. 별들의 대화의 8개 방으로 꾸며 운영하였다. 요즘의 화려한 학교, 학급 인터넷 홈페이지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겠지만 당시로는 한껏 멋을 낸, 알차게 꾸며진 홈페이지였다고 생각된다.
얼마 후, 이 학급통신망도 굉장히 활성화되어 일반인들도 들어와 놀라곤 했었다.
그리고 당시 내 나이가 40대라 연령이 40대인 사람들을 모아 ‘40사모(40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라는 모임방을 만들었는데 회원이 40여 명으로 굉장히 활성화되었던 기억이 난다.
수없이 많은 번개팅도 하고 기금을 모아 인천농맹아(聾盲啞) 학교를 방문하여 선물도 기증하고...
당연히 내가 운영자였는데 당시는 운영자를 시삽(Sysop: System Operator)이라고 불렀었다.
이러한 우리나라 정보통신교육에 앞장섰던 공로를 인정받았던 때문이었는지 나는 1998년에 국무총리가 주는 공무원의 자랑인 ‘모범공무증’도 받았으니 영광이며 인생의 보람이라 하겠다.
● 모범공무원증/제29807호/1998년 12월 28일<국무총리 김종필>
또, 나는 이따금 교가(校歌) 작곡을 의뢰받았는데 새로 개교하던 인천 건지초(乾地初), 가현초(佳峴初), 경명초(景命初)의 세 학교 교가를 내가 작곡하여 현재도 아이들 입으로 불리고 있다는 것도 뿌듯하다.
현재(2024년), 인천 청라지구에 있는 경명초(景命初)에는 작은 손자(초5)가 다니고 있는데 놀라는 표정....
그러나 지금도 서운한 것은 인터넷에 ‘우리나라 최초로 학교∙학급 홈페이지를 개설한 사람은?’ 하고 올려보아도 내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