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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광반야바라밀경_78. 주이공품(住二空品)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이 법이 꿈과 같으며, 메아리 같으며, 환(幻)과 같고 화(化)와 같으며, 뜨거울 때의 불꽃과 같으며, 빛과 같고 그림자와 같아서 이 모든 법이 다 공하다고 하는 것입니까?
어떤 것이 만든 곳이 있는 것입니까?
도(道)라 하고, 속(俗)이라 하고, 이것은 무위(無爲)이며 이것은 유위이고, 유루(有漏)ㆍ무루라 말하는 것입니까?
무엇을 이것은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이라 말하는 것입니까?
어떤 것을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는 것이라 말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범부는 들은 것이 적어 꿈과 같고 환과 같은 법에 의지하며 본다.
신(身)ㆍ구(口)ㆍ의(意)를 인하여 짓는 것은 법이 아니며, 선한 일도 아니다.
혹 선한 일을 행하여도 선악의 과보에 이르게 된다. 죄와 복을 삼계에서 받는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2공(空)에 머물러야 한다. 유무(有無)와 근본과 끝이 공하여 필경에는 공에 이른다.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5음(陰)ㆍ12쇠(衰)가 있음을 설하나 공한 것이며, 18성(性)이 공하다.
이 법은 꿈과 같고 메아리 같으며, 환과 같고 화와 같으며, 그림자 같으며 뜨거울 때의 불꽃과 같은 것이다.
이 중에는 5음도 없고 모든 쇠(衰)도 없으며, 모든 성(性)도 없으며, 꿈도 없고 메아리도 없으며, 환(幻)도 없고 화(化)도 없으며, 불꽃과 그림자도 없는 것이다.
또한 견(見)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법은 다 형상이 없어 소유한 것이 다 소유가 없으며, 5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너희들이 5음이 있음을 보나 12쇠는 없는 것이다.
너희들이 모든 쇠(衰)가 있음을 보나, 18성은 없는 것이다.
너희들이 모든 성(性)이 있다고 보나, 인연이 전도된 까닭에 곧 모든 법이 행을 따라 받는 것이 있다.
어찌하여 너희들은 소유가 없는 법에 형상이 있다고 하느냐?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보살이 구화구사라(漚惒拘舍羅)로써 모든 탐심과 질투가 있는 중생에게 보시를 가르쳐서 큰 부(富)를 얻게 하며, 이 중에서 벗어나와 계를 지키게 한다.
계(戒)를 지킨 인연으로 천상에 태어남을 얻게 된다.
계에서 벗어나 선삼매(禪三昧)에 머물게 한다.
선(禪)의 인연으로써 범천에 태어남을 얻는다.
4선과 4공정을 구족한 인연으로 보시를 하고 계를 지키고 선(禪)과 무수한 방편으로써 열반에 서게 된다.
다시 37품과 3탈문을 쓰고 8해탈과 9차제선과 10종력과 4무소외와 4등을 쓰며, 권하여 18법을 얻게 한다.
이 상(像)이 없는 법을 소지하여 삼승을 세움이 보살도를 설하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매우 기이하고 특별하여 일찍이 없었던 일입니다. 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모든 것이 공하여 법을 짓는 처소가 없어야 합니다.
이것이 선법과 악법이며, 이것은 도법과 속법이고, 이것은 누법(漏法)이고 무루법이며, 이것은 유위법(有爲法)이며 이것은 무위법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다. 수보리여, 매우 기이하고 특별하여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이것은 공하여 없는 법이나, 짓는 것의 처소가 되기도 한다.
수보리여, 너희들은 보살이 행하는 것이 매우 기이하여 아라한ㆍ벽지불이 이르지 못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보살마하살에게 예를 올려야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일찍이 없었던 일입니까, 모든 아라한ㆍ벽지불이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듣고자 한다면 잘 생각하고 생각해야 한다. 내가 마땅히 해설하리라.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6바라밀과 내외공과 37품과 4무애혜와 5신통에 머물러야 한다. 두루 시방에 이르러서 모든 중생을 관하고, 보시로써 섭취할 자는 곧 보시로써 섭취한다. 지계와 인욕과 정진과 한마음의 지혜로 그 응하는 것을 따라서 6바라밀로써 섭취한다.
4선과 4공정을 써서 해탈시킬 자는 선(禪)을 쓰는 인연으로 섭취한다. 혹은 자(慈)ㆍ비(悲)ㆍ희(喜)ㆍ호(護)를 써서 보호하여 도를 얻게 할 자는 이 4등으로써 포섭한다. 혹은 37품으로써 도를 얻게 할 자는 근력(根力)과 각의(覺意)로써 섭취한다. 만약 3탈문으로써 도를 얻게 할 자는 모두 섭취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보시로써 중생을 섭취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사람이 구하는 것을 따라 해야 한다. 만약 입을 옷과 음식과 질병을 위한 의약과 코끼리와 말과 타는 수레와 금ㆍ은의 진귀한 보배를 구하면 사람이 원하는 바를 따라서 모두 다 보시해 준다.
보시함은 부처님과 벽지불과 아라한과 수다원에 이르기까지, 아래로는 범부와 나는 새와 꿈틀거리는 벌레와 모든 3악취에 이르기까지 그 뜻에 알맞게 평등하게 해주어서 차별이 없어야 한다.
약간이라도 차별의 뜻이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약간이라도 차별의 뜻이 없으므로 그 뜻이 평등한 것이다. 약간의 차별도 없는 것은 곧 차별이 없는 살운야혜(薩云若慧)를 얻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만약 와서 구하는 자를 보고서는,
‘내가 보시함은 마땅히 부처님의 삼야삼불의 복우(福祐)를 주어서 축생에 태어나지 않게 하리라’고 생각하여 말한다면,
보살의 법이 아니다.
보살이 도의 뜻을 일으키려면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보시를 했으므로 마땅히 4성(姓)의 집에 태어날 것이며, 모든 보시를 하고 나서 중생을 섭취하게 되면 모두 다 무여열반[無餘泥洹]에 이르게 하여 열반에 들게 하리라.’
보살은 중생을 친족으로 여기고 보시를 하되 약간의 차별도 없어야 한다.
또한 ‘마땅히 이와 같이 준 것과 이와 같이 주지 않은 것에 뜻에 맞게 중생에게 보시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뜻에 걸림이 없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
중생을 위하여 아뇩다라삼야삼보를 발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분별의 뜻이 있으면 곧 모든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과 모든 연각과 모든 진인(眞人)에 큰 과실이 있는 것이다.
무슨 뜻인가?
모든 천과 사람과 모든 아수라에 정(情)이 있어서는 안 된다. 보살이 중생을 위하여 구호하고 교량 역할을 하는 것이 보살의 법이니, 스스로 마땅히 중생을 구원하고 섭수해야 한다.
다시 수보리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만약 사람이나 사람이 아닌 것이 보살의 처소에 이르러 보살의 몸을 마디마디 해부하여 취하고자 해도 보살은 마땅히 줄 것과 주지 않을 것을 의심하여 말하지 않아야 한다. 이 보살은 중생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형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살은 마땅히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이 몸으로써 일체를 요익하게 할 것이다. 나는 중생을 위하여 이 몸의 형상을 받았으니, 이제 와서 취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은 와서 구하는 자를 보면 마땅히 뜻을 일으켜 말한다.
‘보시하는 자는 누구며, 받는 자는 누구며, 보시하는 물건은 어떤 것인가?
이 모든 법은 실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항상 공하기 때문이다. 공은 또한 줄 것도 없으며, 또한 뺏을 것도 없다.
수보리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마땅히 이와 같이 하여 배워야 한다. 이른바 내공과 외공 및 유무공(有無空)에 머물러 이 가운데에서 보시하면 곧 단(檀)바라밀을 구족한다. 단을 구족하고 나면 내외법을 끊지 않는다.
‘이 베는 자는 누구며, 끊는 자는 이 누구이냐’라고 말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부처님이 천안(天眼)으로써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찰토를 보시니 모든 보살마하살이 지옥에 들어가자 지옥이 곧 차게[冷] 된다.
세 가지 일로써 변화하여 지옥 가운데의 중생을 위하여 설법을 하니,
첫째는 신족(身足)이요,
둘째는 그 사용하는 바를 따르는 것이요,
셋째는 4등(等)의 법이다.
신족으로써 불을 없애고 뜻을 따라서 4등법을 설하니, 지옥 가운데의 중생이 보살에게 귀앙(歸仰)하여 애경(愛敬)하면, 곧 고통을 여읜다. 다음으로 삼승의 가르침을 설하여 모두 다 고통에서 해탈하게 한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내가 불안(佛眼)으로써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찰토를 보니, 모든 보살마하살이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되 교만하지 않고, 모든 부처님을 애호(愛好)하여 증오하지 않는다. 환희하고 성내는 것이 없어 모든 부처님이 설하신 설법을 모두 수지하여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게 되면, 마침내 뜻을 잃지 않는다.
수보리여, 부처님이 불안으로써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찰토를 보니, 모든 보살들이 중생을 위하여 신체의 뼈 마디마디를 베고 끊어서 분리하여 사방에 흩어 모든 나는 새와 걸어다니는 짐승들이 와서 보살의 가죽과 살을 먹게 하는 것은 모두 다 자비한 뜻이 있는 것이다. 보살은 자비한 뜻 때문에 축생을 여의게 하고 곧 사람이 되게 한다. 가서 모든 부처님을 친견하고 경법을 들으면 그 들은 바를 따라서 곧 행한다. 그러면 삼승의 법으로써 제도하여 해탈하게 한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일으키면 많은 곳이 넉넉하고 이로우니, 이와 같이 중생으로 하여금 무여열반을 얻게 한다.
다시 수보리여, 내가 불안으로써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찰토를 보니, 모든 보살들이 아귀 가운데 들어가자 모든 아귀들이 보살을 보고 곧 자비로운 뜻을 내어 보살을 공경한다. 공경한 까닭에 모든 고통을 여의고, 이 공덕으로 인하여 마침내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고 열반을 얻게 한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자비를 행하는 것이 이와 같아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열반을 얻게 한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모든 보살을 보니, 사천왕과 제6천에 이르러 저 모든 하늘을 위해서 널리 설법을 하는데, 삼승을 가르쳐서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여 열반을 얻게 한다. 모든 하늘 대중이 오락에 집착하면 보살이때에 응하여 궁전이 모두 다 환해지게 하고 이들을 위하여 설법하여 말을 한다.
‘모든 인자(仁者)야, 일체 소유한 것은 모두 다 무상(無常)하고 고귀한 것도 없으며, 비천한 것도 없는데 누가 항상 안락한 것인가?”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불안으로써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를 관해 보니, 모든 범천(梵天)을 찬탄하는 자에게 보살이 곧 이를 위하여 설법하여 말한다.
‘모든 인자야, 어떻게 이 공하고 없는 법에서 뜻을 내는 것을 보겠으며, 이 법은 공하고 무상하며, 견(見)이 없는데 마멸법(磨滅法)이 되겠느냐?
여기에서 본다는 뜻을 내지 말아야 한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이미 대자비에 머물면 중생을 위하여 설법을 해야 한다. 이것이 보살의 매우 기이하고 특이한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수보리여,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찰토에 있는 보살마하살은 네 가지 일로써 중생을 요익하게 해야 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은혜로 보시하는 것[惠施}이요,
둘째는 어진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仁愛]이요,
셋째는 사람을 이익되게 하는 것[利人]이요,
넷째는 뜻을 같게하는 것[等義]이다.
이것이 네 가지 은혜이다.
보살마하살은 두 가지 일로 보시하여 중생을 섭취하니,
첫째는 재물이요,
둘째는 법시이다.
어떤 것이 재물로 보시하여 중생을 섭취하는 것인가?
보살이 금ㆍ은ㆍ벽옥(璧玉)과 진기하고 특이한 보배로 하는 것이며, 음식과 의복과 향(香)과 꽃과 병으로 쇠약했을 때에 의약으로 삼는 것과 눕는 침대 등의 도구로써 하는 것이다.
소유하고 있는 노비와 코끼리와 말과 타는 수레로써 모든 중생이 하고자 하는 뜻을 따라 해주며 사람들의 뜻을 어기지 않는다.
모든 이가 오면 보시해 주고, 모두 다 가르쳐서 스스로 3존에 귀의하게 한다.
혹은 5계를 주고, 혹은 10선을 가르치며,
혹은 8재계[八齋]를 가르친다.
혹은 가르쳐서 4선과 4등과 4공정을 행하게 하고,
혹은 권하고 도와서 불(佛)을 염하고, 법(法)을 염하며, 비구승을 생각하고, 하늘을 염하며, 보시를 생각하게 한다.
모든 전도를 행하는 자에게 수순을 행하도록 가르치며, 모든 진실하지 못한 자에게 가르쳐서 진실을 행하게 한다.
권하고 도와서 37도품과 3해탈문과 8유무(惟無)와 9차제선과 부처님의 10종력과 4무소외와 4무애혜와 대자대비를 행하게 한다.
중생에게 권하여 부처님의 18법과 80종호를 행하게 하며, 사람에게 권하고 도와서 삼승법을 가르쳐서 배우게 한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구화구사라를 써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재물로 보시하여 중생을 섭취하는 것이며, 위없고 두려움이 없는 땅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보살의 기특하여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어떤 것이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인가?
법보시로써 중생을 섭취하는 것이다.
보시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도시(道施)요,
둘째는 속시(俗施)이다.
어떤 것이 세속의 법시인가?
세속에서 설하는 것과 보시를 행하는 것은 이른바 청정한 것이 아니다. 4선과 4등과 4무형정(無形定)과 나머지 범부가 행하는 선법을 얻으면 이것을 세속의 법시라고 이름한다.
세속의 법시를 지으면 곧 중생을 가르쳐서 세속을 여의게 한다. 구화구사라로써 도법과 현성의 과보를 안립한다.
어떤 것이 현성의 도법이며 현성의 과보인가?
현성법은 이른바 37품과 3탈문을 말한다. 현성의 과보는 수다원에서 아라한ㆍ벽지불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ㆍ현성의 도법은 수다원이 소유하고 있는 지혜를 아는 것이다. 아라한ㆍ벽지불의 지혜와 37도품의 지혜를 아는 것이며, 부처님이 소유하고 있는 10력의 지혜와 대자대비의 지혜와 나머지 도법ㆍ속법과 유루ㆍ무루와 유위ㆍ무위의 법의 지혜와 살운야혜를 아는 것이다. 이것이 보살ㆍ현성의 법이다.
어떤 것이 보살ㆍ현성의 과보인가?
모든 습의 실마리[習緖]가 다한 것이 현성의 과보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은 다시 살운야에 이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고 그러하다. 수보리여, 보살은 살운야에 이르러야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와 같다면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과 여래는 어떤 차별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차별이 있다.
어떤 것이 차별인가?
보살이 살운야에 이르는 것을 곧 여래라 이름한다. 왜냐하면 보살의 뜻 또한 얻을 수 없으며, 여래의 뜻 또한 다름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계가 없는 어두움에 머물되 모든 법을 밝히는 것이 보살이다. 세속의 법시를 인하여 도법의 보시를 잇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중생을 세속의 보시에서 끊어야 하며, 구화구사라로써 살운야에 안주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보살이 도법으로 보시하는 것인가?
범인(凡人)으로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이른바 37품과 3탈문과 8유무와 9차제선과 부처님의 10력과 4무소외와 4무애혜와 부처님의 18법과 32대사(大士)의 상(相)과 80종호와 모든 다린니문이 도법으로 보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속법이 아니다. 이것이 보살의 매우 기특하고 일찍이 없었던 법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중생을 섭취하기 위해 6바라밀을 가지는 것이다.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일심ㆍ지혜로써 평화로운 얼굴과 기쁜 기색으로 중생을 섭취한다. 왜냐하면 6바라밀은 모든 선한 법의 수(數)를 모두 다 섭지(攝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보살이 사람을 이익되게 하여 중생을 섭취하는 것인가?
항상 6바라밀로써 중생을 섭지하며, 네 가지 일로 일체를 이익되게 하니,
첫째는 은혜로 베푸는 것이요,
둘째는 어진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요,
셋째는 사람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요,
넷째는 뜻을 같게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 일이며, 보살은 이 네 가지 일을 써서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다.
다시 수보리여, 보살은 반야바라밀로써 새로이 배우는 보살을 가르쳐 마땅히 말을 하되,
‘선남자야, 이 문자의 수(數)를 받는 것은 마땅히 한 자[一字]에서 잘해야 하며, 한 자에서 42자에 이르는 것이다. 한 자는 다 모든 문자의 뜻에 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문자의 뜻은 다 42자에 들어간다. 42자의 뜻은 다 한 자에 들어가니, 이것이 하나의 뜻이 되는 것이다’라고 해야 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마땅히 42자를 잘해야 한다.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은 모든 법을 잘하며, 모든 문자를 잘한다. 중생을 교화하고 나서 여래의 설법은 문자를 여의지 않는다. 모든 법은 또한 문자를 여의지 않는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은 법을 얻을 수 없으며, 또한 볼 수도 없습니다. 모든 법은 공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어떻게 6바라밀을 행하며, 4선ㆍ4등ㆍ4공정을 행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37품을 행하며, 18공을 행하며,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행하며,
어떻게 8유무와 9차제선을 행하는 것이며,
어떻게 10력과 4무소외와 부처님의 18법을 행하는 것이며,
어떻게 32상과 80종호를 행하며,
어떻게 6신통을 행하여 중생을 위하여 설법을 하는 것입니까?
또한 중생은 보지 못하며, 또한 그 처소도 얻지 못하며, 식(識)도 또한 얻지 못하며, 6바라밀 또한 얻지 못하며, 80종호도 얻지 못하며, 또한 처소를 얻을 수 없으며, 중생이 있는 것도 아니며, 처소가 있는 것도 아니며, 80종호가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처소가 있는 것도 아닌데, 보살이 어떻게 6바라밀을 행하여 중생을 위하여 설법을 합니까?”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장차 보살도 없으며 단서(端緖)의 일도 없는데, 중생에게 권하여 4전도(顚倒)를 여의게 하고 4제(諦)에 머물게 하는 것입니까?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을 보살은 오히려 보지 못하는데, 하물며 37품의 일을 행하는 것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고 그러하다. 네가 말한 것과 같다. 중생은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내외가 공하며 유무가 공한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5음이 공하고, 성(性)이 공하며, 쇠(衰)가 공한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4제(諦)와 12인연이 공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나라는 아(我)가 공하며, 지견(知見)이 공한 것임을 알아야 하며, 4선이 공하며, 4등이 공하며, 4공정 또한 공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37품이 공하며, 3탈문이 공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8유무가 공하며 9차제선이 공한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부처님의 18법이 공하며, 10종력이 공하며, 4무소외가 공하며, 4무애혜가 공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2지가 공한 것임을 알아야 하며, 보살이 공한 것임을 알아야 하며, 불찰토가 공한 것임을 알아야 하며, 도(道)가 공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모든 법이 다 공한 것임을 깨달아 알아야 하며, 일체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해야 한다. 이미 법을 설하였으면 이 공에서 전환(轉還)이 있어서는 안된다. 모든 법은 취할 것도 없으며 버릴 것도 없으며, 또한 걸림도 없다. 진제(眞諦)의 설법은 허식(虛飾)이 있는 것이 아니다.
비유하건대 여래가 화작하여 무량한 수의 사람을 혹은 6바라밀에 안립하고, 혹은 4선ㆍ4등에 안립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수보리여, 네 뜻에는 어떠하냐?
이 화(化)로 만들어 낸 사람이 참으로 얻을 것이 있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아닙니다. 화(化)는 얻을 것이 없습니다.”
“수보리여, 보살이 교화한 중생 또한 다시 이와 같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 능한 바를 따라서 설법을 하며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전도를 여의게 한 것이다.
또한 묶는 것도 아니며, 또한 푸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5음은 묶는 것도 없으며, 또한 푸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5음에 묶는 것이 있고 푸는 것이 있다면 5음이 아니다. 5음은 항상 스스로 청정하기 때문이다.
유위ㆍ무위법도 또한 항상 스스로 청정한 것이다. 보살이 중생을 위하여 설법을 하는 것도 처음부터 중생을 보지 않으니, 모든 법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보살은 머무를 곳이 없는 데 머무르며, 5음은 공하므로 처소가 없으며, 유위ㆍ무위도 또한 머무를 곳이 없다. 왜냐하면 실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머무를 곳이 없는 것은 소유가 없으며, 또한 소유가 없는 곳에는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소유가 있는 것도 또한 소유가 있는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다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얻을 것이 없는 것은 머무를 곳이 있는 것이 아니다.
수보리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모든 법을 분별하는 것이 다 공한 것임을 밝혀야 한다.
보살이 이와 같이 지어서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모든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과 모든 성현에 허물이 없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 세존과 모든 성현이 다 이 법을 깨달아서 중생을 교화했기 때문이다.
이 법을 얻으면 전환함이 없다. 왜냐하면 법성ㆍ진제와 진여는 전환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형모(形貌)를 전환할 수 없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진제 법성은 여여하여 전환하지 않는 것이라 하셨는데 5음과 여여한 진제 법성은 다름이 있는 것입니까?
유위ㆍ무위와 도와 유루ㆍ무루에 다시 다름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수보리여, 5음과 여여한 진제 법성과 유위ㆍ무위와 도는 같아서 다름이 없다.”
다시 세존께 여쭈었다.
“가령 5음과 여여함[如]에서부터 유위ㆍ무위에 이르기까지 같아서 다름이 없다면 어째서 선악의 과보가 있으며 5도(道)에 생사가 있는 것입니까? 어째서 삼승의 법이 있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중생이 세제(世諦)를 익히므로 곧 도의 명호가 있게 된다. 제일 최요의(最要義)가 되는 것은 분수(分數)가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이 법은 항상 고요하여 분별할 것도 없으며, 또한 설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5음은 또한 생멸이 없으며 또한 집착과 끊음도 없는 것이다. 근본이 공하고 지말이 공하기 때문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세제(世諦)를 익히므로 곧 도의 이름이 있다고 하면 일체 범부가 다 이 도(道)이며, 이 삼승인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범부의 습제(習諦:집제)와 도제(道諦)를 다 알아야 한다. 만약 이것을 알면 마땅히 이 도를 안다. 만약 범부를 알지 못하면 또한 도처(道處)도 없으며, 또한 도의 과보도 없다.”
다시 여쭈었다.
“어떻게 범부가 마땅히 도의 과보를 얻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성현은 도의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곧 도의 과보가 있는 것이다.”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도의 생각 때문에 도가 있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수보리여, 생각 때문에 곧 도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또한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며, 또한 생각을 여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중생을 위하여 곧 도에 처한다. 도는 또한 부분도 아니며, 또한 유위ㆍ무위도 없으며, 또한 분별도 없는 것이다.”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도가 있는 곳에 분별이 없다면 어째서 부처님께서는 세 가지 습의 실마리를 끊어서 수다원 얻는 것을 설하십니까?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어져서 사다함을 얻으며, 아래로 욕계에서 5습(習)을 멸하여 아나함을 얻으며 위로 무형계에서 5습을 멸하여 아라한을 얻는 것입니까?
눈으로 보는 형색이 모두 다 이와 같이 다한 법은 벽지불을 얻으며, 일체의 습의 실마리가 다하면 곧 삼야삼불을 얻습니까?
이와 같이 어떻게 마땅히 이 일을 알겠습니까?
만약 도에 분수(分數)가 없다면 어떻게 각각 그 도를 얻어 수행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수다원도에서부터 삼야삼불은 유위인가, 무위인가?”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유위법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위의 법에 분계(分界)가 있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분계가 있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뜻에는 어떠한가? 선남자ㆍ선여인이 일시에 유위ㆍ무위법을 얻으며, 일상(一相)을 얻는 것이냐? 이때에 참으로 보고 말하는 것이 이 유위인가, 이 무위인가?”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되 분계가 없어야 한다. 내외공과 유무공을 쓰기 때문이다.
보살은 안으로 자기에게도 들어갈 곳이 없으며, 일체의 사람을 가르쳤어도 또한 들어갈 곳이 없어야 한다.
또한 6바라밀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또한 선(禪)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며, 또한 평등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또한 37품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며, 또한 살운야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들어갈 곳이 없다는 것은 생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비유하건대 여래가 화작하여 만든 화인(化人)과 같아서 화인이 보시하는 것은 또한 과보를 얻지 못한다.
사람을 제도하고자 하기 때문에 6바라밀에 머무르지 않으며, 또한 유루ㆍ무루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또한 도에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속(俗)에 머무르는 것도 아니다.
또한 유위에 머무르는 것도 아니며, 무위에 머무르는 것도 아니다. 머무를 곳이 없는 데 나아간다. 모든 법의 상(相)을 초월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