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경요집 제17권
26. 주육부(酒肉部)
(여기에는 세 가지 연(緣)이 있음]
26.1. 술의연(述意緣)
대개 술은 멋대로 놀아나게 하는 문이다. 그래서 큰 성인께서는 그것이 고통의 근본임을 알려주셨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술자리를 멀리하고 술과의 인연을 끊어야 하며, 술에 취한 친구를 버리고 법우(法友)만을 가까이하여 어두운 문을 빠져 나와 깨달음의 경계로 들어가야 한다.
고기는 곧 큰 자비의 종자를 끊는 것이다. 그래서 큰 성인께서는 그것이 살생의 원인임을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비린내 나고 노린내 나는 것을 버리고 몸과 입을 깨끗하게 하며, 채소만 먹어서 심신(心神)을 경계하며 자비와 선행[慈善]을 불러 들여서 수명을 늘려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세속서(世俗書)인 『예기(禮記)』에서 말하였다.
“그것이 살아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죽이지 못하고, 그 소리를 듣고는 그 고기를 먹지 못한다.”
이렇게 말한 것은 죽이지 말라는 뜻이다.
만약 술과 고기를 먹으면 곧 축생인 승냥이와 이라 같은 금수(禽獸)와 다름이 없다.
또한 일체의 권속들을 다 죽이고 모든 친척들까지 잡아먹어서 서로 원수를 갚으며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다.
『바사론(婆沙論)』에서 말한 것과 같다.
“어떤 여인 한 사람이 오백 생 동안 이리의 새끼를 살해하였으므로 이리 새끼도 역시 오백 생 동안 그의 자식들을 살해하였다.”
또 말하였다.
“어떤 여인이 오백 생 동안 귀신의 명근(命根)을 끊었으므로 귀신도 또한 오 백 생 동안 그의 명근을 끊었다.”
그러므로 알아야 하나니, 여섯 갈래 세계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원한의 과보를 갖추어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혹은 세상을 지내는 동안 스승이 되기도 하고, 혹은 부모가 되기도 하며, 혹은 형제가 되기도 하고 혹은 자매(妹妹)가 되기도 하며, 혹은 자손[兒孫]이 되기도 하고 혹은 벗이 되기도 한다.
지금은 범부의 몸으로 각자 도의 눈[道眼]이 없기에 분별할 능력이 없어서 도리어 서로 잡아먹어도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하지만,
그들이 서로 잡아먹을 때 이 미물에겐 영(靈)이 있으므로 곧 성내고 원한을 품어 다시 원수를 이루고 그 의 골육지친(骨肉至親)이 되어 가지고 도리어 원수로 변하나니,
이와 같은 일 을 어째서 생각하지 못하고 잠시 혀 끝으로 한 때의 적은 맛을 다투다가 영원히 부모 형제와 더불어 원수가 된단 말인가?
참으로 애통한 마음 말로 형용하기 어렵구나.
그러므로 『열반경(涅槃經)』에서 말하였다.
“온갖 고기는 다 끊어야 하며, 또한 저절로 죽은 것까지도 오히려 끊어야 하거늘, 하물며 저절로 죽지 않은 것이겠는가?”
또 『능가경(楞伽經)』에서 말하였다.
“이익을 위해서 중생을 살해하고 재불 때문에 온갖 고기를 잡는 것은 두 가지 업이 다 착하지 못한지라 죽으면 규호(叫呼)지옥에 떨어진다.”
어떤 것을 이익 때문에 그물로 고기를 잡는다고 하는가?
육지에서는 짐승을 잡기 위하여 그물을 쳐놓고 물에서도 물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치니, 이것이 바로 이익 때문에 그물로 고기를 잡는다는 것이다.
어떤 것을 재물 때문에 그물로 고기를 잡는다고 말하는가?
만약 도살(屠殺)하는 사람을 보고 돈 때문에 고기를 사들인다고 하면, 이것이 바로 재물 때문에 그물로 고기를 잡는 것이라고 한다.
만약 지금 이 사람이 재물 때문에 그물로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면 나쁜 율의(律義)를 익혀 중생을 잡아 살해하는 것이리라.
이 사람은 마땅히 오로지 자신의 입에만 공급하기 위해서이니, 또한 특별히 헤아려 보아야 할 것이 있을 것이다.
만약 따로 헤아려 보아야 할 것이 있다면 고기를 먹으려는 사람을 대하여 어찌 살생의 분한이 없을 것이며, 어찌 ‘나는 살생하지 않겠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분명코 경전의 글 내용과 위배되는 것이므로 큰 자비의 종자를 끊고 그 장애로 인하여 부처님을 뵙지 못할 것이다.
26.2. 음주연(飮酒緣)
[自述] 이 하나의 가르침에는 권교(權敎)가 있고 실교(實敎)가 있다.
권교는 점차적으로 유도하여 가르쳐서 가벼운 죄로써 무거운 죄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니, 처음에 열어 놓았다고 해서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진리를 장애 한다는 데에 의거하여 보면 허물이 없는 것도 아니다.
만약 실교에 의하면 가벼운 죄와 무거운 죄를 모두 금지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범하지 않아야 이것을 계를 지키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먼저 권교에 의거하여 설명하겠다.
『미증유경(未曾有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그 나라 왕의 태자의 이름은 기타(祇陀)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열 가지 선도(善道)의 법이 그 과보가 그지없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는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옛날에 저로 하여금 다섯 가지 계율을 받아 지니게 하였사온데 지금 도로 버리려고 하옵니다.
왜냐 하면 다섯 가지 계율의 법 중에 술을 먹지 말라는 계율을 지키기 어려우니, 죄를 얻게 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술을 마실 때에 무엇이 악하다는 것이냐?’
기타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나라 안의 호강(豪强)한 사람들이 때때로 서로 사람들을 거느리고 술과 음식을 싸가지고 오면 함께 즐기고 놀면서 환락에 빠졌다가도 저절로 악한 마음이 없어집니다.
무슨 까닭인가?
술을 얻어도 계율을 생각하면 방일(放逸)함이 없기 때문이오니, 그러므로 술을 마시더라도 악을 행하지는 않사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기타야, 너는 지금 이미 지혜의 방편을 얻었구나.
만약 세간 사람들이 너와 같이 할 수만 있다면 몸을 마칠 때까지 술을 마신다 해 도 무엇이 그리 해롭겠느냐? 이렇게만 하면 곧 복이 생길 뿐 아무 죄도 없으리라.
만약 사람이 술을 마시면서 악업(惡業)을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기뻐지기 때문에 번뇌가 일어나지 않으며, 착한 마음의 인연으로 착한 과보를 받게 된다면 이처럼 다섯 가지 계율을 지키는데 무슨 과실이 있겠느냐?
술을 마시더라도 계율을 생각하면 그 복이 더욱 늘어나느니라.
먼저 다섯 가지 계율을 잘 지켰으니, 이제 열 가지 선[十善]을 받으면 그 공덕은 배나 뛰어 나서 열 가지 선한 과보를 받게 되리라.’
그 때 바사닉왕(波斯匿王)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선 것과 같이 마음이 환희(歡喜)할 때에 악업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유루선(有漏善)이라고 한다면 그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사람들이 술을 마실 때에는 마음이 기뻐지고 마음이 기뻐하기 때문에 번뇌를 일으키지 않으며,
번뇌가 없기 때문에 남을 괴롭히거나 해치는 일을 하지 않고 생물(生物)을 해치지 않기 때문에 세 가지 업이 청정해지나니,
그 청정한 도가 곧 무루업(無漏業)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기억해보니 제가 옛날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냥을 즐기다가 요리사[廚宰]를 데라고 오는 것을 잊고 깊은 산중에서 허기를 느껴 음식을 찾았더니
측근 신하들이 대답하였습니다.
〈왕께서 아침에 거둥하실 때에 요리사를 데리고 가자는 칙명을 받지 못한 까닭에 지금 당장 드실 음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을 듣고, 말을 달려 궁중으로 돌아가 음식을 가져오라고 시켰습니다.
왕가의 주감(廚監) 이름은 수가라(修迦羅)라고 하였는데, 그가 말하였습니다.
〈지금 당장 드실 음식은 없고 곧 만들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그 때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분이 나서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신하에게 칙명하여 주감을 베어 죽이라고 하였나이다.
그러자 그 신하는 왕의 분부를 받고 곧 함께 의논하여 말했습니다.
〈온 나라 안에서 선발해 보았자 오직 이 사람 하나만이 충성스럽고 어질며 정직하게 일을 잘 처리하는데, 지금 만약 이 사람을 죽인다면 다시는 왕을 위하여 왕의 뜻에 맞추어 주방을 감독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때 말리(末利)부인은 왕이 수가라를 죽이라고 칙명을 내렸다는 말을 듣고 마음으로 매우 애석해했다. 그 부인은 왕이 배가 고파서 그런다는 것을 알고 곧 좋은 고기와 맛있는 술을 마련하게 해놓고 깨끗이 목욕하고 이름 있는 향으로 신체를 장엄한 뒤에 여러 기녀(妓女)들을 거느리고 좋은 고기와 술을 가지고 제게 왔더이다.
저는 부인이 화려하게 치장하고 기녀들을 데라고 좋은 술과 고기를 가지고 왔으므로 성났던 마음이 곧 사라졌습니다. 왜냐 하면 말리부인이 부처님의 다섯 가지 계율을 지키면서 술을 끊고 마시지 않았으므로 저는 늘 마음 속에 한을 품고 있던 차에 오늘 갑자기 술과 고기를 가지고 와서 함께 즐기면서 제 마음을 풀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곧 부인과 함께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면서 온갖 풍악을 울리고 환희하며 즐겼기에 성났던 마음도 곧 사라져버렸나이다.
부인은 제가 성났던 마음이 말끔히 사라진 것을 알고 곧 황문(黃門 : 內待)을 보내 문득 저의 명이라고 전하면서 바깥 신하에게 주감을 죽이지 말라고 말하니, 그들은 곧 교지(敎旨)를 받들었습니다.
저는 다음날 아침이 되자 스스로 깊히 후회하고 책망하면서 시름과 근심 때문에 아무 음식도 먹지 않고 안색이 초췌해졌습니다.
그러자 부인이 제게 물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근심과 시름에 겨워하십니까?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십니까?〉
제가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어제 몹시 배가 고팠으므로 마음에 울화가 치밀어 수가라를 죽이라고 하였소. 내 자신이 생각해 보아도 이 나라 안엔 나의 주방을 감독하는 일을 수가라처럼 해낼 만한 이가 아무도 없을 것이오. 그런 까닭에 후회되고 한스러워 시름하고 있을 뿐이오.〉
그러자 부인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아직 살아 있으니, 부디 왕께서는 근심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제가 거듭 물었습니다.
〈정말 그렀소? 혹 농담으로 하시는 말이오?〉
부인이 대답하였습니다.
〈실제로 살아 있습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제가 측근 신하들을 불러 주감을 불러오게 하였더니, 심부름꾼이 부르러 가서 잠시 후에 데리고 왔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나 기뻐 근심과 시름이 곧 없어 졌었습니다.’
왕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말리부인은 부처님의 다섯 가지 계율을 지니고 달마다 육재(六齋)를 실천하였었습니다.
그러나 하루 사이에 평생토록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을 이미 범 하였으니, 술을 마시고 거짓말을 하였으며, 여덟 가지 재계 중에서 한 번에 여섯 가지 계율을 범하였습니다.
이 일은 어떻습니까? 계율을 범한 죄가 가볍습니까, 아니면 무겁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이와 같이 계율을 범하는 것은 큰 공덕을 얻게 되며 죄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이익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부인이 선을 닦은 것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유루선(有漏善)이요,
둘째는 무루선(無漏善)입니다.
말리부인이 계율을 범한 것은 유루선에 해당되는데, 계율을 범하지 않아야 무루선이라고 말한답니다.
이 어의(語義)에 의거하면 계율을 깨뜨려 선을 닦는 것 은 유루선이고,
또 그 의어(義語)에 의거하면 대개 마음 속에서 일으킨 선은 모두 무루의 업입니다.’
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아서 말리부인이 술을 마셔 계율을 깨뜨렸으나 악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았으므로 공덕이 있고 죄의 과보가 없는 것이라면 일체 인민(人民)들도 다 그러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제가 생각해 보건대 요즈음 사위성(舍衞城) 안의 모든 호족(豪族)들인 찰리족(刹利族) 왕공(王公)들이 사소한 다툼으로 인하여 마침내 큰 원수가 되어 가지고 각각 음모를 꾸며 전쟁을 일으켜 서로 정벌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양가(兩家)가 다 국친(國親)연지라 이라니 저러니 하면서 전투를 벌인다고 잡아다가 단속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이치를 따져 충고할 수도 없어서 매우 근심하였었습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생각하기를
〈옛날 태자 시절에 대신 제위라(提韋羅)와 서로 분노에 차 있던 터라 상황[情實]을 분간하지 못하고 마음으로 죽이고만 싶었다.
그런데 태후(太后)께서 술을 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함께 마시고 마음이 화합했었다〉고 한 뒤에
곧 대신에게 칙명을 내려 좋은 술과 온갖 맛있는 음식을 장만 하게 하고 다시 명령을 내려 나라의 큰 일을 의논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며 온나라의 호족ㆍ선하ㆍ사민(士民)들을 모두 다 모이게 하였었습니다.
그러자 여러 신하들이 앞다투어 모여들었고 양쪽 권속들도 각각 오백 명씩 부름에 응하며 모였었습니다.
그래서 왕의 대전 위를 큰 풍악으로 장엄케 하고, 왕은(저는) 충신에게 명하여 석 되쯤 들어가는 유리 술잔을 마련케 하여 그 모든 보배 술잔 안에 좋은 술을 가득히 채워놓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먼저 대중들 암에서 한 사발 들이키고는 말했습니다.
〈오늘은 국사(國事)에 대한 의견을 논하고자 할 뿐 다른 마음은 없으니, 지금 부터 마땅히 각자 자기 앞에 마련되어 있는 한 잔의 감로(甘露) 양약(良藥)을 마신 연후에 국사를 의논해 봅시다.〉
그러자 모두들 말했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그리고는 크게 풍악을 울리게 했습니다.
여러 사람들은 술을 마신 데다가 음악까지 들었으므로 마음 속에 기쁨과 즐거움이 생겨 원수 같고 한스러웠던 생각이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술로 인하여 다툼이 그치고 태평하게 되었으니 이 어찌 술의 공이 아니겠습니까?
가만히 살펴보건대 세간에 빈궁한 사람이나 소인(小人)ㆍ노비(奴婢)와 만이(蠻夷)의 사람들이 간혹 명절날을 기하여 술집에 한데 모여 술을 마시다 보면 마음이 기쁘고 즐거워지기 때문에 꼭 남이 가르쳐 주지 않더라도 저마다 일어나 춤을 추지만 술을 얻지 못할 경우에는 전혀 이러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술을 마심으로써 기쁨과 즐거움을 이루고, 마음이 기쁘거나 즐거울 때에 나쁜 생각을 일으키지 않나니, 나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곧 그것이 착한 마음이 됩니다.
그러므로 착한 마음의 인연은 마땅히 선한 과보를 받는다는 것을 꼭 알아야만 합니다.
원숭이조차도 술을 얻으면 오히려 일어나서 춤을 추거늘 하물며 세간 사람인 경우이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선행을 베풀면 선한 과보를 받고, 악행을 베풀면 악한 과보를 받나니,
말리부인은 모두가 전생에 좋은 것을 남에게 베풀었기 때문에 지금 좋은 과보를 얻었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다섯 가지 계율을 지녀야 하며, 또 어떻게 달마다 육재(六齋)를 실천해야 합니까?
육재일(六齋日)에는 좋게 장염하거나 향과 꽃으로 장식해서도 안 되고 좋은 옷을 입거나 노래하고 풍악을 울려서도 안 되며, 또 부부간에 서로 가까이하여 사랑하거나 좋아하거나 하는 몸짓조차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결국 무엇을 베푸셨다고 오직 그 공덕만을 말씀하십니까? 어찌 이것이 괴로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 따져 묻는 것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말리부인은 젊은 시절에 만약 내가 칙령을 내려 계법을 받아 지키고 지혜(智慧)를 닦게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오늘날과 같은 덕이 있어서 자신도 제도되고 왕의 몸까지 제도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와 같은 공덕을 다시 어느 누구에게 돌리시렵니까?’”
[이상은 대략 권교(權敎)를 밝힌 것이다.]
[自述] 이 아래는 두 번째 실교(實敎)에 의하여 말하리라.
실교에 의하면 가볍건 중하건 간에 범하지 않아야 하므로 계율을 지킨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큰 성인께서는 때를 알아 근기를 헤아리고 막힌 것을 통하게 하셨다.
통하게 한다는 것은 금지하고 있는 것을 열어 놓는다는 말이니, 때를 따라서 손익(損益)을 헤아리게 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바사닉왕(波斯匿王)이 주감(廚監)을 죽이려고 한 일이나 태자가 그 부왕(父王)을 살해하려고 한 일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다 술로써 분함을 잊어버리게 해 가지고 신명(身命)을 온전하게 하여 보다 더 큰 죄를 변하게 한 것이니, 가벼운 죄로 중한 죄를 벗어나게 하였으므로 재앙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술을 마선 허물로 인하여 따르는 과보의 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므로 앞에서 열어주었던 일이 있다 하여 그것을 보고 마침내 덩달아 범해서는 안 된다.
저마다 꼭 그 가르치신 뜻을 잘 헤아려 알아야 한다.
또 자선의 행과 덕에 대한 우열(優劣)을 살펴야 성인의 반열에 참예할 수 있나니, 바시닉왕과 말리부인이 금계(禁戒)를 열어 놓은 일은 서로 다르다.
이미 통일하지 않다면 그것은 곧 반드시 경전에 의지해야 하고 가느다란 털끝만큼이 라도 범하지 말아야 가장 훌륭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사분율(四分律)』에서 말하였다.
“그가 나의 제자라면 마침내 풀 끝에 맺힌 이슬방울 만큼의 술도 입에 넣지 말아야 할 것이거늘 더구나 어떻게 술을 많이 마시겠느냐?”
그런 까닭에 한 번씩 삼킬 때마다 바일제(波逸提)가 성립된다.
또 『성실론(成實論)』에서 말하였다.
‘[문] 술을 마시는 것은 실죄(實罪)인가?
[답] 그렇지 않다. 왜냐 하변 술을 마시는 것은 중생들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죄의 원인이 되기는 한다.
만약 사람이 술을 마시면 착하지 못한 문[不善]을 열게 되어 선정과 온갖 착한 법을 장애하나니,
그것은 마치 많은 과일 나무를 심으려거든 반드시 먼저 담장을 둘러쳐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술의 허물은 과수원에 울타리가 없는 것과 같은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또 『우바새경(優婆塞經 : 優婆塞戒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술 마시기를 좋아하면
이 사람은 현재 세상에서는 재물을 잃어버리기 쉽고 몸과 마음에 병이 많으며,
향상 남과 싸우고 다투기를 좋아하고 나쁜 이름이 멀리 퍼지며,
지혜를 상실하게 되고 마음에 부끄러워하는 일이 없으며,
악한 색력(色力)을 얻고 항상 모든 사람들에게 책망을 받으며,
사람들이 만나기를 좋아하지 않고 선행을 닦지도 못할 것이니,
이것이 술을 마심으로 해서 현재 세계에 받는 나쁜 과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사람은 그 몸을 버린 뒤에는 지옥에 있으면서 배고픔과 목마름 따위의 한량없는 고뇌(苦惱)를 받게 되나니,
이것을 뒷세상에서 받을 악업(惡業)의 과보라고 말한다.
만약 사람의 몸을 얻더라도 마음이 항상 광란(狂亂)하므로 생각이 얽매여 착한 법을 사유(思惟)할 수가 없게 된다.
이 하나의 악한 인연의 힘 때문에 온갖 바깥 물건과 생활의 바탕이 되는 것이 다 무너지고 만다.”
또 『장아함경(長阿含經)』에서 말하였다.
“저 술을 마시는 이에겐 여섯 가지 과실이 있다.
첫째는 재물을 잃는 것이요,
둘째는 병이 생기는 것이며,
셋째는 싸움을 하게 되는 것이요,
넷째는 나쁜 이름이 유포되는 것이며,
다섯째는 사납게 성을 내는 것이요,
여섯째는 지혜가 날로 손감되는 것이다.”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술을 마시면 서른다섯 가지 과실(過失)이 있다.
어떤 것이 그 서른다섯 가지인가?
[답] 첫째는 현재 세상의 재물이 허망하게 다 없어지는 것이니, 왜냐 하면 술을 마시면 취하여 산란하게 되므로 마음에 절제와 제한이 없어서 쓰는 비용이 법도가 없기 때문이요,
둘째는 온갖 질병에 걸리는 문(門)이 되는 것이며,
셋째는 투쟁의 근본이 되는 것이요,
넷째는 벌거숭이가 되어도 부끄러워함이 없는 것이며,
다섯째는 추(醜)한 이름이 나쁘게 드러나서 사람들이 공경하지 않는 것이요,
여섯째는 또한 지혜가 없어지는 것이다.
일곱째는 꼭 얻어야 할 물건을 얻지 못하고 이미 얻었던 물건은 산실(散失)되는 것이요,
여덟째는 숨겨야 할 일들을 남을 향해 다 말하는 것이며,
아홉째는 갖가지 사업이 폐망하여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요,
열째는 술에 취하는 것이 근심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취해 있는 동안에는 많은 실수를 하나 술에서 깨어 나서는 부끄럽고 근심이 생기기 때문이며,
열한 째는 온몸의 힘이 점 점 적어지는 것이요,
열두째는 몸의 빛깔이 파괴되는 것이다.
열셋째는 아버지를 공경할 줄 모르는 것이요,
열넷째는 어머니를 공경할 줄 모르는 것이며,
열다섯째는 사문(沙門)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요,
열여섯째는 바리문(婆羅門)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며,
열일곱째는 작은 아버지ㆍ큰 아버지와 존장(尊長)들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니, 왜냐 하면 술에 취하면 번민이 일어나고 시끄럽고 괴로워서 분별이 없어지기 때문이요,
열여덟째는 부처님을 존경하지 않는 것이며,
열아홉째는 법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요,
스무째는 스님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며,
스물한째는 악한 사람들과 붕당이 되는 것이요,
스물두째는 어질고 착한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며,
스물셋째는 계율을 깨뜨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요,
스물넷째는 마음속으로 부끄러워하거나 남에게 부끄러워함이 없는 것이다.
스물다섯째는 육정(六情 : 六根)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요,
스물여섯째는 제멋대로 색욕에 방일하든 것이며,
스물일곱째는 사람들이 증오(憎惡)하여 그 사람을 보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것이요,
스물여덟째는 귀중한 친속들과 여러 지식(知識)들에게 모두 버림받는 것이며,
스물아홉째는 착하지 못한 법을 행하는 것이요,
서른째는 착한 법을 버리는 것이다.
서른한째는 총명한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들이 신용하지 않는 것이니, 왜냐 하면 술에 취하면 방일해지기 때문이다.
서른두째는 열반을 멀리 여의는 것이며,
서른셋째는 지나치게 어리석음을 심는 인연이 되는 것이요,
서른넷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고 나면 악한 세계인 니리(泥梨 : 地獄)에 떨어지는 것이며,
서른다섯째는 만약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더라도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지나치게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갖가지 과실이 있나니, 그런 까닭에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또 『사미니계경(沙彌尼戒經)』에서 말하였다.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고, 술을 즐기지도 말아야 하며, 술을 맛보지도 말아야 한다.
술에는 서른여섯 가지 과실이 있어서 도를 잃고 집안을 파괴하며, 몸을 위태롭게 하고 목숨까지 잃게 하나니, 모두가 술로 말미암는 것이다.
동쪽으로 끄달리고 서쪽으로 끌리며, 남쪽에 의지하고 북쪽에 기댄다.
경전을 독송할 수도 없고 삼존(三尊)을 공경하지 않으며,
스승과 벗을 업신여기고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다.
마음이 닫히고 뜻이 막혀 세상마다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큰 도를 만나지 못하며,
그 마음에 지식이 없게 되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
오음(五陰)과 오욕(五欲)과 오개(五蓋)를 여의어 다섯 가지 신통을 얻고 다섯 갈래 세계에서 제도되고 싶으면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한다.”
또 『살차니건자경(薩遮尼乾子經)』에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술을 마시면 대부분 방일(放逸)하게 되고
현재 세상에서는 항상 어리석어져서
일체의 일들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항상 지혜 있는 사람의 꾸지람을 받는다.
모든 세상에서는 항상 어둡고 둔하여
대부분 모든 공덕을 다 잃어버리나니
그런 까닭에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술 마시는 온갖 일을 다 여의느니라.
또 『십주바사론(十住婆沙論)』에서 말하였다.
‘[문] 만약 어떤 사람이 술을 보시하면 죄가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르겠다.
[답] 보시한 사람은 복을 얻는다. 그러나 술을 받은 사람은 그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논(論)에서 말하였다.
‘이 보살은 혹 때때로 온갖 것을 보시하기 좋아하므로 음식을 필요로 하면 음식을 주고, 마실 것을 필요로 하면 마실 것을 준다.
그러다가 만약 술을 보시하면 마땅히 이렇게 생각한다.
〈지금 이 사람이 보시를 행할 때에 필요로 하는 것에 따라 보시하고 있다.
뒤에는 마땅히 방편을 써서 그로 하여금 술을 멀리하게 해야겠다.〉
그리고는 지혜로운 생각을 하게 하여 그로 하여금 방일하지 않게 한다. 왜냐 하면 단바라밀의 법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채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니, 속가에 있는 보살이 술을 보시한다 해도 죄는 없다.’
또 『범망경(梵網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자신의 손으로 남에게 술잔을 건네 주어 그 사람이 술을 마시게 하면 오백 생 동안 손이 없게 되거늘 하물며 자신이 직접 마시는 것이겠는가?
온갖 사람들에게 술을 마시게 하거나 일체 중생들에게 술을 마시게 해서도 안 되거늘 하물며 스스로 술을 마시는 것이겠는가?”
또 『우바새오계상경(優婆塞五戒相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지제국(支提國) 발타라바제읍(跋陀羅婆提邑)에 계실 때였다.
이곳에는 암라바제타(菴羅婆提陀)라는 사나운 용이 있었다. 그 용은 흉악하고 포악하여 사람을 해쳤으므로 그 곳에 가는 이도 없었고 코끼리와 말까지도 가까이 갈 수 없었으며 나아가 온갖 새들까지도 그 위를 지나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가을 곡식이 익을 무렵에는 모두 다 파멸시키곤 했다.
그 때 장로 사가타(莎迦陀) 아라한 비구가 지제국을 유람하다가 점점 발타라 바제읍 가까이에 다가가게 되었다.
그는 그날 밤을 지낸 뒤에 다음날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촌락에 들어가 걸식(乞食)을 하였다.
그때 ‘이 읍에는 몹시 사나운 용이 있는데 흉악하고 포악하여 사람을 해치며, 새ㆍ짐승은 물론 추수할 곡식까지 파멸시킨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걸식을 마친 뒤에 암바제라용이 살고 있는 곳에 이르러서 온갖 새들이 사는 나무 밑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용이 옷 냄새를 맡고 곧 성을 내면서 몸에서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장로 사가타는 곧 삼매(三昧)에 들어 신통력으로 그 몸에서도 연기를 뿜어내었다. 그러자 용은 갑절이나 더 성을 내며 몸 위에서 불을 뿜어내었다.
사가타도 다시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들어 몸에서 역시 불을 뿜어내었다. 용은 다시 우박을 내렸다.
사가타는 곧 그것을 변화시켜 석구병(釋俱餠)과 수병(隨餠) 따위를 만들었다. 용은 다시 벼락을 내리쳤다.
그러자 사가타는 그것을 변화시켜 갖가지 환희환(歡喜九)으로 만들었다. 용은 다시 활과 화살 그리고 칼과 창 따위를 내리부었다.
그러자 사가타는 그것마저 변화시켜 우발라화(優鉢羅華)와 피두마화(波頭摩華) 따위로 만들었다.
용은 다시 독사ㆍ지네ㆍ토회(土虺 : 살모사)ㆍ유연(蚰蜒 : 거머리)을 퍼부었다. 사가타는 곧 그것들을 변화시켜 우발라화영락(優鉢羅華瓔珞) 첨복화영락(瞻蔔華瓔珞)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와 같은 따위들로 용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세력을 다 나타내어 사가타와 겨루어 보았으나 다 이길 수 없게 되자, 곧 위력(威力)과 광명을 잃어버렸다.
사가타는 용의 힘이 다 떨어져서 다시는 활동할 수 없음을 알고 곧 가느다란 몸으로 변화하여 용의 두 귓구멍으로 들어가서 두 눈으로 나왔다.
두 눈으로 나온 뒤에는 코로 들어갔다가 입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용의 머리 위로 올라가서 왔다 갔다 거닐었지만 용의 몸은 다치지 않았다.
그 때의 용은 이와 같은 일을 보고 난 뒤에 마음이 곧 매우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여 털이 곤두섰다.
그래서 합장한 채 사가타를 향하여 말하였다.
‘저는 당신에게 귀의(歸依)하겠습니다.’
사가타가 대답하였다.
‘너는 나에게 귀의하지 말고 마땅히 나의 스승이신 부처님께 귀의하여야 한다.’
용이 대답하였다.
‘저는 지금부터 이후로는 삼보(三寶)에 귀의하여 저의 이 몸이 다할 때까지 부처님의 우바새(優婆塞)가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용은 삼자귀(三自歸 : 三歸)를 받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고, 그리고 나서는 다시는 앞에서와 같은 흉악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과 새ㆍ짐승들이 모두 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게 되었고 추수할 곡식도 손상되지 않게 되었다.
이 소문이 널리 퍼져서 모든 나라에서 다 장로 사가타가 악독한 용을 항복받아 착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것으로 인하여 사가타의 명성이 두루 흘러 퍼졌으므로 모든 사람들은 다 음식을 만들어 전달하기도 하고 다투어 그를 초청하기도 하였다.
그 가운데 어느 한 가난한 여인이 있었다. 믿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사가타를 초청하여, 이 여인은 소유(蘇乳)로 죽을 쑤어 그에게 대접하였다.
그라고는 그 여인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사문이 소유로 쑨 죽을 드셨으니 모르긴 해도 틀림없이 냉기가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는 그 여인은 물 색깔과 똑같은 술을 가져다가 사가타에게 주었다.
사가타는 살피지도 않고 곧 받아 마셨다. 다 마시고 난 뒤에 그를 위하여 설법하고 절을 향해 떠나갔다.
그 때 술 기운이 곧 발생하여 절 문 가까이에 이르러서는 자신도 모르게 땅에 넘어졌다.
그러자 승가리(僧伽梨) 옷과 물 거르는 주머니ㆍ발우ㆍ지팡이가 제각기 흩어져 따로따로 나뒹굴었고 몸은 몸대로 한켠에 있었으나, 술에 취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아난(阿難)과 함께 그 곳을 지나가시다가 이 비구를 보시고 이미 알고 계시면서 아난에게 물으셨다.
‘이 사람은 누구냐?’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장로 사가타입니다.’
부처님께서 곧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곳에다 나를 위하여 자리를 깔아라. 그리고 물을 마련해 오고 비구 스님들을 집합시켜라.’
아난은 분부를 받고 자리를 깔고 물을 마련한 다음 스님들을 집합시키고 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스님들이 이미 모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때가 되었음을 아시고 곧 발을 씻으시고는 여러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들은 일찍이 보거나 들은 적이 있느냐?
용 한 마라가 있었는데, 그 이름 은 암바라제타(菴婆羅提陀)였느니라. 그 용은 몹시 포악하여 해를 끼쳤으므로 과거에는 아무도 그 용이 머무는 곳에 간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는 새나 짐승들 까지도 그 위를 지나갈 수가 없었으며 추수할 곡식이 익을 무렵에는 그 모든 곡식을 모두 망가뜨렸다.
그랬는데 사가타가 그 용을 항복받아 착하게 만들었으므로 새ㆍ짐승도 샘물가를 위ㆍ아래로 오갈 수 있게 되었었느니라.’
그 가운데 그런 일을 보고 들었던 사람이 있다가 자신이 들었노라고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의 생각은 어떠하냐?
술에 취해 있는 이 선남자 사가타는 지금 두꺼비조차 항복받을 수 있겠느냐?’
대답하였다.
‘조복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성인도 술을 마시면 오히려 이와 같은 실수가 있거늘 하물며 범부(凡夫)이겠느냐?
이와 같은 허물이나 죄는 모두가 술을 마셨기 때문이니,
지금부터 이후로는 만약〈내가 바로 부처님의 제자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절대로 술을 마셔서는 안 될 것이다.
나아가 작은 풀 끝에 맺힌 한 방울의 술조차도 마셔서는 안 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갖가지로 술을 마선 과실에 대하여 꾸짖으신 뒤에 계율에 대해 거론하셨으니,
곧 이 비구로 인하여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는 계율을 제정하셨다.”
[문] 알 수 없어 그러는데 천상에도 술 맛이 있는가?
[답] 실제의 누룩과 쌀로 만든 술은 없다.
다만 업의 조화로 만들어진 술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정법념경(正法念經)』에서 말하였다.
“저 야마천(夜摩天)의 남자들이 천녀(天女) 대중들과 함께 못에 들어가 재미있게 놀면서 함께 하늘의 술을 마시기는 하지만 술에 취하여 짓는 허물은 여의었고 즐거움의 공덕만 나타내는데, 맛ㆍ감촉ㆍ빛깔ㆍ향기가 다 그 가운데 원만 하게 갖추어져 있다.
여러 하늘에는 구슬로 만든 그릇으로 술을 마시는 이도 있고 소타(蘇陀)라는 음식을 수용(受容)하기도 하는데, 그 빛깔ㆍ감촉ㆍ향기ㆍ맛 따위가 모두 다 원만히 갖추어져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와 같이 생각한다.
‘이 물이 술이 되어 우리들로 하여금 마실 수 있게 해 달라.’
이렇게 하면 곧 생각하자마자 모두 하늘 술로 변화되지만 술에 취하여 짓는 허물은 여의게 되며,
하늘들이 이미 그것을 마시면 뛰어난 즐거움이 늘어나거니와 선업(善業)의 힘 때문에 마음에는 환희가 생긴다.
그러나 저 모든 하늘들은 자신의 업력(業力) 때문에 이와 같은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그 곳엔 상락(常樂)이라 이름하는 새가 있는데, 그 새는 저 모든 하늘들이 환희하(歡喜河)에서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 그들을 위하여 게송을 읊었다.
방일의 바다에 빠져 들어
모든 경계를 탐내고 집착함에
이 술이란 것은 마음을 미혹되게 하거늘
무엇 때문에 다시 술을 마시는가?
경계의 불에 태워지면서도
죄를 짓는지 짓지 않는지를 모르고
동산 숲에 대해서도 탐심(貪心)이 생길 터인데
무엇 때문에 다시 술을 마시는가?
저 상락새는 하늘들이 강가에서 술을 즐겨 마시는 것을 보고 술 마시는 것을 조복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게송을 읊은 것이다.”
또 『정법념경』에서 염라왕(閻羅王)이 죄인들을 책망하면서 게송을 읊었다.
술은 능히 사람들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양과 같이 되게 하며
죄를 짓는지 짓지 않는지를 알지 못하게 하나니
이와 같으므로 마땅히 술은 버려야 한다.
만약 누구든지 술에 취하면
마치 죽은 사람과 같아서 다름이 없나니
만약 영원히 죽지 않으려고 하거든
그런 사람은 마땅히 술을 버려야 한다.
술은 바로 모든 허물이 있는 곳이요
그 술은 언제나 보탬이 되지 못하며
일체의 악한 세계를 올라가는 계단이요
칠흑같이 깜깜한 것이 있는 곳이다.
술을 마시면 지옥에 이르게 되고
또한 아귀(餓鬼)의 처소에 이르게 되며
축생(畜生)들의 업(業)을 행하게 되나니
이것은 술의 허물에 속은 것이다.
술은 독(毒) 가운데 가장 독한 것이요
지옥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지옥이며
병(病) 가운데에서도 가장 큰 질병이니
이것은 지혜로운 분께서 말씀하신 것이니라.
만약 어느 누구든 술을 마시면
아무런 인연이 없이 환희(歡喜)하고
아무런 인연 없이 성을 내게 되며
아무런 인연 없이 악한 짓을 하게 된다.
부처님에 대하여 어리석은 마음을 내면
세간과 출세간(出世間)의 일을 무너뜨리고
해탈(解脫)을 태우는 것이 불과 같나니
이른바 술이라는 이 한 가지 법 때문이라.
만약 어느 누구든지 능히 술을 버리고
법다운 계율을 올바르게 행한다면
그는 죽는 일도 없고 태어나는 일도 없는 처소인
제일(第一)가는 곳에 이르게 될 것이다.
[문] 아무 질병도 없는데 술을 마시면 죄가 된다고 하니, 그렇다면 질병이 있을 땐 술을 마셔도 되는가?
[답] 『사분율(四分律)』에 의하면
“진실로 질병이 있어서 다른 약으로 치료해도 차도가 없고 꼭 술이라야만 약이 될 경우 그것은 마셔도 범하는 것이 아니다.”
[문] 개방하여 마시게 한다면 얼마쯤 마실 수 있는가?
[답] 『문수사리문경(文殊舍利問經)』에 의거해 말하면 이러하다.
“또한 약을 조제하는 의사가 말한 바에 의하면
‘많은 약을 서로 섞을 때에는 술은 적게 하고 약을 많이 해야 된다’고 하였다.”
또 『사리불문경(舍利弗問經)』에서 말하였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떻습니까? 세존이시여, 금지하는 법[遮道法]으로 말하면 술을 마실 수 없습니다.
정력자(葶藶子) 만큼의 술조차도 마셔서는 안 되나니, 만약 마신다면 그 것을 계율을 깨뜨렸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방일(放逸)을 개방한 문에서 보면 어떠합니까?’
가란타(迦蘭陀)의 죽원정사(竹園精舍)에 있던 어떤 비구가 있었다.
병에 걸린 채 한 해를 지내자 위독해져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때 우파리(優波離)가 물었다.
‘당신의 질병엔 무슨 약이 필요합니까?
내가 당신을 위해 천상 세계든 인간 세계든 마침내는 시방 끝까지라도 가서 꼭 사용해야 할 약이라면 내가 구해다 드리겠습니다.’
대답하였다.
‘나에게 필요한 약은 바로 비니(毘尼 : 戒律)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구하지 않고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차라리 몸과 목숨을 버릴지언정 계율 범하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우파리가 말하였다.
‘당신에게 꼭 필요한 약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오?’
대답하였다.
‘약사가 말하기를 술 다섯 말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우파리가 말하였다.
‘만약 병을 고치기 위해서라면 개방해야 합니다. 그것은 여래(如來)께서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가 곧 가서 그를 위하여 술을 얻어 왔다. 그는 그 술을 마신 뒤에 질병이 나았고,
질병이 낫게 되자 그는 몹시 부끄러워하면서 오히려 계율을 범 했다고 말하며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간절하게 허물을 참회하였다.
부처님께서 그를 위해 설법하시자 그 말씀을 듣고 나서 매우 기뻐하였고, 마침내 아라한(阿羅漢)도를 증득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술에는 많은 허물이 있지만 방일의 문을 개방한 경우도 있다.
술을 정력자 만큼이라도 마시면 죄를 범하여 이미 쌓이지만,
만약 질병의 고통을 소명하기 위한 것이라면 먼저 끊을 필요는 없다.’
[自述] 앞의 글에서 새장을 열어 놓은 것과 같이 꺼리낌없이 다 마셔도 된다는 글은 보지 못했으나,
반드시 진실로 병이 중하여 곧 죽을 지경에 처해 있을 때에 이보다 먼저 다른 약을 써서 치료해 보다가 그래도 낫지 않고 반드시 술로 조화시켜야 나을 수 있는 경우에만 앞의 방편에 의거하여 허락되는 것이다.
자주 보는 일이지만 무식한 사람은 몸과 힘이 강하고 왕성하여 날마다 특이한 행동을 하며 뛰어다니되, 여러 가지 위의에 의거한 행동을 하지 않다가도 조금만 아픈 정후가 있으면 곧 마음 속에 탐심이 자라나서 도업(道業)을 보호하지 않고 망령되이 경율(經律)을 인용하여 말한다.
“부처님께서 갖가지 탕약과 유명한 의복을 부처님과 스님에게 보시하는 것을 개방하셨다.”
이렇게 말하면서 공적인 이유를 가지고 사적인 일에 빗대어 도인과 속인들을 속인다.
그런 까닭에 지혜 있는 사람은 계율 지키기를 목숨처럼 여기면서 감히 범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살차니건자경(薩遮尼乾子經)』에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술은 방일(放逸)의 근본이 되므로
마시지 않으면 악한 세계의 길을 막게 된다.
차라리 백번 천번 이 몸을 버릴지언정
법의 가르침을 훼손하거나 범하지 않으리.
차라리 이 몸을 마르게 할지언정
결코 이 술은 마시지 않으리라.
가령 계율을 훼손하거나 범해서
백 년이 넘도록 살 수 있다 해도
금하는 계율을 보호하다가
즉시 이 옴 갈려서 없어지는 것만 못하리.
결정코 나의 이 질병이 나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오히려 일부러 마시지 않겠거늘
하물며 꼭 나을런지 낫지 않을런지도
확실히 알 수 없는 경우이겠는가?
가령 이렇게 마음을 결정하면
마음 속에 커다란 기쁨이 생겨나
곧 진실한 진리를 획득하게 되어
아팠던 질환이 바로 소멸하여 없어지리라.
마땅히 알아야 한다. 중생들에게 온갖 병이 있는 것은 탐(食)ㆍ진(瞋)ㆍ아만(我慢)으로 말미암아 원인이 된 것이다.
원인으로부터 결과가 있게 되므로 이런 고통의 과보를 얻는 것이지 약이 되는 술을 얻지 못함으로 인하여 질병을 고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열반경(涅盤經)』에서 말하였다.
“온갖 중생에게는 네 가지 독화살이 있어서 곧 질병의 원인이 된다. 무엇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탐욕(食欲)이요, 둘째는 진에(瞋恚)이며, 셋째는 어리석음[愚癡]이요, 넷째는 교만(橋慢)이다.
만약 병의 원인이 있으면 곧 질병이 생기게 마련이니,
이른바 애욕ㆍ열ㆍ폐병(肺病)ㆍ상기(上氣)ㆍ토역(土逆)이 있거나
온몸의 피부가 저려오면서 그 마음이 답답하고 산란하거나
설사ㆍ이질ㆍ트림ㆍ딸국질을 하거나 소변에 이상이 있거나
임질[淋歷]ㆍ눈병ㆍ귓병으로 아프거나 배와 둥이 퉁퉁 부풀어 오르거나
전광(顚狂 : 정신이상)ㆍ건소(乾消 : 消渴症)와 귀신과 도깨비에 흘리는 등 이와 같은 갖가지 몸과 마음의 병이 다 그런 것들이다.
만약 질병의 근본을 알아 악(惡)을 끊고 선(善)을 닦으면 삼세의 괴로운 과보가 영원히 없어져서 고통받지 않겠지만,
만약 이치를 관찰하지 않으면 비록 천하의 약술을 써서 치료한다 하더라도 그 병이 점점 더하면 더했지 차도를 얻기란 어려울 것이다ㆍ.
또 『비니모경(毘尼母經)』에서 말하였다.
“존자 미사색(彌沙塞)이 말하였다.
‘사제(沙提)비구가 젊었을 땐 술로 몸과 목숨을 장양(長養)하며 지내다가 뒤에 출가하고 난 뒤로는 술을 마시지 못했으므로 사대(四大 : 몸)가 순조롭지 못하다.’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병든 사람은 항아리 위에서 냄새를 맡는 것 정도는 허락하겠지만,
만약 병이 나으면 냄새 맡는 것조차도 더 이상 허락하지 않겠다.
병에 차도가 없는 사람은 술로 몸을 씻는 것을 허락하겠지만,
만약 또 그렇게 해서도 병에 차도가 없을 경우 술을 밀가루에 섞어 떡을 만들어 먹는 것을 허락하겠다.
이렇게 해서도 만약 또 차도가 없을 경우 술 속에 담그는 것을 허락하겠다.’”
또 『신바사론(新婆沙論)』에서 말하였다.
계경(契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존자 사리자(舍利子)가 교살라국(憍薩羅國)에 있는 어떤 숲 속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에 살아가기 위한 방편으로 출가한 외도(外道)도 그 숲 속에 머물고 있었다.
이웃에 사는 존자가 숲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여러 촌락과 읍(邑) 가운데에서 때마침 사월 절일(節日)에 연회를 널리 베풀었다.
그 때 저 외도는 여러 마을과 읍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돼지고기를 배불리 먹고 마음대로 술을 마신 다음 남은 것을 몰래 가지고 숲 속으로 돌아왔다.
그는 사리자가 어떤 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술에 취해 혼미해 있던 터라 경멸(輕歲)하는 마음을 일으키면서
‘내가 지금 그와 함께 출가하기는 하였으나 나 혼자서만 부유하여 즐거움을 누리고 그는 빈곤하여 고통을 받는구나’라고 하면서
곧 존자에게로 가서 이런 게송을 읊었다.
나는 이미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었고
또 먹다 남은 것을 몰래 가지고 와보니
이 땅 위에 풀과 나무 우거진 산이
모두가 금덩어리처럼 보이네.
그 때 사리자는 그 말을 듣고 생각하였다.
‘이 죽은 외도가 도무지 부끄러움도 없이 무뢰하게도 이런 가타(伽陀 : 게송)를 읊고 있구나.
나도 이제 그가 말한 게송에 대답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게송을 읊었다.
나는 언제나 모양 없는 것을 배불리 먹고
항상 공정(空定 : 空三昧)에 머무니
땅 위에 풀과 나무 우거진 산이
모두가 침을 뱉는 곳처럼 보일 뿐이다.”
이 게송 안에서 존자 사리자는 사자후(師子吼)로 세 가지 해탈문(解脫門)을 말한 것이니,
첫째 구절에서는 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을 설명하였고,
두 번째 구절에서는 공해탈문(空解脫門)을 설명하였으며,
마지막 두 구절에서는 무원해탈문(無願解脫門)을 설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