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식론 제7권
5.1. 일체는 오직 식만이 있다
식이 어떻게 전변한 것에 의거해서214) 가정적으로 자아ㆍ법으로 말하고, 별도로 실유는 아니며, 따라서 일체는 오직 식만이 있다고 알아야 하는가?215)
게송(『삼십송』의 제17)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모든 식이216) 전변하여217)
분별[見分]과 분별되는 것[相分]이네.
이것에 의거해서 그것[實我ㆍ實法]은218)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체는 오직 식뿐이네.219)
논하여 말한다.
‘이 모든 식’이란 앞에서 말한 세 가지 능변의 식 및 그것의 심소를 말한다. 모두 능히 전변하여 견분ㆍ상분으로 사현하므로 전변이라는 명칭을 건립한다.220) 전변된 견분을 ‘분별’이라고 이름하니, 능히 모습을 취하기 때문이다. 전변된 상분을 ‘분별되는 것[所分別]’으로 이름하니, 견분에 취해지기 때문이다.221)
이 바른 이치에 의거해서 그 실아(實我)ㆍ실법(實法)은 식이 전변된 것에서 떠나서는 모두 반드시 존재하지 않는다. 능취와 소취에서 떠나서는 별도의 사물이 없기 때문이다. 실유로서 두 가지 양상222)에서 떠난 것이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유위법ㆍ무위법223)은 실법(實法)이건 가법(假法)이건 간에 모두 식에서 떠나지 않는다. 『삼십송』의 제17게송에서 ‘오직[唯]’이라는 말은 식에서 떠난 실체의 사물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고, 식을 떠나지 않는 심소법 등은 아니다.
혹은 ‘전변’은 내부의 모든 식이 전환해서 자아와 법의 외부대상의 모습으로 사현하는 것을 말한다.224) 이 능전변을 ‘분별’이라고 이름하니, 허망분별로써 자성을 삼기 때문이다.
곧 3계의 심왕과 심소를 말한다. 이것의 집착된 대상을 ‘분별되는 것[所分別]’이라고 이름한다. 곧 망령되게 집착되는 실아(實我)ㆍ실법(實法)의 성(性)이다.
이 분별이 변하여 외부대상의 가아(假我)ㆍ가법(假法)의 양상으로 사현하기 때문에, 그 분별되는 것인 실아ㆍ실법의 체성은 결정적으로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
앞225)에서 성스러운 가르침과 바른 논리를 인용하여 이미 자세하게 논파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체가 모두 오직 식만이 존재한다. 허망분별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기 때문이다.
‘오직’이라고 말하는 것은 식에서 떠나지 않는 법이라면 부정되지 않기 때문이며, 참다운 공[眞空] 등도 역시 자성이 존재한다.
이상에 의거해서 증익(增益)과 손감(損減)의 두 극단을 멀리 떠나서 유식(唯識)의 뜻이 성립되고, 중도에 계합한다.226)
214)
이하 오직 식(識)이 전변된 것임을 밝힌다[唯識所變].
215)
유식상(唯識相)을 밝히는 세 가지 큰 분단[大段] 중에서 이상 능변식의 양상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을 마치고, 이하 식전변(識轉變)에 의거해서 가아(假我)와 가법(假法)을 건립하는 일단(一段)이다. 먼저 “그것은 식이 전변한 것에 의거한다[彼依識所變]”는 문구를 자세히 해설한다.
216)
8식과 그것에 상응하는 심소를 포함한다.
217)
여기서 전변(轉變)은 개전(開轉)ㆍ변현(變現)의 뜻으로서, 심왕ㆍ심소의 자체분에서 능취(能取)의 견분, 소취(所取)의 상분이 현출(現出)됨을 의미한다.
218)
심외(心外)에 실존한다고 망집(妄執)되는 아(我)ㆍ법(法)을 가리킨다. 범부나 외도가 집착하듯이, 심외에 아ㆍ법이 실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견분ㆍ상분 위에 가립된 것일 뿐이다.
219)
유식(唯識)의 이치를 판별한다.
220)
먼저 안혜와 호법의 해설을 서술한다. 그런데 안혜와 호법은 다 같이 식(識)의 자체분으로부터 견분과 상분을 변현한다고 설명하면서도, 2분(分)의 가실(假實) 문제에 있어서는 입장을 달리한다. 즉 안혜에 의하면, 그 전변된 견분과 상분은 변계소집성으로서 자체[體]가 없는 법이고, 다만 의타기성의 유(有)처럼 사현할 뿐이며, 자체분만이 의타기성으로서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도 중기 유식학파의 두 가지 사조(思潮) 중에서 무상유식론(無相唯識論, nir-kra-vijnavda)의 입장으로서, 식의 표상화 작용 그 자체를 궁극적으로 소멸되어야 할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표상은 인식의 본질이 아니라 허망한 것으로서, 사량 분별을 떠난 인식의 본질은 형상이 없는 ‘비춤 그 자체’, ‘순수한 조출성(照出性)’이기 때문이며, 이러한 사유방법은 중관학파와 비슷하다. 이에 반하여 호법은 견분과 상분을 의타기성의 자체가 있는 법으로 설명한다. 식의 자체분이 전변하여 의타기성의 2분(分)을 현현하고 그것이 변계소집의 아(我)ㆍ법(法)에 비슷하므로 여기에 아(我)ㆍ법(法)의 모습을 가립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유상유식론(有相唯識論, skra-vijnavda)의 입장으로서, 식상(識上)의 형상은 의타기성으로서, 전적으로 부정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실재(實在)로 간주된다. 이와 같이 인식상황 속의 형상은 진실성을 인정한 이유는 유식학의 심식론을 인식논리[因明]로써 설명하고 증명함으로써, 깨달음의 가능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221)
이 부분에서 세친(世親)이 식전변설을 수립한 의도가 잘 나타난다. 그는 식전변설의 체계 속에 인식성립의 역학적 구조를 담고 싶었다. 식의 본래의 기능은 분별, 즉 대상 인식작용이다. 종래의 ‘식=분별’에 세친은 분별하게 되는 원리로서 전변의 개념을 도입하여 ‘식=전변=분별’로 설명하였다. 식전변(識轉變)은 단순히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7식과 현상적 존재가 생겨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전변의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은, 능변식(8식과 이에 수반되는 심소)이 견분[能取相]과 상분[所取相]을 변현시키는 것이다.
222)
능취(能取)와 소취(所取)를 말한다.
223)
유위법은 식이 전변된 것[識所變]을 가리키고, 무위법은 식의 체성(體性)을 말한다.
224)
다음은 난타(難陀)의 견해이다. 『성유식론술기』에 의하면, 그는 이분가(二分家)로서 자체분(自體分)을 건립하지 않고, 견분의 식이 의타기(依他起)의 상분을 전변하여 아(我)ㆍ법(法)의 외부대상의 모습으로 사현한다고 말한다.
다만 견분과 상분이 다 같이 의타기법(依他起法)이긴 하지만, 가실(假實)의 차이가 있어서 견분은 참다운 것[實]이고, 변현된 상분은 허망한 것[假]이다. 상분도 역시 참다운 것이라고 하면, 곧 유식(唯識)의 의리(義理)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225)
본 논서 제1권ㆍ제2권에서 실아(實我)와 실법(實法)을 논파하였다.
226)
다음에 총체적으로 결론 맺는다. 마음에서 떠나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법[心外法]이란 없기 때문에 증익(增益)의 극단을 부정한다. 허망한 마음이 존재하므로 손감(損減)의 극단을 막는다. 그리하여 유식(唯識)의 뜻이 성립되고 중도에 계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