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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의 양면성을 생각하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었다. 오늘도 비가 많이 내리고 있다. 태국어로 비를 관장하는 신인 태풍 7호 쁘라삐룬(PRAPIROON)은 이미 일본열도를 거쳐 북상 중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바람이 거세지 않은 것을 보면 태풍의 여파는 아직 미미하다. 그러나 태풍은 위세가 커서 많은 비를 몰고 올 것이라고 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새로 당선되어 내빈과 관계자들을 초청하여 취임식을 준비했던 각 시․도 지사들은 취임식을 취소하고 직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조용하게 치르고 태풍에 대비하는 민생 행보를 가진다고 했다. 나도 충남도지사 취임식에 내빈으로 초청되었지만, 어제 저녁에 태풍 등의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취소한다고 전화를 받았다. 비가 많이 내려 취임식장까지 가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내심으로는 잘한 일이라 여겨졌다. 한편으로는 태풍이 취임하는 시․도 지사들의 체면을 살려 주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새로 당선된 시․도 지사들이 과거와 같은 취임식을 취소하고 민생 행보에 나서는 것도 하나의 딜레마일 수 있다. 시․도지사들이 진심으로 취임식을 간소하게 하고자 하지만, 서운해 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 기간 동안 열심히 도와준 사람들, 지지자들, 그리고 생색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취임식에 초청되어 그들의 욕구를 위로받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의 소신 만으로 취임식을 간소하게 한다면, 사람들 중에는 “쇼”한다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다. 그런데 취임식 당일을 기점으로 태풍이 전국을 강타하여 어떤 재난이 닥칠지 모르는데 과거와 같은 취임식을 한다는 것도 구설이 될 수 있다. 하여 민생과 재난에 적극 대응한다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대외 내빈을 초청하여 거행하는 취임식을 취소하고 내부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간단하게 취임식을 하고 정상 업무에 돌입하는 것은 일거양득이다. 민생도 살핀다는 명분을 얻고 취임식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도 자연스럽게 달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풍 쁘라삐룬은 재난의 상징이라 한반도에 어떤 피해를 줄지 모르지만 취임하는 시․도 지사들에게는 취임식 간소화의 명분을 가져다준 것이기도 하다. 나는 취임식 취소의 소식을 접하고 태풍이 아주 약하게 지나가고 장마 역시 그리 길지 않고 비가 적당히 내리기를 소망해 보았다. 장마가 너무 길면 농작물에 피해는 물론 사회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삶이 역동적이지 못해진다. 그렇다고 너무 짧아 비가 너무 적게 오면 저수량이 모자라 물 부족을 가져올 수 있다. 작년의 장마는 ‘마른장마’라 비가 너무 적었다. 유독 가뭄이 심했던 충남 서해안지방의 경우 금강의 물을 보령댐까지 끌어가는 대수로 공사를 했다. 장마는 우리말로 여러 날을 계속 내리는 비라는 뜻으로 ‘오란비’를 말하는 여름철 우기이다. 우리나라의 여름철 우기는 장마와 늦장마로 구분되는데 동부아시아 특유의 현상으로 북태평양기단과 한대전선(寒帶前線)에 의하여 형성된다. 북태평양기단은 아열대 기단이며 한 대전선(寒帶前線)은 고위도의 한 대 기단 사이에서 형성된다. 이런 동부아시아 규모의 한대전선의 일부가 우리나라에 머물러 오래 비를 내릴 때 장마가 되고 그것을 장마전선이라 한다. 강수량은 동부아시아를 동서로 가로질러 정체하는 장마전선에 의하여 좌우된다. 장마전선이 오래 머물면 비가 오래 내리고 강수량이 많다. 작년 같은 마른장마는 장마전선은 오래 머물렀는데 비가 오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그러면 농부들이 가장 애탄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장마를 매실이 익어갈 무렵에 내리는 비라 하여 각각 바이우(梅雨), 메이유(梅雨)라고 한다. 옛날 함경도 등 동부산간지방에서는 마(麻)를 많이 심었다. 마는 농가의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함경도 처녀들은 장마가 짧으면 마대를 잡고 울었다고 한다. 여진족 등 오랑캐의 침입과 노략질이 성행 했던 시대에 장마가 짧아 수분이 부족하여 마가 잘 자라지 않으면 흉마(凶麻)가 된다. 그러면 질이 나빠져 삼베의 가격이 하락하고 농가는 어려워진다. 먹고 살길이 막막했던 시절에 마의 흉년이 들면 사냥과 노략질로 생필품과 식량을 교환하던 오랑캐들이 그 대가로 처녀들을 사 가게 된다. 그래서 동북부 지방 처녀들은 장마를 기다리고 반겼으며 장마철이면 마대를 붙잡고 흔들면서 마가 빨리 자라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예로부터 대추의 고장으로 유명한 충북 보은 등지의 처녀들은 장마철이 되면 울부짖으며 장마가 빨리 지나가기를 학수고대 했다고 한다. 다른 과일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장마가 길면 대추들이 잘 맺히지 않고 떨어지며 영글지 못해 흉작이 된다. 그러면 농가의 수입이 준다. 처녀들에게 대추는 시집갈 혼수를 마련하는 중요한 수입원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흔한 이야기지만 나막신 장수와 우산 장수를 하는 두 아들은 둔 어머니가 있었다. 비가 오면 나막신 장수의 아들 걱정을 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반대로 우산 장수의 아들 걱정이 태산이었다. 장마가 오래 되면 나막신 장수는 나막신을 팔수가 없어 생계가 곤란해지고 비가 오지 않으면 우산이 팔리지 않아 우산 장수 아들의 생계가 곤란해진다. 그러니 어머니는 늘 걱정이다. 그러나 우산 장수에겐 장마가 보약이고 나막신 장수에겐 맑은 날이 보약이다. 장마에도 이중성이 있다. 그 이중성은 인간의 삶의 형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삶의 양상이 천태만상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면 통나무 장수가 돈을 번다.”는 일본 속담이 있다. 바람이 불면 집이 무너진다. 집을 잃은 당사자들에겐 엄청난 재앙이고 고통이지만 다시 집을 지으려면 통나무 장수와 목수가 돈을 벌 수 밖에 없다. 세상일에는 갑의 이득은 을의 손해가 될 때도 많다. 다만 그것이 적절한 선에서 상생할 수 있으면 최상이다. 4대강을 두고 현 정권은 환경과 수질 문제를 내세워 이전 정권의 공사 비리와 정치적 비리를 파헤치고 있고 환경 단체에서는 녹조 현상 등을 문제 삼아 보의 개방과 철거를 주장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농민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자기의 철학과 이념상으로는 100% 자기 의견이 옳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실제에서는 항상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아웅산 수지 여사는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인권운동의 선구자였으나 미얀마의 일인자의 위치에 올라 국가 자문역이 된 후 미얀마 북서부 소수민족 로힝야족의 탄압을 방치한다는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상 정치와 현실 정치의 차이는 늘 존재한다. 현실은 이론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이 오르자 사업주들은 아우성이지만, 상당수의 노동자들은 환영이다. 정부가 주 52시간 근로를 강행하자 일부에선 찬성이지만 노동자들도 수입이 준다고 난리이다. 선거에서 진보가 승리하자 보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안보와 경제를 불안해한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상당수의 보수는 김정은 등 북한 정권을 믿지 못한다. 소득주도 성장을 부르짖지만 경제는 악화되고 있다. 기업의 성장과 생산성의 향상 없이 일자리가 나올 리 만무한데 일자리가 나올 거라고 여긴다. 기업을 옥죄고 노조의 손을 들어주니 노조는 환영이지만 기업은 해외 이주를 꿈꾼다. 내가 장마 때 비가 아주 적절하게 내리고 길지도 짧지도 않기를 바라는 것은 인간적으로 말하면 매우 합리적이고 상생적인 것을 바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나막신 장수 아들도 잘 살고 우산 장수 아들도 잘 산다. 함경도 처녀도 팔려가지 않고, 보은 대추 처녀도 시집갈 혼수를 잘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장마는 늘 나의 소망대로 해 주지를 않는다. 아쉽다. 장마에는 인간이 미칠 수 있는 의지는 전무하고, 그에 따른 인간의 대책만 유효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시행하는 정치와 정책, 생활과 삶의 방식은 다르다. 인간이 하는 모든 정치적 행위에도 양면성이 있다. 인간의 적절하고 조화로운 생각과 지혜만이 상생의 길을 가게 할 수 있다. 어느 선이 적절하고 합리적일까? 적절하고 상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간소한 취임식을 생각했던 시․도지사에게 장마와 태풍이 취임식 간소화와 민생 행보의 명분을 심어주었듯이 그들에게 상생의 명분이 넘쳤으면 좋겠다. 과유불급(過猶不及)-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 하지만, 인간 세상은 지나친 것도 많고, 부족한 것도 많다.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정치와 정책의 길은 없을까? (2018년 7월2일 월요일 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