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되돌아본 조선의 왕…출생부터 통치스타일까지
김태익 위원
입력 1998.03.25. 18:00
수천년 왕조체제를 유지한 역사가 있으면서 우리나라처럼 왕이
후세인들의 사랑을 받지못하는 나라도 드물다. 특히 조선시대의 경
우는 왕조의 종말이 식민지시대로 이어졌다는 비운의 역사 때문인
지 왕은 무능의 전형으로 비판받기 십상이다.재상들의 경우도 마찬
가지다. 왕을 도와 민생을 안정시킨다는 측면보다는 권력투쟁의 주
인공이거나 교활한 출세주의자로 묘사되기 일쑤다.
이같은 '국왕 부재', 또는 '지도자 무시' 역사관에 반기를 든
대중역사서가 두권 출간됐다. '조선의 왕'(신명호 지음,가람기획간)
과 '조선건국기 재상열전'(김진섭 지음, 지성사간)이다. 싫든 좋든
왕과 재상들은 왕조시대 국정의 최고지도자로서 절대권력을 휘두른
인물들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해서 5백여년이나 역사를 유지했다면
오늘날 보기에도 참고할 만한 국가경영의 노하우가 있는 것 아니겠
는가 하는 항변과 철학이 두 책에는 공통적으로 깔려있다.
'조선의 왕'은 왕이란 게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서 출발,
왕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은 책이다. "왕을 욕만하면 그 침이 튀고
튀어서 우리의 얼굴에 떨어진다. 인생을 바쳐 왕에게 충성한 지식
인과 무사, 우리의 조상들은 무엇인가." 현재 정신문화연구원 선임
연구원인 저자는 3백여종에 달하는각종 자료들을 구사하며 왕의 탄
생에 관련된 임신과 태교 산후처리 등 자질구레한 사항에서부터 왕
의 하루일과와 1년 일정, 가정생활, 왕의 지위와 권한, 통치스타일,
왕의 언어, 비자금 등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왕의 실체에 접근해
간다. 흔히 '태정태세문단세…'라고 외우는 조선시대의 왕은 27명.
가장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이는 7세때 즉위한 헌종이고 순조와 고
종이 11세, 단종과 명종이 12세의 나이에 왕이 됐다. 인조는 8개월
만에 세상을 떴고 영조는 52년이나 재위했다. 자녀 생산은 드라마
'용의 눈물' 주인공 태종(이방원)이 가장 왕성해 29명이나 두었으
며 성종 28명,선조 25명, 영조 24명, 정종 23명, 세종 22명 등이다.
왕의 권력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주체로서의 신성권을 위시
해인사 입법 사법 행정 군사 외교 등 모든 국사에서 무소불위였다.
그러나 통치 스타일과 능력은 왕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왕이 쟁점
을 정확히 파악하고 적절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업무회의는
왕의 주도로 진행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전문용어를 써가며 보고
하는 신하들의 말을 이해못해 자신이 무슨 결재를 하는지도 모르고
결재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자의 대표적 예는 조선의 르네상스를
연 영조였고 후자의 예는 20대 경종이었다. 장희빈의 아들로 우여
곡절 끝에 왕위에 오른 경종은 심약하고 판단력이 없어 어떤 신하
가 이 말을 하면 옳다고 하고, 다른 신하가 반대 의견을 말해도 옳
다고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왕에게도 품위와 체면유지를 위해
비자금이 필요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 비자금을 관리하는 곳이 내수
사였다.
'조선건국기 재상열전'은 조선초의 재상들 면면을 통해 국정의
이념과 운영원리에 접근한 책. 배극렴 조준 정도전 민제 하륜 성석
린 조영무 유정현 남재 이거이 심온 황희 맹사성 최윤덕 허조 하연
유관 황보인 김종서 정인지 신숙주 권람 한명회 최항 정창손 이인
손 한확 윤필상 홍응 구성군준 등 30명의 재상을 열전 형식으로 다
루고 있다. 이 중에는 실무형도 있고 경세가도 있으며 얼굴마담형
도 있다. 건국 초기라 며칠만에 재상 자리에서 물러나는 인물도 있
었다. 그러나 건국초 혼란 속에서의 이같은 관료제도 운영이야말로
'제2의건국'이 운위되는 요즈음 눈여겨 볼 가치가 있다는 것이 저
자의 논점이다. ( 김태익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