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대, 자갈치시장, 해운대를 둘러보지 않고 부산 구경을 했다고 할 수 없다. 특히 태종대는 명소 중에 명소다.
태종대에서 깍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 펼쳐져 있는 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심신에 쌓인 피로가 말끔히 씻겨내린다. 신선바위와 망부석, 맑은 날이면 쓰시마섬(대마도)까지 내다보이는 탁트인 시야도 외지인의 발길을 끄는 명물이다.
태종대에서 눈으로 관광(觀光)을 했다면 돌아나오는 길에 태종대성당(주임 김정욱 신부, 영도구 동삼1동)에 들러 마음으로 관광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관광지구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성당은 태종대 절경만큼이나 아름답다. 지난해 부산광역시가 수여하는 '부산다운 건축상'(비주거부문) 우수디자인상을 받았다. 무엇보다 '기도하는 성전'을 꾸미려고 애쓴 흔적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심미안으로 그 흔적을 들여다보면 "누구 손길이 닿은 작품인가"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우선 우수디자인상 수상에 걸맞게 외관이 독창적이면서도 산뜻하다. 청동 지붕의 한쪽 경사면이 매우 가파르다. 요즘 성당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종탑도 세워져 있다.
"뎅그렁~ 뎅그렁~" 해안가 언덕위 성당에서 울려퍼지는 종소리…. 상상만 해도 운치가 있다.
그러나 이 종탑에는 종이 걸려 있지 않다. 사제관과 수녀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연결돼 있고 위에는 대형 십자가 조형물이 바다를 향해 설치돼 있다. 엄밀히 따지면 계단탑이지만 전통적 건축미와 실용성을 동시에 추구한 독창성이 돋보인다. 첨탑과 가파른 솟을지붕. 이는 천상세계를 갈망하는 신앙공동체의 염원을 상징한다.
성당 아래층 교육관 정면의 열주회랑(列柱回廊, 기둥복도)에서도 성당건축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한 설계자(세아건축 강수남 소장)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성당 정면 지붕 아래에 있는 보석 형태의 유리화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본당 주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그림이 형형색색 색깔로 입혀져 있다. 이 유리화는 늦은 오후가 되면 황홀한 빛을 안으로 쏟아낸다. 맑은 날 늦은 오후에 성당에 들어서면 천상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한낮 고요한 성당에 홀로 앉아 기도하는 이의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는 빛은 성령의 손길처럼 느껴진다.
보석 형태의 유리화를 통해 들어오는 빛은 한 구절 기도가 된다.
"그날이 오면, 야훼께서 당신의 백성을 양떼인 양 돌보시리니 이 백성은 면류관에 박힌 보석처럼 당신의 땅에서 빛나리라."(즈가 9, 16)
성당 내부에는 또 한 구절의 복음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물이 있다. 제단쪽 천장 끝과 윗부분을 헬라어 첫 문자 알파(A)와 마지막 문자 오메가(Ω) 형태로 처리한 것이다. 알파와 오메가는 처음과 마지막이고, 시작과 끝이며, 창조자이자 완성자이신 하느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지금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묵시 1, 8)
여느 성당과 비교해 색다른 조형물 배치도 이채롭다.
십자가의 길(14처) 부조가 벽면에 걸려 있지 않다. 좌우측 벽면을 유심히 훑어보아도 그림이나 부조를 찾아볼 수 없다. 기둥과 기둥 사이 유리창에 14처를 새겨놓았기 때문이다. 신자들은 유리화 작품을 따라가면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친다.
제단 벽면 십자가 아래에 설치하는 감실도 제단 아래 왼쪽에 배치했다. 신자석 통로를 따라 앞으로 나가면 누구나 감실 앞에 다가설 수 있다.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신자들의 바람을 염두에 둔 공간 배치다. 장궤틀 2개를 놔둔 감실 공간은 그 어느 성체조배실보다 훌륭하다. 은은한 텅스텐 조명과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비쳐오는 빛이 하느님과의 대화를 도와준다.
실제로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감실 공간의 인기가 대단하다. 이 자리에 앉아 기도하면 치유받지 못할 상처와 고통이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올해 피서지를 부산으로 정한 신자에게 꼭 권해보고 싶은 '마음의 관광' 코스다.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성당 현관과 지하 계단에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도 감상하면 좋을 것 같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일대기가 스테인드글라스 5개 작품에 묘사돼 있다. 성당 현관에 있는 작품에는 "오늘 천주를 위하여 죽는 것은 오히려 제가 원하는 바입니다"라는 성인의 절절한 신앙고백이 담겨 있다.
마당에는 벚나무가 유난히 많다. 바다가 있는 쪽 울타리는 수령이 몇십년은 족히 넘었을 벚나무로 둘러쳐져 있다. 벚꽃 피는 계절의 성당 풍경은 한 폭 그림 같을 것이다.
태종대성당 인근에는 기초생활 보호대상자가 사는 임대아파트가 많다. 예로부터 부산 영도(影島)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살았다. 그 대신 투박한 정은 다른 어느 곳보다 깊다.
김정욱 주임신부는 "신자들간에 정이 깊고, 소공동체를 주축으로 사회복지사업이 활발한 게 태종대성당의 특징"이라며 "태종대를 찾아오는 길에 성당에 들러주면 기쁜 마음으로 환영하겠다"고 말했다. 성당 사무실: 051-404-1118
(사진설명) 1. 지난해 '부산다운 건축상'(비주거부문) 우수디자인상을 수상한 태종대성당 전경(2003년 3월 촬영)
2. 늦은 오후가 되면 보석 형태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유리화에서 영롱한 빛이 성당 안으로 들어온다.
3. 제단쪽 천장 끝과 윗부분을 희랍어 첫 문자 알파(A)와 마지막 문자 오메가(Ω) 형태로 처리한 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