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화위지(橘化爲枳)
카타르시스(カタルシス)
날조의 시작(捏造の始作) 당시 제주도가 Somei Yosino의 원산지라는 것에 대해서 일본인들은 거부감이 없었다.
WW2 패망으로 지옥을 걷고 있던 일본인들에게 신화적인 학자가 나타났다. 한국 제주도 자생설을 부정하기 위해 한국에 자생하지 않는 Somei Yosino가 Ooshima Sakura와 Edhigan의 후손이라고 발표 竹中要가 재현한 Somei Yosino는 누가 보아도 Somei Yosino가 아니게 되자 다른 주장이 등장한다. |
일본의 사쿠라 박사 竹中要の Oshima zakura와 edhigan의 雑種説이 실패로 끝나자
中村郁郎은 2007年 Oshima zakura와 Komatsu-otome의 雑種説을 들고 나왔다.
여기로부터 새로운 모친 찾기가 시작되었다.나카무라씨등은 전국의 천연기념물의 벚꽃등을 둘러싸, 떨어진 꽃잎을 주워 돌았다.100개 이상 조사해도 발견되지 않고, 체념하려고 한 2006년 봄, 우연히 인터넷의 홈 페이지에서, 소개되고 있는 우에노코우엔의 코마트오트메를 찾아냈다.「왕벚꽃나무를 닮아 있다」.오오시마자크라와 코마트오트메의 DNA로부터 선택한 500 문자분 이상의 DNA 배열을 비교하면, 하나도 모순이 없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원 예 학부 밭의 구석에서 2008년 봄, 종으로부터 기른 5개의 벚꽃의 모종이 하치에 심어졌다.그 종은 우에노코우엔의 코마트오트메와 대학의 오오시마자크라를 교배시킨 것이다.4~5년 후에는, 왕벚꽃나무를 재현하는 광경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찾아낸 품종!
일본 국민을 일제히 열광하게 만든 이 학설은 발표 후 바로 논파되어 매장되어 버렸다.
다음을 읽어 보자.
Komatsu-otome
에드히간자쿠라 재배 품종입니다.
도쿄 우에노 공원의 코마츠궁 동상 부근에 원목이 있기 때문에 그 이름이 붙었습니다.
2007 년 봄, 왕벚나무의 기원에 발표된 논문을 많은 언론이 인용하여 코마쯔오토메과 오오시마자쿠라 교잡의 결과 생긴 것이 "왕벚나무"이라는 보도가 있었 습니다만, 논문은 "왕벚나무 "는 코마쯔오토메 같은 에도히간계 재배 품종을 어머니 종으로 오오시마자쿠라 아버지 종으로, 교배의 결과 생긴 품종이라고되어 이 코마쯔오토메가 편부모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코마쯔오토메는 왕벚나무 탄생보다 후년으로 생각됩니다.
외관은 왕벚나무 비슷하지만 개화가 약간 빠르고 꽃 색깔이 약간 진한 (꽃잎의 끝에 잠시 진한 핑크색이 남아)입니다. 개화가 진행되면 거의 같은 색상입니다.
J 법칙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학설이 발표되자 바로 코마쯔오토메가 Somei Yosino보다 늦은 품종이라는 것과 원예품종이라는 것이 발각되었기 때문에 즉시 언론 기관의 실수로 돌려 버린다.
하지만
オオシマザクラとコマツオトメのDNAから選択した500文字分以上のDNA配列を比べると、一つも矛盾がない!
上野公園のコマツオトメと大学のオオシマザクラを交配させたものだ。4~5年先には、ソメイヨシノを再現するような光景がきっと見られるはずだ。
이 헛소리는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왕벚꽃나무 (Prunus×yedoensis)는 에드히간 계열의 벚꽃(P. pendula Maxim.f. ascendens Ohwi)와 오오시마자크라(P. lannesiana var. speciosa)의 잡종이 기원일 가능성이 높다.또한 학명의 것×은 자연종간 교잡종의 표기이며, 인공 교배종의 경우 이 표기는 이용되지 않는다고 한다.왕벚꽃나무가 자연 교잡종인가, 인공 교배종인가는 불명하다고 해 이 학명의 타당성에 의문을 나타내는 소리도 있다.에드히간이 아니고, 코마트오트메의 교배라고 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다만 코마트오트메도 종으로서는 에드히간의 원예 품종으로, 그 중의 1 클론이다.
잡종을 나타내는 학명에 헛소리 늘어 놓는 일본인을 위해 간단하게 X에 대해서 설명한다.
속성 이름, 종명 등의 표시 방법
기본적으로 국제적인 합의에 따라 표시하면 다음 3개의 규정이 있습니다.
(1) "국제 식물 명명 규약"International Code of Bothanical Nomenclature (ICBN)
(2) "국제 재배 식물 명명 규약"The International Code of Nomenclature for Cultivated Plants (ICNCP)
(3) "란과 식물의 명명과 등록에 관한 약관의 편람"The Handbook on Orchid Nomenclature and Registration (HONR)
교배종의 경우에는 속성 이름은 대에서 종명 (種小名)도 대문자로 시작합니다. 종명에 라틴어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교배종의 종명은 1-3 단어로 구성됩니다. 재배 품종 이름 (개체 이름이라고도 함)이있는 경우에는 종명의 뒤에 단일 코테숀로 묶어 있습니다. 재배 품종 이름 (개체 이름)은 대문자로 시작 1-3 단어로 구성됩니다. 라틴어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로마자 표시됩니다) 이탤릭체 표시는하지 않습니다. (예 : Blc. Norman 's Bay 'Gothic')
미등록의 교배종의 경우 교배 사인인 곱셈 기호 X 표시를 부모의 학명 (개체 이름이있는 경우에는 세 번째 항목으로 표시) 사이에 붙여 나타냅니다. (예 : C. labiata var. alba 'Angerer'X Blc. Norman 's Bay 'Gothic')
자 연 (교) 잡종의 경우, 자연 (교) 잡종은 (교) 잡종의 표시인 소문자 곱셈 기호 x 표를 종간잡종의 경우 종명 전에 (예 : C. x dolosa 'Saibara') , 속간잡종의 경우 속의 전에 지정합니다. (예 : x Lc. leeana 'Picardy')이 표시는 보통 생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이미 등록되어있는 자연 (교) 잡종은 원종의 경우에 준하여 표시됩니다.
또한 등록되지 않은 경우 교배 사인이다 대문자 곱셈 기호 X 표시를 부모의 학명 사이에 붙여 나타냅니다. (예 : C. nobilior X C. aclandiae 또는 L. esalqueana X C. aclandiae)
자 연 (교) 잡종을 영양 번식하는 경우에는 개체 이름을 붙여 세 명명법에 의한 표시합니다. 인공적으로 그 조합을 교배하면 교배종과 같이 속명은 대문자로 종명 (種小名)도 대문자로 시작하고 로마자 표시됩니다. (예 : C. Dolosa 'Tokyo')
일본에는 Somei Yosino의 자생지가 없다. 또한 자연 교잡에 의해 형질이 비슷한 것도 없다.
50년전에 이미 서울대 교수 姜永善이 재현한 품종을 DNA로 방어하려고 하지만 그것도 실패
일본인은 어떤 날조설을 또다시 들고 나올까?
1. 일본에는 벚꽃이 없었다.?
일본의 국화인 벚꽃이 일본에 없었다는게 아이러니 할꺼야
(놀랄만한 사실은 일본에는 국화가 지정이 안되어 있어,
황실을 의미하는 국화가 국화로 인정받고있고
사무라이의 꽃이라고 일컷는 벚꽃은 제 2의 국화로 기정사실화 되어있는 현실)
정확히는 왕벚나무가 없었고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 시초는 고대에 한국 불교가 일본에 포교되던
서기 6세기경부터로 추정하고 있어.
왜냐하면 일본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가 흠명천황 13년(서기 552년)인데 <정사 일본서기(日本書記) 기록>
(공식기록이 서기 552년이고 훨씬 이전에 백제로부터 건너간 사람들에 의해 전파되어 있었데)
흠명천황 시절은 백제의 성왕(523-553) 때로 백제에서 불상과 경전을 보낸 사실을 <일본서기>는 공식기록으로 남기고 있어.
더불어 일본 벚꽃 최대 생산지인 요시노산이 있는 나라땅은 서기 538년 부터 백제 성왕에 의해서 백제 불교가 일본에 포교된 나라땅의 터전이며,
거기 있는 왕벚나무의 DNA가 한국의 왕벚나무와 일치함.
(일본 식물학자 코이즈미 켄이치는 애당초 기원이 한국이라고 1933년에 주장했지만 일본은 함구하고있고
이후에 많은 일본학자들도 벚꽃의 기원이 한국이라는 사실을 언급하지만 묵살되어짐)
학명또한 일본학자가 최초로 발표해서 "푸르누스 에도엔시스 마쓰무라"라고 되어 있고.. 그로인해 기원이 일본이라고 알고있는 사람이 대다수 인데
공식 발표기록을 보면
"1908년 남제주성당에서 근무하던 프랑스인 에밀 타케신부가 한라산 북쪽 관음사 뒷산 해발 6백m 지점에서 왕벚꽃나무를 채집했다.
당시 세계적인 권위자 독일의 베를린 대학 괴네교수에게 이를 보내 제주도가 왕벚꽃의 자생지로 확인 발표"
이때부터 왕벚꽃의 족보를 놓고 세계학자들 간에 논쟁이 있었지만
생물학적 기록에서도 일본에서는 한군데서도 자생지를 발견하지 못했어, 대신 한국에서는
타케신부가 발견한 자리 부근에서 1백년 생이 발견됐고
또 전남 대흥사 등 10군데에서 계속 발견되어 왕벚꽃의 고향은 한국이라는 주장이 유력하게 된거지.
우리나라에서 벚꽃이 인기있던 시기는 효종(1619-1659)시절이고
이때 북벌을 계획하고 궁재로 쓰기 위해 지금 서울 우이동과 장충단근처에 왕벚꽃나무를 대량으로 심었다는 기록이 있어
민간요법으로도 인기가 많아서수백년전부터 감기처방으로 벚나무 껍질을 벗겨 말려 두었다가 달여 마시거나.
종기나 부스럼 두드러기도 재료로 쓰였데.
벚꽃나무 열매와 꽃망울이 달린 가지를 꺾어 술을 담기도 했고.
그렇게 사랑받던 벚꽃은 일제시대를 지나 해방후에
일본의 국화라는 이유때문에 포풍 민주화를 당하게 되지
(위에서도 말했지만 일본국화는 없고 국화와 벚꽃이 국화로 기정사실화 된것)
그냥 수백년된 벚꽃나무들이 일본국화라는 이유때문에 막 잘려나감ㅠㅠ
한줄요약
- 일본벚꽃의 기원은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