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올 성모님께 올립니다.
성모님을 닮은 이 푸른 5월에
…
사랑하는 성모님,
어제 밤에 구역장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성모의 밤 행사에 성모의 밤 편지를 올려달라는 전화였습니다.
생소하고 처음 접해보는 부탁이고 글 솜씨도 말 솜씨도 없는 저로서는 망설여졌지만, 그 동안 살아오면서 성모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에 대한 감사 편지를 써야 되겠다고 다짐했답니다.
이야기는 약 35년 전으로 돌아갑니다.
저의 아내, 권정희 마리아가 첫 아기를 출산하면서 발생된 산후 심장병으로
인하여 한양대학 병원에서 심장 성모판막을 교체하는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 의술로는 성공 확률이 매우 낮고 어려운 고가의 수술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첫 수술은 실패하고 6개월
후에 재 수술에 들어 갔습다.
마리아는 중환자실에서 수술 5일째가
되었는데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 하였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중환자실에서 마저 쫓겨나 일반 병실 옆에 죽음 직전에 있는
환자를 돌보는 ‘처치실’로 보내졌었지요.
‘처치실’내 옆 침대에서 장례식장으로 옮겨지는 환자를 볼 때 마다
앞이 캄캄해 졌습니다.
병원 측에서는 의학적 치료로는 더 이상 방법이 없으니 뒷정리를 하라는 마지막통보를
하여왔습니다.
아내 옆에서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여 주시던 장모님도 포기하시고 시골로 내려가서 딸을 묻어야
할 묘 자리를 구하고 수의까지 손수 챙기고 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풍납동 성당에 다니던
아내 마리아 친구가 신부님을 모시고 종부성사 드린다고 병실을 찾아 왔어요. 저는 그 당시 무종교였기 때문에
종부성사란 용어도 생소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마리아가 곧 깨어날 믿음에 병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루만
더 기다려보자고 우겨서 6일째를 맞았습니다.
정말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6일째 저녁에 마리아가 의식을 회복한 것입니다. 이건
의학적으로도 증명할 수 없는 일이 발생된 것입니다.
그래서 무 종교였던 저는 그 당시 종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마리아는 지금도 가슴속에 심장 박동기를 달고 있어 옆에서 귀 기울어 보면 시계소리가 들리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성모님께서 그 때 함께 계시면서 그 고통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셨던 것이지요.
이야기는 다시 약12년 전으로
돌아갑니다.
마리아는 퇴원 한 후로부터 계속 저에게 입교 권면을 하였으나
저는 직장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약12년 전 저의 나이가 60이
되었을 때 통신 교리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 받고 4-5년이
지난 후 저는 과음 과 과로가 연속되는 직장 생활에 시달리다 급성 간경화로 복수가 차서 온 몸이 붓기 시작하여 아산병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담당 의사는
급히 간 이식을 받아야 된다는 청천 벽력이 떨어 졌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간을 주겠다고 하여 간 검사를
받는 동안 저는 잠깐 퇴원하여 집에 있었습니다.
그 때 아내 마리아를 종부성사로 주선하여 주었던 바로
그 친구가 명동 성당에서 고 김수환 추기경과 같이 계시던 최 스텔라 라는 수녀님을 모시고 충남 조치원에 있는 저의 아파트로 교우환자 방문을 온 것입니다.
아내 마리아의 그 친구가 수녀님에게 같이 다녀 올 곳이 있다고 요청 하자, 수녀님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조치원”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수녀님의 말씀이 지난 밤에 “천안으로 가거라”라는 암시를 받았는데 “정말로 신기하구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일어설 힘도 없을 정도로 쇠약하여 병상에 누워 있는데, 흰색
옷 차림에 흰색 베일을 쓰고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은 수녀님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순간 ‘백의 천사’가 찾아 왔구나 하면서 금방 병이 살아지고 날아 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수녀님은 기도를 드린 후 작은 화장품 쌤플병 모양의 병을 거꾸로 들고 저의
손 바닥에 대고 빙빙 돌리면서 비비니 기름 형상의 액이 조금 스며 나왔습니다.
저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수녀님도 모른다고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보통 다른 사람에게는 액이 전연 스며 나오지 않는데 유독 요셉 형제님의 손바닥에만 액이 스며 나오네요” 하시면서 놀라워 하셨지요.
그 이후로 저는 회사를 퇴직하고, 아침 10시면 어김없이 아파트 뒷산으로 출근하였으며, 병원에서 주는 약을
먹고, 염분이 없는 싱거운 식이요법으로 생활하여 왔습니다.
그러던 5년 전부터는 간 이식을
안 해도 될 정도로 호전이 되었으며, 3년 전부터는 병원 약도 끊고 항체까지 생성되었습니다.
담당 의사 이야기는 이런 경우는 100명 중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다고 하시면서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그 때도 성모님께서는 저와 함께 계시면서 저에게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주셨지요.
또 다시 이야기는 3년 전으로
돌아 갑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빼내어 관리실 앞에 주차하고 아내, 마리아와 함께 서울 삼성병원 문상 가려고 네비를 맞춘 다음 출발하려고 악셀을 서서히 밟는 순간 출고 3년된 소나타는 갑자기 큰 굉음을 내면서 돌진하기 시작하는데 핸들이나 브레이크는 전연 작동이 안되고 계속 직진만
하지 않는가?
주민들이 굉음에 놀라 전부 밖으로 나왔으며,
차는 순식간에 경비실을 통과하여 차로에 세워둔 스타렉스 차를 정면으로 받아 운전석과 조수석의 에어백이 터지면서 정지하였으며 저와 마리아는
정신을 잃고 119로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지요.
TV나 신문에서 보아 왔던
급발진 사고 였습니다. 차는 완파되어 폐차되었으며 저는 오른쪽 새끼손가락만 불어진 상태이나 마리아는
아직도 그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답니다.
여기도 기적은 어김 없이 찾아 왔지요.
도로에 정차하여 있던 스타렉스가 없었다면 차는 그대로 가수주공 아파트의 옹벽을
정면으로 받아 우리 두 사람은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시간이 낮 12시경이라 수퍼를 드나드는 주민과 아이들이 엄청나게 많이 붐비고, 차도 많이 다니는 시간대였는데도 사고
순간에는 사람과 자동차가 하나도 없었다면 누가 믿을 수 있을 까요? 대형 인사사고 와 추돌사고가 이어질
뻔 하였지요
사랑하올 어머니께서는 그 당시도 저의 자동차 뒷자리에 앉으셔서 저희 두 사람을
보호하고 계셨지요.
그래서 오늘 이 자리를 빌어 어머니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감사의 편지를 올리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어머니,
어머님께서는 평생토록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생활하시며 더 없는 겸손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받아 들이셨고 한 순간도 악마에게 곁을 허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일찍이 아들 예수님과 더불어 친절과 인내로 저희들이 겪는 어려움들을 하느님 앞에 중개해 주셨고 저희들
삶의 매듭들을 풀어내는 모범을 보여 주셨으며 지금까지 하셨던 그대로 저희들을 평안하게 지켜주시고 주님 안에서 지내게 하여 주십니다.
저희들이 결코 죄악과 잘못을 저지르는 일 없이 언제든 모든 것 안에서 주님을
발견하게 해주시고, 저희들 마음을 주님 안에 두게 해 주시며
오늘 오스카빌 형제 자매들을 통하여 주님께 봉사하게
하여 주소서. 아멘.
2015년 5월 22일 저녁 이정교 요셉이 올립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멘
이정교요셉 오스카빌 형제회장님! 정말 주님과 성모님의 은혜안에 살아오신 life story 정말 감동적 이었습니다.
겉으로 언제나 웃으시며 기쁘고 감사하시다며 말씀하시는 마리아 자매님과 깊은 대화를 못했는데 두분의 삶에 주님께서 지금까지 이끄심은 사랑 그 자체이시네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