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the voice and the guitar of Dire Straits"
다이어 스트레이츠 시절의 사운드로 담담하게 세상사를 그려낸
mark knopfler 의 두 번째 솔로 앨범[Sailing to philadelphia]
마크 노플러의 이름을 알고 있다면 '어쩌면' 그는 지독한 영화광일지도 모른다. 그의 전 밴드가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였다는 사실보다 그가 작곡한 주옥같은(!) 명곡들은 '브룩클린으로 가는 비상구' 나 'Cal' 또는 '왝 더 독' 같은 영화 사운드트랙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이것은 지나치게 마크 노플러의 이름값에 어울리지 않는 설명인지도 모른다. 마크 노플러가 이끌었던 밴드 다이어 스트레이츠가 80년대에 발표한 명곡<Sultans Of Swing>의 감동을 잊지 못하고 그의 족적을 따라 라이브러리를 채워 놓았던 음악팬이라면 당연히 그를 기억할터. 물론 <Sultans Of Swing>이 아니더라도 다이어 스트레이츠가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했던 시절에 발표한 <Money For Nothing>이나 <Brothers In Arms> 같은 곡들로도 충분히 그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여기에서 더 나아가 티나 터너(Tina Turner)의 재기작 [Private Dander]의 앨범 타이틀곡을 작곡했다는 사실이나, 마크 노플러의 음악세계와 그다지 관계없어 보이는 록 밴드 아즈텍 카메라(Aztec Camera)의 [Knife]의 프로듀서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는 경우라면 이미 마크 노플러의 음악을 꿰차고 있는 팬이라고 할만하다. 아, 오히려 다이어스트레이츠가 해산하기 직전 마크 노플러가 오랬동안 꿈꿔왔던 컨트리 사운드의 프로젝트성 밴드 노팅 힐빌리스(Notting Hilbillis) 활동에 더욱 관심이 간다거나, 아니면 컨트리와 재즈의 경계에 서 있던 쳇 앳킨스(Chet Atkins)와 함께 [Neck & Neck]을 발표했던 시절의 청명한 기타톤을 사랑하는 팬들에게는 마크 노플러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하는 문제는 거의 우문(愚問)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마크 노플러와 동생 데이빗 노플러, 그리고 베이시스트 존 일슬리(John Illsley)가 주축이 되어 결성된 밴드 다이어 스트레이츠가 1977년에 결성되었으니, (이미 다이어 스트레이츠가 해산했다고 하지만) 마크 노플러는 이미 20년 이상 음악활동을 해온 셈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뮤지션일수록 자신이 가진 창작열을 이기지 못해 밴드 생활을 하면서도 틈틈이 솔로앨범을 발표하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지만, 마크 노플러의 경우는 좀 다르다. 그는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활동을 제외하면 음악적 재능의 대부분을 영화음악에 쏟아부으면서 자신의 솔로 활동을 영화음악 작곡에 바쳤다. 1983년의 'Local Hero'를 시작으로, 'Cal' 과 'Princess Bride', 영화와 음악 모두 국내외에서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던 'Last Exit To Brooklyn' , 섹스 스캔들로 전전긍긍하던 클린턴 대통령의 상황과 유사하게 진행되어 화제가 되었던 대통령 풍자영화 'Wag The Dog' , 그리고 지난해 발표한 'Metroland' 까지 거의 사운드트랙이었다. 물론 이 모든 작업들은 전적으로 마크 노플러 혼자만의 작업이기 때문에 솔로앨범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공식적인 그의 첫 솔로 앨범은 정확히 음악계 데뷔 20년만인 1996년작 [Golden Heart]였다. 다이어 스트레이츠 시절부터 독특한 기타와 보컬을 선사했던 터라 이 솔로 앨범은 영국 앨범차트 9위까지 진출하면 밴드를 떠난 솔로활동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다이어 스트레이츠 시절이나 그동안 발표했던 사운드트랙의 분위기와 별반 다를 것도 없어 솔로앨범이라고 말할 것도 없는 그저그런 앨범이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았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음악세계를 선사해야 하는 영화음악에서도 마크 노플러의 특유의 청명하고 낮은 톤의, 그러면서도 전통을 현대에 능숙하게 적용시켰던 그가 전곡을 만들어내며 여전히 번득이는 재능을 과시했던 작품이 바로 [Golden Heart]였다는 것은 음악으로 충분히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이 앨범에 이어 4년만에 마크 노플러의 두 번째 솔로앨범 [Sailing To Philadelphia](2000)가 공개되었다. 솔로 데뷔작에서 공동 프로듀스를 담당한 찰리 아인리(Charlie Ainley)와 마크 노플러가 여전히 앨범 프로듀서로 나서고 있는데, 이번에도 특별히 혁신적인 사운드나 새로운 시도 등은 없다. 오히려 다이어 스트레이츠 시절의 사운드를 담고 있다는 전작에 비해 더욱 강하게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사운드로 회귀하고 있다. 특히 다이어 스트레이츠가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면서 상업적/비평적으로 최고조에 이르렀던 [Brothers In Arms] 시절의 사운드를 기본으로(하지만 전체 사운드의 색채는 <Money For Nothing>보다 <Brothers In Arms>에 더 가깝다.), 프로그레시브 록적인 색채까지 띄고 있었던 그 이전 앨범들의 분위기까지 담고 있다. 게다가 솔로 데뷔작과 마찬가지로 이 앨범에서는 가이 플레처(Guy Flecher)같은 그의 오랜 동료들을 비롯해 포크록계의 거물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와 밴 모리슨(Van Morrison)을 초빙해 마크 노플러가 표현하고 싶었던 음악세계에 가장 근접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는 것도 큰 특징이다. 탄력적인 드럼과 마크 노플러 특유의 기타, 그리고 오브리 헤이니(Aubrey Haynie)의 바이올린이 70년대의 포크록 향취까지 전해주는 첫 번째 싱글 커트 곡 <What It Is>은 이 앨범의 사운드에 대한 기본적인 가이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제임스 테일러가 보컬 트랙에 참여해 마크 노플러의 낮게 읊조리는 보컬과어울리는 앨범 타이틀곡 <Sailing To Philadelphia>에서는 (앨범 전체에서 독특한 질감의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페달 스틸기타 연주자 폴 프렝클린의 연주가 돋보인다. 미국 독립선언서 낭독으로 자유의 상징이 되어버린 필라델피아의 하늘, 앨범 재킷으로도 표현된 그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이곡과 함께 또 한명의 거목 밴 모리슨이 보컬로 참여한 <The Last Laugh>는 <Why Worry>에서 노래한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밴 모리슨의 카랑카랑한 보컬이 관현악과 공간감을 살린 마크 노플러의 기타와 어울리고 있다. 황금을 찾아헤메던 시절 유명한 장소였던 실버타운 이야기를 담은 <Silvertown Blues>는 물질과 행복의 크기/상관관계에 대해 아주 음울하고 불길하게 조명한다. 플루겔혼 사운드가 인상적인 <El Macho>나 < Prairie Wedding>의 스토리 텔링은 마크 노플러의 관조적인 시선 속에 표현되고 있는데, <Prairie Wedding>에서 배킹보컬로 참여한 포크 뮤지션 질리언 웰치와 데이빗 로링스의 들릴 듯 말 듯한 협력이 이 곡의 깊이를 더해준다. <The Last Laugh>와 유사한 사운드를 배치해 앨범의 일관성에 일조하고 있는 <Wanderlust>나 다시한번 질리언 웰치와 데이빗 로링스의 보컬이 등장하는 <Speedway At Nazareth>는 컨트리 스타일로 진행되는 스토리텔링이 인상적이다. 네바다주의 모하비 사막에서 불어오은 모래로 연상되는 과거의 이야기를 그린 <Sands Of Nevada>와 글렌 틸부룩과 크리스 디포드가 백보컬로 참여한 앨범의 마지막 곡 <One More Matinee>를 통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세상사를 덤덤하게 묘사하면서 앨범에 전반에 드러난 관조적인 시선을 정리하고 있다.
이 앨범은 그동안 마크 노플러가 느꼈던 사회의 불행하고 어두운 일면들, 또는 따뜻한 과거의 어떤 부분을 잃어 버리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잡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의 언어는 도덕교과서적인 어법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낮게, 마치 밥 딜런이 그랬던 것처럼, 주변의 사물들을 담담하고 이성적으로 바라보면서, 그것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긍정적인 시선까지 그윽하게 담고 있다. 음악적으로만 본다면 그의 솔로 앨범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예전의 사운드로 복귀한 다이어 스트레이츠' 라고함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그때의 다양한 시선들을 따뜻한 인간애로 바라보고 있는 마크 노플러 개인의 시선을 가득 담고 있다는 점에서 솔로 앨범의 역할을 충분히 다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마크 노플러의 기타와 보컬은 솔로 앨범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보여준 바 있지만 이 두번째 솔로앨범에서는 더욱 개인적이고 진솔한 시선들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이것이 필라델피아 상공에서 묘사해내기 시작한 그의 여행을 통해 들려주고자 했던 것들이다. 마크 노플러는 남의 인생을 그린 영화의 음악적 형상화에서([Golden Heart]에 이은) 이 솔로 앨범속에서 자신의 느낌을 아주 낮지만 강하고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글 / 한경석 2000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