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느낌 싸한 살인 사건
신성한 매실 758
그로부터 몇 달 후, 관내 부촌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연락받은 최림은 즉시 출동했다.
그 집의 주인 부부는 파칭코와 동시에 대형기획부동산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형사들은 동업자 혹은 조폭이 개입한 원한에 의한 살인이라고 단정했다.
그런데 최림은 이 집의 흉흉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최림은 온갖 악령들이 뒤덮고 있는 집인 걸 눈치챘다.
그 말은 이게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란 걸 느낀 것이다.
‘느낌이 매우 싸한데 ….’
그런데 이곳에서 유족과의 면담을 요청한 최림은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죽은 주인 부부의 딸은 바로 수애인 것이다.
“수애?”
“최림? 네가 어떻게?”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오롯이 자신을 이해해주던 여자.
신분의 벽이 높아 사모했지만 끝내 고백도 못 하고 서울로 떠나왔던 남자.
최림은 수애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부모님께 이런 일이 생겨 유감이야.”
“네가 담당인 거 같아 그나마 다행이야.”
그런 수애도 번듯하게 경찰이 된 최림을 진심으로 반겼다.
잠시 잠깐의 대화 중에 최림은 수애가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신학 대학원에 다니는 것을 알았다.
그때였다.
헉!
최림은 수애 뒤에 있는 악령이 그를 보자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수애에게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망설이던 최림은 마침내 용기를 내었다.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 부모님을 해친 놈들을 잡아들일게. 약속해.”
그러면서 최림은 아주 옛날 그녀에게 받았던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이건?”
“그래, 네가 떠나던 날 내게 준 손수건이지.”
“이걸 아직도 간직했어?”
최림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때 형사팀장이 최림을 급하게 불렀다.
“이봐, 최 형사. 빨리 와봐.”
“미안해. 나중에 이야기하자.”
최림은 급하게 사건 현장인 집 내부로 들어갔다.
집 내부는 현관부터 피투성이였다.
주인 부부 즉 수애의 부모님은 거실에서 살해당한 거로 보였다.
“여기 좀 봐. 두 분 모두 너무나 잔혹하게 살해당했어. 아무리 살인사건이라지만 이런 건 나도 처음 보는데?”
현장에 있던 감식반 역시 매우 놀라는 눈치였다.
그때 한 형사가 팀장에게 말했다.
“피해자가 엄청난 원한을 산 모양입니다. 이런 경우, 가해자가 직접 범행을 저질렀다기보다 사람을 산 것으로 보입니다만.”
팀장이 되물었다.
“킬러를 고용했다?”
“네, 그렇지 않으면 저 정도로 사람을 죽이진 않죠.”
팀장은 그의 말에 동의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이건 뭐냐? 두 분 이마에 이 숫자 말이야.”
갑작스러운 팀장의 말에 최림은 죽은 주인 부부의 이마를 쳐다보았다.
놀랍게도 두 분 다 666의 숫자가 새겨 있었다.
‘이건!’
최림은 단번에 이 사건이 악령들과 관계가 있다는 걸 알았으나, 애써 모른체하였다.
옆에 있던 형사가 툭, 하고 내뱉었다.
“범인이 싸이코인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형사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이거 골치 아프겠는데? 이봐, 최 형사는 어떻게 생각해? 이 숫자말이야.”
“제가 뭘 알겠습니까? 그보다 저는 집 내부를 한 번 둘러보겠습니다.”
“왜?”
“그냥요. 뭔가 집히는 게 있어서요.”
최림이 감이 뛰어나다는 걸 잘 아는 팀장은 쉽게 승낙했다.
“그렇게 해. 혹 무슨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니.”
최림은 팀장에게 목례한 뒤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누군가 이 집으로 침입했다면 현관이 아니라 2층 창문이라고 생각했다.
최림이 2층 복도 끝에 있는 창문 쪽으로 다가설 때였다.
언뜻 보니 창문이 반쯤 열려있었다.
‘그래, 여기야.’
최림은 고개를 내밀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떤 시커먼 물체 하나가 지붕으로 올라가는 게 아닌가.
휘리릭.
‘저건?’
놈은 아까 수애 뒤에 있다가 사라진 그놈이었다.
최림은 창문 밑에 놓인 화분에서 돌 하나를 잡았다.
그리곤 창문 사이로 빠져나와 놈에게 돌을 던졌다.
퍽!
정확히 놈의 뒤통수를 맞힌 모양이었다.
놈이 지붕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최림은 생각할 겨를없이 미끄러져 내려오는 놈에게 몸을 날렸다.
“잡았다!”
둘은 2층에서 바닥으로 바로 떨어졌다.
쿵!
그런데 사람들 눈엔 최림이 실수로 홀로 떨어졌다고 여겼다.
하긴, 악령이 일반인들 눈에 보일 리가 없었다.
수애 역시 정원에 있다가 떨어진 최림을 보고 기겁했다.
“괜찮아?”
수애를 비롯한 사람들이 몰려들자, 그 틈을 노려 놈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래도 다행인 건, 최림이 놈의 흔적을 손에 꽉 쥐었다는 것이다.
그 흔적이라는 건 끈끈한 검은 타액이었다.
“전 괜찮습니다.”
“최 형사, 무슨 일이야? 응?”
쿵, 하는 소리에 거실에 있던 팀장마저 밖으로 나와 최림의 상태를 점검하였다.
최림은 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해봐야 믿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실, 실수로 2층 창문에서 떨어졌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이것 봐. 허리를 많이 다쳤네. 병원에 가봐야 하지 않겠어?”
수애가 때맞추어 119를 불렀다.
최림은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곧 119차량이 왔다.
차 안에서 최림은 수애에게 몇 가지를 물었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넌 어디에 있었지?”
“난 어제 교회에서 철야 기도하다가 새벽녘에 들어와서 2층 내 방에서 자고 있었어.”
수애는 부모님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랬구나.”
“응, 잠결에 1층이 너무 시끄럽기에 내려가 봤는데, 그땐 이미 ….”
“그래,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보다.”
최림은 잠시 말을 끊다가 다시 이었다.
“최근에 부모님에게 무슨 일이 생겼어? 그러니까 누군가와 크게 다투었다든지 아니면 사업상 원한을 산 일 말이야.”
그러자 수애는 뭔가 짚이는 게 있다는 듯 무릎을 쳤다.
“그러고 보니 어떤 회장님과 파칭코 사업을 넘기는 문제로 부모님이 매우 화낸 적이 있어.”
“어떤 회장님을 말하는 거야?”
“사성물산 전두태 회장님 말이야.”
수애의 입에서 놈의 이름이 나오자 최림은 깜짝 놀랐다.
“그자를 수애도 알아?”
“그럼, 그분은 부모님과 오랜 사업 파트너야.”
최림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런 그에게 수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혹시 그분과 우리 부모님의 죽음이 상관있어?”
최림은 길게 설명할 수가 없어 짧게 말했다.
“돌아가신 부모님 이마에 각각 ‘666’이란 숫자가 새겨져 있었어.”
그건 수애도 미처 보지 못한 거였다.
“정말?”
“교회에 다니니 666이란 숫자의 의미를 넌 알겠지?”
독실한 기독교도인 수애가 그 의미를 모를 리가 없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시기 전 7년 대환란 동안에 적그리스도가 전 세계의 인간을 장악할 사탄의 시스템 표로 이용되는 숫자가 666이잖아.”
“맞아, 잘 알고 있네.”
“그런데 그게 무슨?”
수애는 매우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자가 적그리스도야.”
최림의 대답에 수애는 깜짝 놀랐다.
“설마.”
수애는 차마 생각지 못한 거라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최림은 차분하게 그녀를 설득했다.
“곰곰이 생각해봐. 오늘 사건 이전에 그런 징조가 있었을 거야.”
수애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최림에게 툭, 하고 던졌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 부모님이 그분더러 살아 있는 예수님이라고 부른 적은 있었어. 그런데 최근에 그런 믿음을 철회한 적이 있었어. 난 애초부터 믿지 않았지만.”
그 말에 최림은 눈이 퍽, 하고 뜨였다.
“부모님이 믿음을 철회하였다고?”
“응.”
“그런데 넌 왜 처음부터 안 믿었지?”
“그분은 내가 보기엔 이단이었어. 전두태란 사람은 대기업 회장이면서도 가끔 집회를 연 적이 있어. 그 집회에 부모님 강요로 몇 번 참석했는데.”
“그런데?”
수애는 잠시 말을 끊더니 다시 이어갔다.
최림이 보기엔 매우 창백한 얼굴이었다.
“그 자리에서 자기가 예수, 즉 살아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외쳤어. 이건 신학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영락없는 이단이고 사이비 교주의 행세였단 말이야.”
“그렇구나.”
“최림, 넌 전두태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구나? 그치?”
“좀 알고 있어.”
“그럼, 정말로 그가 우리 부모님을 죽였다고 생각해?”
“부모님이 배교했다며? 아마 그런 점이 이유인 거 같아. 그래서 놈들이 666이란 숫자를 이마에 새긴 거고.”
수애는 최림의 말에 확신이 들자, 그만 오열했다.
그런 수애를 최림은 살포시 안아주었다.
“왜 그래? 이건 네 잘못이 아니잖아.”
흑흑
“아니야. 내가 정통신학에 어긋난다고 부모님을 설득했거든. 그래서 당신들께서 내 말을 듣고 배교한 거야. 그러니 내가 부모님을 죽인 거나 다름없어.”
최림은 안타까웠지만, 지금 모든 걸 말할 수 없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저 그녀를 안고 침묵으로 위로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119차량은 병원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