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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Histoire de la philosophie, 1926-1932)[3권 합본 1938]
브레이어(Emile Bréhier, 1876—1952)
제7권, 1850년후 19세기, 20세기,788-1021
첫째 시대 1850-1890 789 / 둘째 시대 1890-1930 889 (초고완 45SKD)
제6장 형이상학 La métaphysique 862-879
실증주의와 비판주의의 충돌에도 불구하고, 형이상학은 우리가 연구했던 그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형이상학은 변형된다. 형이상학은 더욱 분석적이 되고, 더욱 반성적이 된다. 뗀(Taine)가 헤겔에 관해서 말하듯이, “대형 건물들은 들어올려(relever)지지 않는다.” [들어 올리다(relever)의 독일어 지양(aufheben)이다. 헤겔이 변증법적 통일을 하면서 들어오렸지만, 생성의 본연으로서 자연(본성)은 들어올려지는 것이 아니라, 뿌리로부터 자라남이 이어지고 지속하는 것이다. 이 철학, 생성의 철학이며, 운동, 흐름의 철학이다. (46RLH)]
제1절 페히너 Fechner 862
자연철학의 취향은 19세기 중반경에 독일에서 사라진다. 이때 페히너는 1848년에 나나 또는 식물의 영적생명(Nanna oder über das Seelenleben der Pflanzen. 1848)과 경전주해서 또는 하늘과 저세상의 사물들에 관하여: 자연관찰의 입장(Zend-Avesta oder über die Dinge des Himmels und des Jenseits. Vom Standpunkt der Naturbetrachtung, 1851)(3권)을 썼는데, 여기서 그는 자연철학의 중요주체를 다시 다룬다. 식물은 영혼을 가지고 있고, 땅은 보편적 영혼을 소유하며, 지상의 모든 피조물의 영혼은 땅의 일부이다고 한다. 별들 천국의 천사들이고, 그들의 영혼은 신에 속한다. 그것은 마치 우리들의 영혼이 땅에 속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런 몽상들은 세기 초에 자연철학들의 변증법적 구조와 전혀 다르다. 이 몽상은 오히려 꽁뜨(Auguste Comte, 1798-1857)와 장 레에노(Jean Reynaud, 1806-1863)의 신화에 오히려 닮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에게서 플라톤과 스피노자의 반향을 들을 수 있다. 특히 그가 열등영혼들의 생산을 이 열등영혼을 포함하는 우등영혼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이미는 심리학적으로 해석된 스피노자주의 이다. 피조물의 영혼들은 땅의 영혼에 속하고, 우리 속에서 태어나는 이미지들과 사유들은 우리의 영혼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알려주는 내재적 반성은 신의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관점을 우리의 고유한 의식에 향하게 한다면, 우리는 의식의 것을 무엇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의식은 과거에서 현재로 또 미래로 현실적 진보가 아닌가? 의식은 먼 것과 가까운 것을 연결하지 않는가? 의식은 그 자체로 분해되지 않는 통일성(une unité, 제일성) 속에 수천개의 다양성을 포함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세계의 법칙은 동일한성질들을 부여받은 통일성(제일성)이다. 이 성질들이 무제한적 방식으로 세계에 속한 것을 제외한다면.” 경전주해서 또는 하늘과 저세상의 사물들에 관하여: 자연관찰의 입장(Zend-Avesta oder über die Dinge des Himmels und des Jenseits. Vom Standpunkt der Naturbetrachtung, 1851, 3권)(제2판 117쪽) [가장 먼 것과 가장 가까운 것, 있는 것(존재)와 없는 것(무), 완성된 것(형상)과 완성되지 않은 것(질료), 1와 0, 경계(peras)와 경계없는 것(apeiron) 사이의 연결이 생성과 운동의 철학이다. / 나로서는 생성와 운동이 ‘있는 것’인데 경계를 확장하는 것이고, 경계가 줄어들거나 멈추는 것이 ‘없는 것’ 또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확장과 축소(정지)를 일으키는 원인이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46RLH)] 플로티누스(Plotinus, 205-270)가 불러낸 동일한 자연의 다른 이미지를 다시 불러낸다. 즉 세계 속에는 하나만의 의식, 즉 신의 의식이 있다. 각 의식은 겉으로는 구별되어있지만 어떤 한계(un seuil, 문턱)에 의해 특성화된다. 그 문턱을 넘어서 신적 의식[en gr. nus]의 제한된 몫(portion, 할당된 부분)이 생겨난다. 그리고 영혼은 문턱이 낮은 만큼이나 더욱더 높이 고양되어 있다. 신 속에서만 더 이상의 문턱이 없으며, 의식은 총체적이다. 이리하여 영혼들 사이의 불연속성은 현상일 뿐이다. 이 형이상학은 칸트에 적대적이고 또한 인식론(과학론)에 적대적이다. 이 형이상학은, 총체적 계시처럼, 사물들 자체의 “밤의 관점”(la vision nocturne)에 대립으로서 “낮의 관점”(une vision de jour)이 주어진다. 여기에서, 처음에는 거의 무시된체 있고 난 뒤에, 20세기 초에 특히 미국에서 그리고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에서 만나게 되는 공감(sympathie)의 개념이 나온다. 칸트와 헤겔에 반대하는 페이너는 물리학에서는, 정신의 표현과 기관보다 매카니즘 속에서 그것을 볼려고 했다는 점에서, 동력학자가 아니라 오히려 기계역학자이며 원자론자이다.
페히너의 심리물리학(la psychophysique)은 심리물리학의 기초(Elemente der Psychophysik, 1860)(2 권)에서 잘 나타나는데, 탐구방식의 정확성과 실증적 성격 때문에, 형이상학적 몽상과는 대비를 이룬다. 독일 해부학자 생리학자인 베버(Ernst Heinrich Weber 1795-1878)는 같은 해부학자이며 생리학자인 루돌프 바그너(Rudolf Wagner, 1805-1864)가 편집한 Handwörterbuch der Physiologie mit Rücksicht auf physiologische Pathologie. 4 Bände. 1842–1853.에서 「촉각(Tastsinn)」 항목을 썼는데, 1846년에 베버는 자극과 감각 사이에 연관 실험했었다. 페히너는 감각을 자극의 대수함수로 동등하게 하는 법칙을 정식화 하였다. [베르그송은 베버-페이너 법칙이라 명하였다.] (46RLH)
제2절 로쩨 Lotze 863
로쩨(Rudolf Herman Lotze, 1817-1881)는 괴팅겐과 베를린에서 교수를 지냈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 칸트주의와 헤겔주의에 반대하여 라니프니츠의 체계를 새롭게 했다. 1841년에 나온 저술 형이상학(Métaphysique, 1841)에서, 그는 “목적론적 관념론”을 채택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는 범주들의 이론은 온선(le Bien)에 대립시킨다. 범주들의 이론은 단지 가능성에만 관한 것이고 또 어떠한 현상의 출현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 보는 반면, 온선은 세계의 진실한 실체라고 한다. 의학 심리학과 영혼의 생리학(Medizinische Psychologie oder Physiologie der Seele, 1852)에서, 그는 영혼의 정신성을 자아의 단일성(l'unite)에 의해 증명한다. 사실상 그는 영혼과 신체의 상호 작용(l'action réciproque)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에게서 이 상호 작용은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영향의 이행을 전적으로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타동적 인과성(la causalité transitive)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인과성은, 사물에서처럼, 수동자(le patient) 속에 원인을 옮겨 놓는 원인의 영향을 실현하는데 귀착할 터인데, 그런데 수동자는 논리적 규범과 반대로 이렇게 실체들로부터 속성들을 구별한다. 상호 작용은 유일한 전체에 속하는 부분들 사이에서 가능하다. “다원론는 일원론 안에서 완성되어야 한다. 일원론 덕분에, 타동적 현상으로써 작용은 내재적 작용 안에서 변한다. ... 이 작용은 현상적으로 두 개의 유한한 존재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진실로, 절대자는 그 자신에만 작용한다.” 그의 국지적 표시들(les signes locaux)의 이론은 이런 생각들을 지각의 문제에 응용이다. 한 대상은, 대상의 속성들이 그것에 분리되는 방식에서 그리고 주체 속에 부과되어 있다는 방식에서. 인식하는 주체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외적 영향은 신호들일 뿐이다 . 이 신호들을 초대하여 영혼은 자신 속에서 불변하는 법칙에 따라서 내적 상태들을 생산한다.
그는 소우주(Mikrokosmus, 1856-1856)(1권, 1856. 2권, 1858. 3권, 1864)라는 저술이 자연과학에서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 1769-1859))의 우주: 물리학적 세계서술의 초안(Kosmos: Entwurf einer physischen Weltbeschreibung. 1845–1862)와 유사하기를 원했다. 그는 수많은 실증적 자료들을 모으면서 신체와 영혼, 인간과 역사를 다루었다. 이 전체적으로 그의 의도는 과학의 결과들을 통일하는 것이었다. 그는 매카니즘을 정신적 실체에 종속시키는 라이프니츠(Leibniz, 1646-1716)의 방법을 따랐다. 시간과 공간의 세계는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정신의 개념작업에서 보면, 그는 엄격하게 단자론자이며, 페히너처럼 속에는 영혼들 자체로 열등 영혼들을 이해할 수 있고 인정하지 않았다. 똑 같은 이유에서, 그는 범신론이 아니라, 유신론자이다. 인격적 신은 영혼의 서원에 응답한다. 소우주(3권 559-616)에서 쓰기를, “그에게 예감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높은 존재를 실재적인 것으로서 생각하고자 하는 그의 욕망은 인경성의 형식과 다른 어떤 형식으로도 만족될 수 없다. ... 진솔한 실재적인 것은 존재하고 존재해야만 하며, 물질이 아니며, 아직은 (헤겔의) 이념보다 좀 모자라는 것이만, 그러나 그것은 신의 생생하고 인격적인 정신이며, 이 정신이 창조했던 인격적 정령들(d'esprits, 영혼들)의 세계이다. 그것이 바로 선의 장조이고 선한 것들의 장소이다.” 로쩨는 포개진 세 가지 실재성을 인정한다: 즉 가능한 모든 실재성의 조건들인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법칙들의 영역; 가능적인 것으로부터 연역될 수 없고 우리에 지작에 의해서 알려지는 사실들, 즉 특이한 실재성들; 세계에 대한 우리들의 직관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가치의 영역 즉 세계의 특수한 평면.
따라서 그는 한 세기를 넘어서 중단 되었던 철학의 분야들의 균형을 확립하고자 시도했다. 철학 체계(System der Philosophie, 1874, 1879 (I. 논리학(Logik, 1874), II. 형이상학(Metaphysik, 1879)에서 그는 심리학과 완전히 독립적인 “순수 논리학”을 탐구했다. 그 사유에서 심리학적 작용과 그 내용 사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논리학은 그 타당성 속에서 내용만을 고려한다. 순수 논리학의 근원은 플라톤에게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들을 현존하는 사물자체로서 간주하는 잘 못된 견해를 가졌다. 왜냐하면 이데아들은 가치의 현존이와 다른 현존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 당시 사람들은 철학을 인식론에 환원시키려고 했었는데, 그는 형이상학과 인식론을 구별하고자 원했다. (46RLI)
제3절 스피르 Spir 865
아프리카노 스피르(Africano Spir 1837-1890)는 러시아계 이다. 그러나 그는 처음에는 독일에서 살았고 그리고 스위스 제네바에서 살았다. 그의 모든 이론은 실체적으로 그의 말에서 들어있다. 그는 1895년 형이상학지에 발표한 논문 「비판철학의 시론(Essais de philosophie, 1895)」(129쪽)에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두 가지 목표들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즉 진실한 인식, 또는 현재 있는 것의 형이상학적 설명. 말일 사람들이 첫째 목표를 제시한다면,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사물들을 인식하는데 이를 것이고 또 사유의 근본법칙을, 도덕의 토대와 종교의 토대를 이해하는데 이를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 사람들은 사물들의 형이상학적 설명을 부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정상(la normale)도덕과 변칙(l'anomalie, 별종) 사이에 절대적 대립을 확정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전자에서 후자를 연역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삶을 토대 지울 수 있는 가능성과 형이상학적 설명의 불가능성이란 이 두 주제들 중에서 우선 둘째 주제부터 보자. “그는 지실한 본질 속에서 헤겔이 그렇게 주장했던 것처럼, 자신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있을 수 없고, 자기 자신과 반대를 생성하는 것이 있을 수 없다. 한 대상이 스스로 자기 자체를 부정하는 것, 그것은 오히려 대상이 정상적인 방식을 갖지 않는 다는 증거이고, 또 대상이 자신의 진실한 본질에 낯선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규범(la norme), 그것은 동일성의 원리이고, 정상적 존재, 그것은 자기 자신에 동일한 존재이다. 스피르는 새로운 파르메니데스의 확신으로 이것을 주장한다. 변화하는 것에, 생성에, 복합물에 존재를 부여하는 것은 사유의 자살일 터이다. 대부분의 형이상학은 온절대(l'Absolu)로부터 조건지워진 생성을 창조 또는 유출의 길을 통해 연역하는 것은 착각(l'illusion)이었다. 스피르의 주장은 칸트의 사유를 이점에서 유지하고 있는데, 이 사유는 후기 칸트주의자들에 의해 변형되었다. 그는 현상에서 존재로 이행이 불가능하다고 증명했다.
사실상 이 생성(파르메니데스가 말했던 대로 견해의 세계)은 실재성으로부터 모습을 만든다. 흄(Hume)과 밀(Mill)과 더불어 사피르는 생성이란, 마치 생성이 실체에 닮기를 원했던 것처럼, 생성자체에서 느려지고 또는 되돌아오기도 하는 것이라고 보여준다. 또 마치 우리의 심리적 상태들이 영속적 자아의 착각을 부여하는 모든 것들[신체 전체] 속에 유기체화(조직화)되기나 하는 것처럼, 다수의 감감들의 동시성과 집단들의 동질성이 신체적 착각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증명한다. 그리고 이와 같이 비정상인 것은 “체계적으로 조직화된 기만에 의해서, 그것이 자기의 모순적 본성을 감추는데, 그리고 실체의 현상을 덮어버리는데 성공할 수 있는 정도에서만” 존속할 수 있을 뿐이다. “이리하여 그것은 자기 자신에 반대되는 온규범(le Norm)을 증거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온절대자와 비정상자 사이에서 있는 근본적 대립은 착각 없이는 어떠한 타협도 허용되지 않는다. [벩그송도 이 모순은 착각 없이, 마술작대기 없이, 데우스마키나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한다.] 이리하여 우리는 두 주제 중에 첫째에 이르게 된다: 환원할 수 없는 이원성의 인식은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삶에 토대를 놓는다. 이 삶은 어떤 해방(une libération) 속에 있다. 자아는 자신의 비정상적인 개체성을 부인하며 자기 자신을 넘어서게 되며, (아직도 결합과 생성을 함축하는) 의식 그 위로 온절대에 동일화되고자 한다. 이기주의의 부인, 자기 헌신(l'abnégation de soi), 그러한 것이 진실한 현존의 영원성에 참여하는 수단이다. (46RMA)
제3절 하르트만 Hartmann 866
에두아르 폰 하르트만(Karl Robert Eduard von Hartmann 1842-1906)은 1869년에 무의식의 철학(Die Philosophie des Unbewussten, 1869)출한하였다. 이 작품은 그의 도덕론, 종교철학, 정치와 사회의 문제들 등과 같은 그의 수많은 저술들의 기초로 남게 된다. 또한 범주론(Kategorienlehr, 1896)(1923 재판)과 같은 인식론에서도, 형이상학의 역사(Histoire de la métaphysique (1899)에서도 기초로 남게 된다.
그는 여러 다른 방향의 철학들에서, 빌려온 많은 요소들을 자기 이론 속에 조합하였다. 그 철학들이란 헤겔(Hegel, 1770-1831)에게서, 쇼펜하우어(Schopenhauer, 1788-1860)에게서, 셸링(Schelling, 1775-1854)의 “실증철학”에서, 라이프니쯔(Leibniz, 1646-1716)의 개체주의에서, 그리고 그의 세계에 대한 직관 속에서 많은 정합성을 보기는 어려울 지라도 자연과학들에서 빌어온다. 그의 출발점은 살아있는 존재들[존재자들]의 관찰일 것이고, 특히 그 존재들의 유기체적 기능과 그것들의 본능에 대한 관찰일 것이다. 이 본능들은 어떤 지성을 가정하게 하는데, 그 지성은 인식면에서 기교면서 또 결단의 신속성에서 보면 우리들 지성보다 아주 우월한 지성인데, 그러나 그 지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없이 있다. 따라서 생명은 지적이기도 하고 또 의지를 부여받은 온무의식(un Inconscient)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 이 온무의식은 의식의 열등한 정도가 전혀 아니고, 그리고 소위 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기억 속에 보존된 이미지처럼 무의식적 사실들과 같은 것으로 보아야할 이유도 없다. 하르트만은 이런 사실들의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기억 속에 보존된 것은 하나의 유기체적 상태이다. 무의식에 대립으로서 의식은 분할되어 있고, 묽어진 것처럼 되어 있다. 인간 유기체 속에는 의심할 바 없이 의식과 구별되는 여러 중추들이 있는데, 이 중추들은 두뇌에 묶여있는 [하나의 두뇌] 중추와 달리 바깥에 [두뇌 아닌 온 몸]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마도 동물과 식물에서만 의식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는 분자들 속에도 의식들이 있다.
따라서 하르트만은 “귀납적 추론에 의해서” 심리적 개념과 의식의 개념을 따로 보는데 이르게 되었다. 의식적 심리[영혼] 이외에도, 무의식적 심리가 있으며, 그것의 우월성은 우리에게 유기체적 기능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또한 예술적 영감에 의해서도, 그리고 칸트가 보았던 대로 모든 의식에 앞서서 형성하는 “범주적 기능”에 의해서도 드러난다. [이것들을] 일반화하는 하르트만은 온무의식(l'Inconscient)[아페이론 또는 질료] 속에서 원리를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그 원리는 몇몇 관점들에서는 신의 역할을 하고 다른 관점들에서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의 역할을 한다. 세계의 창조자로서 온무의식은 비합리적 방식으로 지성없는 순수의지에 의해 행동했다. 존재의 출현은 어떤 목적에도 관련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온무의식은 또한 지성임으로 해서, 창조된 세계에서는 목적성이 있다. 이 목적성은 사물들의 구조에(유리가 유기체 속에서 그 구조를 보는 것처럼) 확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운행에도 확장되어 있다. 세계의 운행은, 비존재나 파괴로 향하는 최종 경향성에 의해서 세계의 현존에 대한 비합리성을 보상한다. 쇼펜하우어에서처럼 의식은 인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단계와 더불어, 이러한 최종의 무화(cet anéantissement final)에 도달하는 수단들 중의 하나이다.
사람들은 하르트만의 학설에서 쉽게 한 체계를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 체계의 염세주의적 뉘앙스는 쇼펜하우어의 것과 매우 다르며, 또 셸링의 신지학에 훨씬 더 가깝다. 하르트만의 신은 구원될 필요가 있는 어떤 신(un Dieu)이며, 처음에는 순수 의지이고 그리고 창조적 힘인 이 신은은 지성적 원리에 의해 구출된다. 이 지성적 원리가 창조 [과정]에서 착오를 벌충하는 의식을 도입한다. 이것은 하나의 신화인데, 이 신화는 하르트만이 아마도 자기도 모르는 가운에 재발견했던 천년왕국보다 더한 신화이다. 그가 지닌 크리스트교의 인격적 신에 대한 반감, 자유 개신교(protestantisme)의 낙관론과 “저속한 이신론”(déisme trivial)에 대한 반감, 비인격적 신에 대한 그의 취향, “왜냐하면 우리 속에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며 그[그 신] 속에 있는 우리이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것”, 이것들은 바로 정신 상태의 자연적 반작용들이다. 그의 제자들 중의 한 철학자인 아르뒤르 드레브스(Arthur Drews, 1865-1935)는 크리스트 신화(Die Christusmythe, 1909에서 예수의 역사적 현존을 부정하였다. 그는 많은 이유들을 제시하면서 이 종교적 학설 속에서 전통적인 게르만족의 특성을 보았다. 다른 한 철학자는 레오폴드 찌글러(Leopold Ziegler, 1881–1958)이다. 그는 종교적 학설[예수의 역사적 현존]을 인간의식 속에서 세계에 대한 무의식적 정신의 해방 과정이라 정의했다. 그는 이 과정에 충분한 이유를 제공한다. 드레브스는 유신론적 오류의 근원을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cogito, 코기토)에서 보았다. [스피노자가 제국속의 제국이라 명했다]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존재를 의식에 동화시켰다. 그것이 합리론의 토대이다. 또한 영국 경험론도, 분트(Wundt, 1832-1920)의 심리학도, 내적 경험 내용을 자료(le donné)의 총체성에 동화시키면서 영혼을 부정하는 딜타이(Wilhelm Dilthey, 1833-1911)도 마찬가지다. (46RMB)
제5절 프랑스에서 유심론[정신주의] Le spiritualisme en France
꾸젱에서 제기된 유심론은 제2제국 통치하에서 특히 철학자 쥘 시몽(Jules Simon, 1814 -1896)의 경력에서 주목받는 근친성을 갖는데, 자유로운 대립도 포함하고 있다. 시몽은 1851년 교수들에게 요구된 충성 서약(la prestation de serment)을 거부했다. 자연종교(La Religion naturelle, 1856), 의식의 자유(La Liberté de conscience, 1857), 자유(La Liberté, 1859)라는 작품들에서 그는 공법학자인 라불레이(Edouard Laboulaye. 1811-1883)가 쓴 자유당과 그 프로그램(Le Parti libéral, 1863)(3판)에서와 동일한 생각들을 옹호했다. 그 생각들은 소위 프랑스 전통이란 이름으로 강요되었던 반동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그 운동의 출발점들 중의 하나는 알렉시스 토끄빌(Alexis-Henri-Charles Clérel, vicomte de Tocqueville, 1805-1859)이 쓴 미국 민주주의에 대하여(De la démocratie en Amérique, 1835였다. 이 책은 민주주의의 수평적 평등주의에 반대하여 정치적 자유들을 옹호했다. 그런데 시몽은 다른 작품들 노동자(L'Ouvrière, 1861), 학교(L'École, 1864)에서 정치적 원칙들의 실천적 응용을 시도했다.
꾸장 전통에 부합하는 이 시대의 유심론은 역사철학에서 많은 작업을 했다. 아돌프 프랑크(Adolphe Franck, 1809-1893)에 의해 지도하에 편집된 철학과학들의 사전(Dictionnaire des sciences philosophiques, 1844-1855), 셰녜(Antelme-Édouard Chaignet (1819-1890)의 그리스인들의 심리학의 역사(Histoire de la psychologie des grecs. Tome premier: avant et après Aristote, 1887), 쥘 시몽의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역사(Histoire critique de l'école d'Alexandrie, 1844-1845), 바쉬로(Étienne Vacherot, 1809-1897)의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비판적 역사(Histoire critique de l'École d'Alexandrie, 1846-1854), 샤를 레뮈자(Charles de Rémusat, 1797-1875) 연구들과 중세에 관해서 연구서를 쓴 오레오(Jean-Barthélemy Hauréau, 1812-1896)의 연구들, 부이에(Francisque-Cyrille Bouillier, 1813-1899)의 데카르트 혁명의 역사와 비판(Histoire et critique de la révolution cartésienne, 1842), 이러한 것들은 이 학파의 주요한 작업들 중의 몇 가지이다. 여기에 덧붙여야할 것이 있다. 마르땅(Thomas-Henri Martin, 1813-1844)의 주목할 만한 연구로서, 철학사와 과학사를 통합을 시도한 티마이오스편의 주석(Commentaire du Timée)(1841?)이 있다.
거꾸로 [꾸장 철학에서] 절충주의는 새로운 방식의 포기 또는 해석이다. 바쉬로(E. Vacherot 1809-1897)는 형이상학과 과학(La Métaphysique et la science, 1858)에서 나중에 쓴 새로운 유심론(Le Nouveau Spiritualisme, 1884)에서와 마찬가지로, 체계들 사이의 선택의 임무를 상식(공통 감각)에 맡기는 철학에 반대했다. 게다가 그는 체계들 사이에 환원할 수 없는 대립을 돋보이게 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인식의 세 가지 근원이 있다고 한다. 상상, 의식, 이성. 상상은 감각적 사물들의 모델[형상]에 근거하여 실재성을 표상하는데, 이는 유물론에 이른다. 의식은 우리 자신들을 활동적 존재로서 우리에게 인식하게 하는 것으로 우리를 힘(la force)으로서 실재성을 표상하기에 인도한다. 이는 유심론적 역동론에 이른다. 이성은 원리들을 파악하는 능력(faculté)로서 우리를 스피노자의 관념론과 같은 관념론으로 향하게 한다. 이는 사물들 속에서 무한한 권능의 필연적 전개를 알게 한다. 이 세 방향들을 조정할 수 있는 어떠한 가능성도 없고, 나머지 하나를 다른 둘에 의존하여 선택할 수도 없다. 그리고 바쉬로에 나타나는 아주 다른 종류의 절충주의도 있다. 그 절충주의는 현존의 영역과 이상의 영역 사이의 구별에 근거한다. 현존의 조건들은, 우리가 이 조건들을 규정할 있는 그대로, 유한한 존재들이 상상이 표상하는 존재들처럼 현존할 수 있는 그대로이다. 현존은 완전한 무한자와 양립할 수 없다. 그리고 존재론적 증명과는 전혀 거꾸로, 바로쉬는 신의 완전성 속에서 신의 현존을 거절하는 이유를 본다. 완전자는 이상의 영역에서 나온다. 그와 같은 이상은 현존에게 자기의 의미와 자기 방향을 제시한다. 몇 가지 관점을 통해서 보면, 그의 학설은 르낭(Renan, 1823-1892)의 학설에 닿는다. 르낭의 학설은 있는 그대로 보면 헤겔철학의 성찰에서 나온다. 또 그의 학설은 같은 유심론 학파 안에 있는 까로(Elme-Marie Caro, 1826-1887)의 반박을 불러일으켰는데, 왜냐하면 카로가 자신의 저술 신의 관념과 새로운 비판들(L'Idée de Dieu et ses nouveaux critiques, 1864)에서 바쉬로, 르낭, 뗀 등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뽈 쟈네(Paul Janet, 1823-1899)는 꾸장의 절충주의를 보다 충실하게 이어간다. 그는 절충주의 속에서 모든 학설에서 공통적인 것으로 있는 기계적인 선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학에 객관적인 방법의 적용을, 즉 모든 과학들에서 동의를 얻는데 성공했던 그 방법의 적용을 본다 (참조: 빅톨 꾸장과 그 작품(Victor Cousin et son œuvre, 1885), 418쪽). 철학은 절대자의 어떠한 직관에도 근거하지 않는다. 그리고 의심할 바 없이, 자신에 관한 반성에 의해서 사람들은 절대자, 즉 신의 인격을 발견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절대자에 대한 인식인데, 그 절대자는 전체 인간적인 것이고, 실증과학의 발전과 더불어서만 진보한다. 목적인들(Les Causes finales, 1877)과 같은 저술에서, 그는 제반 과학들에서 자신의 재료를 취한다. 그리고 도덕론(La Morale, 1874)에 쓰여진 그의 도덕론은 그의 절충주의적 특징을 매우 잘 드러낸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주의(l'eudémonisme)와 칸트의 엄격주의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의무의 완성은 인간 본성을 자기완성으로 향하여 발전하는 것 이외 다른 것이 아니다. 완전한 존재는 우리의 주권이자 동시에 우리의 이상이다. 뽈 쟈네의 마지막 저술인 형이상학과 심리학의 원리들(Principes de métaphysique et de psychologie, 1897)에서는 꾸장의 유심론의 본질적 주제를 전개하여, 자기에 대한 반성과 내적성찰(l'introspection)에 의해 형이상학적 실재성들에 접근한다. (46RMD)
제6절 유심론적 실증주의: 라베송, 라슐리에, 부트루 Le positivisme spiritualiste: Ravaisson, Lachelier et Boutroux 870
1867년에 형이상학이 도처에서 신뢰를 상실하던 때, 라베송(Félix Lacher Ravaisson-Mollien, 1813-1900)은 19세기 프랑스 철학에 관한 보고서(Rapport sur la philosophie en France au XIXésiècle 1868)에서 “실재론, 즉 유심론적 실증주의의 형성을, 그리고 의식을 생성원리로서 삼는다는 것을” 예견했고, “정신은 그 자신 속에서, 자기가 재인식하는 어떤 현존을 문제 삼는다. 모든 다른 현존은 그 현존으로부터 도출되고 또 의존한다. 그 현존은 그의 행동과 다른 것이 아니다.” 라슐리에(Jules Lachelier 1832-1918), 부트루(Emile Boutroux 1845-1921),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은 뒤 이어지는 20여 년 동안에 그에게 근거를 부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운동은 라베송이 창발자이었으며, 1938년 학위논문인 습관론(L'Habitude, 1839)에 의해서 시작된다. 이 운동의 특징은 이 실재론은 데카르트적 유심론과 구별한다. 이것은 그가 생명의 관념에 부여한 의미화 작업이다. 데카르트처럼 생명을 기계론에게 환원하는 것, 그것은 영혼을 물질로부터 따로 떼어내는 것이며, 실재적인 것의 연속성과 단절하는 이원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 이원론은 이미 18세기에 독일 의사이며 화학자인 슈탈(Georg Ernst Stahl, 1659-1734)의 애니미즘에 의해 또 라베송과 같은 이가 큰 역할을 한 몽뻴리에 학파의 생기론에 의해 공격을 받고 있었다. 1839년에 그가 들었던 셸링(Schelling, 1775-1854)의 강의들에서 마지막 교훈으로부터 주요주제로 삼은 것은 자연과 정신의 내재적 결합이었다. 셸링의 실증 철학은 꽁뜨(Comte, Comte, 1798-1857)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셸링은 실증철학에는 그의 실재론과 우연주의가 헤겔의 관념론에 대립되어 있다. 그 셸링의 철학이 라베송에게 “실재론, 즉 유실론적 실증주의”를 암시해 주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라베송은 기질적으로 셸링의 형이상학적 거대한 프레스코 벽화 같은 체계에는 전혀 빠져들지 않았다. 그는 정확하고 제한된 사실, 즉 습관 속에서, 의식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정신과 물질의 연속성을 파악하고자 애썼다. 판명한 의식은 목적의 관념과 그 실현 사이에서 반성에 의해 채워져야 할 어떤 틈을 가정한다. 습관 속에서는 이 틈이 약화되고 그리고 사라진다. 습관은 지적 작용으로 남아있지만 의식 없이 있다. 바루찌(Jean Baruzi 1881-1953)의 판본 습관론(De l'habitude, 1838)에서, “무매개적 지성은 대립항들의 거리들, 대립입장들의 환경들을 거쳐 가며 또 측정하는 반성을 정도의 차이에 따라 이어간다. 거기에서는 아무것도 주체와 사유의 대상 사이에 분리되어 있지 않다. ... 습관은 점점더 실체적 관념(une idée substantielle)이 된다. 습관을 통해 반성으로 이어지는 모호한 지성, 즉 대상과 주체가 뒤섞인 무매개적 지성은 실재적직관(une intuition réelle)이다. 여기에서 실재적인 것과 이상적인 것, 존재와 사유가 뒤섞여 있다”(36-37쪽).습관에 의해서 사람들은 자연이 무엇인지를 발견한다. “영혼 자체 한 가운데에서, 또한 영혼이 활성화하기도 하고 활성화되지 않는 열등한 세계에서 조차, 욕망의 비반성적인 자발성이, 즉 자연의 비인격성이 발견된다. 마치 습관의 진보가 행동으로 다시 내려가게 하는 그 한계가 있는 것처럼.”(54쪽) [조건 반사와 같은 습관 기억이 있다. 의식적 기억에서 반성적 자발성이 상향하려 하는데, 몸은 아직도 습관기억에 젖어 있는 것과 같다. 습관 기억은 비반성적 자발성, 자연의 비인격성이라 할 수 있다. (46RME)] 따라서 온자연(la Nature, 본성)은 기계적이고 맹목적 권능(la puissance)가 아니라 그 대상을 무매개적으로 지각하는 욕망 속에서 전체이다. 따라서 그 자연은 온자유(la Liberte)와 통일된다.“모든 사물 속에서 자연의 필연서은 연쇄(la chaîne)이다. 이 연쇄위에 자유가 짜여져 있다(tramer). 그러나 [이것은] 이 살아있고 운동하는 연쇄, 욕망의, 사랑의, 은총의 필연성이다.”(59쪽)
습관에 관한 그의 주제에 앞서서 라베송은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해서, 한 논문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시론(Essai sur la métaphysique d'Aristote, 1837)을 썼는데, 이미 사유의 완성된 형태이다. 그의 해석은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이 이데아들에 대한 플라톤 이론에 대해여 행했던 비판으로 되어 있다. 그는 그 해석으로 온자연의 운동과 생명을 설명할 수 있는 장점을 갖게 된다. 그 설명은 또한 욕망을 통해서이다. 욕망은 온지성(Intelligence)을 향해, 즉 이데아처럼 빈 추상이 아니라 진실한 실재성인 온지성을 향해, 온자연을 밀고 나가게 한다. 그리고 셸링의 신화의 철학(Philosophie der Mythologie, 1842)의 시작 방식에 따라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속에서 크리스트교의 도입을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권능과 작용을, 물질과 사유를 외부로부터만 재통합시킨다. 외부를 무시하는 온선(un Bien)을 향한 자연의 욕망 대신에, 크리스트교는 피조물을 위하여 신의 친절한 온사랑(l'Amour)으로 대체한다. 이를 통해서 실재적인 것과 이상적인 것, 권능과 작용은 연대하게 되고 판명하게 구별된다 할지라도 따로 떨어질 수 없게 된다.
“진실한 철학은 온사랑의 본성(la nature de l'Amour)을 깊이파고 들어갈 것이다.”칸트와 스코틀랜드 철학자들의 잘못은 오성만 즉 추상적 개념들의 능력들만을 사용하고서, 내적 경험이든 외적 경험이든 사실들에 도달 할 수 없다는 것을 믿었다는 것이다. 멘 드 비랑이 그 모델로서 제시한 생생한 반성에서 사람들은 영혼의 실체에 도달한다. 그러나 제일 먼저 반성에서 보아 만일 그 영혼이 의지와 노력이라고 드러난다면, 노력에 포함되어 있는 경향과 욕망은 이미 착함과 더불어 시작되었다는 통합의 감정을 가정하고 있다. 이 통합(l'union)은 사랑과 다른 것이 아니며, 영혼의 진실한 실체를 구성한다.
예술에 관한 라베송의 성찰은 밀로의 비너스(La Vénus de Milo, 1871)에서 참조할 수 있다. 이 저술은 형식의 딱딱함 아래에서 예술의 조화와 내적통일을 이루는 많은 것들을 파악하고자 한 것이며, 또한 아름다움, 우아함, 유연한 선들 아래서 물결치는 듯하며 뱀처럼 구불구불한 운동을 파악하고 한 것이다. 그 때 선은 이 운동의 흔적인 셈이다. 게다가 형태들 아래에는 그것들 나름의 음악을 파악하고 한 것이다. “소묘를 배운다는 것은 형식들이 만든 노래를 파악하기를 배우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목소리, 즉 노래는 그래도 세계를 포함하는 모든 것들 중에 가장 표현적이다. 따라서 사물들이 말하는 무엇인가에 감성적이 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음악을 배운다는 것. ..”보편적 조화란 사물들 속에 퍼져있는 신적 우아함(은총, 자연스럼)처럼 있다. 따라서 그러한 것은 자연의 존재자체이다.
쥘 라슐리에(Jules Lachelier 1832-1918)는 프랑스 철학 속에 반성적 방법의 개념을 도입했다. 출판된 그의 작품을 통해서 그의 학설의 의미와 특히 풍미하는 맛을 파악하는 것을 아주 어렵다. 그의 학설은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강의 속에서 전개되었다. 그의 관점들 중의 몇 가지는 가브리엘 세아이유(Gabriel Séailles, 1852-1922)가 쓴 『라슐리에 철학(La philosophie de Lachelier, 1920)』을 통해서 알려진다. 라슐리에는 관념연합론적 경험론에는 거의 만족하기 않았다. 그 경험론은 그가 보기에 회의론에 이르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또한 절충주의 또한 거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절충주의는 그 당시 대학에서 지배적이었다. 사실상 절충주의는 “한편으로는 사유를 다른 한편으로는 대상을 놓는다. 한편으로 사유라는 측면에서 그것이 지니는 고유하고 내적인 결정론을 지닌 사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상의 측면에서 그 사유의 대상은 이미지 일뿐이며, 의식은 대상에 도달하지도 못하고 포함하지도 못한다.” 거기에서 그가 묻고자 하는 모든 것을 회의주의에 일치시킨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낯선 어떤 사물을 자신의 사유 밖에서 생각하기 위해서 자신의 사유가 그 자체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실체성이 사유 그 자체 속에 있을 경우만 확실함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주제가 라슐리에에서 정확히 된 것은 칸트와 접촉에서 이다. 그러나 이 주제는 자기의 모델이 되는 성격들과는 전혀 다른 성격들과 더불어 소개된다. 칸트는 경험의 가능성과 일단 구성된 대상을 사유하는 가능성을 구별했다. 이 경험 가능성은 인과성의 원리과 같은 구성적 판단에서 생겨나며, 그리고 이 사유 가능성에서 목적성의 원리와 같은 반성적 판단이 도출된다. 라슐리에는 이런 구분을 하지 않았다. 그가 쓰기를 “만일 사물의 현존의 조건들이 사유의 가능성과 동일한 조건들이라면, 우리는 절대적으로 선천적인(a priori)인 조건들을 규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조건들은 우리 정신의 본성 자체로부터 결과하기 때문이다.” 귀납법의 기초(Du fondement de l'induction, 1871)에서 그는 한편으로는 인과성의 원리를 증명하고, 이 원리를 가지고 [칸트 순수이성 비판의] 「선험적 분석」편의 논증을 통하여 보편 메카니즘을 증명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대강 따라가면서 목적론의 원리를 증명한다. 비록 그가 이 두 가지 경우에 동일한 가치를 부여한다 할지라도.
이 발산은 특성이 있다. 귀납법의 기초(Du fondement de l'induction, 1871)에서 사유의 운동은 [칸트의] 삼 비판서의 것과는 매우 다르다. 인과성의 원리와 목적성의 원리 사이에서, 라슐리에는 칸트의 구별과 아주 다른 구별을, 즉 추상과 구체 사이에 있는 구별을 본다. 여기서 추상이란 메카니즘의 빈약한 실재성이고, 구체란 경향과 열망의 풍부한 실재성을 의미한다. 그가 이해한대로 “사유”란 세계의 객관성의 조건보다 훨씬 더 많은[풍요로운]것이며 온선(le Bien)과 존재의 충만을 향한 도약이다. 이 도약은 결과적으로 실재성의 구성적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넘어가야할 항으로서 메카니즘을 제시한 것이다.
또한 라슐리에가 경험조건들에 대한 칸트의 분석적 방법보다 그의 논문 「심리학과 형이상학(Psychologie et Métaphysique 1885)」에 사용했던 종합적 방법을 더 선호했다는 점에 놀랄 필요가 없다. 종합적 방법은 사유의 법칙들과 존재의 법칙들의 동일성을 증명하는 데 훨씬 더 적당하였다. 귀납법의 기초에서는 어떤 법칙에 의해 세계가 지배되는 지를 잘 제시하고 있다. 세계는 사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사유는 절대적으로 독립적인 현존을 갖는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 현존이 종합적 작용(l'opération)에 의해 그것[현존]의 대상들을 생겨나게 한다는 것을 본다면, 우리는 사유의 현존에 대해 확신한다. “절대적 현존은 그[종합적] 작용의 발견에 의해서 직접적으로만 증명될 수 있다. 그 작용을 수단으로 사유는 스스로 사유자체를 제시하고 행동 원리를 얻는다”. 존재의 관념 또는 진리의 관념은 자체로 제기되기도 하고, 사람들이 부정한다고 할지라도 주장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 사람들은 그 관념이 현존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는 이 주장이 상징(symbole)으로서 삼는 것은, 순간이 무한하게 스스로 나타나는 시간(le temps)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제일차원 즉 길이(logueur)이며, 결국에는 동질인 것이 동질적인 것을 규정한다는 매카니즘의 필연성이다. 그리고 부차적 현실화(un second acte)에 의해서, 이 필연성은 감각의 이질적 다양성들을, 공간의 이차적 차원, 즉 넓이 위에 펼쳐지는 강도의 양을 만든다. 반면에 이들 정도의 일체는 살아가는 의지를, 즉 목적을 향한 노력을 구성한다. 마지막으로 자발적 작용에 의하여, 사유는 존재의 근원으로 사유자체에 관해 반성하고, 그리고 사유는 주권적 자유, 즉 의식 자체의 자유가 된다. 그 자유의 본성은 자기 필연성과 자기 목적성을 지니면서 한 계기(un moment) 일뿐이다.
이 정식들은 그 자체가 불충분하다 할지라도, 라슐리에의 변증법이 그의 정신이라는 측면에서 후기칸트주의자의 변증법과 어떤 점에서 구별되는지를 이해하게 해 줄 수 있다. 사유의 각각의 현실화(chaque acte)는 그 현실화에 앞선 것에 분석적 필연성도, 종합적 필연성도 아닌 그 어떠한 필연성에 의해서도 매여있지 않는다. 각 현실화를 생산하기에 예견하기에도 충분하지 않다. 절대적 자유로 향하는 사유 일체의 흐름 안에서 그 현실화를 고려할 때만 그 현실화는 그 자체에만 연결되어 있다.
또한 사유는 자기 운동 안에서 철학이 도달한 형식적 절대자에 스스로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파스칼의 도박에 관한 노트(Notes sur le pari de Pascal」에서 “철학의 가장 높은 물음, 즉 철학적이라기보다 이미 더욱 더 종교적인 물음은 형식적 절대자로부터 실재적이고 살아있는 절대자로 이행, 신의 관념으로부터 신으로 이행에 관한 것이다. 만일 삼단논법이 거기서 실패한다면, 신앙이 거기서 위험에 처하게 되고, 존재론적 논증은 도박에게 자리를 내주게 된다.” 이 살아있는 신는 크리스트교 신앙의 신이며, 그 신은 라슐리에의 신이며, 이 변증법의 극단적 귀결이다. 플로티누스에서처럼 우리의 진실한 내면성은 항상 우리가 높이 올려놓은 일시적 형식들 보다 더 높이 있다. 그 내면성은 살아있는 신에 우리가 동화하는 데 있다. 그 신은 우리의 실재성이고 유일하고 진실한 실재성이다. 라슐리에가 그의 강의에서 말하기를 “몇몇 행동들(Certains actes 실현화들)은, 이것들이 상징적으로 사물의 절대적 바탕을 재현하는 한, 절대적 가치를 잡을 수 있다. .. 한편으로는 영혼의 다양한 기능들 속에서 인간 영혼의 절대적 통일성이. 다른 한편으로는 인격들의 다양성 속에서 영혼들의 절대적 통일성이. ... 의식에 그리고 자유에 장애를 일으키는 모든 것을 물리치는 것이고, ... 인간영혼들의 다양성을 신속에 영혼들의 통일성으로 가장 가능하게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그러한 것이 무엇보다도 자비(chatrité 사랑) 권하는 근본적 도덕률들이라. 그러한 이유로 라슐리에는 품성(la conduite)을 심지어는 정치적 품성을 개인을 넘어서는 권력들(des forces)보다, 특히 전통보다 기초로 삼는다. 왜냐하면 법률(la loi)은 오래되어 낡아 가면서, 입법가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이성처럼 비인격적이 되어 가지 때문이다. 그는 불확실하고 변덕스런 공통의지로부터 도출된 민주정치에 적대적이다. 결국 그에게 있어서 모든 안정성, 모든 종교 공동체(toute communion)는 이성의 상징이다. 쉽게 알아채게 해주는 동기들 때문에, 상징의 개념은 라슐리에 사상에서, 특히 “쓰여지지 않은 글”(non écrit)로 된 그의 사상에서 제일 도식의 역할을 한다. 여전히 상징주의는 유한자를, 무한자에까지 자신의 현존을 부여하는 학설에서는, 정당화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었던가?
부트루(Emile Boutroux 1845-1921)의 사상의 연구는 그의 영향과 그의 수많은 저술들에 의해서 그 다음 시기에 나타난다. 귀납법의 기초(1871) 약간 후에 1874년에 그는 자연법칙의 우연성에 대하여(De la contingence des lois de la nature, soutenance de thèse, 1874)을 출간하였고, 그리고 그것을 완전하게 채운 저술로 과학과 철학에서 자연법칙의 관념(De l'idée de loi naturelle dans la science et la philosophie, 1895)을 냈다. 1850년 이후로 사람들은 스펜서(H. Spencer, 1820-1903)와 더불어 뷔흐너(L. Büchner, 1824-1899)와 다른 철학자들이 르누비에(Ch. Renouvier 1815-1903)가 과학주의라 불렀던 세계의 개념화 작업을 얼마나 발전시켰고 또 세속화하였는지를 안다. 그 개념화 작업은, 그 작업이 가정했던 목적성과 자유에 대해 부정하면서, 엄격한 법칙들에 의해 연쇄되어 있는 현상들의 직물과 같은 것이다. 이 개념화를 주장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과학적 인식의 요청을 구실로 삼았다. 부트루의 작품의 커다란 새로움이란 그 범위가 거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소위 주장하는 과학적 결과물들을 완전히 젖혀두고서 과학적 작업의 분석 자체에 의해서 다음과 같은 점을 탐구했다는 것이다. “만일 오성에 내속되어 있는 필연적 연결의 범주가 결국 사물들 자체 속에 있는 것이라면, ... 만일 주어진 세계가 진실로 환원할 수 없는 우연을 어느 정도 표명한다면, 자연의 법칙들은 그 자체들로서 충분하지 않고 법칙들이 지배하는 원인들 속에 그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거기에서[우연의 정도에서] 일어났을 터이다. 따라서 오성의 관점이 사물들에 대한 인식의 결정적인 관점이 아니었을 것이리라.”(참조: 자연법칙의 우연성에 대하여, 1874)(제2판, 1895, p.4-5.)
특히 부트루는 결정론이 근거하고 있는 보존의 법칙들을 고려한다. 이 법칙들이란, 살아있는 힘의 보존, 열의 평형 법칙, 유기적인 연결접속들과 상관관계들의 법칙들(lois des connexons), 심리물리적 평행론의 법칙, 심리에너지 양의 영속적 법칙. 그리고 역학적, 물리학적, 생명적, 심리학적 과학들이 연구하는 정도차이들의 각각에 맞는 법칙들은 모든 우연을 배제하는 원리들인 것 같다. 그러나 처음에는 존재의 정도가 있는 그만큼 많은 법칙들이 있다. 그리고 가장 덜 완전한 것에서 가장 완전한 것으로 위계들이 있는 이 정도차들 속에서, 우월한 정도는 열등한 정도에 연관하여 우연적(contingent)이다. 이 우연, 즉 환원불가능성은 실증적 자료(une donnée)이다. 이 우연은 꽁뜨(Comte, 1798-1857)에게 그의 학문 분류의 출발점에서 제공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더 많은 것이 있다. 보존의 법칙들은 하나의 문제를 제시한다. 그 문제는 응용(적용)에서는 각양각색 임에도 불구하고 일반형식에서는 동일한 채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주어진 양의 영속성은 필연적인가? 기계 역학에서 힘의 보존의 원리는 경험보다 월등한 어떤 형이상학적 본질도 그 힘 속에서는 우리에게 알게 해주지 않는다. 그 법칙은 사물들로부터 전혀 발설되지 않고, 오히려 경험에 의해 알려진 기계 역학적 요소들의 한정된 체계로부터 발설된 것이다. 게다가 계속되는 두 상태들 사이에서 절대적 동등의 확정[확인]은 엄밀하게는 불가능하다. 결국 영속성이란 변화 속에서 영속성이다. 따라서 이 영속성은 그 자체로서는 설명되지 못하는 변화를 가정한다. 사람들은 존재의 모든 정도들에 유사한 관찰들을 반복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각 정도에서 우연이 증가일로 있다는 것을 더욱더 확정해야만 한다. 이리하여 생명의 수준에서는, 생명적 에너지가 측정하기에 거의 불가능한 사태 - 왜냐하면 생명적 에너지는 수[양]에 저항하는 질의 관념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 이라는 것일 뿐만이 아니라, 또한 사람들이 생명체들의 변형들에서 역사적 요소를, 즉 완성되어 가거나 또는 퇴행되는 변종가능성을, 확인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도 역시나 사람들은 의식 속에서 이런 종류의 보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더욱더 “법칙은 사실(le fait 만들어진 것)에 접근하게 되어 있다. 그 때부터 일체의 보존[법칙]은 개인(개체)의 행동들[만들어가고 있는 것]을 더 이상 규정하지 못한다. 보존은 개인에 의존한다. 자기 자신에게만 법칙이 적용되는 그 류(le genre)가 되었던 개인은 법칙의 지배자가 된다. 개인은 그 법칙을 도구로 전환시킨다. 그리고 그는 하나의 상태를 꿈꾼다. 그 상태에서 자기 현존의 매순간에 그는 이처럼 법칙과 동일한 것 이리라” (위 책, 130쪽)
이리하여, 잘 이해된 실증성은 유심론과 일치하게 된다. 과학이 완성되었을 때는 과학이 다루는 연역적 특성이 우리들을 속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필연성이란 원리 속에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귀결 속에 있다. 따라서 그것은 “실증적 과학들의 가치”(위 책, 139쪽)이다. 부트루는 이것을 형식적으로 문제 삼는다. 이 과학들은 존재로부터 안정적이고 영속적인 것 만을 수집한다. “존재의 창조적 근원에서는 그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 그래도 남아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험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반대로 경험을 넓혀야 한다. 과학들은 귀납법에 쓰이고 법칙 확립에 소용되는 것만을 자료들로서 유지한다. 그 과학들은 사물의 역사적 측면을 빠뜨리고, 존재 속에는 연역하기에 불가능하고 또 예견할 수도 없는 작동(d'action, 행동)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 식으로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의 경험은 예견불가능한 작용을 설명하지 못한채 내버려 둔다. 완성되고 완전한 설명은 도덕적 삶에서, 그리고 선을 향한 매료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신은 이 존재 자체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까기 접근하려는 노력하는 가운데 우리들 자신의 깊은 곳(심층)에서 그 존재의 창조적 작동을 느낀다.” 그리고 존재들의 모든 위계질서는 우리에게 자유의 수단과 조건들로서 나타난다. 그 자유는 심리적 숙명에 의존해서 조금씩 조금씩 증가한다.
부트루가 열심이었던 철학사 연구들은 그의 학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의 학위 부논문인 라틴어 제목은 「데카르트 작품들에서 영원한 진리들에 대하여(De veritatibus aeternis apud Cartesium, 1874))」(번역, 깡길렘 Canguilhem, 1927) 이다. 여기서 그는 데카르트가 신의 작동의 기초 자체에 놓았던 우연을 연구했다. 그는 독일철학 사가인 에두아르 젤러(Eduard Zeller, 1814-1908)의 철학사의 역사적 전개에서 그리스인들의 철학(Die Philosophie der Griechen in ihrer geschichtlichen Entwicklung, 1844-1852)(Trad. fr.: Émile Boutroux, 1877-1884) 번역하면서 첫째 권의 위하 서문에서, 젤러와 마찬가지로 헤겔(과 변증법들)에 반대하여, 이성의 역사라고 하는 역사적 진보에서 우연을 제기할 기회를 갖었다. 그 이성ㅇ은 사물들의 과학적 설명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 이성은 자기의 종교, 도덕, 예술과 더불어 인간 전체를 감싸고 있다. 철학사 연구(1897) 이외에도 유고집으로 나온 것을 참조하면 칸트 철학(Philosophie de Kant 1926), 철학사 새로운 연구(Nouvelles Etudes d'histoire de la philosophie, 1927), 독일철학사 연구(Etudes d'histoire de la philosophie allemande, 1927) 등을 작업하면서,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라이프니츠. 칸트 등에게서, 즉 이 대체계들 속에서, 그는 모든 인간을 고려하는 이성이 활동 중에 있다는 것을 제시했다. 또한 불협화음에 끌려서 매료되어 그가 주의를 기울인 것은 자연적이었다. 여기서 불협화음이란 인간 정신의 내부자체에 모순을 도입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의 첫째 주제 밑바닥에 있엇던 과학과 종교는 말년 저술들 중의 하나에서 현대철학에서 과학과 종교(Science et religion dans la philosophie contemporaine, 1908)과처럼 제목으로 나타난다.
이 작품 이전에, 그는 파스칼(Pascal, 1900)과 피히테의 철학: 신비주의의 심리학(La Philosophie de Fichte: Psychologie du mysticisme, 1902)을 다루고, 그리고 나서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911)에까지 그는 자신의 고민들의 통일하였음을 보여준다. 과학적 정신은 종교적 정신에 반대하는 이성의 반작용에서 생겨난다는 것, 그리고 이성의 승리과 종교 정신의 사라짐은 하나이자 동일한 사실일 뿐이라는 것이 사실인가? 자 그렇다면, 그가 제기한 문제라는 것은 이런 과학적 정신의 아주 명료성(sa netteté) 속에 있다(참조 현대철학에서 과학과 종교(1908)(345쪽). 그에게 있어서 화해는 상호 양보로부터도 부과된 제한으로부터도 올 수 있지 않고, 오히려 깊이 파고 들어가는 데서 올 수 있다. 종교에서는 그것이 무엇으로 되어있을 지라도 과학적 정신과 민주주의에 족쇄를 채운다는 것이 문제일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 종교는 그 자체로 있으면서, 정치적 형식들로부터 또 사람들이 종교를 가두려고 시도해왔던 텍스트들로부터 스스로 멀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게다가 그 자체로 되돌아 가면서, 그것이 기본적으로 정신 안에 또 진리 안에 있는 신의 찬미인 것이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절충적 유심론은 관용 속에서 종교에 마주 대하는 철학자의 정상적 태도를 보게했다. 그런데 부트루의 유심론에서 “관용의 원리는 잘못 찾아온 용어이며, 경멸적인 호의의 표현”이다(위 책, 392쪽). 그래서 좀 더 나아가 사랑에까지 갈 필요가 있다. “여러 다른 사람들 집에게 종교적 인간이 만난 바에서, 그 인간은 원칙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그와 닮아 있다는 점들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그와 다른 점들을 좋게 평가한다.”
참고문헌 Bibliographie 879
J. Wahl(1888-1974), Tableau de la philosophie française, 1946. p. 147-165.
VI.
F. Ravaisson(1813-1900),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시론(Essai sur la métaphysique d'Aristote, 1837), 2 vol., 1837-1846; 3e vol., éd Devivaise, 1953; 철학적 유언(Testament philosophique, 1900), 철학적 유언(Testament philosophique et fragments, 1933)(éd Devivaise, 1933; 습관론(L'Habitude, 1839) 습관론(De l'habitude)(éd. J. Baruzi, 1927); 19세기 프랑스 철학(Philosophie en France au XIXé siècle 1868)(5e éd. 1904)
H. Bergson(1859-1941), 라베송의 생애와 작품 La vie et l'oeuvre de Ravaison(dans 사유와 운동자(PM), 253-291쪽). 로비네(A. Robinet)와 구이에(H. Gouiher)가 편집한 전집(Oeuvre, 1959)(1450-1481쪽). 그리고 이 전집속의 인덱스에서 라베송을 참조하시오.
L. Lachelier(1832-1918), 전집Oeuves(2권 1933)
L. Millet(1921–2021), 라슐리에 철학에서 상징주의(Le symbolisme dans la philosophie de Lachelier, 1959.
G. Mauchaussat(s.d.), 라슐리에의 관념론(L'idéalisme de Lachelier, 1961).
E, Boutroux(1845-1921), 자연법칙의 우연성에 대하여(De la contingence des lois de la nature, soutenance de thèse, 1874), 파스칼(Pascal, 1900), 도덕과 종교(Morale et religion, 1926).
P. Archambault(1883-1950), 에밀 부트루(Émile Boutroux, s.d.)
(46RNA)
{책브레이2409철7권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