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3 주일(생명주일)
요한 복음사가에 의하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세 번 발현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로 주간 첫날 저녁 곧 부활 대축일 저녁에 유다인들이 두려워 떠는 문을 잠가 놓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에게 죄를 용서하는 사명을 부여하십니다(요한 20,19-23). 두 번째로 일주일 뒤 다시 나타나시어 당신의 첫 번째 발현 때 그 자리에 없었던 토마스의 불신앙을 해소해주십니다(요한 20,24-29).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토마스야!)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리고 세 번째 발현이 바로 오늘 복음입니다(요한 21,1-14).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뒤, 그분의 제자들은 갈릴래아로 돌아가, 어부로서 다시 고기 잡는 일을 계속합니다(요한 21,2-3). 베드로를 포함한 7명의 예수님 제자들이 밤새 물고기를 잡았지만 잡지 못합니다. 새벽이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서 “뭘 좀 잡았느냐?” 하고 물으시니 그들은 “못 잡았습니다.” 하고 대답합니다(요한 21,5).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던졌더니 153마리나 되는 물고기를 잡습니다(요한 21,11).
오늘 복음, 곧 요한 21,1-14을 유비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면 각 요소들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배(구원의 방주로서의 교회). 일곱 어부(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교회의 봉사자), 그물을 바다에 던지는 것(세상에 대한 교회의 복음 선포). 물고기를 잡지 못함(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는 복음 선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순명(복음 선포의 중심은 바로 예수님이심).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요한 21,3)
이 말씀은 ‘주님이 없이는 헛수고’라는 소제목을 갖고 있는 시편 127장 전반부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주님께서 집을 지어 주지 않으시면 그 짓는 이들의 수고가 헛되리라. 주님께서 성읍을 지켜 주지 않으시면 그 지키는 이의 파수가 헛되리라. 일찍 일어남도 늦게 자리에 듦도 고난의 빵을 먹음도 너희에게 헛되리라.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이에게는 잘 때에 그만큼을 주신다.”(시편 127,1-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요한 21,10-11)
이 ‘153’이라는 숫자는 우리가 잘 아는 모나미(monami: 프랑스어로 ‘내 친구’라는 뜻) 볼펜의 상표이기도 합니다. 모나미 회사의 송삼석 회장이 하느님의 순리대로 자신의 회사를 경영하겠다는 의미를 담아 출시한 이 볼펜은 명실상부 최고의 히트작이 되었습니다.
① 역사적인 의미: 실제로 153마리를 잡았다.
② 히에로니무스 성인은 에제 47,6-12을 주석하면서 예수님 시대의 그리스 동물학자들이 물고기 종류를 153가지로 분류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현대의 많은 주석학자들은 이 히에로니무스 성인의 해석을 받아들여 요한 복음의 저자가 세상의 물고기 종류가 다 잡힐 정도로 많은 물고기가 잡혔음을 강조하기 위해 이 숫자를 명시한 것으로 여깁니다.
③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153을 1부터 17까지의 수를 다 합한 것으로 보편성과 완전성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17 또한 10이라는 완전수와 7이라는 완전수를 합한 절대 완전수로, 10은 십계명을, 7은 하느님의 일곱 영(묵시 1,4), 곧 성령칠은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합다.
④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에 의한 해석입니다. 100은 완전을 의미하는 숫자입니다. 이러한 예를 마태 18,12에서처럼 목자의 완전한 양 떼의 수는 100마리라는 것, 그리고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씨앗의 완전한 수확은 100배의 열매를 말하는 데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100이라는 수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모이는 이방인들이 가득 찬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다음으로 50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 수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뜻하며, 3은 삼위일체를 나타냅니다. 곧 153이라는 숫자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루어진다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⑤ 153을 ‘하느님의 자녀들’ 또는 ‘하느님의 아들들’이라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בְנֵי־הָאֱלֹהִים’(2+50+10+5+1+30+5+10+40→153)의 숫자 값으로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13절)
이스라엘은 목자이신 주님을 ‘상을 차려 주시는 분’으로 노래합니다. “당신께서 저의 원수들 앞에서 저에게 상을 차려 주시고 제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저의 술잔도 가득합니다.”(시편 23,5) 밤새 지친 제자들을 위해 이 새벽에 손수 빵과 물고기를 구워 건네시는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참된 목자이십니다.
‘인류 구원의 보편적 성사’로서의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세상에 선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명에 의해 그토록 많은 고기를 잡았다는 것은 우리들의 복음 선포 사명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깨우쳐줍니다. 아멘.
첫댓글 신부님.강론 말씀 작성하시너라.너무나 애써주시고 수고많으셨어요.그리고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성경 말씀 안에서 제 마음을 다하여 생활하면서 저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행복한 부활시기 되시고 건강조심하시길 기도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