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소리
세상은 멈춤과 움직임으로 이루어졌다. 모든 것들은 멈추든 움직이든 소리를 만든다. 바람이 만드는 소리는 비원(悲願)이 있든 그저 떨림에 불과하든 내력을 지니고 있다. 새로운 소리가 만들어지는 것만큼이나 사라지는 소리도 많다. 방망이 소리, 다듬이 소리에 담 너머 이웃을 부르는 정겨운 아낙의 소리가 그렇다.
사라져 가는 소리 중 풍요로움이 만든 소리보다 부족함이 만든 소리가 늘 귓가에 맴돈다. 어둠이 내리면 골목길에서 들리던 애절한 목소리, 찹쌀떡이나 메밀묵 장수의 “사려~~” 소리가 그렇고 두부 장수의 삶을 구하던 소리 마찬가지다.
꿈과 희망을 나르던 소리, 학교 교무실 근처 현관에 달려 수업 시작과 끝을 알려주던 종소리도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다. 낭랑 아가씨 가슴을 달뜨게 하던 봄날의 호드기 소리나 골목길 야경군들이 불던 호루라기 소리도 사라진지 오래다. 귀에 익은 소리가 사라져 가는 세상이다.
어릴 적 호드기는 개울가 버드나무가 버들개지와 함께 내주는 호루라기인 줄 알았다. 호드기 소리는 보리밭 높이 날아오르는 종다리 울음 못지않게 청아했다. 봄이 되면 뒷집 형은 호드기를 참 잘 불었다.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집에서 농사일을 거드는 그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달관한 듯 보였다. 형은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를 잘라 버들피리를 만드는 솜씨가 있었다. 볕바른 개울가 버들개지가 꽃잎처럼, 눈송이처럼 날리는 늦은 봄날이면 지게를 받쳐 놓고 한참을 호드기만 불었다.
너럭바위에 누워 버들피리를 부는 형 곁에 앉아 하늘에 뜬구름을 보면 괜히 마음은 싱숭했다. 나도 호드기를 불고 싶었다. 재주가 없는 나는 형에게 하나만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그는 들은 척도 안 했다. 몇 번을 조르면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애들이 호드기 불면 비암 나온다. 비암” 하면서 지게를 다시 걸머지고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 형의 호드기 부는 재주에 재 너머 사는 처녀가 반해 형네 집 고샅까지 찾아왔다는 소문도 돌았다. 형이 만들어 부는 버들피리는 봄 소풍 갈 때 샀던 호루라기보다 훨씬 맑고 구슬픈 소리를 냈다. 하루는 호루라기와 호드기를 바꾸자고 했지만 하늘을 보며 헛웃음만 날렸다. 살던 곳을 떠나 도심에서 부대끼던 이웃집 형은 호드기도 맘껏 불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산모롱이 돌아 흙먼지 풀풀 나는 신작로를 줄지어 걸어가면서 아이들은 호루라기를 불었다. 소리가 크고 모양이 예쁜 호루라기를 가진 아이는 대장 노릇을 했다. 어른들은 호드기를 잘 불면 사당패가 데리고 간다고 으레 겁을 주었다. 조선시대 호드기는 군문에서 의례용 악기로 쓰였지만 산골소년에게는 유년기 봄날을 맞는 자연의 숨결이었다. 나는 호드기를 멋지게 불고 싶었다.
호루라기는 서양 음악에서 오래도록 사용된 악기의 일종이다. 관현악에서 특수한 음향을 내기 위해 쓰인다. 호루라기는 음악 외에도 쓰임이 많다. 군에서 행동을 통일 시킬 때나 특수한 지시를 내릴 때도 호각을 사용한다. 운동경기에서 심판이 사용하는 것도 호루라기다. 영어 단어 Whistleblowing은 내부고발자를 뜻한다. 때문에 조직 내의 비리나 부패를 내부에서 고발할 때 호루라기를 분다고 말한다.
예전에 겨울이 깊어 밤이 길어지면 골목길을 지나는 동네 야경꾼의 딱따기 소리가 잠든 마을을 지켰다. 마치 무슨 나무 방망이가 부딪치는 소리나 둔탁한 타악기 소리 같기도 한 야경꾼의 딱따기 소리는 이른 새벽에도 골목길에서 두런두런 말소리와 같이 들려왔었다. 제사라도 모시는 집은 마치 한식구처럼 그들을 불러 음식도 나누었다.
일찍이 조선에서는 야경을 돌 때 조두(刁斗)라는 식기(食器)를 경계 도구로 사용했다. 함길도를 비롯한 북변방의 성에 여장(女墻)과 적대(敵臺)를 쌓고 밤이면 군졸들이 구리로 만든 냄비 비슷한 그릇인 조두를 썼다는 기록이 전한다.
음식을 끓일 때도 쓰는 다용도 기구이기도 했지만 침범하는 적을 발견하면 놋그릇인 조두를 쳐서 이를 알렸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왜구의 노략질이 심했던 남해안 수자리들도 조두를 이용했다고 한다.
한양 도성 내에서 순라군들이 야경을 돌 때는 딱따기를 사용했다. 호루라기와 같은 용도다. 이는 주로 소리가 명쾌한 나무를 말려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불교에서 쓰는 법구인 목탁은 마음의 도둑, 번뇌를 토하게 하는 용도로 쓰이니 이 또한 딱따기의 일종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어려웠던 시절, 도둑이 많아서였을까. 아니면 불안한 사회질서를 이용한 일종의 정치적 통치술이었을까. 아마 두 가지가 혼재되어 있었을 듯도 싶다. 밤안개 내리고 골목마다 어둠이 짙어지면 마을 장정들이 순번을 정해 시간대별로 야경을 돌았다. 호루라기를 목에 걸고 손에는 박달나무나 참나무 판재로 만든 딱따기를 들었다. 개 짖는 소리에 딱따기를 쳤는지 이 소리에 개가 짖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믐밤이면 유난히 야경군들의 경계 소리가 컸다.
골목을 스치는 바람 소리를 거스르며 들리는 호루라기나 딱따기 소리는 늘 무섭게 들렸다. 동네 청년들은 나무를 다듬어 만든 딱따기를 하나씩 들고 밤 10시가 넘으면 골목길은 물론 고샅길까지 돌면서 “야경이요” 하고 소리쳤다. 이들은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기계음 호루라기를 불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호루라기가 귀했다. 금속으로 만든 호루라기는 운동회 때 달리기 출발 신호나 아이들의 행진 동작을 맞추기 위해 선생님들이나 가지고 있는 신기한 물건이었다. 70년대 들어 플라스틱으로 만든 호루라기가 대량으로 만들어지기 전에는 소풍이나 운동회 때 산 조악한 양철 호루라기도 애지중지하면서 아이들 앞에서 뽐내며 불고 다녔다.
이제는 거의 사라진 호루라기 소리지만 지금도 호루라기 소리는 사람을 흥분시키기도 하고 진정시키기도 하는 묘한 면이 있다. 축구심판의 호루라기가 그렇다. 신작로를 따라 등굣길이나 하굣길을 걸을 때도 누군가 호루라기를 불면 저절로 발이 맞추어지고 대오가 정렬되었다. 호루라기 소리는 경고 소리이자 경계의 소리로 인식되고 사용되었기 때문일 게다.
도둑도 쫓고 화재예방도 하면서 딱따기를 두드리고 호루라기를 불며 마을 고샅길을 돌던 청년들의 야경 소리가 아련하다. 동네에 잔치가 있거나 제사라도 든 날은 야경꾼들의 목소리가 더욱 호기 있고 우렁찼다. 호루라기 소리로 음식을 얻기도 했다.
정권 유지와 권세를 잡기 위한 모략과 암투가 횡행하는 세상에는 진정으로 나라를 위한 용기 있는 호루라기가 필요하다. 호루라기 분 사람에게 왜 쓸데없이 호루라기를 부냐고 혼내는 사회는 자유와 민주가 죽은 국가다.
호루라기 소리는 세상의 혼탁함을 정리하는 소리고 악으로부터 삶을 구하는 정의로운 소리다.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은 한 조직의 구성원이 내부에서 저질러지는 부정과 비리를 외부에 알림으로써, 공공의 안전과 권익을 지키고 국민의 알 권리를 보호하는 사람이다. 깨어있는 사람이고 깨어나야 한다고 부르짖는 사람이다.
이권 카르텔을 위해 호루라기 부는 사람에게 눈을 부라리는 사람이 국민을 위한다는 것은 위선이다. 호루라기 소리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정직하고 공정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싱그런 여월(余月)이다. 오랜만에 미세먼지 없이 맑다. 비온 뒷날 청신한 날씨 탓인지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국민의 심부름꾼을 다시 뽑는다. 진영에 관계없이 그들이 꿈꾸는 나라가 호루라기를 불 필요가 없는 나라이길 소망한다. 어두운 곳으로 숨어들던 음험한 자들이 빳빳이 고개 들고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면서 유세장을 활보한다. 도둑이 버젓이 호루라기를 부는 세상이다. 죄지었음이 훈장인 양 자신이 지은 죄를 남 탓으로 돌리는 뻔뻔함에 착잡함을 넘어 연민이 느껴진다. 아무렇게나 내뱉는 천박한 자의 백 마디 말보다 넓은 마당 바지랑대를 스치는 한 줄기 바람 소리가 삶을 이끄는 호루라기다.
죄 없는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는 성경 말씀이 떠오른다. 자신이 억울한 죄를 뒤집어썼을 수는 있다. 그렇다고 죄짓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염치를 모르는 비루한 짓이다. 평생 법을 지키며 올곧게 살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헛헛함이 괜한 마음의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말보다 소리가 세상에 이로울 때도 있다. 모쪼록 우순풍조(雨順風調)에 푸른 희망이 자라는 소리가 우리 곁에 다시 돌아오길 기다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