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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용 그림판
창 48:1-22
아이를 길러 보시거나 아니면 손자 손녀들이 자랄 때 흔히 볼 수 있는 그림판이 있습니다. 종이에다 연필을 가지고 그림을 그릴 때에 형체도 만들지도 모르는 아이들의 그림이 너무 지저분해지고 하니까 -크레파스를 몸에 바르기도 하고 싸인펜으로 바닥에 칠하기도 하고 - 유아용으로 그림판을 만들어 놓습니다.
그 그림판에다 연필처럼 생긴 것을 가지고 쓰면 하얀 판 위에 까맣게 형상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조그마한 판이니까 그림이 판에 꽉 메워지면 판 밑에 옮기는 막대가 있어서 좌우로 움직이면 그려있던 그림이 지워지고 하얀판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옵니다. 이 그림판을 연상하면서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 말씀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의 마음은 그림판과 같습니다. 우리가 생각을 한다는 것은 마음의 그림판에 이미지를 그린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생각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과거의 일을 생각하는 것을 우리는 기억이라고 말하고, 앞으로 있을 일을 생각할 때 우리는 추측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현재 일을 대할 때 우리는 생각한다 그렇게 얘기들 합니다.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영이신 하나님께서 마치 바람과 같다고 주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요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이 영이신 하나님을 우리 속에 모시게 될 때 어디다 모시게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마음의 생각 속에 모실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생각이 미래를 향한 생각이건, 과거를 향한 생각이건 생각 속에 모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 안에 영이 들어오십니다.
소설가의 글 속에 소설가의 정신이 들어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이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와 머무신다,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할 때 그 머무시는 장소는 막연하게 우리의 가슴 그런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생각 속에 머무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이 머무시기에 합당한 생각이 되면 하나님이 들어오시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역사해 가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천국으로 빚어 가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무엇을 행하실 것인가 그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왈가왈부 정할 수도 없고, 하나님에게 지시할 수도 없고, 우리가 예측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셔 들이는데 총력을 다 기울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모셔 들일까 하는 그런 과제 앞에 부딪치게 됩니다. 오늘 바로 야곱의 언급 속에서 그러한 것을 우리가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생각 안으로, 우리의 마음 안으로 영이신 그 분을 모셔들여서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일들을 마음대로 행하실 수 있도록 해드릴 수가 있을 것인가 오늘 야곱이 요셉을 만나서 얘기합니다.
요셉을 만나 얘기하면서 평생을 신앙적으로 돌아보는 그런 고백적인 언급들이 오늘 48장에 나오고 있습니다.
창 48: 3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한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복을 허락하여
요셉이 기억 속에서 얘기를 한다... 노인들이 기억을 얘기하지 않습니까? 젊은 사람들은 앞의 일을 얘기합니다. 또 중장년들은 현재 주어진 일에 몰두하게 됩니다. 노인이 되면 아무래도 지나온 과거를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그 과거를 생각하고 기억을 해내는데 그 기억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억을 해내는데 루스에서의 경험을 기억해내고 요셉에게 말을 합니다.
이제 요셉과 만나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야곱이 말하고 있는 것은 늘 지금 현재 이 노년을 살아가고 있으면서 마음에 두고 있는 가장 깊은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루스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루스의 경험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지요?
야곱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암흑의 시점이었습니다. 팥죽으로 형인 에서를 속여서 장자권을 빼앗고 그리고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의 축복의 기도를 받은 직후에 에서가 그 사실에 분개해서 야곱을 죽이려고 하는 분노에 찬 복수의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밧단아람에 있는 외삼촌 집으로 도망가게 될 때에 루스라고 하는 들판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을 청하는 가운데 꿈 속에서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여시고 사닥다리를 내리시고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하고 있는 가운데 야곱을 만나 주십니다.
사실은 야곱을 만나 주신 것이 아니라 늘 야곱 곁에 계셨습니다만 야곱이 그때 처음으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듣기만 하던 그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 즉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일평생 기억 가운데 그것을 기억하면서 지금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 아들 요셉에게 마음 속 가장 깊이 두었던 생각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기억을 할 때 인생에 있어서 좋았던 일을 기억하는 것 아닙니까? 내 인생의 전성기라든지, 괄목할만한 업적을 남겨서 다른 사람에게 칭송을 받은 일이라든지 아니면 부정적인 차원에서라면 아주 깊게 충격을 받은 도저히 잊어버릴 수 없는 친한 친구의 배신이라든지, 너무 깊이 사랑했던 상대방 이성이 나를 차버렸던 일 그때 그 혹독한 괴로운 심정이라든지 아니면 대학에 떨어져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인가를 고민하던 젊은 날의 시절 등 아주 좋았든지 아니면 충격적이라서 마음에 새겨져 있던 그런 것들을 말하게 됩니다.
그런데 요셉 앞에서 얘기하게 되는 것은 야곱에게 있어서 긍정적인 면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을 말하고 있는 것이고 또 자기의 일평생의 일들 중에 단 한 사건만을 얘기하라고 말을 해놓은 것처럼 야곱은 이 사건을 말한다고 할 때에 이 사건이 야곱에게 있어서는 루스의 상황이 인간적으로는 가장 힘들었던 상황이었지만 돌어켜보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생각하기에 전성기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은 야곱의 심리 상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야곱의 바깥에서 보면 요셉을 만난 지금입니다. 그런데 야곱의 기억 속에서는 죽었다고 생각한 요셉을 만나게 된 것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이요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생각할 때에 단 하나의 기억을 생각해내라면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전성기는 바로 루스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이었다 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아버지도 형도 엄마도 이웃도 아무도 없는 상태입니다. 집을 떠났습니다. 재산 제로, 인간관계 제로, 명성 제로, 권력 제로, 성공 제로 모든 게 제로인 상태입니다.
마치 유아요 그림판에 수없이 많은 그림이 영상으로 남아 있다가 싹 지워서 하얗게 된 상태에서 다시 처음으로 그린 그림처럼 하나님이 그 때 그렇게 나타나셨습니다.
유아요 그림판을 보면 우리 아이가 어렸을 적 그림판을 이용할 때 맨 처음 그린 그림 너무너무 신기합니다. 아이가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릴 수가 있을까 싶습니다. 자꾸 여백을 채워갑니다. 나중에는 맨 처음 그렸던 인상 깊었던 그림의 형상이 다 없어지고 맙니다. 그 그림만의 형상을 잡아낼 수가 없습니다. 다른 형상들이 많아지면서 섞여 버립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의 고백 중에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창 48: 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창 48: 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그렇습니다. 출생으로부터 하나님이 인도하신 것을 압니다. 그런데 야곱이 처음 하나님을 보게 된 것은 루스에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야곱 마음의 그림판에 미래의 삶의 복된 자기의 그림을 그려 놓느라고 하나님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루스에서 돌베개를 베고 누워 자던 그 밤의 상태 어떤 상태였습니까? 유아용 그림판에 그림을 싹 지워버린 것처럼 앞날에 대한 자기 인생의 그림이 어떤 것도 그려질 수 없을만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있던 상태였던 것입니다. 미래의 아름다운 모든 그림들이 다 지워져 버리고, 복에 대한 열망의 이미지들이 다 사라져 버리고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형도 없고 이웃도 없고 친구도 없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 완전히 새하얗게 지워져 버린 그런 상태에서 하나님이 나타날 때에 오직 하나님의 모습만 자기 옆에 계신 분이라고는 단 유일한 존재로서 하나님만이 계시는 그 상황에서 야곱의 마음에 하나님의 영상이 깊이깊이 들어가 박힌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생각합니다. 자기의 일생에 있어서 이때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가 최고의 전성기였다고...
라반의 삼촌 집에서 14년 동안 노역을 하고 라헬을 아내로 맞았을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14년 동안 노동의 대가를 치르고 라헬을 얻게 된 그런 감격이라든지 여러 가지 기억할 것이 많을 것입니다. 양떼가 많았을 때라든지, 에서와 화해를 해서 자기의 삶을 돈독히 시작할 수 있다고 믿게 되어진 그런 상태 감격스러운 상태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다 기억이 없습니다. 사람도, 재물도, 명성도, 재물도 아무 것도 없고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인생의 이미지들이 하나도 남지 않았을 때 누가 옆에 있었습니까?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때 나타나신 하나님 그때 가장 뚜렷하게 봤던 그 순간이 그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순간이었던 것은 야곱은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요? 돌이켜보면 정말 세상적으로 좋았을 때도 나빴을 때도 많았었지마는 이제 죽음을 앞두고 인생을 돌아 보면서 느끼는 것은 하나님을 완전하게 만날 수 있었을 그때가 가장 행복했었던 것을 다른 모든 때, 즉 성공과 실패가 반복되었던 모든 때와 비교해서 가장 귀한 때였음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지금 돈이 있다 없다, 자식이 말썽을 부린다 안 부린다 많은 일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의 지수가 오르락내리락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처럼 죽음을 앞두었을 때 여러분의 마음 속에 남는 생각은 내가 가장 온전히 하나님을 만났던 사건, 내가 하나님을 온전히 볼 수 있었던 인생의 계기 그것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는 사실을 여러분도 고백하게 될 것은 하나님이 실제로 좋은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야곱은 인생의 마지막 시점에서 루스의 경험, 즉 인생의 모든 그림들이 다 지워져버리고 어떠한 사람도 옆에 남아 있지 않은 새까만 인생의 시절에 하나님 한 분을 뚜렷이 보게 되면서 그때가 가장 좋았음을 기억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십자가는 사도바울의 말처럼 매일매일 우리 마음의 그림판을 지우고, 스스로 야곱에게 나타나셨던 그 하나님이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실 때에 하나님의 모습을 가장 정확하고 온전하고 완전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147년을 살고나서 루스에서 이 세상에서의 모든 그림과 이미지와 열망이 다 지워지고 하나님만이 뚜렷하게 보여졌던 그때가 가장 아름다웠다고 147년이 걸려서 내린 결론의 사건을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로 하여금 매일매일 경험하도록 하게 하는 것입니다.
147년에 한 번 있었던 루스에서 있었던 사건, 하나님을 완전하게 볼 수 있었던 그 사건 그것이 그렇게 귀중한 사건이었는데, 주님의 십자가가 복음인 것을 그렇게 귀중한 사건을 매일 아침마다 날마다 죽노라 라늘 바울의 말처럼 우리의 마음판에 그림을 지워버리기만 하면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그 하나님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있게 되어서 147년의 가장 좋았던 그 하루를 매일매일의 하루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시는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일어나셨을 때 여러분 마음 속에 여러 가지 그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많은 생각의 그림들이 마음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형상이 내 마음에 뚜렷하게 보이지를 않습니다. 이때 지금 말씀을 듣고 계시는 가운데 내 마음 속에 있는 삶의 모든 그림들을 다 십자가로 지워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미 죽었는데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것인가...
이렇게 지우면 하나님이 뚜렷하게 보이실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내 옆에 계십니다. 내 옆에 나타나십니다. 그 하나님 보고 행복한 마음이 생기시면 하나님이 내 안에 가득히 들어오시는 겁니다.
이제 하나님이 들어오시면 여러분이 걱정했던 일들, 여러분이 해야되겠다고 하던 여러분들의 일들을 하나님이 당신의 일로 찾으시고, 이제 이 행복한 마음으로 여러분의 생각을 지배하시고 여러분의 소원을 지배하시고 여러분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면서 우리의 삶을 당신의 일로서 해나가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유아용 그림판인 내 마음을 오늘 아침 기도하시는 가운데 주님의 십자가로 깨끗하게 지우셔서 오직 하나의 모습, 늘 내 곁에서 나에게로 다가오시는 그 하나님의 모습만 나타나게 하고 그 하나님의 모습에서 완전히 행복해하시고 어떤 일에 대해서 이루어지면 행복할텐데 하지 마시고 하나님 모습만으로 완전히 행복한 상태가 되어서 오늘 하루를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마음은 유아용 그림판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야곱이 147년 동안에 단 하나의 기억을 하나님을 볼 수 있었던 루스의 사건을 기억해내듯이 우리도 그렇게 좋은 기억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텐데 매일매일 우리의 마음을 주님의 십자가로 지우고 오직 하나의 그림만 나타날 수 있는 상태에서 그 하나가 하나님의 그림이 되어 하나님 보며 기뻐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매일매일 살아가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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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