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스푼 피딩
오클랜드 택시 회사 회의실에서 보드 멤버 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아니! 이게 회사야? 보드 멤버들 뭐하는 거요.”
누군가 갑자기 회의실 문을 박차고 들어와 외쳤다. 보드 멤버들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들썩했다.
“컴플레인 매니저는 왜 답이 없냐고요?”
마침 오늘 보드 멤버 회의엔 컴플레인 매니저도 동석한 상태였다. 컴플레인 매니저, 저스틴도 당황한 눈으로 외치는 자를 쳐다봤다.
“아니? 아서! 아무리 상황이 급해도 그렇지. 이런 불시행동이 어디 있나? 지금 조사 중에 있는데.”
“말 잘했어요. 언제까지 조사만 할 건데요. 오늘 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요. 내 열 받아서 운전 못 하겠네. 정말! 이 회사가 이렇게 불공정해요?”
“딱!”
갑자기 운전사 아서가 회의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쳤다. 다니엘 의장이 일어서며 저스틴과 아서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문제이길래. 이렇게 무례하게 난동이야? 회사에서 이렇게 무례하게 행동해도 되나?”
다니엘 의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서가 다시 한번 외쳤다.
“다니엘 의장님. 말씀 잘 하셨어요. 이 회사에서 지금 무례하게 자행되는 불법 행동에 운전사들 불만이 최고조인줄 몰라요?”
서류로 컴플레인을 제기해도 며칠간 답이 없잖아요. 외부에서 이런 컴플레인 통보했으면. 진작 답을 했을 텐데요.
이 회사가 누구 회사인가요? 우리 700명 주주 운전사를 우선해야지 않나요?“
민재가 일어나서 우선 아서를 진정시키려고. 의자를 빼내서 앉기를 권했다.
“아서. 진정해요. 지금. 모든 보드 멤버와 컴플레인 매니저까지 중요한 회의 중인데요. 이렇게 다짜고짜 와서 소리치면 어떡합니까?
회의 끝나고, 침착하게 별도의 시간을 가져 봐요.“
씩씩대던 아서가 일단은 의자에 앉았다. 가져온 서류를 참석자 테이블 위에 한 장씩 배포했다.
‘죄송합니다. 이 번 사안도 중요하니. 당장 이 자리서 내용은 알려야겠습니다. 10분만 시간을 주십시오. 제발.“
부의장 토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엘 의장은 불편한 심기로 입을 꾹 다물었다. 토니가 불편해하는 다니엘을 보며 아서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아서. 요점만 빨리 이야기 해 보세요.”
“네. 부의장님. 딱 10분만 이야기 하고 나가겠습니다.”
모두 긴장한 눈으로 아서의 행동에 집중했다. 아서가 일어서서 안정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감사합니다. 결론부터 말합니다. 회사에서 운전사에게 택시 일을 주는데요. 큰일이나 좋은 일을 일부 몇 사람에게 스푼으로 떠 먹여주고 있습니다.
운전사들은 이런 불공정한 사례를 스푼 피딩(Spoon Feeding)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직접 눈앞에서 목격한 사례를 먼저 이야기 하겠습니다.
지난 화요일. 오전 그린레인 병원 택시 랭크에서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제 뒤에 선 세 번 째 택시에 폰잡(phone job)이 울린 겁니다.
앞서 기다리던 저와 다른 운전사가 바로 이 사실을 확인한 겁니다.
노스쑈어 알바니에서 공항 가는 폰잡이었습니다. 알바니에도 운전사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요.
멀리 있는 그린레인에서 기다리는 운전사한테 그 잡을 배정합니까. 30분 뒤에 픽업할 공항가는 폰잡이었습니다.
세 번째 운전사가 씩 웃으며 빠져 나가더군요. 또 때가 되어서 큰 잡을 받았구나 하면서 말입니다.
이거야말로 완전 스푼 피딩 맞지 않습니까? 택시랭크에서 룰에 따라 순서를 기다리면 뭐해요? 아예 떠먹여 주는 사람 앞에서 기다리는 게 낫지요.
대부분 운전사들은 회사 룰에 따라 순서대로 기다리는데, 일부 몇몇은 불법으로 떨어지는 특혜 잡을 받아 돈을 더 챙깁니다.
도대체 회사 룰은 어디로 실종된 겁니까? 특혜를 주는 자와 받는 자를 철저히 조사해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
50년 전통, 뉴질랜드 최상 택시회사. 700명 주주 운전사들이 봉입니까? 만약 이 불법 건이 철저한 엄벌 조치 없이 지나간다면.
뉴질랜드 택시 연합회와 뉴질랜드 자동차 운송 협회에도 협조 공문을 보내겠습니다. 회사를 지키는 모임에서 말입니다.
당연히 법적 고소도 할 예정입니다. 부정 불법 사례로 경찰청에 보낼 겁니다. 민중의 지팡이, 이스트 앤 사우스 시사 주간지에도 알릴 겁니다.
회사 이미지에 올 타격을 감수하면서도 이렇게 까지 하는 우리 심정을 헤아려 주기 바랍니다. 이번엔 개혁이 필요합니다.
저는 믿고 싶습니다. 보드 멤버님들과 컴플레인 매니저의 현명한 대처를 말입니다. 외부에 이런 사실이 나기기 전에요.
제가 그때 카메라로 찍은 사진. 모뎀에 뜬 폰잡 내용입니다. 여기 보세요.“
아서가 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내 보드 멤버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때. 다니엘 의장의 얼굴이 먹빛이 되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이번엔 완전 공개식으로 파 헤쳐 보는 거다.’
민재가 속으로 때가 왔음을 인지하며, 목에 힘을 주어 똑똑히 천천히 이야기 했다.
“아서. 잘 들었습니다. 여기 배포한 내용은 뭡니까?”
“네. 그동안 동료 운전사들이 겪은 스푼 피딩 사례를 정리한 겁니다. 이런 스푼 피딩을 여러 차례 컴플레인으로 올렸습니다.
회사에서 별 조치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종전엔, 컴플레인 매니저 사이먼이 독주한 체제라 결국 손도 안 대고 지나갔습니다.
이번엔, 신뢰 받는 저스틴이 컴플레인 매니저로 부임해서 기대를 가지고 지난 주 이 컴플레인을 올렸습니다.
마찬가지로 답이 없었습니다. 오늘 또 그런 사례를 접하고 뛰어 온 겁니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700명 주주 운전사가 납득할 조치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회사를 지키는 모임에서 수위 높은 대응이 나오기 전에 종식시켜 주기 바랍니다.
이상. 회사를 지키는 모임 멤버인 아서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서가 회의실 밖으로 나가며 민재와 눈길이 마주친 순간. 왼쪽 눈을 살짝 깜빡거렸다. 민재도 오른 쪽 눈을 깜빡였다.
아서가 문을 닫고 나가자, 갑자기 회의실 안은 얼음물을 끼얹은 한기가 엄습해왔다. 한동안 아무도 말을 못했다.
민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 단호한 음성으로 일침을 놓았다. 추상같은 매서움이 주위를 압도했다.
“결국 때가 오고야 말았습니다. 환부가 곯아 터졌습니다. 메스를 들이댈 시간입니다. 우리 살에 칼을 대는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이 회사의 고질적인 병폐, 스푼 피딩. 근거 자료는 여기 서류건만 확인해도 충분합니다. 혁신이 필요합니다.
도려낼 부위는 이미 정해졌습니다. 간단합니다. 특혜를 준 디스패쳐, 폰 잡을 준 스탭. 그 특혜를 받은 운전사. 그리고 커넥션, 연결책입니다.
컴플레인 매니저, 저스틴. 말씀해 보십시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오늘 이 회의에 나온 걸로 아는데요.“
민재가 저스틴을 지목해 그 입장 표명을 채근했다. 저스틴이 일어서서 비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존. 보드멤버 말에 절대 공감합니다. 제 업무, 컴플레인 업무를 접하고서 이 문제가 가장 마음에 걸렸습니다.
너무 고질적인 병폐로 이어 온 터라. 저 혼자서는 해결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오늘 이렇게 공개적으로 모든 보드 멤버 앞에서 터뜨리니.
오히려 시원합니다. 특혜를 누려왔던 기득권자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을 거라 예측합니다. 속전속결 해결이 답입니다.
제가 감히 제안합니다. 이 건을 더 깊이 조사하고 철퇴를 내릴 보드 멤버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저랑 함께 신속 공명정대하게 일 할 분을 추천해 주십시오. 의장님. 부의장님. 보드 멤버 위원님.“
저스틴이 유독 다니엘 의장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대답을 종용했다. 다니엘 의장이 그 시선을 의식했는지.
애써 태연한 척 하며 말했다. 긴장됐는지 목소리가 약간 어눌했다.
“오늘 너무 지나치게 과민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한두 건 일을 가지고 회사가 불법 조직인 것처럼 확대해석하는 건 잘못입니다.
감정적으로만 일을 처리해서는 문제가 더 커집니다. 쥐 한 마리 잡으려고 잘 못하다간 집을 다 태운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일부 있을 수 있는 택시 회사의 관행입니다. 차근차근 컴플레인 매니저가 조사해도 될 일입니다.
이 일은 저스틴에게 시간을 줘서 해결하게 했으면 합니다. 보드 멤버들은 다른 중요한 일에도 바쁜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 말에 동의하는 걸로 알고 다음 건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보드 멤버 대부분이 불만 섞인 눈으로 다니엘 의장을 쏘아봤다. 저렇게도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태도.
뭔가 자신이 구린 데라도 있다는 것 아닌가? 하는 눈빛이었다.
“다니엘 의장님. 절대 동의 못 합니다. 오늘 이 문제보다 더 큰 사안이 있습니까? 반드시 오늘 이 건에 대해 강력대응 방안이 나와야 합니다.”
그때. 토니 부의장이 일어서며 다니엘 의장에게 강한 반감을 표시했다.
“다니엘 의장님. 금방 두 눈으로 부당 사례와 불법 관행을 듣고 느끼셨을 텐데. 지나치게 안일한 반응이군요.
지금은 비상사태입니다. 뭐가 두렵습니까?
오늘이야 말로 보드 멤버들이 힘을 합쳐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뛰어들어야 합니다.
다니엘 의장님께서 그렇게 미온 적으로 나서며 부담을 느낀다면, 부의장인 제 선에서 진두지휘하겠습니다.
모든 분들. 제 의견에 동의합니까. 동의하시면 손을 들어주십시오.“
토니 부의장을 평소 온유한 분이라 여겼는데. 오늘은 칼을 환부에 들이대는 의사 같았다.
민재와 마주친 토니 부의장 눈길에 민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깜빡였다. 바로 이어 민재가 손을 번쩍 들었다.
키란도 손을 들었다. 다니엘 측근인 데이비드는 손을 못 들며 고개를 숙였다. 다니엘 의장이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토니 부의장이 쐐기를 박았다. 손으로 테이블을 탁하고 쳤다.
“좋습니다. 과반이 넘는 동의로 제가 진두지휘합니다. 속전속결 행동만이 해결책입니다. 제 말에 집중해 주십시오.
존. 보드 멤버께서 저스틴과 합류해 신속 명확하게 이 문제를 확실히 해결하세요. 우리는 믿습니다. 존을.
한국 해병대에서 3년간 감찰 업무한 경험을 백분 발휘하세요. 지금 이 시간부터 행동에 임해 주세요.
특히나. 존은 뉴질랜드 경찰청장 직속 자문위원이라는 점도 잊지 마세요. 자기가 속한 회사에서 불법을 보고 그냥 넘어가서는 말이 안 되겠지요.
그 직책에 부끄럽지 않게 이번에 화끈한 일처리를 부탁합니다. 조직이 살아야 합니다. 이번에 제대로 능력을 발휘해 주기바랍니다.“
민재가 일어나 토니 부의장과 모든 멤버를 향해 가볍게 목례했다.
“감사합니다. 맡겨주신 업무 수행 확실히 하겠습니다. 부당 불법행위 뿌리를 뽑겠습니다. 곧 결과 보고 드리겠습니다.
저스틴. 컴플레인 매니저님. 가시지요. 이제 소탕작전에 매진해야지요.“
저스틴이 흡족한 표정으로 민재를 향해 눈을 깜빡였다. 민재도 저스틴에게 화답했다. 다른 사람들 모르는 둘 만의 신호였다.
민재가 다니엘의장 앞에 놓인 서류를 흔들어 보이며 다시 내밀었다. 그 서류. 아서가 배포한 자료였지만, 사실 민재가 작성한 서류였다.
다니엘 의장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일어나서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의자에 그냥 주저앉고 말았다. *
76화 끝(5,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