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 고온에서 달궈낸 돌과 해수가 만나 명약으로 변신한다. 뜨거운 명약에 적신 수건으로 몸을 감싸면 뼛속까지 시원하다. 어디 그뿐이랴. 피부는 뽀송뽀송 되살아나고, 향긋한 약쑥 냄새에 영혼마저 상쾌하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이 꽃망울 터지듯 피어나는 신비의 해수찜을 하고 나면 내 몸에도 봄이 온다.
뜨거운 유황돌과 해수의 만남
피부는 탱글탱글, 몸은 쌩쌩! 십 년은 젊어지는 비결
평소 온천 마니아로 알려진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길고 긴 겨울이 갔으니, 해수찜이나 하고 오자." 해수찜? 순간 선배가 해수탕을 잘못 말한 줄 알았다. "그래, 해수찜! 이번 겨울은 유난히 길었어. 찌뿌드드할 땐 해수찜이 딱이야." 생각만 해도 개운하다는 듯 말하는 선배를 따라 함평으로 향했다.
봄바람 머금은 서해
해수찜이라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해수찜은 전라남도 함평군 손불면 궁산리에 있는 작은 마을의 두 곳만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전통 찜질이다. 하지만 고수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한 곳이란다.
유황돌과 소나무 장작 가득한 마당
먼 길을 달려 도착한 해수찜 바로 앞으로 봄바람 머금은 서해가 눈부시게 펼쳐져 있다. 마당에서 바다와 갯벌 풍경을 좀 더 즐기고 싶었지만, 해수찜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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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질복으로 갈아입고 번호가 달린 방으로 입장
찜질복으로 갈아입고, 긴 복도를 따라 가면 번호가 달린 방들이 주르륵 이어진다. 나무로 지어진 방은 작고 낡았지만, 편안하고 정겹다. 네 명 정도 들어가면 딱 좋은 크기라 가족이나 친구끼리 오면 안성맞춤이다. 단체가 들어가는 큰 방도 있다 한다.
가족이나 친구끼리 즐길 수 있는 작은 방
한가운데 네모난 탕 안에 해수가 차오르고, 약쑥이 든 망이 물에 떠 있다. 짚으로 짠 멍석으로 덮어둔 것이 특이하다.
단체가 들어가는 큰 방
뜨거운 돌이 한 삽 들어오고, "뜨겁습니다. 조심하세요" 하는 말과 함께 해수에 넣는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뜨거운 김이 방에 가득 찬다. 돌의 온도는 자그마치 1300℃. 돌이 두어 삽 들어가자 물 온도가 수식 상승해 80℃까지 올라간다.
1300℃가 넘는 뜨거운 유황돌, 조심하세요
손도 담글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우니 절대 물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준다. 물에 몸을 담그는 해수탕과는 완전히 다르다.
유황돌이 들어가면 물은 순식간에 80℃를 넘나든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방 안에 수건과 작은 대야가 있다. 처음에는 수건에 물을 부어서 적신 다음 대야로 꾹꾹 눌러서 물을 적당히 짜낸다. 그리고 뜨거운 수건으로 원하는 부위에 감싸면 된다. 허리가 안 좋으면 허리에, 어깨가 뻐근하면 어깨에 올려준다.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목 디스크가 있는 나는 머리부터 덮어쓰고, 온몸을 감쌌다. 뜨끈한 기운이 뼛속까지 전해지고, 긴장했던 근육들이 하나하나 풀어진다. 십 년 묵은 피로가 눈 녹듯 녹아내리고, 겨우내 움츠려 있던 몸이 꽃망울이 터지듯 피어나는 기분이다. 향긋한 쑥 냄새가 솔솔 나면서 복잡했던 머리까지 개운하다. 온천이나 찜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도 특이하고 재미가 있다. 먼 곳까지 달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피부와 몸이 좋아지는 데다 재미까지 있는 해수찜
대야에 물을 받아두었다가 식으면 몸에 끼얹기도 하며 한 시간쯤 해수찜을 즐기고 나자 물이 어느 정도 식는다. 이제부터는 해수탕을 즐길 차례다. 먼저 발부터 천천히 물에 넣어 족욕을 한다. 발끝에서부터 뜨거움이 퍼지며 온몸이 개운해진다. 물이 좀 더 식으면 몸을 푹 넣어서 해수탕까지 할 수 있다. 함께 간 선배는 역시 고수였다. 약쑥 망을 꺼내더니 배 위에 올려 쑥찜을 하고, 멍석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감싸서 해수찜을 제대로 맛본다.
해수, 약쑥, 유황돌, 짚멍석 네 가지 보약의 조합
시간이 따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두 시간쯤이면 물도 어느 정도 식고, 몸에도 알맞다. 샤워 시설이 있지만, 되도록 마른 수건으로 닦고 마치는 게 좋다는 게 고수의 귀띔이다. 찜찜한 기분은 역시 초보의 생각일 뿐. 10분쯤 지나자 몸이 뽀송뽀송해지고 피부가 매끈매끈한 것이 십 년은 젊어진 기분이다.
물에 들어갈 준비 중인 약쑥망
함평에 전해져온 200여 년의 전통
해수찜을 마치고 나오자 건물 한쪽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소나무 장작과 유황돌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이로 오래된 아궁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 위로 돌이 켜켜이 쌓여 있고, 돌들은 벌겋게 익어 열기를 내뿜었다. 30분 정도 불을 때면 돌이 1300℃ 까지 올라가고, 단단하던 돌이 서로 엉겨 붙을 만큼 유황 성분과 게르마늄 성분이 빠져나온다고 한다. 이것이 해수에 녹아들어 피부 질환과 각종 부인병 그리고 성인병 치료에 탁월한 명약이 된다.
200여 년간 내려오는 전통의 해수찜
해수찜은 200여 년 전부터 내려오는 함평 지방의 전통이다. 예전에는 말을 끄는 하인들을 대동해 아기를 낳은 부인을 가마에 태우고 오던 양반들 행렬이 전국에서 이어졌을 정도로 유명했다 한다. 저장된 해수를 끌어올려 뜨거운 유황돌로 달구면 알칼리 성분으로 바뀐다. 짚으로 엮은 멍석은 항균 작용을 하고, 거기다 몸에 좋은 약쑥까지 더했으니 이보다 더 좋은 보약이 있을까.
소나무 장작불로 달구는 유황돌
전국 최고의 일몰 포인트 그리고 육회비빔밥
해수찜을 마치고 차를 몰아 3km쯤 가면 일몰 포인트로 유명한 돌머리해변이 나온다. 많은 이들이 사진 촬영을 위해 찾는 곳이다. 마침 해가 지고 있다. 정자와 돌탑이 누군가 그려 놓은 듯 나란히 서 있고, 그 뒤로 바다와 하늘이 붉게 물들어간다. 해가 다 사라지도록 꼼짝없이 빠져드는 풍경이다.
돌머리해변의 일몰
몸도 마음도 감동에 젖었으니, 이제 배를 채울 차례다. 함평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육회비빔밥집으로 갔다. 한우육회가 듬뿍 올라간 비빔밥에 고소한 돼지비계를 넣고 쓱쓱 비벼 먹으니 진짜 꿀맛이다. 신기방기한 해수찜도 체험하고, 감동의 일몰도 만나고, 맛있는 비빔밥까지 먹은 함평의 하루,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