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 국가대표팀의 새로운 수장이 된 신태용 감독의 첫 번째 업무는 K리그 관전이었다. 지난 주말 열린 K리그 클래식 19라운드 경기 중 전북과 울산, 수원과 제주가 맞붙은 경기장으로 향했다. 대표팀 감독의 K리그 관전은 내국인, 외국인 감독 가릴 것 없이 이전에도 보여준 모습이다. 현재는 해외파 비중이 높아졌지만, 유럽, 중동, 중국, 일본으로 흩어져 있기에 K리그를 중심으로 선수 파악을 한다.
신태용 감독이 부임하며 달라진 점은 하프타임에 기자들을 만나 질문에 답하고, 자신이 관전한 경기에 대한 생각 등을 털어놓는 만남이 부활했다는 점이다. 부임 초기이기 때문에 한 이벤트일 수 있지만, 언론과의 관계가 친밀한 편인 신태용 감독이기에 더 거리낌 없었다.
취재진이 감독의 집중력을 방해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감독에겐 언론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담은 메시지를 현장에 있는 선수들에게 전달할 기회다. 이틀 동안 신태용 감독은 후자의 기능을 잘 활용했다. 대표팀의 주축, 그리고 대표팀에 근접해 있는 선수들에게 분명한 자기 소신을 밝혔다.
준비는 감독이 중심이 되지만, 실제로 그걸 구현하는 것은 선수들이다. 대표팀에 발탁한다는 것의 근거 다수는 소속팀에서 보여주는 플레이다. 신태용 감독은 그 플레이의 수준을 높이고 지속하길 원한다. 또 자신이 추구하는 방식의 축구에 조금이라도 더 부합하길 기대한다.
신태용 감독 체제에서 발생할 변화는 그가 이틀 동안 언급한 선수 선발의 기준과 원칙으로 유추할 수 있다.

우선 그는 베테랑들의 선발 가능성을 언급했다. 수원과 제주의 경기에 선발 출전한 염기훈(수원)도 대표팀 발탁 후보냐는 질문에 그는 “나이 불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동국(전북)도 발탁 후보다”라고 말했다. 만 38세로 리그 최고령 선수인 이동국을 언급하며 나이가 아닌 현재 기량으로 관찰하겠다고 선언했다.
슈틸리케 전 감독은 2015년 아시안컵을 기점으로 베테랑의 활용 폭을 극단적으로 좁혔다. 차두리가 대표팀을 은퇴하면서 30대 초중반의 선수는 곽태휘(서울) 혼자 남았다. 지난 3월 중국, 시리아와의 2연전 당시에 필드 플레이어 중 최고참은 86년생의 이용(전북)이었다. 88년생 이하로 대표팀 중심축이 넘어갔다.
베테랑이 팀에서 차지하는 가치는 둘이다. 우선은 선수로서의 기량이다. 이 문제는 대표팀에 오는 모든 선수가 증명해야 할 가치다. 또 하나는 위기 상황에서 팀을 뭉치게 할 수 있는 역할이다. 말로 하든, 행동으로 보여주든 베테랑이 주는 영향력과 무게감은 많은 대표팀과 클럽팀에서 증명되고 있다.
전임 감독은 후자의 가치를 거부했다. 사실 곽태휘도 대표팀에서 한동안 외면받았던 시기가 있었다. 세대교체라고 명확하게 단언하지 않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배제에 가까울 정도로 베테랑들을 외면했다. 한국의 유교 문화가 만든 특유의 분위기를 거부했을 수도 있다. ‘고참’으로 표현되는 수평적 관계가 오용되면 팀의 소통과 분위기 형성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 거스 히딩크 감독도 팀을 합리적이고 수평적으로 만드는 과정에서도 베테랑들의 위치와 영향력을 끝내 받아들이며 일종의 합의를 본 적이 있다. 수평적 관계를 유도하면 조직에 대한 강한 애정과 자부심이 긍정적 힘을 발휘한다고 인정한 것이다.

결국, 슈틸리케 전 감독도 자신의 마지막 대표팀 소집 때는 이근호를 불렀다. 2년 5개월 만에 대표팀으로 돌아온 이근호는 베테랑의 가치를 보여줬다. 한 발 더 뛰고, 10살 어린 후배보다 더 간절하게 플레이하는 그가 카타르전 충격 패에서 유일한 위로가 됐다.
신태용 감독이 주목하는 베테랑의 모델은 이근호일 가능성이 높다. 즉각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선수여야 한다. 대표팀 경험이 있어서 익숙하게 행동하고, 동료들과도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그의 말처럼 “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꾸준히 이어가는” 조건은 말할 것도 없다.
이동국, 염기훈은 상징적인 언급일 가능성이 높다. 두 선수는 최근 그 활약에 편차가 생기고 있다. 1~2경기에서의 폭발력은 있지만, 그것을 지속해서 끌고 가는 힘이 서서히 약해졌다. 신태용 감독이 말한 베테랑은 이근호처럼 85년생 전후에, 기복 없이 경기력을 발휘하는 선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주영(서울), 신형민(전북) 등이 근접해 있는 선수다.
이틀 연속 신태용 감독이 강조한 기준도 있었다.
내가 아닌 팀을 위해 싸워줄 수 있는 선수를 원했다.
첫날 전주에서 그는 “그라운드에서 선수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90분 내내 열심히 하는 선수를 좋아한다. 보는 눈은 똑같다. 누가 최선을 다하는지, 아닌지 보면 안다”라고 말했다. 둘째 날 수원에서는 한층 극적인 표현이 들어갔다. “마지막까지 이기기 위해서 죽자 살자 하는 선수를 원한다. 90분 내내 죽어라 뛰는 선수가 대표팀에 필요하다”라는 그의 얘기에서 키워드가 좁혀졌다.

투혼과 헌신. 한국 축구를 긴 시간 대표해 온 두 단어는 최근 대표팀에서 찾기 어려운 요소다. 국가대표 출신들은 하나같이 “세대가 달라졌으니 과거처럼 대표팀을 위해 모든 걸 쏟을 순 없다. 그렇다 쳐도 최근엔 대표팀에서 보여주는 절실함이나 헌신이 너무 부족하다”고 말했다.
내셔널리즘에 심취한 어른들의 그저 그런 훈계가 아니다. 헌신과 투혼은 대표팀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한 중요한 동력이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큰 대회에서 역대 최고 성적을 내지 않으면 대표팀에서 주어지는 보상은 그리 많지 않다. 소속팀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이 훨씬 더 커진 현재의 축구 시스템에서 대표팀은 어떤 면에선 선수에게 번거롭기도 한 부분이 있다. 장거리 비행을 반복해야 하는 해외파라면 컨디션 조정에 심각한 타격을 받기도 한다.
역대 가장 많은 해외파 비중을 차지하는 대표팀은 한국 축구 발전의 지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표팀을 향한 마음가짐이 예전 같지 못한 원인이다. 1년에 몇 개월씩 대표팀에 선수를 내주고, 부상을 입고 돌아와도 국가를 위한 희생이니 하소연할 데 없던 과거의 부조리까지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도기 속에서 한국 축구가 흔들리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대표팀 감독들은 더 고민해야 한다. 스스로 선택지를 좁히는 우를 범하면 안 된다. 최대한 많은 후보 중에 선택할 수 있어야 대표팀에 대한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특별해진다. 신태용 감독이 찾은 포인트도 그 점이다. 같은 조건, 혹은 약간의 기량 차가 있다면 대표팀을 위해, 또 승리를 위해 죽기 살기로 뛰어 줄 선수를 뽑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그 이틀 동안 신태용 감독의 눈에 부합했을 선수는 최철순(전북)과 김민우(수원)다. 최철순은 울산의 대표적인 공격 루트인 오르샤를 지우며 전북의 4-0 승리에 공헌했다. 특히 전반에 오르샤의 역습을 전력을 다해 쫓아 와 막는 수비, 전방에서 상대에게 집요하게 달려들어 결국 공을 뺏는 압박은 매끈한 테크닉보다 현재 대표팀에 더 필요한 요소였다.
김민우도 장대비가 쏟아지는 그라운드에서 쉼 없이 공격과 수비를 오갔다. 마지막 20분 동안 있는 체력을 짜낸 그는 오버래핑을 통해 집념의 결승골을 넣었다. 공격적이고 테크닉 높은 축구를 원하는 신태용 감독이라 해도 두 선수의 열정과 정신력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태용 감독은 이란, 우즈베키스탄과의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2연전을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로 규정했다. 스쿼드의 극적인 교체를 기대하긴 어렵다. 기존 대표팀 자원 중 적합한 선수를 추리고, 한동안 대표팀에서 멀어져 있던 선수들을 다시 관찰할 것이다. 새 얼굴은 대표팀에 긴장감을 줄 수 있는 1~2명 선에서 그칠 가능성이 높다.
목표대로 최종예선을 통과해 본선행을 확정하면 이후 시작되는 평가전, 그리고 12월 일본에서 벌어지는 동아시안컵이 신태용 감독의 과감한 실험의 장이 될 것이다. 그 전까지는 승리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익숙하고 검증된 선수들이 신태용호의 키를 잡을 전망이다.
글=서호정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