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테스탄트(개신교)에서는 세례를 받을 때 세례명을 따로 정하지 않습니다.
가톨릭 교회에서 세례명을 정하도록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여왔던 성인 성녀들 가운데서
한 분을 선택하여 자신의 주보성인으로 모시도록 하여
그 분이 일생동안 살아온 성인의 품행과 성덕을 본받으며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이며
그 분의 도움과 전구를 청하려는 목적에서 특별히 성인들을 공경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인들의 공경과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분명하게 다릅니다.
교회는 하느님께는 흠숭지례(欽崇之禮), 성모님께는 상경지례(上敬之禮),
성인들에게는 공경지례(恭敬之禮)를 드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프로테스탄트(개신교)에서는 이러한 우리의 성인공경의
아름다움 모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해서
가톨릭 교회는 마리아를 섬기는 교회미며 우상숭배를 하는 이단이라는
실로 어이없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것은 중세 때 종교개혁을 하던
종교개혁자들로부터 생겨난 말들입니다.
당시 루터와 쯔빙글리나 칼빈 같은 이들은 성인공경에 대해 명백하게 반대를 하면서
성상(聖像) 파괴 운동마저 벌였던 것인데 그 영향을 받은 개신교인들은 오늘날에도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도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예수 그리스도나 성인들의 상을 모시지 않으며
우리들 처럼 성인들의 축일도 없으며 세례 때 성인들의 이름으로 세례명을 정하지 않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성상 자체를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개신교에서 이러한 문제를 야기하는데 있어서는
우리 가톨릭 신자들도 반성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우리들이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우리가 가진 신앙에 대한 교리상식이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교회에서는 준성사에 해당하는 성물에 대해서 엄격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물은 하나의 가식적인 표징일 뿐입니다.
그 성물 자체가 신앙이 아니란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살아가면서 본의든 아니든 매순간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나 가식적으로 드러난 성물을 가까이 두면서 매 순간을
하느님을 느끼고 살아가는 깨우침을 가진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좀더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생활이 되지 않겠습니까?
성물은 바로 우리에게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가식적인 표징입니다.
우리는 너무 영성에만 치우쳐서 교리를 외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좀더 올바른 교리를 알고 나의 신앙을 이웃에게도 표현하고
전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왜 우리에게 선교사명이 더욱 중요하게 나타나고 있는지?
우리는 다신 한번 겸허한 자세에서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