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9장에서 어린 양 예수께서 그의 입의 검으로 만국을 다스리시는 심판주의 모습으로 백마를 타고 하늘에서 나오심을 보았습니다. 그 분에 의해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잡혀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불못에 던져지고, 회개치 않는 모든 이들은 그 분의 입의 검에 의해 죽어 새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첫째 사망의 심판이 끝났습니다.
그 이후에 드디어 모든 악의 우두머리인 사탄이라 불리는 악마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집니다. 그는 천사에 의해 결박당하고 무저갱에 천년동안 갇히게 됩니다. 그의 심판은 천 년 동안 잠시 유예가 되는데, 이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천 년은 물리적인 시간이 아닌 지상에서 순교당한 수많은 증인들의 죽음이 결코 패배가 아닌 진정한 승리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상징적 시간입니다. 그 기간동안 순교당한 자들과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죽은 자들의 영혼은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나라를 다스리게 됩니다.
그리고 천년이 차서 사탄이 옥에서 놓임을 받고, 그에게 만국을 속일 수 있는 기회가 다시 한 번 주어집니다. 사탄은 다시 온 땅을 미혹하고 그들의 군대를 모아 성도들을 에워싸고 전쟁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그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모두 태워 버립니다. 동시에 주동자 마귀도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집니다. 비록 사탄에게 기회가 다시 주어졌으나, 그 기회는 다시금 짐승의 통치로 이어지지 못하고 바로 악의 몰락으로 연결됩니다. 성도들의 요새는 난공불락임이 입증되었습니다. 이로써 성도들의 승리는 완벽한 승리임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죽은 자들에 대한 심판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예수를 믿고 그 믿음대로 순종하여 이긴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고, 회개하지 않고 짐승에게 굴복한 자들, 곧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모든 자들은 불 못에 던져저 영원한 사망을 갖게 됩니다. 이로써 심판의 종결판인 둘째 사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1장에서 드디어 심판이 끝나고 악의 근원이 모두 다 사라졌습니다. 만물이 새롭게 되어 새 하늘과 새 땅이 되었습니다. 사탄이 기거하던 바다도 다시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옵니다.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납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3~4) 이긴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수 샘물을 값없이 마실 것입니다. 일곱 교회에 전한 메시지를 듣고 그 말을 지키고 순종하여 이긴 자들에게 드디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바벨론과 새 예루살렘. 음녀의 도시 바벨론은 무너지고 어린 양의 신부 새 예루살렘이 세워졌습니다. 도시는 인간 사회가 그 중앙에 신을 모시고 안녕과 번영 속에서 살아가는 장소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바벨론은 그 도시의 중심부에 참 하나님 대신 인간의 자기 신격화된 것들을 들여놓았고, 그 결과 하나님을 대적하고 폭정적이며 압제적인 악이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의 적의가 마침내 직면하게 될 모습입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종국에는 세 예루살렘으로 설립으로 대치됩니다. 악의 몰락과 하나님의 진리의 승리. 이것은 태초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경륜의 최종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도시로서의 새 예루살렘은 각종 귀한 보석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에덴동산에 있던 금과 보석의 보고인 하윌라 땅이 연상되는 이미지입니다. 그 보석들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해 더욱 반짝입니다. 그 성에는 해와 달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거기에는 밤이 없습니다. 오로지 진리의 빛, 생명의 빛만이 가득한 곳입니다. 그러기에 거기에는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거짓말하는 자들, 곧 어둠에 속한 자들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네모반듯한 모양을 한, 지금까지의 어떤 도시와도 다른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전의 지성소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따로 없습니다. 그 도시 자체가 하나님의 보좌이자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한 새 예루살렘은 각종 귀한 보석의 찬란함에 더해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만국의 백성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4장의 하늘 성전에서는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하나님의 보좌를 두르고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고 있었지만, 새 예루살렘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죽음을 피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뵈올수 없었지만, 새 예루살렘에서는 그 분의 얼굴을 봄으로써 우리는 그 분이 어떤 분이신가를 진정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자 하는’ 인간의 가장 심오한 종교적 열망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분의 통치에 복종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 분의 통치에 함께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곧 그 분의 통치에로의 참여가 되는 것입니다. 비로소 하나님의 통치와 인간의 자유가 조화될 수가 있게 됩니다. 우리의 자유로운 복종을 통하여 그 분의 뜻이 곧 우리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자발적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인간의 자치’간에 완전한 합일이 실현되는 곳입니다.
이 땅에서 인간은 선을 행할 능력이 전혀 없었고, 어린 양의 보혈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선을 행할 능력은 생겼으나 항상 갈등 속에서 투쟁해야 했으나, 새 예루살렘에서는 모든 백성들이 악을 행할 능력이 사라지는, 궁극적인 하나님의 선하심의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지요.
최후의 심판 후에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한 도시를 주십니다. 그 도시 안에서 낙원의 축복들이 회복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잃어버렸던 축복들이 새 예루살렘에서 회복될 것입니다. 동산이라는 자연환경에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인간의 역사와 문화가 완성된 형태의 도시가 새 예루살렘입니다. 그 완성은 인간의 역사와 문화가 하나님께 드려짐으로 말미암아 이룩되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은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들어가서 그것을 하나님께 드립니다.(계21:26) 새 예루살렘은 자연 그대로의 낙원을 포함하는 동시에 만국의 영광과 존귀가 하나님께 드려진, 자연과 인간 문명이 조화된 도시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태초의 창조와는 별개의 또 하나의 창조가 아니라, 태초의 창조에 이은 창조의 완성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이제 더 이상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부터 이 땅으로 내려온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땅의 모든 성도들이 한결같이 소망해 왔던 “나라가 임하옵시며, 그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기도가 성취되는 오메가의 지점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점은 시간이 존재하지도 않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는 새로운 알파의 지점이 아닐까요? 요한계시록의 묵상을 마치면서 우리 모두가 진심으로 소망하기를 원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께서 뜻하신 일들의 장차 모습과 종국의 모습을 요한계시록을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속히 이루어지기 원하오며, 이 글을 읽고 듣고 실천하는 우리들 되게 하옵소서. 이 말세의 현실에서 자기의 옷을 깨끗이 빠는 우리들 되게 하옵소서. 새 예루살렘의 주인되신 하나님께, 그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