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2회 판관 6장-9장
판관 6,1-40 기드온이 판관으로 부르심을 받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그들을 일곱 해 동안 미디안족의 손에 넘겨 버리셨다”(1).
기드온 이야기의 도입 부분에서는(6,1-10) 이미 판관기 첫머리에(2,6-3,6) 나오는 주제들이 뚜렷한 표지를 이룬다. 곧 이스라엘의 불충, 주님께서 불러들이신 적들의 탄압, 이스라엘인들이 곤경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부르짖는 간청, 하느님께서 이민족의 억압에서 백성을 해방시키려 세우신 “구원자”의 파견, 판관기의 편집자에게, 미디안족의 억압은 하느님 백성의 불충에 대한 벌을 드러낸다. 이스라엘인들의 죄악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그것은 7-10절에 나오는 예어자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곧 무엇보다도 아모리족의 신들에게 바치는 경배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 앞에서 행한 악은 어떤 도덕적인 범죄라기보다 우상 숭배였다(2,17). 그들은 강력한 지도자인 판관들이 살아 있을 동안 우상 숭배에서 멀어졌던 것 같으나 판관의 치리 기간이 끝나면 곧바로 다시 우상 숭배에 빠졌다. 이처럼 타락, 주님의 징계, 이스라엘의 회개 그리고 주님의 구원이 순환적으로 반복되던 역사가 곧 판관 시대였다.
미디안족은 아브라함의 후처인 크투라에게서 난 후손들이다(창세 25,1-4). 그들은 유목민이었으며 외국과도 무역을 했다. 요셉이 바로 이러한 생활을 하던 미디안족에게 팔렸다(창세 37,28). 한편 이러한 미디안족이 거하던 땅은 모세와 아주 중요한 연관을 맺기도 하였다. 즉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해 도망친 곳이 곧 미디안 땅인데 그는 그곳에서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딸과 결혼해 가정을 이루었었다(탈출 2,15-22). 미디안 땅의 경계는 정확하지 않으나 대개 엘란(Elan) 만 동부 지역인 아카바만 일대이다. 그런데 간혹 모압 경계선 북부(민수 22,4,7)나 시나이 반도 부근으로까지 그 경계가 확장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들 미디안족은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 시에 모압 족과 동맹을 맺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자 했으나 오히려 이스라엘에게 대패를 당하고 만다(민수 31,1-12). 그런 자들이 1절에서처럼 다시 세력을 키워 이스라엘을 침공했으니 비록 7년간이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그 어느 때보다 곤란을 겪었을 것이다.
필리스티아 땅은 대체로 석회석으로 되어 있어서 천연 동굴이 많았으며 또한 인위적으로 굴을 파기도 쉬웠다. 어떠한 굴은 창고나 무덤(마태 27,60)뿐 아니라 일시적 거처나 피신처로도 곧잘 사용되었다(1사무 22,1). 그러기에 이와 관련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 시대 믿음의 사람들이 핍박을 피해 '산과 동굴과 땅굴'에서 유리했다고 언급했다(히브 11,38). 그리고 신약의 성도들도 핍박을 피해 동굴생활을 했으며 유대 종파 중 어떤 사람들은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쿰란 동굴에서 생활했다. 이와같이 사람들이 산속의 구멍이나 굴에서 생활했던 이유는 인적을 피할 수 있고 타인의 공격을 쉽게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의 침략을 받아 패퇴(敗退)하자 산에다 은신처와 동굴로 도망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즉 그들은 적을 대항할 힘이 없었으므로 적의 눈에 잘 띄지 않고 설령 적이 온다고 할지라도 어느 정도 쉽게 방어할 수 있는 높은 산의 동굴로 피신했던 것이다. 한편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은 당시 미디안으로 인해 입은 그들의 고통이 매우 컸음을 잘 나타내준다. 그 뿐 아니라 과거 그들이 주님 편에 섰을 때에는 능히 미디안족을 물리쳤던 것(민수 31,1-12)과도 좋은 대조를 이룬다.
“이스라엘인들이 씨를 뿌려 놓으면”(3) 우리 나라와는 달리 필리스티아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로 인해 여름철(5-9월경)에 비가 없는 건조기가 계속된다. 그러다가 10월에 들어서서 '이른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이때에 그곳 사람들은 파종을 시작한다. 그리하여 파종된 씨앗은 겨울 우기(12-2월경) 동안 자라나 결실을 맺고 대개 3,4월 경에 추수하게 된다. 그런데 파종할 때 미디안과 아말렉, 그리고 동방 사람들은 파종한 겨울철에서 추수기까지에 걸쳐 이스라엘을 약탈했던 것 같다. 특히 유목민인 미디안 사람들은 곡식이 싹을 내어 한창 자랄 때에 가축을 몰고 와서 그 곡식을 뜯게 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다 자라 이삭이 여물은 곡식마저 빼앗아 갔으니 이스라엘에 양식이 남아 있을 날이 없었다(4절).
“그들이 천막까지 챙겨서 가축 떼를 몰고 올라오는데 메뚜기 떼같이 많았다. 사람이고 낙타고 그 수를 셀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렇게 와서 이 땅을 황폐하게 만들곤 하였다”(5). 미디안족은 유목민들이었으므로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초지를 찾아 떠돌아 다녔다. 특히 그들은 낙타가 있었으므로 장거리 이동이 가능하였는바 가나안의 곡식이 자랄 때 쯤이면 나타나 곡식 밭에 자기들이 몰고 온 짐승들을 방목하고 장막을 지어 장기간 체류였다. 한편 여기서 '올라와서'라는 표현은 반드시 남쪽에서 북쪽으로 혹은 아래에서 위로 이동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이는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이방 땅에서 나아오는 것을 의미한다(2열왕17,3;24,1).
성경에서 메뚜기 떼는 종종 주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은 재앙을 상징한다(탈출 10,4;신명 28,42). 여기서도 이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특히 대적들의 수효가 엄청났다는 점과 그들로 말미암은 피해가 막심하였음을 강조해 준다. 미디안족은 떠돌아 다니면서 유목 외에 무역도 했으므로 낙타가 반드시 필요했다. 고대 근동에서는 짐을 운반하는 수단으로 이 낙타가 가장 많이 이용되었다(1열왕 10,2).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선조들이 이집트의 압제에 못이겨 고통으로 신음할 때와 같이(탈출 3,7) 극한 상황에서 주님을 찾았다. 이처럼 주변국들을 이용, 타락한 당신의 백성을 징계하시어 그 타락의 길에서 돌이키게 하시는 주님의 역사는 비단 판관기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는 주님의 전형적 섭리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미디안 때문에 주님께 부르짖자, 주님께서 예언자 한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셨다. 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왔다. 너희를 종살이하던 집에서 끌어내었다”(7-8).
모세 시대까지가 하느님께서 직접 나타나심(신현현 Theophany) 시대라면 사무엘 이후부터 말라기 예언자까지는 예언자(prophet) 시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중간의 판관시대는 신현현 시대와 예언자 시대의 과도기적 상황으로서 특별히 어떠한 시대라고 정의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주님께서 당신의 뜻을 계시하시는 통로가 다양했기 때문이다. 즉 주님께서는 본절에서처럼 예언자를 보내시거나 아니면 판관을 통하여 말씀을 전달하시는가 하면 직접 주님의 천사를 보내기도 하셨다(11절;2,1;13,3).
이처럼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집트 탈출 역사를 다시 상기시켜 주신 까닭은 가나안 땅에 그들이 거주할 수 있게 된 것이 온전히 당신의 능력에 의해서만 가능했음을 일깨워 주시기 위함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이집트 탈출 과정에서 맺은 당신과의 계약(탈출 19,5-8)도 상기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본절은 배은 망덕한 이스라엘 백성의 허물을 교훈하시는 말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나는 너희에게 말하였다.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 너희가 아모리족의 땅에 산다고 해서 그 신들을 경외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너희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10).
일찍이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셨던 약속을 상기시켜 주는 말은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라는 것이다. 즉 당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당신의 계명에 순종하고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면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주님이 되리라'(탈출 6,7;19,5,6)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이후 이스라엘은 그 같은 계약에 충실할 의무가 있었는데 오히려 그들은 틈만 있으면 이를 거스르는 죄악을 저지르곤 하였다.
성경에서 '아모리족'은 종종 '가나안족'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창세 15,16;여호 24,15). '아모리족의 땅'은 '가나안 땅'을 의미한다. 한편 이 가나안 땅에는 국가 신(수호신)을 비롯해서 인간의 행복과 불행과 관련된 신들 등 여러 종류의 신들이 있었다. 그중 성경에 언급된 가장 대표징인 신들을 보면, 가나안의 바알과 시돈의 아스타롯을 들 수 있다(2,13;10,6;1사무 12,10;1열왕 16,31;18,18). 그리고 모압의 크모스(11,24;민수 21,29;1열왕 11,7;예레 48,7)와 암몬의 몰록(1열왕 11,7), 및 필리스티아의 다곤(16,23;1사무 5,2-7) 등도 들수 있다. 다음으로 성경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가나안 땅에 유행했던 신들은 만신전의 우두머리인 '엘', 전쟁 신 '아낫' 그리고 죽음의 신 '못'이 대표징이다. 그 외에도 몇몇을 들자면 헷족의 폭풍우의 신 '테슛', 모신(母神) '한나 한나', 시리아의 폭풍우의 신 '아닷' 등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이러한 우상들을 섬김과 동시에 주님도 같이 섬겨 종교적 혼합주의(syncretism)에 빠져 있었다. 한편 이러한 신들은 조각품에 지나지 않고 사람이 고안한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만군의 주님을 선택하여 따르는 백성들은 그 우상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 신들이 보호하고 있다는 가나안의 여러 나라 역시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 숭배에 빠진 결과 그러한 신들을 두려워하게 되었으며 여러 나라들의 침략에 대해서도 속수무책 이었다.
“주님의 천사가 아비에제르 사람 요아스의 땅 오프라에 있는 향엽나무 아래에 와서 앉았다. 그때에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미디안족의 눈을 피해 밀을 감추어 두려고, 포도 확에서 밀 이삭을 떨고 있었다”(11).
'아비에제르'은 므나쎄 지파 중 한 가족의 조상이었다. 따라서 '아비에제르 사람'이란 므나쎄 지파 중 '아비아세르'의 가계에 속한 자들을 가리킨다(여호 17,2). 한편 '요아스'는 이스라엘의 판관 기드온의 아버지이다.
성경에서 이 '상수리 나무'는 종종 우상 숭배와 연관되어 나타난다(이사 44,14.15). 기드온이 자기 아버지가 섬기던 우상 중 목신(木神)인 아세라를 찍어 불태운 것으로 보아(25,26절) 기드온의 아비 요아스 역시 이 나무를 숭배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미디안족의 눈을 피해 밀을 감추어 두려고, 포도 확에서 밀 이삭을 떨고 있었다.” 고대 근동에서는 대개 땅에 큰 구덩이를 파서 포도주 틀을 만들었다(이사 5,2). 한편 이처럼 장차 이스라엘의 위대한 구원자로 부르심을 받을 기드온이 몰래 숨어서 밀 타작을 하고 있었다는 아이러니컬한 사실을 통해,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압제의 정도가 매우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 밀 타작은 마당이나 넓은 들판에서 타작용 마차나 황소의 발굽을 이용하여 하였으나, 기드온은 미디안 족의 눈을 피해 좁은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던 중이었다. 기드온의 타작 행위는 그가 장차 이루게 될 큰일을 암시하고 있다. 고기 잡는 어부를 불러서 사람 낚는 어부로 삼으신 주님께서(마태 4,19), 밀 타작하고 있던 기드온을 택하여 미디안족을 대적하려고 타작하게 하신 것이다(이사 41,15).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기드온처럼, 생계에 연연해하던 상태에서 주님께로부터 오는 사명을 자각하는 상태로 변모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왜냐하면 시대는 달라도 수행되어져야 할 주님의 일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힘센 용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하고 말하였다.”(12). 이 축복 정식은 오늘날에도 아랍인들 사이에서 쓰인다. 이는 근본적으로,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는 기원이다(룻 2,4). 그러나 기드온은 이를 사실적으로 받아들여(13절), 자기를 찾아온 이의 그러한 낙관적인 생각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래서 주님께서 16절에서 기드온에게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겠다”하고 장엄하게 선포한다. 이 말은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의 책임자들에게 하신 도움의 정식이기도 하다(창세 26,3; 탈출 3,2; 신명 31,33; 여호 1,9; 이사 41,10; 에레 1,8).
주님의 선택을 받은 기드온은 천사에게 자신의 부르심에 반박을 하며 세 번의 질문을 통해 하느님의 손길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지 않다고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첫째,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있다면 왜 우리가 고통을 겪고 살아야 하는가.
둘째, 이집트 노예에서 해방시키신 주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은 어디에 있는지.
셋째, 왜 지금 미디안족의 침략에서 주님께서는 그대로 나두고 계시는지.
이 부정적 질문은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도 자주 던지는 질문이다.
기드온의 질문에 주님은 직접적 답변을 하지 않고 파견을 한다.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너의 그 힘을 지니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족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여라. 바로 내가 너를 보낸다”(14). '너희 그 힘'이란 단순히 기드온 자신의 힘을 기리키지 않는다. 대신 이는 주님께서 기드온과 함께 계셔서 주시는 힘을 의미한다. 용사라도 자기 힘을 의지하면 실패하지만 연약하고 작은 자라도 주님을 의지하는 자는 승리한다(시편 33,16).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인간적인 힘이 아니라 전능하신 주님의 힘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미디안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보증해 주셨다.
아직 기드온은 자신이 의지할 인간적인 요소나 가시적인 요소가 있어야만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즉 그는 주님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1사무 17,47) 깨닫지 못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예리코 성과 같이 견고한 성도 인간적인 수단을 사용치 않고 쉽게 무너뜨려 정복할 수 있게 하심을 그는 망각했던 것이다(여호 6,1-21). 뿐만 아니라 그는 아직도 주님의 말씀을 믿으면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요한 11,40).
기드온이 메뚜기 떼 같은 미디안 사람과 대적하기에는 자신이 역부족임을 고백한 것이다. “보십시오. 저의 씨족은 므나쎄 지파에서 가장 약합니다. 또 저는 제 아버지 집안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자입니다”(15). 여기서 아직까지 기드온이 인간적인 방편을 의지하려는 모습이 분명히 나타난다. 그렇지만 그의 고백처럼 기드온의 가정은 이스라엘 가운데서 지도적 위치에 있기는커녕 매우 보잘것없는 위치에 있었음은 사실일 수 있다.
‘보잘것없다’에 해당하는 히브리 말은 ‘나이가 어리다’는 뜻을 담고 있다. 기드온 역시 모세, 사울, 솔로몬, 예레미야처럼 자기의 나이나 능력, 그리고 자기 씨족의 약함을 들면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피하려 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가끔 사람들이 세운 계층이나 서열을 뒤집으시고 막내 또는 약자를 선택하여 당신의 계획을 실현하게 하신다. 이에 관해서는 는 이사야(창세 21,21), 야곱(창세25,23). 요셉(창세 37,7), 에프라임(창세 48,19), 사울(1사무 10,17-24), 다윗(1사무 16,1-13)을 살펴 볼 수 있다.
주님께서는 기드온에게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겠다”(16)라고 말한다. 일찍이 주님께서는 이와 동일한 약속 하에 모세와 함께 하였고(탈출 3,12) 여호수아와도 함께 하였다(여호 1,5). 그래서 그들을 통하여 큰 능력을 행하셨다. 따라서 주님께서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역사하셨던 것처럼 이제 기드온과도 함께 하사 그를 통해 큰 역사를 이루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임을 알 수 있다.
미디안 사람은 메뚜기 떼처럼 많다(5절).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을 “너는 마치 한 사람을 치듯 미디안족을 칠 것”이라고 한 것은 주님께서 그들을 매우 쉽게 멸망시킬 것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다. 이러한 표현은 민수 14,15에서 주님께서 배은 망덕한 이스라엘 백성을 치시려 한 것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된 적이 있다.
그러자 기드온은 신뢰가 필요해서 주님께 조건을 걸 듯 말한다. “참으로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신다면, 저와 이 말씀을 하시는 분이 당신이시라는 표징을 보여 주십시오”(17). 기드온이 주님의 천사를 통하여 주어진 자신의 소명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일이기 때문에 그 사실 여부를 확실히 알고 싶어 요구한 것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다. 사실 과거 모세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의 소명을 받았을 때, 자신의 소명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했다. 이때 주님께서는 모세의 손에 있는 지팡이를 통해, 그리고 모세의 손을 통해 표징을 보여주셨다(탈출 4,1-8). 또한 예레미야도 주님의 예언자로서의 소명을 받았을 때, 자신의 소명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자신을 아이와 같은 미약한 존재로 여겼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의 입에 손을 대시는 표징으로써 그에게 소명을 확신시켜 주었다(예레 1,4-9).
표징을 요구하는 기드온은 무엇을 요구하면서도 예물을 바친다. 그 행위는 주님께 자신을 내어 맡겨 놓는다는 수동적 수용을 가리킨다.
“기드온은 가서 새끼 염소 한 마리를 잡고 밀가루 한 에파로 누룩 없는 빵을 만들었다. 그리고 고기는 광주리에, 국물은 냄비에 담아 가지고 향엽나무 아래에 있는 그분께 내다 바쳤다”(19).
기드온은 주님을 위해 예물 즉 '미느하'로 염소새끼와 밀가루 한 에파로 만든 누룩없는 빵과 국을 가져왔다. 이와 유사하게 과거 아브라함도 주님의 천사들을 위해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 요리와 고운 가루 세 스아로 반죽하여 만든 떡과 버터와 우유를 가져와서 대접했던 적이 있다(창세 18,6-8). 기드온의 예물은 미디안 족의 압제로 인해 매우 곤궁한 살림을 하던 기드온에게는 매우 귀중하고 값진 것임에 틀림없다.
밀가루 한 에파는 약 23리터, 즉 약 12되 정도 되는 부피를 의미한다. 이러한 양은 아브라함이 주님의 천사들을 위해 가져왔던 가루 세 스아와 같은 부피이다(창세 18,6). 왜냐하면 한 에파(Ephah)는 세 스아(Seah)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누룩 없는 방은 효소의 역할을 하는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빵으로 주님의 백성들이 먹을 신령한 음식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것은 이집트 탈출 사건과도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
기드온은 고기는 광주리에, 국물은 냄비에 담아 향엽나무 아래 주님께 바쳤다. 하느님의 천사는 그에게 “고기와 누룩없는 빵을 가져다가 이 바위 위에 놓고 국물을 그 위에 부어라”라고 말한다. 기드온은 하느님의 천사의 말에 순종하며 그대로 따른다. 그랬더니 주님의 천사가 손에 든 지팡이에서 불이 나와 고기와 누룩없는 빵을 삼켜버렸다.
훗날 삼손의 부모가 염소 새끼 하나와 소제물을 취하여 반석 위에 두었을 때도 주님의 천사는 이와 동일한 기적을 행하였다(13,19.20). 또한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할 때도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주님께서 살아 계심을 보여 주시기 위해 불로써 제물을 태우셨다(1열왕 18,38). 이처럼 주님께서 초자연적인 불로써 제물을 태우신 것은 한편으로는 기도온의 헌신을 받아들인다는 증거이며(레위 9,24), 다른 한편으로는 징표를 구한 기도온의 요구에 대한 응답이었다.
이제야 기드온은 자기에게 나타나 위로와(12절) 소명과(14절) 확신을(16절) 주신 분이 바로 '주님의 천사' 곧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는 엠마오를 향해 가던 두 제자가 그들 바로 곁에 동행하셨던 예수님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눈이 밝아진' 후에야 깨달은 것과(루카 24,13-32) 유사한 예이다. 이처럼 우리도 항상 곁에 계시며 인도해 주시는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도무지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때가 많이 있다.
기드온은 주님의 천사를 만나고 말한다. “아, 주 하느님, 제가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주님의 천사를 뵈었군요”라고 말한다. 기드온이 이렇게 탄식의 소리를 발했던 것은 사람이 주님을 대면하여 볼 수 없고, 또한 보면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했기 때문이다(탈출20,19;33,20;신명 5,25).
그러자 주님께서는 기도온에게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죽지 않는다”(23). 이처럼 기드온이 주님을 보고서도 죽지 아니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주님의 본체를 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주 하느님께서는 죄인인 인간이 주님의 영광의 본체는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의 형상을 취하여 '주님의 천사'로 기드온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후에 삼손의 부모가 주님을 뵙고서도 죽지 않은 것 역시 이러한 연유에서이다(13,22-23).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말은 히브리인들은 동의어 대구법(同義語對句法)을 사용하여 말의 의미를 분명히 하거나 강조하는 습관이 있다. 본절 역시 주님께서 기드온을 위로하시면서 슬퍼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조금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시기 위해 '동의어 대구법'을 사용하신 경우이다.
그래서 기도온 향엽나무 아래서 주님을 위해 제단을 쌓는다. 그리고 그 곳의 이름이 “주님은 평화(주님 살롬)”이라고 불리운다. 과거 아브라함이 주님의 계약을 재확인한 후 헤브론에서 제단을 쌓았다(창세 13,18). 그리고 야곱도 베텔 광야에서 주님을 만난 후 그곳에서 제단을 쌓았다(창세 28,16-19). 이처럼 구약 시대에는 제단을 쌓는다는 것이 주님에 대한 그 사람의 열심과 헌신을 의미했다. ‘주님 살롬’ 이에 해당하는 원어 '야훼 살롬'로 '주님은 평화이시다'란 의미이다. 앞서 주님께서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기드온에게 '안심하라'고 말씀하셨는데(23절), 이 말의 원어 역시 '솰롬', 곧 '평화'이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본절에서 기드온이 쌓은 제단은 주님과의 화해의 제단이요 구원의 제단이었던 것이다. 한편 바오로는 주님의 나라의 주요 속성 중 하나를 평화라 하였고(로마 14,17),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평화의 왕이라 불리운 것 같이(이사 9,6), 평화라는 주제는 주님의 귀한 은총으로서 성경 전편에 걸쳐 흐르고 있다. 그런데 특히 불안과 혼란이 팽배해 있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과(루카 8,48) 가정과(1코린 7,15)나아가 전 세계가(1열왕 4,24)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님과의 화목한 관계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시편 29,11;갈라 1,3).
“그날 밤에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네 아버지의 황소, 곧 일곱 살 된 둘째 황소를 끌어오너라. 그러고 나서 네 아버지의 바알 제단을 허물고, 그 곁에 있는 아세라 목상을 잘라 버려라”(25).
히브리 말 본문에서서 황소 하나를 말하는지 둘을 말하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전자일 가능성이 더 크다. 맏배는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탈출 13,15), 이어서 두 번째로 난 소를 가리킨다. 또한 주님께서 굳이 번제물로 7년 된 아버지의 황소를 취하라고 하신 까닭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7년간의 미디안의 압제(1절)로부터 벗어나게 하려 하신 당신의 의사를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바알 제단은 본래 오프라에 모여 살던 아비에제르 사람들(11절)의 공동 소유이나 특별히 기드온의 아비가 관리 책임을 맡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근거로 기드온이 자기 아버지의 바알 제단을 허물면서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했다는 점(27절), '제단'이 단수로 사용되었다는 점, 이튿날 아침에 백성들이 바알의 제단이 허물어진 것을 알 정도로 그 제단에 관심이 있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28절). 아세라 목상은 가나안의 최고 신인 엘(El)의 아내이자 바알(Baal)의 어미이다. 아세라 목상은 통나무로 만들어 세운 것이다. 기드온은 아비의 바알 제단과 목상을 불살라 번제물로 바쳤다.
'바알'은 농경물의 수확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신이다. 따라서 바알 우상 파괴 소식이 그 신봉자들의 귀에 들어갈 경우, 자신들의 소득이 격감되는 것을 생각해서라도 그들이 격노할 것은 자명하다. 기드온이 두려워한 것도 바로 그러한 사태였을 것이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장소는 동네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으나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성읍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 제단이 파괴되었는지를 금방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비록 기드온과 그의 종들이 밤중에 신상과 산당을 파괴하여 주님께 제사를 드렸을지라도(26,27절) 그곳이 마을 가까이 위치했다면 성읍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기드온이 바알과 아세라를 파괴한 일 때문에 성읍 백성들이 그를 죽이려 한 점은 기드온의 부친이 소유한 바알과 아세라가 그의 가족에게만 속한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증거해 준다. 한편 이들 성읍 주민들은 본래 주님의 백성들로서 우상을 숭배하여 십계명을 범했으면서도 무너진 우상의 제단과 신상을 보고서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지 못했다. 도리어 그들은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파괴한 기드온을 죽이려 하였다. 즉 주님 앞에서 정작 죽임을 당할 자들은 자신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미처 이를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자 요아스가 둘레에 선 모든 이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바알을 옹호하는 거요? 그대들이 바알을 구원할 수라도 있다는 말이오? 바알을 옹호하는 자는 내일 아침까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오. 자기 제단이 헐렸으니, 바알이 신이라면 자신을 직접 옹호해 보라고 하시오.’ 그날 기드온은 여루빠알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것은 ‘그가 바알의 제단을 헐었으니, 바알은 그에게 맞서 자신을 옹호하라.’는 뜻이다”(31-32).
마을 사람들은 우상을 파괴한 기드온에게 분노를 품고 그 아버지에게 사형을 요구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아버지 요아스는 그 아들의 행위를 꾸짖기는 커녕 도리어 그를 위해 변호하였다. 기드온의 마음을 비추었던 주님의 영이 그 아버지의 마음을 감화시켰던 것 같다. 적과 동조하리라 예상했던 아버지가 지금 자기 편이 되어 주니, 기드온의 감사한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이렇듯 주님의 편에 서서 진리를 위해 싸우는 자는 언제나 그분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된다. 불의와 악한 세력은 생각보다 약하고, 정의와 진리는 무쇠처럼 강하다. 요아스는 참된 신과 거짓 우상, 진리와 오류를 구별하는 길을 마을 사람들에게 제시한 것이다. 즉 참된 신은 징계하나 거짓 우상은 벌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루빠알'이라는 이름은 '바알에게 대항하다'는 뜻이다. 이 이름에는 기드온이 바알을 쳐부쉈으되 바알은 기드온에게 어떠한 처벌도 내리지 못한 사실을 조롱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로써 바알은 허구의 산물이며 헛된 우상임이 밝혀진 셈이다. 한편 2사무 11,21에서는 '여루빠알'이 '여루베셋'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때 '베셋'은 바알의 별명인 '보셋'과 동일한 말로서 '부끄러움', '수치'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룹베셋이라는 이름도 바알의 수치를 드러낸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그때에 온 미다안족과 아말렉족과 동방인들이 함께 모여 요르단 강을 건너와 이즈르엘 평야에 진을 쳤다. 이즈르엘 평야는 요르단 강에서 길보아 산(1사무 28,4)부근을 거쳐 갈멜 산(이사 33,9) 부근을 지나며 지중해에까지 뻗쳐 있는 비교적 큰 평야이다. 따라서 이 평야는 므나쎄 반 지파와 이사카르, 즈불론, 아세르 지파의 땅에 걸쳐 있는 셈인데, 그곳에는 키손강이 흐른다.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이즈르엘 평야에 진을 친 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싸우기 위함이라기보다 이스라엘을 약탈하기 위한 준비를 갖춘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먼저 기습적인 군사 행동을 취하기 전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혀 그에 대한 방어나 어떠한 군사 행동(34,35절)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기드온을 사로잡았다. 그리하여 기드온은 나팔을 불어 자기를 따르라고 아비에제르 사람들을 소집하였다”(34). 주님의 영에 사로잡힌 기드온의 신호에 따라 '아비에제르 사람'이 순종하면서 모여 그를 따르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들은 지극히 심하게 우상을 숭배했던 자들이었으나 성령이 강하게 임한 기드온을 따랐다. 초대 판관 오트니엘도 주님의 영이 임했을 때 아람 임금 쿠산 리스아티임과 싸워 승리할 수 있었다(3,10).
주님의 영이 기드온을 사로잡았다는 것은 주님의 영이 기드온을 옷 입히듯이 혹은 무거운 장비로 온통 감싸듯 하여 저항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드셨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신앙 생활에서는 붙잡는 것보다 붙잡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주님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붙잡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 지혜나 능력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신앙의 열매도 주님께로부터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맺어지는 것이다. 주님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여 그가 때마침 침략한 적대국들로부터(33절) 이스라엘을 구원할 위대한 지도자로 세움 받는 장면이 나온다.
기드온은 므나쎄 지파의 아비에제르 족 출신이다. 따라서 자기가 속한 므나쎄 지파에게 제일 먼저 연락을 취해 그들의 힘을 규합했다. 그러자 적들이 진을 치고 있는 이즈르엘 평야와 접경 지대를 기업으로 받은 므나쎄 지파는 기드온의 부름에 쉽게 응했다. 아세르와 즈불룬과 납탈리 지파도 역시 이즈르엘 평야와 인접해 있고 적들의 약탈과 위협에 처해 있었기에 기드온의 부름에 응했다. 그런데 이 중 '아세르'는 드보라 시대에는 압제자의 영향권 내에 있으면서도 출전치 않아 드보라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는 지파다(5,17).
기드온은 자신의 요구를 주님께 아뢰기 전에 이미 이전 주님께서 자신에게 약속하셨던 바를(16절,“주님께서는,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겠다. 그리하여 너는 마치 한 사람을 치듯 미디안족을 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먼저 언급했다. 이것은 앞으로 있을 자신의 요구가 앞서의 주님의 약속과 관련이 있음을 시사해 준다. “기드온이 하느님께 아뢰었다. “이미 이르신 대로 저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렵니까?”(36).
이전에 주님께서는 기드온을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불렀음을 표징으로 보여 주셨던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이 다시 주님께 표징을 구한 것은 주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에 대한 의심 때문은 아니지만 자신의 연약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미 그에게는 주님의 영이 충만히 임해 있었으나, 그는 자신의 연약한 힘으로써 메뚜기 떼 같은 대적들과 싸워 이긴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에 따라 좀 더 확실한 주님의 표징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기드오는 주님께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른 것을 보게 하게 표징을 요구한다. 근동지방은 강우량이 적은 대신 밤에 이슬이 많이 내려 식물을 자라게 한다. 따라서 기드온 자신이 준비한 양털에만 이슬이 내리고 주변 땅에는 이슬이 내리지 않으면 그것은 분명히 주님께서 역사하신 기적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밤새 이슬이 주변 땅에 내리는 대신에 기드온이 준비한 양털에만 비가 와서 젖은 것처럼 많이 내리게 하시는 것은 주님께 있어서는 마치 어린애 장난과 같은 일에 불과하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전혀 개념치 않으시고 기드온의 요구를 들어주셨는데 이로써 기드온은 어느 정도 자신을 부르신 주님의 부르심과 그분이 덧입혀 주실 능력에 대하여 확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 번 더 그는 양털 뭉치만 마르고 주변 땅에 이슬을 내리게 요청한다. 이러한 기드온의 요구는 앞에서 언급한 요구와 정반대된다. 그렇지만 이 요구가 앞의 표징보다 더 어려운 것이라서 기드온이 주님께 요구한 것은 아니다. 그 대신 이는 앞의 이적을 보다 더 확증하기 위한 목적에서 청한 요구일 뿐이다.
판관 7,1-25 기도온이 미디안족을 쫓아내다
“여루빠알 곧 기드온과 그가 거느린 모든 군사는 일찍 일어나 하롯 샘 곁에 진을 쳤다. 미디안은 거기에서 북쪽으로, 모레 언덕 아래 평야에 진을 치고 있었다”(1). 여루빠알이란 '바알과 논쟁하다', '바알에게 대항하다'는 뜻으로 기드온이 바알 제단을 파괴하고서 얻은 이름이다. 기드온은 그의 이름이 여루빠알로 부르게 된다.
하롯샘은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얄룻' 샘으로 알려져 있다. 이 샘은 '이즈르엘 평야'의 바로 북쪽 길보아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한편 '하롯'이란 지명은 다윗의 30인 용사 중 '삼마'과 '엘리카'의 출신지로(2사무 23,25) 언급된 것 외에는 성경에 더 이상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다만 필리스티아 군대가 사울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와 싸우기 위해 진 친 곳이 '이즈르엘에 있는 샘'곁이었는데(1사무 29,1), 이것이 하롯샘과 동일한 샘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이즈르엘 골짜기 주변에는 샘을 끼고 있으면서 군대가 진을 치기에 적당한 장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기드온을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은 32,000명으로(3절) 메뚜기 떼 같은 적들과 비교할 때 그렇게 많은 수효는 아니다. 왜냐하면 무기가 오늘날처럼 발달하지 않은 당시에는 사람의 수효와 훈련 정도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거의 판가름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36,000명의 알렉산더 왕의 군대가 60만의 바사 왕 고레스 3세(Cyrus III)의 군대와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이긴 적도 역사적으로 실제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분명 그리 많지 않은 수의 이스라엘군이 엄청난 병력의 미디안 연합군을 상대하기란 역부족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오히려 수효를 줄일 것을 명하셨는데,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에서 였다. 즉 구원의 능력이 오직 주님께 있음을 알게 하시고 믿음의 정예(精銳) 용사를 뽑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이제, ‘두렵고 떨리는 자는 돌아가라.’ 하고 군사들에게 직접 말하여라.” 기드온이 그렇게 하고 나서 사열해 보니, 군사들 가운데에서 이만 이천 명이 돌아가고 만 명이 남았다”(3). 주님의 백성이 대적과 싸움에 있어서 '두려워서 떤다'는 사실은 불신앙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주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길 거절하였다. 그래서 그러한 사람들을 돌아가게 하였다. 만일 이들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는 커녕 스스로 자긍할 자들임에 틀림없다.
아마 1차 관문을 통과하고 남은 이들 백성 중에는 '졸장부'라는 비난이 두려워서 남아 있는 자들도 있었을 것이며, 또한 전쟁의 승리 후 주님의 영광을 가로막을 불신앙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남아 있는 1만 명도 많게 보시고 다시금 재감군(再減軍)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기드온이 군사들을 물가로 데리고 내려가니,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분부하셨다. ‘개가 핥듯이 물을 핥는 자를 모두 따로 세워라.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자들도 모두 따로 세워라.’ 그렇게 하였더니 손으로 물을 떠서 입에 대고 혀로 핥는 자들의 수가 삼백이었고, 나머지 군사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물을 마셨다”(5-6).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개처럼 물을 헐떡이며 먹는 사람, 너무도 태평스러운 자세를 하면서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사람을 제외하고 손으로 물을 떠서 경계하면서 마시는 사람 300명을 선택하였다. 300명은 서서 혀로 물을 핥았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주위를 경계하면서, 방심하지 않는 자들임에 틀림 없다. 따라서 이들은 매우 조심성이 요구되는 횃불 작전(15-23절)에 적합했을 것이다
이처럼 최종적으로 선발된 삼백 용사의 특징을 들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들은 장차 맞게 될 전투에 대한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 즉 비록 수효면에서는 엄청난 열세에 몰려 있었지만, 그들은 주님께 대한 신앙과 민족에 대한 소명으로 굳게 무장되었기에 담대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그들은 철저한 임전 태세(臨戰態勢)를 갖춘 자들이었다. 비록 소수일망정 확고한 목표 아래 한 마음 한 뜻으로 강력하게 결집될 때 위대한 성과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기드온은 주님의 명령에 따라 300명을 남겼으나 수많은 적들을 생각할 때 아직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즉 그는 자신의 소명을 확신하지 못하여 주님께 3번씩이나 표징을 구했었던 바 있으므로(6,17,36-40) 적을 치라는 주님의 명령을 듣고 두려워 망설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주님께서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또 다른 표징(13,14절)을 보여 주실 필요가 없었다.
주님께서는 기드온의 믿음 약함을 탓하지 않으시고 오직 믿음으로써 적과 싸울 수 있는 담력을 그에게 주시고자 원하셨다. 그 이유는 전쟁의 승리가 기드온과 그의 백성들의 용기와 지혜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능력에 있음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며, 또한 주님께서 그 일을 통해 영광 받기 원하셨기 때문이다.
기드온이 시종 푸라와 함께 적의 진지로 정탐하러 간 때가 밤이었으므로 적군들은 모두 잠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누워 있다'는 표현이 사용된 것이다. 여기서 '골짜기'는 '모레 언덕 앞 평야'(1절)를 의미한다. 한편 이처럼 적들은 이스라엘 군대를 가까이에 두고도 편안히 잠을 자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깊은 잠을 자고 있었기에 기드온의 군대가 쳐들어 왔을 때에 정신이 없어 자기들끼리 서로 싸웠을 정도이다(22절). 더욱이 기드온이 정탐하러 갔을 때는 아무리 늦어도 이경 초 곧 밤 10시에서 11시 이전이었다(19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모두 잠을 자고 있었다는 것은 그들의 수효가 메뚜기 떼같이 많은 것만을 믿고서 정신 상태가 해이해져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꿈이란 한낱 생리적 현상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함부로 해몽(解夢) 운운하는 것은 매우 터무니 없는 일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특별한 경우에 꿈을 통해 당신의 뜻을 계시하기도 하셨다(민수 12,6;욥 7,14). 기드온과 푸라가 적진으로 은밀히 침투해 들어갔을 때, 두명의 적병이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 군사의 그 꿈의 내용은 보리빵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을 내리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군사는 해몽으로 그 빵이 기드온이라는 것을 말한다. '보리빵'은 가난한 사람들의 가장 흔했던 음식으로 '비천함'을 상징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인바 이 보리빵은 넓은 의미로 당시 가난에 찌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한다. 그리고 좁은 의미로는 비천한 가문 출신인 기드온을 상징한다.
“그 꿈 이야기와 해몽을 들은 기드온은 경배하고 나서,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말하였다. “일어나시오. 주님께서 미디안 진영을 그대들의 손에 넘겨주셨소.‘ 기드온은 삼백 명을 세 부대로 나누고 나서, 각 사람 손에 나팔과 빈 단지를 들려 주었다. 단지 속에는 횃불이 들어 있었다”(15-16)
기드온은 그들의 꿈과 해몽이 정확한지 아닌지를 생각해 볼 필요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이는 이미 주님께서 보여 주시리라 약속했던 또 하나의 증표였기 때문이다(9-11절). 따라서 그는 이를 통해 주님께서 미디안 사람들을 자기에게 붙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신할 수 있었다. 사실 전쟁을 수행할 때에는 장비와 훈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그 군대의 정신력이 더욱 중요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의 전투력이 두려움으로 인해 매우 저하되어 있음을 감지하고 싸움에서의 승리를 확신한 것이다.
기드온이 수립한 횃불 작전(19-23절)은 비밀스럽게 적진 가까이 가서 적들을 당황하게 만들어 그 와중에 뛰어들어 싸우는 것이었다. 기드온이 자신의 용사 300명을 100명씩 세 대로 나눈 것도 보다 비밀을 잘 유지할 수 있고, 적들이 방어할 채비를 갖추기도 전에 한꺼번에 기습 공격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기 위함이었다. 사실 병사를 세 대로 나누어 미디안을 공략하는 것은 평야에 위치한 미디안 사람들(12절)을 공격하는데도 보다 용이했을 것이다.
기드온 군대의 주무기는 이처럼 나팔과 항아리 그리고 횃불이었다. 이는 전쟁 무기로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 하지만 다음과 같은 목적에 없어서는 안될 요긴한 무기였음에 틀림없다. 나팔을 부름으로써 마치 천군만마(千軍萬馬)의 대 공격을 알리는 신호인 듯 한 위협을 주고자 하였다. 항아리는 횃불을 감추는 데에 사용되었음은 물론, 깨뜨려질 때의 그 요란한 소리는 마치 적군을 짓밟아 부수는 듯한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야밤에 횃불을 한꺼번에 밝힘으로써 군대의 규모가 엄청나게 크게 보이도록 하였다. 그리고 기드온 군대는 갑자기 기습하여 대적들의 장막을 불태우려는 계산도 하였을 것이다.
기드온이 300명의 용사들에게 “주님을 위하여, 기드온을 위하여”라는 함성의 군호(軍號)를 주었다는 사실에 강조점이 있다.
구약 시대에 히브리인들의 밤 시간 계산은 해지는 시각과 해뜨는 시각을 중심으로 하여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즉 해질 때부터 밤 10시경이 초경이며, 10시경부터 2시까지가 이경, 그리고 2시부터 해뜰 때까지가 삼경이다. 따라서 '이경 초'라 함은 밤 10시에서 11시 사이를 가리킨다. 한편 신약시대에 와서 이러한 시간 구분법은 좀 더 세분되어 일, 이, 삼, 사경으로 나뉜다. 이는 곧 유대인들이 당시 로마인들의 시간법을 따랐기 때문이다.
“세 부대가 모두 나팔을 불며 단지를 깼다. 그리고 왼손에는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는 나팔을 들고 불면서, “주님과 기드온을 위한 칼이다!” 하고 소리쳤다”(20). 기드온의 군대가 '횃불'과 '나팔 소리' 그리고 '함성 소리'로 보초 교대 중에 있는 미디안 사람 뿐 아니라 편히 잠자고 있는 낙타 떼까지 놀라게 하는 장면이 묘사되어있다. 그곳은 평야였으므로 미디안 사람들에게는 나팔 소리와 함성 소리가 더욱 크고 우렁차게 들렸을 것이다.
기드온의 용사들은 포위망을 좁히지 않고, 단지 적진의 사면을 에워싸고서 계속하여 나팔을 불며 횃불을 들고 함성을 지르며 서 있었다. 그러자 예리코 성이 이스라엘 백성의 나팔 소리와 함성에 의해 무너졌던 것처럼, 미디안 군인들의 마음은 무너져 버리기 시작했고 그 결과 그들은 온통 갈팡질팡 아우성치며 서로 칼을 들이밀며 도주하기에 급급하였다.
판관 8,1-3 에프라임 지파의 원망
“그때에 에프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미디안족과 싸우러 가면서 우리를 부르지 않다니, 어찌 우리에게 이럴 수 있소?” 그들이 거세게 기드온을 비난하자, 기드온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이번에 내가 한 일을 어찌 여러분이 한 일에 비기겠습니까? 아비에제르가 포도를 수확한 것보다 에프라임이 포도 지스러기를 모은 것이 더 낫지 않습니까?”(1-2).
에프라임 사람들은 이스라엘 12지파 중 가장 불평 불만이 많은 지파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여호수아 당시 므나쎄 지파와 더불어 자기들이 기업으로 받은 영토가 다른 지파에 비해 좁다고 불평했던 적이 있다. 또한 훗날에도 그들은 기드온에게 했던 것과 같은 말을 판관 입다에게도 하면서 다투었던 적이 있다(12,1). 이러한 에프라임 지파의 행동은 거의 고질적이었는데 훗날 이스라엘 왕국을 분절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여로보암 역시 이 에프라임 사람이다(1열왕 11,26).
미디안 연합군과의 전쟁에 빠진 지파는 비단 에프라임 한 지파 뿐만 아니라 여러 지파들이었다. 더군다나 에프라임 지파는 전쟁 말기에서나마 참전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에프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러한 말로 비난한 것은 이스라엘 전체 지파 중에서 자신들이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기드온이 에프라임 사람들을 높여 주면서 그들의 노를 풀었던 사실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이반에 내가 한일을 어찌 여러분이 한 일에 비기겠습니까”라는 이 대답에서 기드온의 성품이 드러난다. 그는 겸손하고 온유하여 명예와 영광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의 분별력은 뛰어나 에프라임 사람들의 불평으로 발생할지도 모르는 내부의 분열 위험을 감지하고 지혜롭게 예방책을 강구하였다.
'끝물 포도'는 '맏물 포도'를 거둔 후 남은 포도를 의미한다(이사 24,13). '에프라임의 포도 지스러기가 아비에제르의 수확한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는 것이다. 여기서 '포도 지스러기' 즉 '끝물 포도'는 '맏물 포도'보다 맛이 시고 질도 훨씬 뒤떨어진다. 그런데도 기드온이 에프라임 산지의 '끝물 포도'가 자기 고향에서 생산되는 '맏물 포도'보다 훨씬 좋다고 말한 것은 미디안과의 전투에서 기드온 집안 사람들인 아비에제르(6,11)이 처음부터 끝까지 세운 공로보다 전쟁의 막바지에 참여한 에프라임 지파의 공로가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물론 에프라임 사람들은 미디안의 두 제후를 죽였을 뿐 아니라 적들의 퇴로를 차단하는 등 큰 역할을 하였음에는 틀림없다(7,24.25). 그러나 아무리 낮게 평가하여도 싸움의 전 과정을 주도했던 기드온과 그의 소속 가문의 업적은 에프라임 지파의 것에 비해 뛰어났으면 뛰어났지 뒤떨어질리 없다. 그런데도 기드온이 이처럼 겸허한 태도를 취한 것은 주님께 대한 그의 신앙심 때문이었다. 즉 그는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지파들간에 분열이 생기는 것은 원하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그는 반목(反目)보다는 평화를 추구하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신앙의 정도(正道)에 자신을 승복시켰던 것이다.
주님께서 에프라임 지파로 하여금 미디안 두 제후를 죽이는 명예로운 전과(戰果)를 올리게 하신 이상, 그밖에 기드온 자신이 행한 모든 일들은 그 같은 영광에 비하면 하찮은 것들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기드온이 에프라임 지파에게 대한 태도는 "부드러운 대답은 분노를 가라앉히고 불쾌한 말은 화를 돋운다"(잠언 15,1)는 교훈이 꼭 들어맞은 경우이다. 만일 기드온이 자신의 지도자적 권위에 도전해 온 에프라임 지파를 용납 치 아니하고 또한 저들의 시비를 공박하려고만 들었다면 이처럼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기드온은 그러지 아니하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길 줄 아는 지혜롭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판관 8,4-21 기드온이 요르단 동쪽에서 미디안족을 쳐부수다
8,4-21은 요르단 동쪽에서 미디안인들과 벌인 전투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런데 이 전투가 단순히 7,1-8-3에 나오는 전투의 계속이 아니라는 사실이, 오늘날 일반적으로 인정된다. 이것들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역사적 전통인 것이다. 사실 수콧과 프누엘 사람들의 대답에서 볼 수 있듯이, 8,4-21의 일화에서는 미디안인들이 패배한 것으로 나타나 않는다. 그리고 미디안의 우두머리들은 같은 사람들이 아니다. 앞의 일화에서는 오렙과 즈엡 제후였는데, 여기에서는 제바와 찰문나 ‘임금’이다. 끝으로 기도온은 패주하는 적군을 추격하는 것이 아니라 타보르 산에서 살해된 형제들의 복수를 한다(8,17-19). 그리고 8,4-21의 일화에서는 요르단 동쪽에 대한 매우 상세한 지식이 특징적이다(10-13절 참조). 그래서 이 일화는 요르단 동쪽에서 유래하는 전통일 것이다.
판관 8,22-28 기드온이 왕권을 거부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말하였다. ‘당신께서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해 주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자자손손이 우리를 다스려 주십시오.’ 그러자 기드온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내가 여러분을 다스릴 것도 아니고 내 아들이 여러분을 다스릴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을 다스리실 분은 주님이십니다”(22-23).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드온에게 기드온의 집안대대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달라는 요구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요구한 것은 당시 고대 근동에 왕위 세습 제도가 보편화되어 있었음을 보여 준다. 물론 당시의 판관 제도는 아직 미분화된 이스라엘의 통치를 위해 주님께서 마련하신 과도기적 체제였다. 그리고 왕정(王政)에 대해서는 이미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 지시하신 바 있다(신명 17,14-20).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미디안의 압제로부터 구원한 기드온의 인간적 용맹과 지도력에 의존하여 안전을 확보해 보려는 의도에서 그를 왕으로삼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때가 이르러 왕을 택하시고 세우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행위이다. 이스라엘이 진정 왕정이 도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었다면, 백성들은 주님께 간구했어야 마땅하였다. 따라서 임의로 왕을 세우고자 한 이스라엘의 행위는 왕되신 주님(1사무 8,7)을 경배하지 않는 불신앙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진쟁에서 승리한 것이 자신의 힘과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주님의 능력에 의해서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백성의 요구를 거절하면서 오직 주님 주님만이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왕이시며 모든 영광을 그분이 받아야 마땅하다는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또한 기드온이 했던 이 말은 백성들로 하여금 인간 지도자를 의뢰하지 말고 주님만을 의뢰하도록 하는 교훈도 담고 있다.
“기드온이 그들에게 또 말하였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청할 것이 있습니다. 저마다 전리품 가운데에서 고리를 하나씩 내주십시오.” 적군이 이스마엘인들이었기 때문에 금 고리를 달고 있었던 것이다”(24).
이즈마엘은 아브라함의 처 사라의 몸종인 하갈이 낳은 아들이다(창세 16,15). 그 후손인 이즈마엘족은 시나이 반도 북동쪽에 있는 바란 광야를 중심으로 유목 생활과 대상(隊商)을 하였으며,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소생인 미디안 족(창세 25,2)과 매우 친밀하게 지냈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이즈마엘과 미디안을 같이 생각했던 것 같은데 실상 별 무리는 없다. 왜냐하면 '이즈마엘 사람'은 아라비아의 유목민에 대한 일반적인 명칭이며 넓게는 미디안족도 이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들은 항상 이동하면서 생활했으므로 언제든지 자기들이 원하는 물건과 바꾸어 사용할 수 있는 귀중품 특히 금을 많이 지니고 다녔다.
기드온의 요청으로 들어온 금 고리의 무게는 금 천칠백 세켈이다. 한 세켈(Shekel)은 약 11.4g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 사람에게서 노략한 금의 무게는 21.38kg 가량 되었다. 그리고 기드온은 다른 장식구와 함께 자홍색 옷을 받는다. 자색의복이란 고대 이집트 및 필리스티아 일대에서는 지중해의 조개에서 추출한 액으로 붉은 보라 빛 염료를 만들었다. 따라서 이 자색 염료로 염색한 천이나 의복은 매우 귀할 수 밖에 없었는데 대개 귀족이나 왕족들만 착용하였다. 로마 병정들이 예수님을 체포한 후 그에게 붉은 홍포를 입힌 까닭도 곧 '자색'이 당시 '왕'을 상징하는 색깔이었기 때문이다.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폿을 만들어 자기가 사는 오프라 성읍에 두었다. 에폿은 본래 대제사장의 의복으로서 앞으로는 가슴을, 뒤로는 등을 덮었던 조끼 모양의 상의(上衣)였다. 특별히 주님의 뜻을 묻고자 할 때에 대제사장은 이 옷을 입고 우림과 툼밈으로 판결을 구하였다(탈출 28,6-30). 그런데 기드온은 금으로 이 에폿 형상을 만들어 자기 성읍에 둠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범죄케 하는 소지를 마련하였다. 즉 이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로에 있는 성막의 제사에 집중하지 않고, 오프라에서 제사를 드리며 주님의 뜻을 구함으로써 무질서 속에서 점차 우상 숭배의 길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기드온이 만든 에폿을 우상을 섬기듯이 섬긴 것이다.
7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던 미디안 세력이 철저히 진멸됨으로써, 이스라엘은 다시 평화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외부적 평화 이면에는 타락의 움직임이 움틀거리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기드온 생전에도 에폿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등 가증한 행실을 버리지 못하였으며(27절) 기드온의 사후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알을 열렬히 숭배하기 시작하였다(33절). 굳이 새겨진 이방 신의 형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오늘날 전 세계에 만연해 있는 물질만능주의, 출세 제일주의, 극단적 이기주의 등도 우상 숭배나 다름이 없다(이사 60,6).
판관 8,29-35 기드온이 죽다
“요아스의 아들 여루빠알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 살았다. 기드온은 아내가 많아 제 몸에서 난 아들이 일흔 명이었다. 스켐에 있는 그의 소실도 그에게 아들을 하나 낳아 주었는데, 그는 그 아이에게 아비멜렉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29-31). 기드온이 노년(老年)에는 판관으로서의 공직을 은퇴하고 조용히 집에 머물면서 여생을 보낸 것을 가리킨다. 기드온이 아내를 많이 얻어 70명이나 되는 아들을 두었을 만큼 이스라엘 사회에서 큰 지위를 얻었던 사실을 암시한다. 특히 이것은 기드온이 비록 왕위를 거절했으나 왕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뿐만 아니라 기드온이 말년에 영적으로 매우 타락했음도 시사해 주고 있다.
기드온의 본래 거주지는 '오프라'이다(6,11). 그런데 그는 첩을 스켐에도 두고 있었다. 이 사실은 기드온이 첩들을 여러 지역에 많이 두고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한편 스켐은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50Km 정도 떨어진 에프라임 산지에 위치한 성읍이다. 문제아 아비멜렉 이름의 뜻은 '왕의 아비' 또는 '아버지는 왕이시다'란 의미이다. 이 이름은 그의 아버지 기드온의 지위에 따라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기드온이 낳은 70명의 아들 중 유독 이 '아비멜렉'이 언급된 것은 훗날 그가 왕위 찬탈 사건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판관의 죽음은 곧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과 직결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은 주로 우상 숭배였으며, 이에 따라 하느님을 섬기는 신앙은 그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또한 이스라엘 전체 역사 가운데 가장 심각한 우상 종교는 바알 종교로서 이스라엘의 분열 왕국 이후에도 계속될 정도로 그 뿌리가 깊었다(2열왕 10,18). 이스라엘이 바빌론에 멸망할 때도 이 종교는 이스라엘 가운데 잔존해 있었다(예레 2,8).
바알 브릿이란 구약시대 당시 스켐 지역에 존속했던 가나안인들의 바알 신이다. 그 뜻은 '계약의 바알'로 곧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 주님과의 계약을 버리고 바알과 계약을 맺었음을 보여 준다. 즉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을 매우 열렬히 숭배했음을 가리킨다. 한편 '바알브릿'은 '엘브릿'(계약의 엘, 또는 계약의 주님)으로도 알려졌는데(9,46),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 주님을 버리고 바알을 자기들의 주님으로 섬기며 그와 계약을 맺었음을 의미한다(34절). 이처럼 '바알브릿'이란 말은 이스라엘 사회에 우상 숭배가 극심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용어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에 빠진 이후 이전에 바알 제단을 파괴하였던 여루빠알(6,25-32) 곧 기드온의 가정을 우대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과거 기드온에게 대대로 왕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로 그의 집에 충성을 보였던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자세이다. 바로 이러한 점은 훗날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스켐 주민들과 공모하여 반역을 도모하게 된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판관 9,1-6 아비멜렉이 임금이 되다
“여루빠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스켐으로 외숙들에게 가서, 그들과 외가의 모든 친족에게 청하였다. 여루빠알의 아들 일흔 명이 모두 여러분을 다스리는 것과 한 사람이 여러분을 다스리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것이 낫습니까?’ 하고, 스켐의 모든 지주에게 직접 물어보아 주십시오. 그리고 내가 여러분과 한 골육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1-2).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바알을 극심히 섬기는 자기 친족들과 더불어(4절)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위하여 동족 상잔(同族相殘)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6절). 그리하여 일찍이 바알 제단을 파괴한 기드온의 행동과 정반대되는 그의 아들 아비멜렉의 소위(所爲), 즉 바알 추종 세력들과 결탁하여 악을 도모한 행위를 대조시키기 위해 '여루빠알'이란 이름만을 사용했던 것이다. 스켐은 예루살렘 북방 약 50km 지점의 에발 산과 그리짐 산 사이에 위치한 성읍이다. 이곳은 일찍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이스라엘 역사와 관련이 있었다(창세 12,1-7). 이곳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후 에프라임 지파의 기업으로 분배되었으나(여호 17,7-9) 그 후 다시금 도피성으로 구별되어 래위인의 성읍이 되었다(여호 20,7).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총회를 이곳에서 개최한 점으로 미루어보아(여호 24,1) 당시 스켐 성은 이스라엘 가운데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던 성읍이었을 것이다.
아비멜렉이 아비 기드온의 가계(家系)와 그의 어미의 가계를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는 말이다. 기드온은 므나쎄 지파의 아비에제르 가문 출신이다. 그러나 아비멜렉의 어미는 스켐 사람이다(8,31). 스켐성이 가나안 정복 후 에프라임 지파의 기업으로 분배되었던 점에 의거할 때 당시 스켐 성에 거주하던 아비멜렉의 어미와 그 외가(外家) 사람들은 에프라임 지파였을 가능성이 크다.
아비멜렉은 자신의 야심을 실현시키기 위해 스켐을 음모의 근거지로 확보하고자 하였으며, 스켐 주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혈연에다 호소하였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혈연은 이성보다 강하다'는 속담이 있듯이, 결국 스켐인들의 마음은 아비멜렉에게로 기울어졌을 뿐만 아니라 바알브릿 신당의 수입금으로 아비멜렉을 지원하였다(4절). 그리고 아비멜렉은 그 지원금으로 건달패를 고용하여 요탐 외의 모든 형제들을 살해하고 스켐의 왕이 되었다(5,6절).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아비멜렉은 그 아비 기드온의 후광(後光)과 어미의 혈연 및 지연 관계를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의 발판을 구축하였던 셈이다. 이같은 왕위 찬탈 음모와 살상은 이스라엘 왕국은 물론 이방 왕정의 역사에 두루 점철되어 있다(1열왕 16,10).
아비멜렉은 자기 형제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살해하였다. 이와 같은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본래 기드온이 많은 부인을 두었던 탓이다(8,30,31). 다윗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다윗은 많은 처와 첩을 거느렸다(2사무 5,13). 그 결과 왕위 계승권을 빼앗기 위해 집안 싸움이 두 번씩이나 있었다(2사무 15,7-18; 1열왕 1,25). 사람이 욕심을 품으면 자기 형제조차도 잔인하게 살해하는 일을 서슴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아마도 야고보사도는 이러한 일을 두고 “욕망은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다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야고 1,15)고 했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스켐의 모든 지주와 벳 밀로의 온 주민이 모여, 스켐에 있는 기념 기둥 곁 참나무 아래로 가서 아비멜렉을 임금으로 세웠다”(6).
고대 근동 지방에서 나무는 우상 숭배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에서도 오래된 나무를 섬기는 무속 종교가 아직도 남아 있다. 아마 스켐의 이 참나무는 과거에 야곱이 자기 가족의 모든 우상을 그 밑에 파묻어 버렸던 참나무일지 모른다(창세 35,4).
판관 9,7-21 요탐의 우화
“사람들이 이 소식을 요탐에게 전하자, 그는 그리짐 산 꼭대기에 가 서서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스켐의 지주들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그래야 하느님께서도 그대들의 말을 들어 주실 것이오”(7). 그리짐 산은 스켐 남서쪽에 인접해 있으면서 북동쪽에 있는 에발 산과 마주보고 있는 산으로 해발 854km이다. 이 산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을 향해 주님의 축복을 선포한 곳이기도 하다(여호 8,33-35). 그러나 참화(慘禍)를 면한 기드온의 막내아들 요탐(5절)이 이곳에서 그의 형제 아비멜렉과 그를 추종하는 스켐 사람들을 향해 저주를 선포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칼한 일이다.
요탐은 형제들을 복수하기 위해 은밀히 군사를 양성한다든가 하지 않고 심판을 주님께 맡기는 태도를 취했다. 요탐은 매우 창의적인 우화를 사용하여 논지를 전개하였는데(8-15절) 이러한 우화는 일종의 비유 문학으로 다수 대중을 설득시키기에 좋은 방법이었다. 즉 이후 전개되는 내용 중 8-13절은 왕이 되기를 거절한 나무들의 우화로서 기드온의 처신을 상기시킨다). 여기서 등장하는 올리브 나무, 무화과 나무, 그리고 포도 나무 등은 나름대로의 귀한 재능을 이웃을 위해 사용하며, 분수를 넘어 과욕에 빠지지 않는 겸허한 인간상(人間像)을 대변하고 있다. 반면 14,15절에 등장하는 가시 나무는 아무런 자격이나 재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협박 공갈로 왕위를 서슴없이 가로챈 아비멜렉을 비유하고 있다. 요탐의 이러한 경고는 그대로 성취되었다(22절 이하).
올리브나무 열매는 식료품, 연료, 목공품, 의약품 등 일상 생활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특히 이 나무에서 나오는 기름은 왕과 제사장의 임직식 때 그들의 머리에 부어졌고 성막의 등대를 밝히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주님의 귀한 축복이 올리브 나무에 비유되기도 하였다(호세 14,6). 이처럼 올리브 나무는 매우 귀하고 유용하였기 때문에, 나무들 중 왕이 될 만한 자질을 충분히 구비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굳이 왕을 뽑을진대 올리브 나무를 먼저 천거하는 것이 순리(順理)라 할 수 있었다.
무화과 나무는 오늘날에도 필리스티아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중의 하나이다. 그 열매는 흔히 식용으로 사용되나 일부는 약재(藥材)로도 사용된다. 필리스티아에서는 1년에 9개월 내지 10개월 이상 계속해서 그 열매를 딸 수 있다. 더군다나 무화과나무의 잎사귀는 넓고 무성해서 더운 지방에서는 고마운 그늘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포도 나무는 필리스티아 지방에서 올리브나무와 무화과 나무와 같이 가장 많이 재배되는 수종(樹種)이다. 이곳에서 수확되는 포도는 품질도 아주 좋아 주변 여러 나라로 수출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포도로 만든 포도주는 식수 사정이 좋지 못한 필리스티아에선 중요한 음료수 역할을 한다.
가시나무는 '들 가시'뿐 아니라(8,16) 가시 있는 관목(灌木)을 총칭한다. 이 나무는 저주를 상징하는 나무로서(창세 3,18) 무화과 나무나 포도 나무처럼 식용으로 사용될 열매도 없고, 올리브 나무와 같이 여러 용도로 소용되는 기름도 없다. 오히려 이 가시는 사람을 찌르며 고통스럽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요탐은 이 가시 나무를, 스스로 왕이 되기 위하여 형제 70인을 죽인 아비멜렉에 비유하고 있다.
모든 나무들이 가시나무의 무익성과 그 해악에도 블구하고 굳이 가시 나무더러 왕이 되어 달라고 요청한 것은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는 행위였다. 가시 나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선뜻 나섰으며 심지어 위협하는 자세를 보이기까지 했다(15절). 이처럼 지극히 우매하고 무모한 대중들의 여망(輿望)은 자기 분수도 모르는 파렴치한 지도자의 허세와 결탁하여 피차의 멸망을 초래케 하는 것이다.
가시 나무는 본래 그늘이 거의 없다. 따라서 그 가시 나무 밑 그늘에 피한다는 것은 오히려 그 가시에 찔리는 것과 같다. 이처럼 요탐은 스켐 사람들이 아비멜렉으로 하여금 왕 삼은 것이 그들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행위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기드온에게 왕이 되어달라고 부탁했을 때 기드온은 그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에는 왕이 주님 한 분 밖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스켐 사람들이 아비멜렉으로 하여금 왕을 삼은 것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함이었다(2,3절). 따라서 이는 주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결코 진실되거나 의로운 행동이 될 수 없다. 요탐은 그들에게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스켐 사람들이 기드온의 아들들을 몰살시킨 아비멜렉을 왕으로 추대한 것이 전혀 사심(私心)없이 주님의 뜻을 좇은 행위였다면 주님께서 스켐 사람들은 물론 아비멜렉도 만사형동하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스켐족의 소위(所謂)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한 이기적 행위였다. 따라서 요탐이 아비멜렉을 두려워하여 도망한 곳인 이곳 '브에르'과 동일한 곳인지는 분명치 않다. 왜냐하면 요탐이 그리짐 산(7절)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진 요르단 동편 모압 지경에까지 도망쳤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판관 9,22-49 스켐인들이 반란을 일으키다가 실패하다
“아비멜렉은 이스라엘을 세 해 동안 다스렸다. 그때에 하느님께서 아비멜렉과 스켐의 지주들 사이에 악령을 보내시니, 스켐의 지주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게 되었다”(22-23).
요탐의 예언대로(19,20절) 마침내 아비멜렉과 스켐 주민들 간에 깊은 반목이 조성되었음을 보여 준다. 아비멜렉은 자칭 왕의 자리에 오른 후에 아루마(41절)를 수도로 삼고서 점차 세력을 확충시키기에 여념이 없었을 것이다. 한편 스켐 주민들은 아비멜렉으로부터 특별한 배려를 받지 못함은 물론 오히려 억압만 당하게 되었을 뿐이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비멜렉의 비열하고 포악한 성격으로 미루어 그가 스켐인들을 이익의 도구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의 정책하시는 섭리로 말미암아 그들 간에 전투가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스켐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한 것은 주님의 뜻에 의한 것으로 율법적인 심판을 위해 행해진 것이다. 따라서 요탐의 저주(19,20절)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아비멜렉에 대항한 스켐 사람들은 산적생활과 같이 산에 매복하여 있다가 아비멜렉의 세력에 비공식적으로 도전했다. 이로 보아 아비멜렉이 스켐 성을 다스리는 동안 결코 훌륭한 통치를 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산적 떼는 과거의 역사에서 정치와 종교가 부패되어 정의가 시행되지 않는 나라에서 매우 많이 일어났었기 때문이다.
가알은 기드온의 이름을 여루빠알로 부름으로써 우상 숭배에 빠진 스켐 사람들로 하여금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을 더욱 적대시하도록 유도했다. 즉 '여루빠알'은 기드온이 바알단을 파괴한 데서 비롯된 이름이니(6,25-32) 이 사실을 기억한 스켐인들은 기드온의 아들인 아비멜렉에 대하여 더욱 반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때에 에벳의 아들 가알이 말하였다. ‘아비멜렉이 누구이고 스켐이 누구이기에, 우리가 아비멜렉을 섬겨야 한단 말입니까? 저 여루빠알의 아들과 그의 감독관 즈불은, 스켐의 아버지 하모르의 사람들을 섬기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어찌하여 그를 섬겨야 한단 말입니까? ”(28).
가알은 “스켐의 아버지 하모르의 사람들을 섬기지 않았습니까?”라는 반 아비멜렉 전선을 구축한다. 하모르는 히위 족의 사람으로 그의 아들 스켐은 아브라함 당시 스켐 성의 족장이었다(창세 34,2). 가알이 한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몰락하여 다른 부족들 사이에 흡수되어 버린 하모르의 후예와 아비멜렉을 비교하여 아비멜렉의 지위를 실추시키고 있는 말이다. 다시말해 스켐 성은 어디까지나 스켐 원주민이 다스려야 한다는 정통성(正統性)을 강조한 말이다. 가알은 아비멜렉에게 선전 포고(宣戰布告)를 한다. 가알의 추종자가 아비멜렉의 추종자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은연 중에 암시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알은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반역하는 일에 용기를 가지도록 했다.
가알은 사람들들 모아 스켐성에서 아비멜렉을 향해 반란을 일으켰다. 아비멜렉은 반란의 소식을 알린 즈불 성주의 말에 따라 군대를 비밀리 이동하기 위해 밤을 이용했다. 밤에 이동함으로써 아비멜렉과 그의 추종자들은 손쉽게 스켐 성과 인접한 곳에 이를 수 있었다.
가알은 스켐 성읍의 장관인 즈불을 따라 성읍 문 앞으로 나간 것 같다. 이로 보아 가알은 스불이 아비멜렉 편인 것을 눈치채지 못했음에 분명하다. 만일 스불이 아비멜렉의 대리권을 행사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면 가알은 그와 함께 아침부터 행동을 같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산꼭대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은 아비멜렉을 따른 무리 중 한 떼에 불과하다(34절). 이 무리들은 스켐 성에서 볼 때 가장 눈에 잘 띄는 산꼭대기에서 내려왔으므로 가장 먼저 언급되었다.
가알은 아비멜렉군과 맞서 싸우기 위해 자신의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나갔다(39절). 그러나 이른 아침에 불시(不時)의 습격을 받은 그들은 전투를 위해 사전에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출전했으므로 아비멜렉이 이끄는 네 떼의 사람들을 당해 낼 수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들은 많은 인명 손실을 내고 스켐 성문 입구까지 아비멜렉군에 의해 쫓겨 왔던 것이다.
아비멜렉은 일단 반역의 주동자를 제거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아루마로 퇴각하였다(41절). 그런데 이튿날 스켐의 백성들이 밭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42절) 그들 모두를 제거하여 후한을 없애버리기로 결의한 듯하다. 아비멜렉은 이번에는 전술을 달리하여 군사를 세 떼로 나누어 매복시켰다. 그리고 스켐 사람들이 모두 성에서 나온 후 한 떼는 성문을 차단하고 나머지 두 떼는 성밖의 스켐 사람들을 무참하게 도륙(屠戮)하게 하였다.
“아비멜렉은 그날 종일 그 성읍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그리고 성읍 안에 있는 백성을 죽이고 나서 성읍을 헐고 소금을 뿌렸다”(45). 소금은 식물의 결실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아비멜렉의 이러한 행위는 그 성읍에 대해 영원한 멸망의 저주(신명 29,23)를 선고하는 것을 상징한다. 한편 일찍이 여호수아도 예리코 성을 점령한 후 그 무너진 성을 재건하지 못하도록 저주를 선고한 적이 있다(여호 6,26). 그리고 로마의 디도(Titus)장군도 기원후 70년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그 성을 완전히 헐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온 군대는 저마다 나뭇가지들을 찍어 가지고, 아비멜렉을 따라가서 그 지하실 쪽에 쌓아 놓았다. 그러고서는 거기에다 불을 질러 지하실을 태워 버렸다. 이렇게 하여 ‘스켐 탑’의 사람들이 모두 죽었는데, 남녀 천 명가량이었다”(49).
아비멜렉과 그의 추종자들은 자기들이 꺾어 온 나무 가지로(48절) 스켐 탑 앞에 있는 신전 지하실에 불을 놓았다. 이것은 지하실에 불을 붙여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태워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불타는 나무의 연기로 질식시켜 죽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연기로 견디다 못해 밖으로 뛰쳐나오는 사람도 손쉽게 죽이기 위함이기도 하다. 반면에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그들이 지하로 들어가게 되면 도리어 자기들이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탑의 좁은 입구를 통해 탑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제한되어 있으므로 지하 굴 속에 있는 자들은 방어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남녀가 대략 일천 명이었다는 말에서 신전의 지하실은 비록 지하이지만 매우 넓은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곳에서 그들은 항상 종교 의식을 거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곳에서는 우상숭배에 따른 음란한 행위도 벌어졌을 것이다.
판관 9,50-56 아비멜렉의 죽음
테베츠는 스켐 북동쪽에서 약 18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성읍이다. 이곳 사람들도 스켐 사람들과 함께 아비멜렉에 대항하여 반역을 도모했음에 틀림없다. 아비멜렉은 테베츠로 진군하여 그곳을 멸망시키려고 하였다. 그 성읍 가운데 가장 견고한 탑이 있는데 그곳에 사람들이 들어가 문을 잠고 있었다. “아비멜렉이 그 탑으로 가서 공격하는데, 탑 어귀까지 다가가서 불을 질러 태우려고 하였다. 그때에 어떤 여자가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로 던져 그의 두개골을 부수어 버렸다”(52-53).
아비멜렉은 스켐인들을 공략할 때 사용하였던 것과 꼭 같은 화공법(火功法)을 사용하려고 하였다. 남자들이 활과 창과 칼로써 항쟁하는 동안에 여인들도 그 성을 수호하기 위하여 접근하는 적에게 돌을 떨어뜨림으로써 그 투쟁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여인은 맷돌 윗짝으로 아비멜렉에게 던져 죽음을 맞이하게 하였다. 맷돌은 고대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가정 필수품이었다. 여인들은 이것을 사용하여 곡식을 빻아 음식을 만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여인들은 그 망대로 피할 때에 이 맷돌을 가지고 갔던 것이다. 용사가 힘 없는 여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매우 명예롭지 못한 일이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죽어 가는 그 순간에서도 명예로운 죽음을 원했던 것이다. 그는 시종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여 최후를 맞이하였다. 이와 유사하게 필리스티아인과 싸움을 하던 사울은 치명상을 입은 후 이방인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자기의 병기든 자로 하여금 자기를 치게 한 일이 있다(1사무 31,4).
아비멜렉을 추종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의 죽음을 목격한 후 더 이상 싸워야할 명분이 없으므로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이러한 그들의 행동은 아비멜렉의 죽음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지도자를 잃은 아비멜렉의 군대는 뿔뿔이 흩어졌다. 이처럼 명분이 정당하지 못한 집단은 쉬 와해되기 마련이다. 반면에 진리 안에서 모인 무리들의 결속력은 가히 영구적이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인 무리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바뀌기도 하고 심지어 핍박을 당하여 소멸되기도 하지만, 진리는 영원하므로 언제 어디서든지 또 다시 일어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비멜렉의 죽음으로 인하여 그 동안 스켐인과 아비멜렉 간에 진행되었던 내분(內紛)은 끝이 났다.
여기에서 저자는 결론적으로 아비멜렉의 악행과 그를 추종한 스켐 사람들의 악행에 대하여 주님의 공의의 심판이 임하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가문에 대한 스켐 사람들의 반감(反感)을 고조시키기 위해 짐짓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여루빠알'로 부르는 악을 범했었다(9,2). 또한 그는 자기 형제들을 죽이고 자기 아버지 기드온이 거절한 왕위를 차지하므로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더럽히는 죄악을 저질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