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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우크라이나 침공, 난카이 트로프 예측... 격동의 시대 마주하는 「사생관」 / 6/2(금) / JBpress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만연, 러시아에 의한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심대한 피해 상정이 나오고 있는 난카이 트로프 지진….그런 격동의 시대에 우리는 삶과 죽음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해부학자 요로 타케시 씨, 정신과 의사 나고시 야스후미 씨라는 두 현자가 인간의 근원적 주제인 '사생관' 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본고는 「닛칸겐다이」에 연재된 요로 씨와 나고시 씨의 대담을 정리한 서적 「니혼이라는 병」(발행·일간 현대/발매·고단샤)에서 일부를 발췌·재편집한 것입니다.
■ 난카이 트로프 발생 후 나라를 어떻게 다시 만들까
--- 난카이 트로프 지진이 일어나면 사망자 32만 명, 피해 총액이 220조엔으로 예상돼 이후 전개 여부에 따라 국가 존속의 위기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 요로 타케시 씨(이하 경칭략)
이런 재해는 규모에 따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할 수밖에 없죠.
난카이 트로프뿐만 아니라 토난카이에 수도직하형 지진이 연동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화산 활동의 활발해지는 사태도 생각해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분화도요. 전부가 함께 온다는 것은 뭐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토난카이가 연동되어 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1년 정도 차이가 없다고는 할 수 없는데요.
어차피 그 무렵에도 지금과 같은 (일본이 쇠퇴 국면에 있는) 상황이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원래대로 되돌린다고 할 때, 이 나라는 뭔가 있으면 이전의 일상으로 되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그것을 잘 그만둘 수 있을지가 포인트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지역적으로 작은 단위로 자급해 나갈 수 있는지 여부.(도쿄 일극 집중에서 탈피해) 그러한 작은 사회 구조로 나라를 다시 만들 수 있을지가 중요해집니다. 재해가 있고 여러 의미에서 불행이 일어난 후에 도대체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는 것입니다.
작은 단위로 지역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당연히 재해가 있었던 곳과 없었던 곳에서 모종의 불공평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고, 가장 큰 문제는 도쿄(東京)입니다.
대도시의 부흥, 재건을 어떤 형태로 진정시키면 좋을까. 이거는 우리가 생각할 게 아니라 사실 관청이든 싱크탱크든 지금 인구가 좀 줄어들 수 있는데 이걸 어떻게 분산해서 어떻게 옮기면 좋을까. 지금부터 손써야겠죠. 그것이 진행되면, 환경 문제도 단번에 정리된다. 그러한 미래상을 지금부터 생각해 나가야겠지요.
--- 역사를 되돌아보면 어떨까요.
- 요로
재해 이후에는 반드시 법과 질서가 표면에 드러납니다. 안세이 때(1854년 안세이 동해지진, 안세이 난카이지진)는 안세이의 대옥(1859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국론이 분열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고방식의 사람을 리더로 하느냐에 따라 일본의 미래가 결정되거든요.
안세이 지진 이후에는 안세이의 대옥에서 메이지 유신이 되어 간다. 그 이전의 일본 역사에서도 전부 엄청나게 큰 방향 전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겐페이의 쟁란(1180년) 때도 그렇습니다. 「호조키(方丈記)」에 쓰여져 있습니다만, (1185년 3월 24일에) 헤이케가 단노우라에서 멸망한 4개월 후인 7월 9일(양력으로는 8월 6일) 교토에서 대지진(M7.4)이 일어났습니다. 이후 헤이안의 귀족정치에서 가마쿠라의 무가정치로 변해간다. 반드시 큰 변화가 일어날 거예요.
그러한 상황 속에서 자연 환경을 관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거의 개인적인 노력으로 하고 있는데요.
--- 난카이 트로프 지진이라고 하면 규모와 피해 상정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역사적으로 국가가 어떤 상황에 빠질 것인지,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그 시점이 부족하다는 말씀이시군요.
- 요로
세상 태평하죠.
■ 죽음을 걱정하기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한다
--- 그러한 장래상을 바탕으로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우크라이나 전투 장기화라는 상황 속에서 '삶과 죽음' 이라는 근원적인 주제를 가까이 생각할 기회가 늘었습니다.
- 요로
요즘 많이 생각하는데 죽음에 대해서는 미디어, 이번(주제)도 그렇지만 다룰 때 굉장히 이렇게 평등하고 단일하게 보이거든요. 그쪽으로 논의를 가져가면 잊어버리는 것은 이면이라고 할까, 사실은 겉면이지만, 산다는 것에 대한 사고가 소홀해져 버린다. 그러니까 너무 죽음이라고 하지 말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강조하는 게 좋겠어요.
코로나로 여러 규제가 일어난 것도 그렇네요. 요컨대 삶의 문제에 걸려버린다. 죽는 걸 걱정하면. 정부나 행정은 그런 생각이니까요. 죽은 사람을 더 쉽게 셀 수 있으니까. 살아 있는 사람이 얼마나 건강한지는 계산할 수 없으니까요. 규제라는 정책이 죽음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 죽음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마이너스일 뿐이라는 얘기죠.
- 요로
원래 마이너스일 뿐이에요.
- 나고시 야스후미 씨(이하 경칭략)
오늘은 요로론 속에서 전개되고 있는 일본상을 꼭 잘 들어두고 싶었습니다만, 조금 전 콤팩트하게 게다가 균형 잡힌 이야기를 해 주셔서 머리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생각한 것은 앞으로는 생활 방식 자체를 부드럽게라도 상당히 서둘러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난카이 트로프를 어떻게 볼 것인지는 언론을 통해서 더 다각적으로, 어떤 장면에서는 예능 프로그램 등도 포함시켜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이라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면 라이프스타일을 바꾸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년이나 1년이면 되는 일은 아니지만, 10년이나 20년이나 걸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몇 년, 5년 정도의 단위로 자신이 어디에 사는지라든가, 어떤 일에 살 수 있는 시간을 녹여 나갈지. 시간이 녹는다는 건 '게임 5시간 해서 시간 녹았다'처 럼 쓸데없이 쓸 때 하는 말인데요. 그런데 그런 말을 하면 살아있는 시간은 다 뭔가로 녹아가는 거죠.
깨고 보니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야. 제행무상, 성자필쇠라는 대국에 비하면 사실 무엇을 하든 별 차이가 없다.
그 위에서 무엇에 시간을 녹일 것인가 하는 식으로 생각하면, 가치관이 바뀌면 일본인의 라이프 스타일이 5년 정도로 상당히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난카이 트로프 이후의 혼란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 5년, 10년에 걸쳐 무브먼트를 일으켜 가면 말이죠.
- 나고시
예를 들면, 요로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지방에 생활 거점을 두고 도쿄와 왕래하는) 참근교대(参勤交代) 이야기입니다.
'20년 동안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는데 아무도 안 해'라고 많이 말씀하시는데 저 드디어 파도가 오고 있는 것 같아요. 산인(山陰) 같은 지방에 가면 현지인들은 '이런 시골에서 아무것도 없는데요.'라고 하는데, 이쪽에서 보면 '엉망진창으로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숲도 산도 강도 있다. 벌레는 있고.
요즘 들어 Z세대라는 10대에서 20대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땅에 발을 붙인 세대로 분수에 맞는다는 것을 실로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시골에 가서 작은 상에서 밥을 먹는 것에 풍요를 느낀다는 것은 거품을 겪고 있는 인간보다 10배 쉬운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안긴 라이프 스타일 속에서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것이 삶의 하나의 구두점으로서 좀 더 받아들이기 쉬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일관된 사상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요로 선생님이 사는 데 소홀해질 거라고 말씀하신 것의 이면을 외람되지만 제가 유추하면 그런 것으로도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자신의 마음을 주변에 잇지 못하는 '도시인'
--- 죽음은 누구에게나 100% 찾아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고 어떤 라이프스타일로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거죠.
- 요로
난카이 트로프 지진이라는 앞으로 확실하게 일어나는 대재해가 바로 상징적이네요. 한 단락으로.
--- 언젠가는 반드시 다가올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 요로
죽음이라는 주제에서 또 하나 신경이 쓰이는 것은 죽음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죠. 젊었을 때는 제 마음을 중심에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 생각하면 내 마음이 얼마나 내 안에 갇혀 있는가 하는 것이 역시 문제가 된다.
그 때, 시골이라고 할까 자연속에서 사는, 그런 생활방식을 하고 있다고 나고시 씨가 말한 것처럼 「흙으로 돌아간다」라고, 순순히 감각으로 파악된다. 즉, 내 마음이 내 안에 딱딱한 점으로 눌러앉아 있는 셈인데, 그것이 주위에 어른거린다. 그렇게 풀린 느낌의 마음, 그런 경향이 진행되지 않을까.
이것은 인터넷이나 커뮤니케이션이 급격히 진행되던 시대의 좋은 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 때는 그야말로 개성이라든가 마음의 특징을 키우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그것을 주위에 분산해 버린다.
인간의 세계로 분산되면 오래된 형태가 되어 버리는데, 더 온화하게 세계로 분산된다. 그러면 자기 죽음이라는 것이 도시 안의 고독에 비해 훨씬 편안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지금의 도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주위에 연결할 수 없게 되어 버렸으니까요.
요로 타케시 / 나코시 야스후미
https://news.yahoo.co.jp/articles/3ecf674624cafa49a41153de5ee861e81b2f9f8a?page=1
コロナ、ウクライナ侵攻、南海トラフ予測……激動の時代に向き合う「死生観」
6/2(金) 11:02配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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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press
「自然の中で生きると、死を迎えた時に心が周辺にちらばっていく」と話す養老孟司氏(写真はイメージ)
新型コロナウイルスの蔓延、ロシアによるウクライナ侵攻、そして甚大な被害想定が出されている南海トラフ地震……。そんな激動の時代に、我々は「生と死」についてどう向き合っていけばいいのか。解剖学者・養老孟司氏、精神科医・名越康文氏という2人の賢者が、人間の根源的なテーマである「死生観」について語り合った。
養老孟司氏と名越康文氏「2人の賢者」
(*)本稿は「日刊ゲンダイ」に連載された養老氏と名越氏の対談をまとめた書籍『二ホンという病』(発行・日刊現代/発売・講談社)から一部を抜粋・再編集したものです。
■ 南海トラフ発生後、国をどうやってつくり直すか
──南海トラフ地震が起きたら、死者32万人、被害総額が220兆円とも想定され、その後の展開次第では国家存続の危機になる可能性もあります。
養老孟司氏(以下、敬称略) こういう災害は規模によって何が起こるか分からないから最悪のシナリオを考えるしかないですね。
南海トラフだけでなく、東南海に首都直下型地震が連動する可能性もある。それから火山活動の活発化という事態も考えておかなければいけません。噴火もね。全部が一緒に来るということは、まあないと思うんですけど、東南海が連動してくることは間違いない。1年ぐらいのずれがないとは言えないんですけど。
どうせ、その頃も今みたいな(日本が衰退局面にある)状況になっているはずですから、これを元に戻すっていう時に、この国は何かあると以前の日常に戻すという傾向があるんだけども、それを上手にやめられるかどうかがポイントです。
具体的には、地域的に小さな単位で自給していくことができるかどうか。(東京一極集中から脱却して)そういう小さな社会構造に国をつくり直せるかどうかが重要になります。災害があって、いろんな意味で不幸が起こったあとに、いったいどういう社会をつくるのかがいちばん大事なポイントだということです。
小さな単位で地域的にやっていけるように、当然、災害のあったところとなかったところで、ある種の不公平が生じてきます。それはしょうがないとして、いちばんの問題は東京ですね。
大都会の復興、再建をどういう形で落ち着かせたらいいのか。これは我々が考えることではなくて、実際には官庁なりシンクタンクが、今の人口、多少減るかもしれませんけど、これをどう分散して、どう移したらいいか。今から手を打っていくべきでしょう。それが進めば、環境問題も一気に片付く。そういう未来像を今から考えていくべきでしょうね。
──歴史を振り返ってみていかがでしょうか。
養老 災害の後は必ず法と秩序が表面に出てきます。安政の時(1854年の安政東海地震、安政南海地震)は、安政の大獄(1859年)が起きています。極端に国論が分裂する可能性があります。どういう考え方の人をリーダーにするかで日本の未来が決まっちゃうんですよ。
安政の地震の後は、安政の大獄から明治維新になっていく。それ以前の日本史でも全部、ものすごく大きな方向転換が起こっています。源平の争乱(1180年)の時もそうです。「方丈記」に書かれていますが、(1185年3月24日に)平家が壇ノ浦で滅んだ4カ月後の7月9日(新暦では8月6日)に京都で大地震(M7.4)が起きています。その後、平安の貴族政治から鎌倉の武家政治へと変わっていく。必ず大きな変化が起こるんです。
そうした状況の中で、自然環境を管理できるか、ということですよ。今はほとんど個人的な努力でやられているんですけど。
──南海トラフ地震というと規模と被害想定ばかりに焦点が当てられていますが、歴史的なことを踏まえて国家がどういう状況に陥るのか、どんな変化が起こるのか。その視点が欠け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ね。
養老 世の中、太平ですよ。
■ 死を心配するよりも、いかに生きるかを考える
──そうした将来像を踏まえて「生と死」の話をお聞きしたいと思います。コロナ禍、ウクライナでの戦闘長期化という状況の中で「生と死」という根源的なテーマを身近に考える機会が増えました。
養老 最近よく思うんですけどね、死については、メディア、今回(のテーマ)もそうですけど、扱う時にですね、非常にこう、平等で単一に見えちゃうんですよ。そっちに議論を持っていくと、忘れちゃうのは裏側ですね、というか本当は表側なんですけども、生きるということについての思考がおろそかになってしまう。だから、あんまり死と言わないで、いかに生きるかを強調した方がいいですね。
コロナでいろんな規制が起こったこともそうですね。要するに生き方の問題にかかわっちゃう。死ぬことを心配するとね。政府とか行政はそういう考えですから。死者の方が数えやすいから。生きている人がどのくらい元気かなんて計算はできないですからね。規制という政策が死を基準にしてつくられていくわけです。
──死を前面に出すことはマイナスでしかないということですね。
養老 本来、マイナスでしかないですよ。
名越康文氏(以下、敬称略) きょうは、養老論の中で展開されている日本像をぜひ、ちゃんと聞いておきたかったんですけど、先ほどコンパクトにしかもバランスがとれたお話をしていただいて頭の整理ができました。
そのお話を踏まえて思ったのは、これからは生き方自体をなだらかにでも、結構急いで変えていくべきだということです。南海トラフをどういうふうにとらえるのかは、メディアを通じてもっと多角的に、ある場面ではバラエティーの番組なんかも込みで伝えて議論すべきだと思います。
死というものを深刻に考えたくなければ、ライフスタイルを変えていくことが大事だと思います。半年や1年でできることではないのですが、10年も20年もかかるとも思いません。
数年、5年ぐらいの単位で、自分がどこに住むのかとか、どういうことに生きられる時間を溶かし込んでいくか。時間が溶けるなんて、「ゲーム5時間やっちゃって時間溶けた」みたいにね、無駄に使う時の言葉ですけど。でもそんなこと言ったら、生きている時間は全部何かに溶けていくわけです。
さめてみたら、そんな大したことをやっているわけじゃない。諸行無常、盛者必衰という大局のことわりからみるとすると、実は何をやろうとそんなに差はない。
その上で何に時間を溶かすのかというふうに考えると、価値観が変われば日本人のライフスタイルが5年ぐらいで結構変わっている可能性があると思うんです。そうなっていれば、南海トラフのあとの混乱というものもある程度緩和される可能性がある。5年、10年かけてムーブメントを起こしていけばね。
名越 例えば、養老先生がおっしゃっている(地方に生活拠点を構えて東京と行き来する)参勤交代の話です。
「20年間いろんなところで言っているけど、誰もやらないんだよ」とよくおっしゃっていますが、僕、ようやく波が来ていると思っています。山陰などの地方に行くと、地元の方は「こんな田舎で何もありませんが」と言われるのですが、こちらからすれば「めちゃくちゃいろんなものがあるじゃないですか」となるわけです。森も山も川もある。虫はいるし。
最近になってZ世代という10代から20代の若い人たちは、ある意味地に足を付けた世代で分相応ということを実によく考えています。そういう人たちが田舎に行って、小さなお膳でご飯を食べることに豊かさを感じるというのは、バブルを経験している人間よりも10倍簡単な気がします。
自然に抱かれたライフスタイルの中で、死んだら土に返るわけですから、死というものが生きることのひとつの句読点として、もう少し受け入れやすくなるんじゃないかと思います。これには一貫した思想性があるように思います。養老先生が生きることがおろそかになるよとおっしゃったことの裏側を、僭越ながら僕が類推するとそういうことにもつながるかなと思います。
■ 自分の心を周りにつなげられない「都会人」
──死は誰にでも100%訪れます。だからこそ、日々をどう生きるかが大事、どんなライフスタイルにするかが重要だということですね。
養老 南海トラフ地震というこの先確実に起きる大災害がまさに象徴的ですね。ひとつの区切りで。
──いつかは必ず来る死の受け入れ方についてお伺いしたいと思います。
養老 死というテーマでもうひとつ気になるのは、死で消えてしまうことですね。若いうちは自分の心を中心に置いているような気がします。だけど、最近の考え方だと、自分の心がどのくらい自分の中に閉じられているか、ということがやっぱり問題になってくる。
その時、田舎というか自然の中で生きる、そういう生き方をしていると名越さんが言われたように「土に返る」と、素直に感覚でとらえられる。つまり、自分の心が自分の中に硬い点として居座っているわけですが、それが周りにちらばっていく。そういうほどけた感じの心、そういう傾向が進んでいくんじゃないか。
これはネットとかコミュニケーションが急激に進んだ時代のいいところだと思うんですよ。僕らのころは、それこそ個性とか、心の特徴を育てるような考え方をしていた。これからはそれを周りに分散してしまう。
人間の世界に分散すると古い形になっちゃうんですけども、もっとおだやかに世界に分散する。そうすると自己の死というのが、都会の中の孤独に比べてはるかに楽なものになるんじゃないかという気がするんですけどね。今の都会人は、自分の心を周りにつなげられなくなっちゃっていますからね。
養老 孟司/名越 康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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