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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수 목사
지난 주간 대통령이 새로 뽑혀서 오늘 모두 새 마음 가지고 나오신 줄로 생각합니다. 대통령을 선출하기까지는 구세대와 신세대간의 교차도 있었지만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니 이제 한 마음으로 묶어서 대통령을 잘 받들어 나라가 힘 있게 나가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줄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대통령을 우리가 투표해서 세운 것 같아도 사실은 하나님께서 배후에서 다 인도하시고 역사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해방될 때에도 우리 힘으로 된 것이 아니며, 6.25동란 때에도 우리 힘으로 지킨 것이 아닙니다. 다 이웃의 도움으로 지켰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민족의 지도자로 이승만 박사가 꼭 필요했기에 그분을 통해서 나라를 다스리게 해주셨던 것입니다.
그 후 이 나라가 너무 너무 가난해서 새로운 도약이 필요했을 때에는 다소 힘있는 대통령을 세워서 박정희 대통령 같은 분이 이렇게 끌고 나오셨고, 이만큼 기초를 닦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갈등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그 다음 대통령 같은 더욱 강한 대통령을 세우셨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 과도기에서는 그저 물렁한 대통령이 필요했기 때문에 노태우 대통령 같은 분을 세우셔서 그 과도기의 역할을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민주화의 단계로 들어갈 때에는 그에 필요한 김대중 대통령을 세우셔서 경제 다지기와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많은 일을 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지금은 계속 발전하여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에 새 지도자로 젊은 새 대통령이 당선된 줄로 믿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저는 솔직히 이회창씨를 찍었는데 안됐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우리아이들은 그저 노무현이고, 캐나다에 있는 아이들도 노무현 찍으라고 난리였지만 우리 집사람도 이회창씨를 찍었습니다.
왜냐하면 세대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공산당 하면 알레르기가 생기는 세대입니다. 공산당에게 당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산당들은 지금도 가족들을 만나지 않게 합니다. 때문에 지금도 알레르기가 생길 수 밖에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새 시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젊은 새 대통령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서 노무현 대통령을 밀어주고 기도하며 후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나라는 800만 성도가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은 이 나라를 눈여겨보시고 계십니다. 손바닥 만한 작은 나라가 아닙니까? 그런데 손바닥 만한 이 나라에 남쪽은 숲이 울창하고 잘살며, 아파트도 숲을 이루고 있는데, 북쪽은 나무가 없고 산이 다 붉은 색이며, 굶어 죽는다고 야단들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나라는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큰 나라이면 모르겠으나 이렇게 손바닥만한 나라에서도 이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를 지켜주셨는데 우리가 기도해야 할 제목은 공의가 하수같이 흐르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자유를 누리며, 억울한 사람이 없는 사회가 되어야겠고, 정직히 땀을 흘린 사람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는 국가가 되어야 하고, 사회가 되기를 우리가 힘쓰고 기도해야될 줄 믿습니다.
이제는 우리 성도님들은 지역간의 갈등도 초월해야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 나라를 하나님께서 오늘날까지 지켜주셨으니 앞으로도 더욱 창성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은 성탄을 앞에 두고 있는 주일입니다.
이 땅 위에는 많은 절기들이 있지만 전 세계가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절기는 크리스마스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크리스마스 절기만 가장 큰 절기로 모든 사람이 즐거워할까요? 이것은 하나님이 세상에 오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오셨으니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분이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이 오셔서 오신 그 해가 역사의 기원이 되었고, 오신 그 날을 우리 전 세계가 가장 큰 명절로 지킨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나신 그 날에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말하기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날은 최고의 기쁜 소식을 가지고 오신날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신 그 날을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지켜야할까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그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십니다.
하늘의 영광과 권세와 보좌와 모든 것을 다 버리시고 이 땅위에 오셨는데, 낮고 천한 목수의 가정에 맏아들로 가난하게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말씀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러 오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그분이 죽으셔야 우리가 안 죽고 살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의 의미를 가지고, ‘아, 주님이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으니 정말 이 날은 복되고 귀한 날이며,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하겠구나!’라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세상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 30년 전 대형 호텔에서 불이 났습니다. 불이 난 그날은 성탄절이었습니다. 163명이 죽었는데 10층 이상에서 떨어진 분들 다 죽었습니다. 불길 속에서 옷을 벗고 자다가 불이 나서 있는 모습 그대로 였습니다. 그 후에 가족들이 그 일을 수습할 때에 부끄러워서 어쩔줄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일까요? 정당한 부부가 자다가 죽었으면 무엇이 부끄러웠겠습니까?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부끄러워서 장례도 제대로 못 지냈다는 것입니다. 또 청량리의 대왕코너도 춤추다가 불이 나서 많이 죽었는데 그 날도 성탄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 성탄절이 그저 공휴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이 날은 정말로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러 오신 날인데 우리가 이날을 구별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지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서는 여러분 되시기를 중심으로 바랍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오신 날은 기쁜 날인데 왜 기쁜 날일까요?
여기 본문에 보니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또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이 땅 위에 슬픈자를 위로해 주시고, 상처받은 자를 싸매어 주시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죽은 자를 살리시겠다는 말씀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으며, 외로운 자에게 위로보다 더 기쁜 소식이 없으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준다는 것 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는 것입니다. 본문 1절에 있는 말씀을 누가복음 4:18절에서는 예수님이 자기를 향한 말씀이라고 직접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말씀은 오실 예수님에 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셔서 하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첫째는 죽을 우리를 살리려고 오셨습니다.
“죽을 우리를 살리셨다”라는 말씀은 우리 대신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피부에 닿도록 말씀드린다면 우리가 청년시절에 보았던 <콰이강의 다리> 영화가 있는데 그 영화를 보신 분들은 다 기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내용은 일본 사람들이 2차대전때 동남아를 다 점령하고 태국의 북부지역을 다 점령해서 콰이강에 일본 군수물자를 실어나르기 위해서 다리를 놓았습니다. 그때 영국의 포로병들을 동원하여 다리를 놓았습니다. 공사하는 도중에 중요한 장비가 없어졌고, 일본 사람들은 영국군들이 이 다리를 놓는 공사를 방해하기 위해 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모두 세워놓고 너희들이 이 짓을 했으니 다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상황이 어려워지자 한 병사가 자기가 어디 갔다 버렸다고 자진해서 말해가지고 그 자리에서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있다가 그 장비가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그 죽은 병사가 한 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장병은 왜 그렇게 자기가 했다고 했겠습니까?
상황을 보니 다 죽게 되었기 때문에 ‘내가 죽어야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죽었던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의 죽음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주님도 이렇게 우리를 위해서 죽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시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하면 잃었던 것을 채워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 모두 부모님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올 때에는 모두 정신적으로나 육신적으로 건강하게 왔습니다. 그러나 살면서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어떤 분은 남편 때문에, 자녀 때문에, 사업 때문에, 부모님 때문에 상처를 그렇게 많이 받습니다. 이런 마음에 찾아오셔서 위로를 받게 하십니다.
어떤 분은 죽을병에 걸렸는데 그 죽을 병에서 고침을 받으며, 어떤 분들은 마귀에게 늘 눌려 사는데 찾아오신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마귀에게 눌려 사는데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불신자들은 이사 가는 것도 마음대로 못갑니다. 점쟁이에게 가서 날을 받아서 손이 없는 날 가야합니다. 이사하는 날도 날을 받아야하며, 그렇게 좋은 결혼식도 날을 받습니다. 이사 가서는 못도 제대로 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자유함을 얻었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사를 가든 결혼하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 날이나 기쁘게 이사가고, 결혼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으며, 슬픈자들에게는 위로를 해주셨습니다.
제가 전도사 시절 어느 할머니에게는 술고래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은 맨날 술을 먹고 부인을 두들겨 패니까 견디다 못해서 4살짜리 아들을 놓고 부인이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도망가서 부인은 이혼을 소송하고, 또 두들겨 팼으니 형사소송도 했습니다. 부부사이가 이렇게 되니 할머니네 집은 쑥대밭이 되고 말았습니다.
집안은 엉망이 되고 아들은 더 많이 술을 먹으니 하루는 할머니께서 저를 찾아오셔서 “전도사님, 아들 술만 끈을 수 있다면 저도 예수믿을께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교회를 나왔습니다.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한시간 한주일 교회에 나왔는데 바로 술을 끊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되니 할머니가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래서 할머니도 교회에 나오시기 시작했습니다.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던 할머니가 교회에 계속 나오시더니 그때부터 우리집 강아지 밥을 계속 주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너무 신기해서 왜 강아지 밥을 주냐고 물었더니 “전도사님, 저는 집에 가면 마음이 답답해도 교회에 오면 마음이 너무나 시원합니다. 전도사님, 사이다 먹은 것 보다 더 시원해요”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은혜받았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부탁해서 누가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돈을 준다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 마음 속에 그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 말씀입니다. ]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마음이 상한 자들에게는 고침을, 포로된 자에게는 자유를, 갇힌 자에게는 놓임을 전파하며”라고 하셨습니다.
이 일을 하시려고 우리 주님이 이 땅위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주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주님을 영접하시고, 늘 생활하실 때에 함께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죽어야 하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육신은 죽어도 우리의 영혼은 천국 간다는 말입니다.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없다는 말씀이며,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은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는 잃어버린 모든 것을 회복하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축복을 다 잃었습니다. 마귀에게 빼앗겼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그 결과 불행하게 되었는데 이 축복을 다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하나님 아들답게 살지 못하고 옛날에 예수님 믿지 않고 불신자로 살 때에는 마귀의 종노릇을 했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다시금 하나님 아들의 권세를 회복해주신 것입니다.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아들의 권세를 회복해주셨습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무렵, 한참 인기 있었던 책은 미국에 있었던 흑인작가 알렉스 헤일리가 쓴 ‘뿌리’라는 책이 있는데 훗날 TV로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이 내용은 아프리카 추장 아들 하나가 서양 사람들에게 잡혀서 그만 배를 타고 미국에 와서 노예가 되었습니다. 자기는 분명히 추장의 아들이며 왕자 쿤타킨테 라는 자기 이름이 있는 왕자인데 노예로 잡혀와서 토비라는 이름으로 이름도 바뀌고 신분도 바뀌었습니다.
몇 번이나 도망치려고 했으나 도망치지 못하고 살다가 세월이 흘러 죽었습니다. 무덤을 조그마하게 하나 만들고 그 무덤 앞에 노예 토비라고 묘비를 세웠습니다. 그에게는 딸이 한명 있었는데 그 딸도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딸이 장성한 후에 아버지 무덤을 찾아왔습니다. 찾아와 보니 아버지 무덤은 토비라고 이름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딸은 자기 아버지 이름이 토비가 아니고 쿤타킨테라는 이름으로 묘비를 바꾸었습니다. 이 딸이 아버지의 뿌리를 회복시켜주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옛날 하나님을 잘 모를 때에 이렇게 살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셔서 지금은 마귀를 겁낼 것 없으며,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오신 이 날을 우리가 얼마나 감사하고 기뻐해야 하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본문 2절은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는 값없이 받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은혜는 은혜를 받으면 내 마음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알게 되고, 새로워지고, 부드러워진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다 은혜를 받는데 그 중에 은혜 받지 못한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답답합니다. 집에 가도 답답하고, 직장에 가도 답답하고, 교회에 와도 답답한 마음을 가진 분들의 은혜 받지 못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 은혜 받지 못한 마음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은혜를 받으면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물을 마시면 시원하듯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면 답답한 마음이 시원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은혜 받지 못한 마음은 딱딱하게 굳은 강퍅한 마음입니다. 아주 독하고, 강퍅하며, 돌맹이와 같이 단단합니다. 이런 마음은 살짝만 남에게 부딪쳐도 상처를 받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남편과 사는 아내는 맨날 상처받아서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은혜받기 전의 마음인데 은혜 받고 나면 이렇게 강퍅했던 마음도 부드러워지는 것입니다.
은혜가 뭡니까? 물과 같은 것입니다.
여름날 가물 때에 논바닥을 가보면 논바닥이 다 갈라져서 곡식도 말라 죽고 사람들 마음도 강퍅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비를 주셔서 논에 물이 가득하게 되면 그만 말라 죽던 벼도 다 살아나고 사람들의 마음도 푸근해져버립니다.
이와 같이 은혜의 물인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우리 마음이 부드러워지며 다른 사람을 싸매어 줄수 있고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받은 마음입니다. 또한 은혜 받은 마음은 예수님이 내 마음에 들어오면 지난날의 허물과 잘못된 것들을 씻고 더러운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이 사람의 마음이 새마음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마음입니다. 또한 더하여 믿음과 사랑의 마음을 가지게 해주시며 감사한 마음이 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마음에 들어가면 그 가정은 그때부터 천국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천국같은 교회가 되며, 여러분의 일터가 천국같은 곳이 됩니다. 이렇기 때문에 또 은혜받고 할 일이 생깁니다. 은혜받았으니 보답을 해야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충성하게 되고 봉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남에게 은혜받은 것을 사람의 마음에 새기며, 은혜는 물에 새긴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많이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믿음안에 있는 사람은 은혜를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은혜를 받으면 그저 보답해야지 하는 마음입니다.
성 프란시스는 아버지가 부유한 포목상이었습니다.
그가 부잣집 아들로 살면서도 은혜안에 살려고 하니 무엇인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부족함이 없었으니까 믿음생활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프란시스가 갑자기 어느날 성경을 읽다가 마태복음 19장 부자 청년이 나오는데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재산 때문에 걱정하면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에 자기 모습과 같다고 생각하고 그는 아버지 재산을 다 버리고,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가출을 했습니다. 나환자촌에서 그는 나환자들과 같이 살면서 하나님께 자기를 전폭적으로 맡기게 되고 그는 위대한 성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창설한 교단이 프란체스코 수도회입니다. 이 프란시스가 은혜를 받고 나서 그저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쓴 시가 평화의 시입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해주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며,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서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이 일을 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이 주님을 바르게 의지하시고, 마음속에 모시고 기뻐하시며, ‘우리 주님이 이렇게 오신 이 날이 복된 날이로구나. 우리 주님 오셔서 이 은혜 받으며 살아야겠구나’라고 믿으시고 이번 성탄을 준비하시고 맞이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