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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새로워지지 않으면
성경본문 : 느헤미야 13: 4-27
4. 이전에 우리 하나님의 전 골방을 맡은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연락이 있었으므로
5. 도비야를 위하여 한 큰 방을 갖추었으니 그 방은 원래 소제물과 유향과 기명과 또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십일조로 주는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또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두는 곳이라
6. 그 때에는 내가 예루살렘에 있지 아니하였었느니라 바벨론 왕 아닥사스다 삼십 이년에 내가 왕에게 나아갔다가 며칠 후에 왕에게 말미를 청하고 느5:14
7. 예루살렘에 이르러서야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 뜰에 방을 갖춘 악한 일을 안지라
8. 내가 심히 근심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
9. 명하여 그 방을 정결케 하고 하나님의 전의 기명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 놓았느니라
10. 내가 또 알아 본즉 레위 사람들의 받을 것을 주지 아니 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그 전리로 도망하였기로
11. 내가 모든 민장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그 처소에 세웠더니
12.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13. 내가 제사장 셀레먀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 사람 브다야로 고지기를 삼고 맛다냐의 손자 삭굴의 아들 하난으로 버금을 삼았나니 이는 저희가 충직한 자로 인정됨이라 그 직분은 형제들에게 분배하는 일이었느니라
14. 내 하나님이여 이 일을 인하여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나의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
15.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16. 또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하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유다 자손에게 예루살렘에서도 팔기로
17. 내가 유다 모든 귀인을 꾸짖어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18. 너희 열조가 이같이 행하지 아니 하였느냐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으로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이제 너희가 오히려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함이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 하고
19. 안식일 전 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 갈 때에 내가 명하여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말라 하고 내 종자 두어 사람을 성문마다 세워서 안식일에 아무 짐도 들어 오지 못하게 하매
20. 장사들과 각양 물건 파는 자들이 한두번 예루살렘성 밖에서 자므로
21. 내가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 밑에서 자느냐 다시 이같이 하면 내가 잡으리라 하였더니 그 후부터는 안식일에 저희가 다시 오지 아니하였느니라 22. 내가 또 레위 사람들을 명하여 몸을 정결케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로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옵시고 주의 큰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23. 그 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았는데
24. 그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25. 내가 책망하고 저주하며 두어 사람을 때리고 그 머리 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로 저희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저희 딸을 데려오지 않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하고 신25:2
26. 또 이르기를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저는 열국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저로 왕을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저로 범죄케 하였나니 왕상11:1, 27. 너희가 이방 여인을 취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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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말씀을 향하여
옛날 어느 동물 마을에 사자와 멧돼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무더운 여 름날 물을 마시기 위해 옹달샘에 왔다가 둘이서 맞닥드리게 되지요. "형님 내 가 먼저 왔으니 물은 내가 먼저 마시유~" 멧돼지의 말에 사자가 발끈합니다. "이 고얀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나보다 한발자욱 먼저 왔다고 네가 먼저 물 을 마셔. 어림도 없는 소리지" 그래서 피투성이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한참 을 싸우다가 잠깐 숨을 돌리는며 언덕을 쳐다봤더니 큰바위 위에 독수리 한 마리가 쾌재를 부르며 한 마리 죽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이보게 자네와 이렇게 싸우다간 둘 다 독수리 밥이 되겠네. 자네가 먼저 물을 마시게 나" 사자가 말하자 "아닙니다. 형님이 먼저 물을 마시세요" 그럽니다. 그래 서 둘은 물을 마시고 길을 떠났고 독수리는 헛물만 켜고 말았다 하는 얘기입 니다. 여기까지가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이지요.
10년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제목이 「이솝이야기 그 10년 후」입니다. 독수리가 먹을 것을 찾아다니며 하늘을 날아다니다 우물가를 지 나다 보니까 10년전의 그 멧돼지와 사자가 우르렁 거리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 까? 옳지! 10년전에 저놈들이 나를 보고 싸움을 멈췄지. 이제는 내가 몸을 숨겨야지. 바위 뒤에 살짝 몸을 숨겼습니다. 그것도 알지 못하고 사자와 멧 돼지가 계속 피투성이 싸움을 벌입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난 후에 멧돼지는 죽었고 사자도 피를 흘리며 숨을 몰아쉬고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누워있습니다. 독수리가 내려와 사자를 쪼아 죽였고, 사자를 실컷 배부르게 뜯어먹고 이미 죽 은 멧돼지를 바위 뒤에 숨겨두고 몇날 며칠 잘먹고 잘살았다 하는 그런 얘기 입니다.
멧돼지처럼 미련한게 인간이고 사자처럼 어리석은게 인간이라 어저께 얻는 지혜를 망 각하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어저께 커다란 은혜를 체험하고 살았더랬는데 오늘은 빈 껍데기 신앙생활 할 때가 있더라는 얘기지요. 그러다가 사자나 멧돼지처럼 망해가곤 합 니다.
II. 개혁은 계속되어야 한다 : 날마다 새로워져야!
주전 430-40년경 느헤미야라는 군계일학 걸출한 인물이 나타나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건축합니다.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데 제일 먼저 양문을 수축했지요. 양이 들어오고 나가는 문입니다. 양을 잡아 제사드리는 문이었습니다. 이 땅에 무너진 것들이 많이 있 지만 하나님과 이 백성의 관계를 먼저 세워야 하겠다고 하는 느헤미야의 결단이었습니 다.
성벽을 완성한 다음 제일 먼저 한 일을 기억하십니까? 성전에서 봉사할 문지기 찬양, 대 레위 사람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예배를 세우는 일, 제사를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도 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문 앞 광장에 온 백성들이 모여 제사장 에스라와 함께 커다란 부흥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뿐이 아니라 큰 은혜를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의 축제 - 초막절을 지키게 되지요.
이 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에 없는 영적인 부흥과 도덕적 회복, 정치적 안정을 누 리게 됩니다. 대역사를 마친 느헤미야 총독은 당시 중앙정보부가 있던 메대바사로 돌아 갑니다. 약10년 평화로운 삶을 누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상찮은 징조들이 나타나 기 시작했습니다. 예배를 소홀히 여깁니다. 성전을 더럽히는 세속적인 가치관들이 난무 하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헌신을 게을리했습니다. 가정들이 무너지기 시 작합니다. 신앙은 껍데기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 옛날 본문의 성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울며울며 달려와 성을 수축했던 느헤미 야는 이제는 백성들의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에 생각과 정신, 그 가치관들이 무너져 내 릴 때에 공동체가 무너져 내릴 때에 마음아파하며 달려옵니다. 신앙개혁의 바람을 일으 키는 사건이 오늘 본문 느헤미야서 마지막 13장입니다.
지난 연말부터 오늘 이 시간까지 느헤미야를 통하여 '하나님 이 민족이 무너지고 있어요. 한국교회를 일으켜 세워 민족을 세워가게 하시옵소서. 하나님 한국교회가 무너져 가고 있어요. 하나님 우리교회를 세워주셔서 이 민족에 교회를 세워가게 하시옵소서. 이 백성들의 마음이 희망이 무너지고 있어요. 오늘 이 땅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의 마음을 주셔서 무너진 이 땅을 세워가게 하시옵소서'
우리는 기도하며 느헤미야 서를 묵상해 왔습니다. 오늘 그 결론입니다. 진정한 건축은 신앙건축이다. 참된 성벽 수축은 영성의 수축이다 하는 것을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한때 번영을 자랑하다 세계 앞에 창피 당하는 우리 민족의 얘기기입니다. 세계를 놀라게 하는 교회의 부흥을 과신하다 몰락해 가는 한국교회의 이야기일 수 있습 니다. 자칫 성전건축이후 얼마든지 타성적이고 나태해질 수 있는 우리교회의 이야기입 니다. 한때 커다란 은혜를 체험하고 가슴 뜨거운 신앙생활해 왔다고 하는데 이제는 위 선과 가식만 남아있는 빈껍데기만 들고 가슴을 안고 살아가는 못난 신앙인들의 모습일 수 있더라는 얘기입니다.
성전건축을 위해서 흘렸던 우리의 땀, 성전을 봉헌하기 위해서 우리가 흘렸던 눈물, 참 으로 가치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우리 신앙이 게을러진다고 한다면 우리가 복음전하는 일을 나태하게 여긴다고 하면 물론 이 예배당 때문에 우리교회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마 천국가면 우리가 써야 될 면류관을 이 벽돌짝들이 쓰 고 앉아있을 겁니다.
성벽재건이후 평화로운 삶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타락했습니다. 변질되기 시작했 습니다. 부패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성벽재건보다 백성들의 정신, 믿 음을 바로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느헤미야서 결론은 백성들의 정신을 바 로 세우는 사건으로 맺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변질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새로워지지 않으면 부패할 수 밖에 없는 게 인간의 정신, 영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설교제목이 「날마다 새 로워지지 않으면」입니다.
행여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뜨겁게 신앙생활 했더랬는데 지금 차가운 가슴을 안고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 아니계십니까?
성전 벽돌을 쌓아가던 그 아름다운 손으로 지금은 그 성전을 무너뜨리는 자리에 앉아있는 분 아니계십니까?
불덩이 기도꾼 으로 살아갔는데 이제는 숯덩이만 남아계신분 아니계십니까?
그토록 순결했던 믿음이 지금은 때가 묻고 가증스러운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 계신 분 아니계십니까?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려는 분 아니계시냔 말입니다.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참으로 묘한 것이 인간이요 신앙생활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새로워지지 않으면 주님 전에 찾아나올 때마다 신령한 은혜를 날마다 새 롭게 경험하지 아니하면 신앙은 의식만 남게 됩니다. 감사와 찬송은 사라지고 불평과 원망만 남게 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던 가슴에 어느덧 자신의 영광과 자아의식이 들어 앉게 되는 것입니다.
한주일 교회를 비우는 사이 호주 시드니에 있는 Hills Christian Life Center 교회를 다녀왔습니다. 구라파 교회가 모두 그렇듯이 호주에도 주 교단에 속하 는 엥글리칸 처치, 장로교 감리교 교회들은 노인들 몇 명만 앉아서 예배를 드 리곤 합니다. 그러나 이 교회는 달랐습니다. 주일 낮 예배와 오후예배를 교 포교회에서 인도하고 Hills Christian Life Center교회를 방문하기 위해서 달려 갔더니 5시쯤 저희들이 도착을 했습니다. 5시 예배에 들어가기 위해서 마당까 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5시에 시작된 예배는 7시까지 계속되어졌 고 저희들이 예배를 마치고 나올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배당에 들어가기 위 하여 주차장까지 문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또 그 예배가 마치고 나면 8시 30분 마지막 예배가 있고 이 예배는 11시까지 계속된다는 얘기였습니다. 40 50분간 참으로 뜨거운 찬양이 이어졌습니다. 울며 손들며 춤추며 기도하는 찬 양하는 무리들이 가득 메워져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진지한 설교가 마쳐진 다 음 온 교인들은 일어서 손을 흔들며 기도했습니다.
그날 목사님의 설교 제목이 Everyday입니다.
Everyday Vision (꿈)
Everyday Impacting (충격)
Everyday Revival (부흥)
우리는 매일 새 꿈을 꾸지 않으면, 우리 인간은 날마다 새로워지지 않으면, 우리는 새로운 충격을 받지 않으면, 날마다 부흥을 체험하지 않으면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부도 국가도 민족도 기업도 교회도 가 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날마다 새로워지지 않으면 우리는 부패할 수 밖에 없습 니다. 피폐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III. 성전 중심에서 도비야를 몰아내라 : 성전거룩
이스라엘백성들의 신앙과 정신이 무너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느헤미야는 예 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성전안에서 가관스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성전 중심에 백성들이 가져온 십일조와 성문들을 보관하는 거룩한 한 장소가 있었습니다. 이 장소를 깨끗하게 집을 가꾸어 놓더니 거기에 「도비야」가 사택으로 쓰고 있는 것입니 다.
여러분 도비야가 누구입니까?
느헤미야서 1장부터 예루살렘 성벽수축을 끈질기게 방 해했던 인물이 나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라는 인물 아니었습니까? 조롱합니다. 비난 합니다. 무고합니다. 백성들에게 절망감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왕이 되려 한다고 거짓말을 지어냅니다.
여기 도비야는 배역상 개혁과 부흥을 방해하는 악한 마귀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도비 야와 제사장이란 자가 내통을 합니다. 자녀들끼리 정략결혼을 시키고 이 마귀같은 도비 야를 성전 중심자리에 앉혀 놓은 겁니다. 그러니 십일조 곡간이 텅텅빌수 밖에요, 예배 가 무너질 수 밖에요. 백성들의 영성이 무너져 내릴 수 밖에요.
분노한 느헤미야! 그방에 있던 세간들을 창밖으로 집어 던졌습니다. 그리고 방을 깨 끗하게 정결하게 소재했습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채워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예수님 께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시고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집이라 호통을 치시 고 돈바꾸는 자들의 상을 엎으시고 울부짖던 소떼와 양떼를 내어 좇으시던 장면을 기억 나게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계셔야하는 성전 중심에 예배와 찬양과 기도가 넘쳐야 될 성전 안에 악한 마귀가 아예 살림을 차리고 앉아있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꿈틀거려야 될 내 가슴속에 기도가 넘쳐야 될 내 입술 속에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 되어져야 될 내 영혼속에 세상에 썩을 가치관들이 내 영혼을 갉아먹는 악한마귀가 주리 를 틀고 앉아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문제는 이처럼 말도 안돼는 이런 일들이 자주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도비야는 성벽수축을 한사코 방해하던 자입니다. 지도자 느헤 미야를 끈질기게 괴롭히던 자입니다. 백성들을 낙망시키던 자입니다.
여기 도비야는 세속적인 가치관을 말합니다.
교회안에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의 능력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세속적 가치관들이 판을 치고 있다면 그것이 도비야입니 다. 교회가 교회되고, 교회가 새로워지고, 교회가 부흥되고자하는 몸부림에 찬물을 끼얹 는 일이 있다고 하면 그것이 도비야입니다. 지도자 느헤미야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세력, 백성들 교인들의 열심과 충성에 걸림돌이 있다고 하면 그것이 도비야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다.
나도 각성하지 아니하면 나도 날마다 새로워지지 아니하면 어 느 땐가 도비야가 될 수 있다. 이 무서운 가능성을!
특별히 오늘 우리는 교회의 일꾼 안수집사와 권사를 피택하는 일이 있습니다. 교회는 있어야할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부흥됩니다. 십일조 곡간에 도비야가 둥지 를 틀고 잇어서는 안됩니다. 성을 세워야 할 그 손으로 안방에 앉아 성을 무너뜨리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벽돌을 쌓아야 할 손으로 한 장씩 벽돌을 빼먹고 있다면 어 떻게 되겠습니까?
기름부어 일꾼을 세우고 일꾼이 된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또 한편 두려운 일 입니다. 꼭 금년에 일꾼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다. 반드시 준비된 사람이 기름부음을 받아야 합니다. 투표하는 여러분의 손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손입니다. 꼭 이 사람이 안 수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어야 한다고 확신하는 사람에게만 투표하십시오. 누군지 알지 도 못하는데 어떻게 투표하느냐고요? 그러면 투표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잘아는 사 람 투표 할 필요도 없습니다. 성령이 인도해 주시는 대로, 이분이면 일꾼이 되겠다 하시 는 분, 꼭 뽑힐 수 있도록 투표해 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민족이 아무렇게나 투표하 는 습관때문에 관습 때문에 우리민족이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몸살을 앓고 살아왔습니 까? 이제는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기도하고 우리의 대표자를 뽑을 수 있는 민족정신이 교인들의 정신이 성숙해 질 때에 이 민족이 성숙해 질 수가 있습니다.
IV. 어떻게 무너진 신앙을 다시 세울 수 있는가?
처음 신앙회복
어떻게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썩어져가던 자리에서 벗어나 새로워질 수 있었습니까?
어떻게 무너져가던 백성들의 신앙과 정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었습니까?
금식기도 40일 해라? 양 일천마리 잡아서 제사를 지내라. 너희들이 거룩해야 된다. 이런 추상적 인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지금 접근해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개 혁은 가장 근본적인 것, 가장 작은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회복되어질 때에 나라가 교회 가 새로워질 수 있다고 느헤미야는 믿었던 것이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순수했던 그 처음신앙으로 돌아가라는 겁니다. 성을 수축하고 마냥 기뻐했던 그 영광스러운 그 감사의 순간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울며 하 나님 앞에 서약하고 맹세했던 그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 10장으로 돌아가 보면 성을 수축하고 커다란 은혜를 체험한 다음 느헤미야는 백성의 대표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제사장 23명, 레위지파사람 17명, 12지파의 대표되는 백성의 대표자가 44명, 총 84명 의회에서 하나님 앞에 언약대로 살겠다고 맹세하고 일일 이 도장을 찍고 서약했습니다.
세가지를 서약합니다.
첫째, 이방결혼을 하지 않으므로 가정을 거룩하게 지켜나가겠습니다.
둘째, 안식일을 철저히 지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하나님 뜻대로 쓰겠습니다.
우리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고백하고 살겠습니다.
셋째, 십일조를 잘 드림으로 구별된 물질관리를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반항이라도 하듯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자녀들 을 이방인과 결혼시켜 아예 모국어를 잃어버린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안식일을 함부로 범하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습니다. 너도나도 범하고 사니 당연한 듯이 생각한 모 양입니다. 십일조를 저마다 도적질하여 십일조 곡간이 텅텅비도록 했습니다. 제사장들 과 성전의 레위지파 사람들이 농사지으러 시골로 다 도망을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끗이 파괴하고서도 저들은 한결같이 생각하기를 '적어도 우리는 성전을 수축한 사람들이야.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수축한 백성들이 아닌가? 하나님 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지 않을 수가 없을 걸?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실 거야. 하나님 은 우리에게 매일같이 커다란 복을 주실 거야'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마음속에 감격이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내 손발에 충성을 잃어버렸는데도 불구하고 주님전에 찾아나와 예배하고 말씀듣고 찬양할때마다 뜨겁게 흘러내리던 눈물을 까마득하 게 잊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한국교회가 깜짝 놀랄만큼 우리는 7-8년만에 이렇게 6,000명 만명교회를 지금 만들어 가고 있잖아. 하나님은 우리 에게 복 주실 거야. 이 성전건축을 위해서 우리가 흘린 눈물과 땀이 얼마야. 희생이 얼 마야. 감격을 잃어버림에도 불구하고 헛된 꿈을 꾸고 살아가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이 세가지 맹세를 하나씩 회복시켜 나갑니다. 회복의 순서는 맹세 했던 순서와는 반대로 해 나갑니다.
거룩한 물질관리
백성들은 세금을 정당하게 내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 앞에 드릴 십일조와 헌물 을 힘껏 드려서 선교사역과 부흥운동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 여 고향 땅으로 도망가 농사짓고 있던 레위지파 사람들을 다시 불러모아 무너진 제사를 회복시킵니다.
이 교회가 창립되던 8년전 상당히 긴 시간동안 생활비를 받을 수가 없었습 니다. 신학교에 나가 강의도 하고 다른 일거리를 찾아보곤 했지요. 그러니 교회가 부흥 될 리가 있겠습니까? 어느날 새벽예배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 약 속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감동대로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주의 종이라고 하면 주님이 주신 양식으로만 먹고 살게 해 주십시오. 제가 복 음의 일꾼이라고 하면 복음을 연구하고 복음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고 복음 을 설교하는 일로만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세상일들을 다 끊기 시작 했습니다. 이때부터 우리교회가 새로워지는 감사와 감격을 경험했습니다.
지난주간에 호주에 들렀더니 제가왔다는 얘기를 듣고 호주에 있는 목회자들 이 모여서 함께 식사하며 얘기라도 나누면 좋겠다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는데 거기모인 목회자들 가운데 80-90%는 교인들로부터 생활 비를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일날은 설교도하고 성 경공부도 하지만 주중에는 뭐 심방할 곳이 있습니까? 교인들이 20명 30명 고 작이니까? 남의 잔디 깍아주기도 하고 청소 하기도 하고 세탁소에 가서 일하 기도 하고 페인트 칠도 하고 그러고 다녔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꼴이 말이 아 니지요.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묻길래 마음이 아프지만 그들의 형편을 모르 는 바 아니지만 단호하게 얘기했습니다. 둘 중 하나다. 목회를 하든지 떠나 든지, 사명없으면 이곳을 떠나라! 여러분들이 진정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면 목 회자라고 판단되어지고 결단했다고 하면 목회를 위해서 일하고 목회 때문에 살고 목회 때문에 죽겠다고 결단해라. 그러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실 것이다.
반면 느헤미야는 십일조하지 않아 이처럼 영적인 피폐함을 가져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호되게 나무랍니다. 그리고 빈 십일조 곡간을 채워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시간관리 - 주일거룩
그리고 무너진 이스라엘 신앙을 회복하기 위하여 느헤미야는 안식일 신앙을 회복시킵 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킴으로 백성들의 시간을 하나님께 집중시키겠다는 것이었습니 다.
청소년 시절 저는 고신측 교회가 번창하는 남쪽 한 도시에서 신앙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고신측 교회들은 안식일 주일 성수를 아주 엄격하게 지켰 습합니다. 주일날 아이들이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었다가는 큰일나고 야단납니 다. 그런데 이 지역에 가면 전국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의 %가 가장 낮습니 다. 도시들마다 7% 이하로 떨어져 있습니다. 안식일 지키겠다는 결단이 잘 못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적으로 해석해서 그렇습니다. 안식을 지키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그 영적인 의미가 무엇인가 정신적인 의미 가 무엇인가 정신을 잃어버려서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정말 주일날 돈 한푼 쓸 수 없다고 한다면 자동차 타고 오는 사이에 기름이 얼마나 탄다고요. 버스타고 와도 안됩니다. 전화 한통 걸어도 몇백원입니다. 지금 예배드리는 이 시간에도 난방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기름이 탄다구요. 그 뿐이겠습니까? 이 밝은 불빛과 음향기계는 어떻게 합니까? 아마 지금도 모르긴 하지만 수십만 원 어치의 기름이 타고 있을 겝니다.
그 얘기가 아닙니다.
주일 신앙은 예배 신앙의 회복입니다.
주님 전에 찾아나올 때마 다 은혜받는 성도들이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은혜 잃어버리고 나면 껍데기만 남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께 힘을 얻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돈으로부터 힘을 얻 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으로부터 힘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가 새 힘을 얻습니다. 거짓을 물리칠 수 있는 힘, 악한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힘, 불 의한 자들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고 의로운 하나님의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는 이런 현 실 속에서 그래도 하나님이 돌리는 역사의 맷돌은 비록 천천히 돌아가지만 정확하게 돌 아간다. 진리를 따라 살아갈 수 있는 힘, 그 힘을 얻는 자리가 이 자리입니다.
주일은 말씀을 통하여 인생 모든 문제의 해답을 얻는 시간입니다. 천가지 만가지 문 제를 가지고 나왔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저건 내 말씀이야 그것 부둥켜 잡고 악을 물리치며 승리할 수 있는 힘, 그 힘을 얻는 자리가 이 자리입니다.
주일은 찬양과 예배를 통하여 내 인생의 가치와 행복을 얻는 날입니다. 그래서 세상 에서 천 날보다 하나님의 집에서 하루가 좋고 악인의 집에서 평안이 사는 것보다 하나님 집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일은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날입니다. 주일은 이름 그대로 주님의 날, 주님의 사 역을 열심히 감당하는 날입니다.
가정을 거룩하게 지켜라.
온전한 십일조와 거룩한 주일 -
이것이 가장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그러나 느헤미 야는 기본이 무너질 때 나라가 무너지고 가장 기초적인 신앙생활이 무너질 때에 백성들 의 영성이 무너진 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지요. 기본을 세울 때 나라가 제대로 되고 민족이 제대로 되고 교회가 제대로 된다고 지금 느헤미야는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를 회복한 느헤미야 이번엔 가정을 회복시킵니다. 가정을 거룩하게 지키겠다고 서약했던 사람들 가운데 가정을 더럽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가정의 신앙을 파괴하는 자들, 이방여인과 교제하는 자들, 어미가 이방여인이라 제나라 말을 잃어버린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25절 "내가 책망하고 저주하며 두어 사람을 때리고 그 머리털을 뽑아 버렸다"
대단히 단호하게 한편 과격하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왜요? 그만큼 중요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만큼 가정의 문제가 심각했다는 얘기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들이 거룩하고 깨끗하기를 원하십니다.
세속적인 가치관 으로 자녀들을 잘못 결혼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결혼은 대단히 중요한 영적 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두 남녀의 육체적인 결합이 아닙니다. 정신과 정신 의 만남입니다. 신앙과 신앙의 결합입니다. 바른 가치관과 가치관의 조화입니다.
중요한 것은 조건도 돈도 학벌도 아닙니다. 믿음이요 영성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의 결혼에는 부모가 당당히 관여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 것인데 왜 부모가 간섭이냐는 태도는 불효자식이나 하는 얘기입니다. 왜 부모들이 그런 얘기를 듣는지 아십니까? 아이들은 영성, 정신, 신앙, 사랑 이런 것을 보는데 부모들은 세속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돈이 어떻고 학벌이 어떻고 그러니 그 말씨가 먹혀 들어가지 않는 것 뿐입니다.
성경에 보면 결혼 잘못해서 망한 사람, 가문, 나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에서가 그랬고 아합이 그랬고 솔로몬이 그랬습니다.
V. 부패할 것이냐 새로워질 것이냐?
언제나 하나님이 사용하는 도구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일하는 방법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건강해야 나라가 건강하고 여러분이 똑바로 서 있어야 나라가 똑 바로 서 있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가정을 쓰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축복을 먹고 자란 자녀들을 하나님은 쓰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먹고 자란 여러분의 자녀들이 이 땅의 제2의 느헤미야가 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는 또 다른 공동체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일으켜 세워 하나님은 이 민족을 세워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교회를 통하여 이 민족을 이끌어갈 지도자들이 구름 떼 처럼 쏟아져 나오기를 하나님은 기대하고 계십니다. 이 교회는 가정은 사람은 생명 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생명체는 썩든지 새로워지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가만히 있는 것은 돌멩이입니다. 광물입니다. 생명체는 부패하든지 새로워지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 다. 당신의 신앙이 살아있다면 날로 새로워지게 될 것입니다. 당신 안에 새로워지고자 하는 열망이 없다면 개혁에 대한 의지가 없다면 이미 당신의 정신, 영혼은 부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 땅에서 무너진 정신들을 일으켜 세울 지도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새시대 한국교회는 제2의 느헤미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 들이 건강하게 세워지고 쓰임받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 한소망교회가 이 시대의 느 헤미야가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제가 호주에 있는 동안에 한 보고를 들었습니다. 전국에 있는 신학대학원 학생들과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국민일보가 설문조사를 했더랍니다. 지금 한국 에 안수받은 목회자가 7만명 내지 8만명정도, 그리고 안수받지 않은 목회자까지 합치면 10만명 정도의 목회자가 있다고 합니다. 이들 가운데 지금까지 살아있는 목회자들 가운데 한국교회를 이끌어왔던 목회자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앞으로 살아갈 우리 민족 우리 한국교회 21세기 한국교회를 이끌어 가게 될 교회는 어떤 교회이고 지도자는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라고 설문조사를 했 더랍니다. 그리고 100명을 선정했는데 그 가운데 한 교회가 부족하지만 한소 망교회요 또 부족하지만 류영모 목사다 하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한편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 두렵기 짝이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이 우리교회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100교회 가운데, 100명의 목회자 가운데, 고양시 전체에서는 한소망교회 한 교회, 류영모 목사 한 사람을 뽑았다고 합니다. 한국교회가 우리교회를 여러분의 지도자를 여러분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바르게 사십시다.
제대로 믿어보십시다.
열심히 살아가십시다.
이 교회 에 타오르는 불길 우리만 가슴에 끌어안고 좋아하지 말고 나누어 주며 살아가십시다.
여기서 구름떼 처럼 이 민족의 지도자들, 제2의 느헤미야가 쏟아져 나오도록 두려움과 경외감을 가지고 기도하며 살아가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