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 3: 9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 히 3: 11 맹세한 바와 같이
히 3: 9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
1]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거기서'(후)는 출애굽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방황했던 '광야'를 말한다.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에페이라산 엔 도키마시아)에서 '에페이라신'은 '시험하였다'(tested, NIV)의 뜻이다.
'도키마시아'는 '입증하는'(proving)의 뜻으로 본 구절의 뜻은 '입증하기 위하여 시험하였다'(tested in proving)라는 뜻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을 그대로 믿기보다는 객관적인 증거로 하나님의 '행사'(에르가)를 보고자 하였다.
2] 사십년 동안에
맛소라 사본과 70인 역에서는 이 40년을 하나님의 진노의 40년으로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저자는 본 절에서 70인 역을 인용하면서도 이 40년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연결시켜 해석하고 있다(Schroger, Lane, Kistemaker).
이것은 저자가 진노의 40년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셨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시사한다.
저자는 본 절을 구약성경에서 인용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하나님을 거역한 것과 예수께서 죽임을 배척하는 태도에 양자의 유사성을 염두에 둔 듯하다(Morris, Hewitt).
'시험한다'는 말(페이라조)이나 '증험한다'는 말(도키마조)은 원어에서 비슷한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의 하시는 기적들이나 두려운 징계들이나 긍휼의 구원들이나, 그의 보호하심과 공급하심과 인도하심을 경험했었다.
하나님께서는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셨고 날마다 먹을 양식으로 만나를 내려주셨고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셨고 40년 동안 그들의 옷이 해어지지 않고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셨다.
히 3: 10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 도다. 하였고 (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 도다. 하였고 )
1]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러므로'(디오)는 70인 역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저자는 '디오'를 본 인용문에 삽입함으로 시편을 인용한 본 절의 내용을 보다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이 세대'가 가리키는 '세대'는 문맥상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체험했던 이스라엘 열조들을 가리킨다(16절). 그래서 대부분의 영역본(KJV, RSV, NIV)과 공동 번역은 '그 세대'(thatgeneration)라고 해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하여 광야 생활을 하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강퍅한 마음에 대해 격노하셨다.
'노하여'(프로소크디사)는 '증오' 혹은 '극도의 혐오'를 느끼는 감정을 의미하는 헬라적 용어로 하나님께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뢰하지 않음과 강퍅한 마음에 대해 얼마나 강하게 분노하셨는가를 암시한다(Delitzsch).
2]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 도다. 하였고
'미혹되어'(플라논타이)는 '방황하다', '속다', '잘못하다'라는 의미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항상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잘못된 길을 걷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하였다.
이것은 단순한 무지(無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잘못을 가르쳐주어 '하나님의 길'을 알게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스스로가 거부해 버렸음을 암시한다(Delitzsch, Moffatt).
히 3: 11 맹세한 바와 같이 -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 )
1] 내가 노하여
'노하여'(오르게)는 10절의 '노하여'(프로스크디사)와는 다른 말이다. 이것은 인간의 모든 죄를 싫어하시는 하나님의 본성에서 비롯된 하나님의 진노를 의미한다(Morris).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길을 계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부함으로 죄를 범하였고 하나님은 그에 상응하는 진노와 심판을 행하셨다.
2]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이 인용구는 민 14: 21-23, 28-30 절의 말씀과 유사한 것으로 특히 민 14: 30의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와 일치를 보이고 있다.
* 민 14: 21-23, 28-30 - 21 그러나 진실로 내가 살아 있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하노니 22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29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심판하실 것을 맹세하셨다. 이러한 맹세와 심판은 그들의 죄악에 대하여 정당하고도 적절한 보응이다(Lane).
심판의 내용은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안식'(카타파우신)이란 창 2: 2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그 후 십계명 가운데 '안식일'의 규례가 제정되었다.
* 출 20: 8 -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안식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 신 12: 9 -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이 안식이 영적인 의미의 안식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 성취될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키는데 그곳은 악의 세력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의와 공평이 실현된 곳이다.
* 행 7: 49 -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 계 14: 13 -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지금 이후로’라는 말은 ‘복음 신앙을 가진 때로부터’라는 뜻이다. 복음 신앙은 곧 구원이 되며 복음을 믿고 죽는 자는 확실히 천국에 들어갈 것이므로 복되다는 뜻이다. 또 하나님께서 이 시점에서 새삼스럽게 죽음에 대해 언급하시는 것은 대 환난 시대에 순교자들이 많을 것을 암시한다(계 6: 11).
‘주 안에서’ 죽는다는 것은 ‘주를 믿는 믿음 안에서, 주님과의 영적 연합 속에서’ 죽는다는 뜻이다. 사람이 주 밖에서, 복음 신앙 없이 죽는다는 것은 큰 불행이다. 왜냐하면 모든 믿지 않는 죄인들에게 죄의 값인 죽음 곧 단지 육신의 죽음뿐 아니라, 둘째 사망인 지옥 형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 눅 16: 19-31 –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1)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다. -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본 절은 본서에 등장하는 일곱 가지 복 중 두 번째 복에 해당한다. 이것은 내용상 12절과 연결되어 성도들이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켜 인내할 때 순교를 각오하였음을 의미한다.
믿음을 지켜 순교하였다면 그들에게는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이 보장되어 있기에 그들은 복 있는 자들이다(Mounce).
'자금 이후로'는 두 가지 해석상의 문제를 안고 있다.
(1) '자금 이후로'가 무엇을 수식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 '죽는'을 수식한다(Charles, Plummer).
Ⓑ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를 수식한다(Mounce).
두 견해 중 문맥상 뜻을 분명히 해주는 것으로 보아 전자가 타당하다.
(2) '자금 이후로'에서 '자금'이 어느 때를 가리키는가 하는 문제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 때를 의미한다(Moffatt).
Ⓑ 성도들이 죽는 순간을 의미한다(Beckwith).
Ⓒ 사도 요한이 본 환상, 즉 최후의 심판 때를 의미한다(Alford).
세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 히 11: 35-40 : 순교자 –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 주 안에서 죽는 것은 복이다.
본문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말한다.
① 그가 그 수고를 그치고 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수고와 고생이 많다.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말했다(시 90: 10).
주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1: 28). 세상은 수고로운 세상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죽은 자들에게는 안식이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4: 3, 10-11에서,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 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그 안식의 세계가 바로 천국이다. 천국은 평안이 넘친 안식의 세계이다.
② 그가 이 세상에서 행한 선행들에 대해 보상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행이 천국에 들어갈 만한 가치도 없는 누추하고 얼룩지고 보잘것없는 것이며 그 자체도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 선한 행위를 귀히 보시고 상 주실 것이다.
* 마 16: 27 -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 고후 5: 8-10 –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 계 22: 12 –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4) 주안에서 죽은 자는 십자가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종들이다.
* 계 6: 9-11 –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계 6: 11에 죽임을 당한 자는 영원한 복음을 전할 종으로 택함을 입고 주안에서 인간성, 죄악성을 죽이는 산 순교자를 말하는 것이다.
* 계 11: 7-11 – 7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8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11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① 최후에는 삼일반 동안 죽는 것이다.
②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쉰다.
③ 복음을 위해 당한 고난이 크므로 안식으로 갚아주시는 것이다.
* 살후 1: 5-9 – 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6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9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 계 20: 4-6 –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죽으심, 부활의 때.
② 성도들이 죽는 때.
③ 대 환난의 때.
2)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다. -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저희 행한 일이 따름이라'에서 성도들이 행한 '일'(*, 에르가)은 핍박에 대한 '인내'와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순종'과 예수께 대한 '믿음'(12절)을 의미한다. 이러한 그들의 일은 수고와 동일한 것으로 그들이 사단의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 지치도록 인내하고 믿음을 지켰음을 가리킨다.
이러한 수고를 통해서 믿음을 지켰음을 의미하고 이러한 수고를 통해서 믿음을 지킨 그들은 죽은 후에 온전한 안식을 누리게 된다.
* 히 4: 1, 9 –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 계 22: 12 –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1) 사탄의 핍박과 공격으로부터 벗어나 참된 안식을 누리므로.
(2) 그리스도의 이름과 복음을 위한 수고가 헛되지 않으므로
* 히 6: 10 -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했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노하셨다.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맹세하셨다.
내 안식이란 일차적으로는 가나안 땅을 가리킬 것이지만, 영적으로 좀 더 깊이 말하면 재림으로 우리가 장차 누릴 영원한 천국의 안식을 가리킨다. 천국은 안식의 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