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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로마서의 결언(15:14-16:27)
로마서 1:18절부터 시작된 로마서의 긴 본론은 사실상 15:13절에서 끝난다. 남은 15:14-16:27절은 1:1-17절의 서론 부분에 상응하는 결론부분에 속한다. 로마서의 서언(序言)에 해당하는 1:1-17절이 바울의 모든 서신 중 에서 가장 긴 서언인 것처럼, 이에 상응하는 15:14-16:27절의 결언(結言)도 바울의 모든 서신 중 에서 가장 길다. 바울이 왜 로마서에서 이처럼 긴 서언과 결언을 필요로 하고 있는가? 아마도 바울은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로마의 크리스천들에게 목회적이며 선교적인 편지를 통해서, 자신과 자신의 복음과 자신의 선교적 비전을 소개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로마의 크리스천들이 당면하고 있는 현안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와 같은 긴 서언과 함께 긴 결언을 필요로 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로마서의 서언과 결언 부분은 서로 연계성을 갖고 있다. 이 점은 서언과 결언이 다 같이 바울의 여행 계획을 알리고 있는 점(15:14-29=1:11-13), 다 같이 기도를 요청하고 있는 점(15:30-32=1:8-10), 다 같이 바울 복음을 요약하고 있는 점(16:25-26=1:16-17), 그리고 다 같이 긴 문안인사를 제시하고 있는 점(16:1-27=1:1-7)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344)
로마서의 결언부분인 15:14-16:27절은 15:14-21절, 15:22-33절, 16:1-16절, 그리고 16:17-27절 등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바울은 로마의 크리스천들에게 자신이 독자들에게 로마서를 쓰게 된 배경과 자신이 그동안 3차 선교여행을 통해 수행해 온 이방인 선교사역에 대한 취지와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한다(15:14-21절). 둘째, 바울은 자신의 계획들, 곧 로마를 거쳐 스페인으로 가서 선교를 하겠다는 것과 지금은 이방인 선교 교회들로부터 모금된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예루살렘 방문을 무사히 마치고 로마로 갈 수 있도록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15:22-33절). 셋째, 바울은 아마도 로마서를 가지고 가는 뵈뵈에 대한 추천과 함께, 그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로마의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보내는 문안인사를 소개한다(16:1-16절).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바울은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와 함께 자신의 마지막 문안 인사와 송영을 소개하고 있다(16:17-27절).
1. 이방인들을 위한 바울의 제사장적 사역(15:14-21)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14)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15)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16)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17)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18)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19)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20)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21).
본문개관
로마서의 결론 부분의 첫 단락에 해당하는 15:14-21절은 크게 두 부분으로, 즉 바울이 로마서를 쓰게 된 배경을 보여주고 있는 14-16절과 바울이 지금까지 한 이방선교에 대한 취지와 그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 17-21절로 나눌 수 있다. 로마서 서론부분(1:6-12)을 연상케 하는 14-16절에서 바울은 먼저 로마 교회에 간략한 칭찬, 로마서 편지에 대한 간략한 소개, 그리고 이방인의 사도로서 자신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첨부한다. 그런 다음 17-21절에서 바울은 그 동안 자신이 3차에 걸쳐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지중해 연안의 여러 지역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어떻게 전했으며 성령의 역사가 어떻게 나타났으며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를 말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자신의 선교 정책은 철저하게 아무도 복음을 전하지 않았던 새로운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음을 강조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바울은 로마의 크리스천들에게 왜 그가 로마에 가기를 원하는지 왜 그가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그들에게 사도적인 편지를 쓰게 되었는가를 알 수 있게 한다.
본문주해
①로마교회와 바울의 제사장적 사역
로마서 서론의 감사문단에서(1:8) 로마의 크리스천 공동체를 향해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라고 칭찬했던 것처럼, 바울은 결언이 시작되는 14절에서 “내 형제자매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에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고 칭찬한다. 바울이 로마의 크리스천들의 애칭인 ‘내 형제자매들이여’라고 부르면서 거듭 칭찬하는 이유는 그들이 미성숙하기 때문에, 바울이 그들에게 긴 사도적 편지를 썼다는 인상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바울은 오히려 세 가지 점을 확신하고 있다고 하면서 로마교회 성도들을 칭찬한다. 첫째, ‘선함이 가득하다’는 말은 로마의 크리스천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정직하고 친절과 호의를 베풀었음을 지칭한다. 둘째, ‘모든 지식이 찼다’다는 말은 바울이 그들에게 로마서를 보내기 전에 이미 그들이 하나님과 복음의 진리에 관하여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가리킨다. 셋째, ‘서로 권하는 자이다’는 말은 바울이 그들에게 말하는 내용을 그들이 잘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자임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처럼 바울은 결론 부분에서 다시 한 번 로마의 크리스천들을 칭찬함으로써 자신의 편지에 대한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15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왜 로마서를 담대하게 써서 그들에게 보내게 되었는가를 설명해준다. 바울은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하나는 “이미 그들이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 생각나게 하려는 것”(15a)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이 말을 통해 로마의 크리스천들이 그가 로마서에서 쓰고 있는 중요한 복음의 진리를 이미 알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설사 로마의 크리스천들이 복음의 진리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복음의 진리는 계속 전파되고 가르쳐져야하고 설교되어져야한다. 왜냐하면 복음이 전파되고 가르쳐지고 설교될 때, 그 복음을 통해서 성령께서 계속 역사하시고 듣고 배우는 자에게 지속적으로 감동과 결단을 가지고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담대하게 그들에게 복음을 설명하는 편지를 썼다. 또 하나는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 때문이라”(15b)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를 이방인의 사도도 불러 복음을 전하는 자로 세웠기 때문에, 그가 로마교회를 설립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불가불 이방인의 사도로서 그들에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는 사명과 책임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점은 16절에서 보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되고 있다.
16절 서두에 있는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바울은 먼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 세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바울은 다른 서신에서도 종종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고전 3:10; 갈 2:9; 엡 3:2; 골 1:25). 그러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을 권위의 의미를 가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지 않고, 오히려 봉사자나 종의 의미를 가진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 부르고 있다. 이 말은 편지의 서두에서 자신을 소개한 “예수 그리스도의 종”(1:1)과 상응하는 말이다. 16절 하 반절에서 우리는 바울이 왜 이 말을 의도적으로 선택하였는가를 볼 수 있다. 16절 하반 절 첫 부분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 세웠는가를 밝히는데, 그것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짐승을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였던 것처럼, 하나님은 바울로 하여금 하나님의 복음을 통해 이방인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릴 수 있도록(롬 12:1-2; 벧전 2:5, 9절 참조) 그에게 제사장의 직분을 맡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16절 하반 절 둘째 부분에서 그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제물의 성격에 관하여 설명하여 그것은 “이방인들이 바로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제물”이라고 설명한다.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성령을 통해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거룩한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으로 세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바울은 자신의 편지가 이와 같은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임을 밝힌다.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물을 여호와의 집에 드리는 것과 같이 열방의 이방인들이 여호와께 예물을 드릴 것임을 예언하였다(사 66:20). 그렇지만 지금까지 유대인들만이 예루살렘성전의 제사에 참예하였는데,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이 무너졌기 때문에, 이제 자신을 통하여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드려진다고 말함으로써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암시한다.345)
②이방 선교 사역에 대한 바울의 자기이해
16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 세워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도록 하셨다”고 말하였기 때문에, 이제 17-19절에서 이에 대한 실질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곧 그가 지난 20년 동안 어떻게 이방인을 위한 일꾼으로서 복음의 제사장의 직문을 충실하게 수행하였는가를 밝힌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편으로 그의 신임성을 확보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그가 로마교회에 가서 무엇을 하려 하는가를 밝힌다. 바울은 먼저 그동안 그가 행한 일이 자신의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 일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그 자신의 일을 자랑하면 잘못이겠지만346) 하나님의 일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울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때문이다(고후 1:12-14; 10:13-17절 참조).
18절 상반 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들로 하여금 복음을 믿어 순종하게 한 하나님의 일이 자신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통하여 역사하신 것임을 거듭 강조한다. 단순히 복음을 전한 것만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고 그들을 목양하여 믿음의 순종을 가져오게 한 모든 그의 선교와 목회사역이 그리스도께서 자신 안에서 이루신 사역이라는 것이다. 바울 자신은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 결과를 가져오게 하신 분은 그리스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18절 하반 절과 19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통해 수행한 일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그것은 ‘말과 행위’, ‘표적과 기사의 능력’, ‘성령의 능력’으로 수행된 것이다. 바울은 모세의 출애굽 사건(출 7:3,9; 신 4:34; 6:22)과 사도행전의 오순절 사건에서 나타난 동일한 신적 사건들(행 2:22,43; 4:30; 5:12)이 자신의 사역을 통해서 나타났다고 함으로써 자신의 사역이 사도적 사역임을 강조한다. 그 결과 그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일루리곤까지 지중해 남쪽을 제외한 전 지중해 연안지역, 곧 동로마지역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널리 전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이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맡겨진 지역에 대한 복음전파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 말이 해당되는 지역의 모든 마을 마다 바울이 복음을 전했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제 3차에 걸친 바울의 선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바울은 전략적으로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다. 왜냐하면 주요 도시에 복음을 전하게 되면 자연히 그 인근지역에 복음이 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③바울의 선교전략
20-21절에서 바울은 그동안 수행해 온 자신의 이방인 선교사역에서 지켜진 일관된 선교방침이 있었음을 강조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다”(20절)는 것이다. 복음이 전혀 알려지지 않고 교회가 아직 설립되지 않은 지역에 가서 개척자로서 일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바울은 다음 문단에서 소개할 그의 스페인선교 계획을 알릴 수 있는 길을 만든다. 바울은 20절 하반 절에서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 하려 함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선교가 다른 사도들에 의존하거나 보충적인 선교가 아니라, 오히려 독립적이고 개척자적 선교임을 강조한다. 바울은 21절에서 이사야 52:15절의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를 인용하여, 이와 같은 자신의 선교정책은 이사야가 예언한 것의 성취임을 시사한다. 이사야는 야훼의 종인 메시야를 통한 이방인의 회복을 예언하였는데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자신을 통하여 이루셨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347)